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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38화 (38/225)

38화 낙일, 그리고 여명 (1)

닭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옆에는 요시히메도 마침 눈을 뜬 상태였다.

“일어나셨어요?”

제의를 받아들인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출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나중에 슬쩍 물어보니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 제 상공이 되셨으니까요.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한결같은 태도에 조금씩 믿음이 생겼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외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요시히메도 마찬가지로 하루를 시작하려 일어났다.

세수를 하기 위해서 마당으로 나가니, 이치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물론이고, 그가 속한 이가류 전원은 나와 계약한 지 오래였다. 돈은 충분했다.

단조는 여전히 요시히메를 섬기고 있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  이가닌자는 훌륭한 정보요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계약자에게만 충성했다. 이제 내 주변에 깔렸던 감시망은 고스란히 경호망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 시간에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급박한 보고가 있다는 의미였다.

“무슨 일이지?”

“미요시 요시츠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와리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가.”

내게 소식을 전한 이치로도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게 닌자의 미덕이라나.

그보다도,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삼인중과 삐걱거리던 요시츠구는 끝내 탈주했다. 주군의 발밑에서 함정을 팠던 가신이나,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문을 저버린 당주. 그 어디에도 명분은 없을 터였다.

“마츠나가 공에게도 이야기를 전해라. 이제 일어설 때가 되었다고.”

“존명.”

이제 움직일 때가 왔다.

*       *       *

2년 전, 기나이의 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요시 요시츠구는 자기 숙부의 뒤를 이었다. 전임자가 청소를 깨끗하게 해 두었는지, 그는 사카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머지 가신들도 마찬가지. 승계 직후의 어수선함이 눈을 가린 듯했다.

게다가 미요시 가문의 영지는 너무나 광대했다. 가문의 발원지인 시코쿠에서 야마시로 턱밑까지.

차기 당주는 준비되지 않은 자였고, 경쟁자들은 많았다.

당주의 사촌들은 시코쿠에 머무르며 독자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당주는 그 이탈을 사실상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영지보다는 교토에 더 관심을 보였다.

미요시 요시츠구는 예상대로 쇼군을 참살했다. 후대에 에이로쿠의 변(永禄の変영록의 변)으로 알려진 일이 끝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소문으로는 상당히 장렬한 최후였다는 것 같았다. 검호쇼군의 검술은 끝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주변에서는, 심지어 요시히메도 그때가 기회라며 내게 거병을 권했다.

- 상공께서 거병하신다고 해도, 요시츠구는 손을 쓸 수 없을 거에요.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기다릴 생각이었다.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 가신들 중에서도 가장 포섭할 가능성이 높았던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접근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주군께서는 내게 사쿄타이후(정5위상 佐京大夫좌경대부, 미요시 요시츠구)님을 섬기라 하셨소.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겠군.

나가요시를 섬기던 숙장은 지금의 당주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요시츠구는 자신이 쇼군 살해의 오명을 뒤집어 쓸 상황이 되자, 마츠나가에게 책임을 돌렸다. 거기에서부터 미요시 가문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히사히데는 자신이 잠시 아와지시마를 맡았을 뿐이라며, 요시히메가 마음대로 쓰도록 넘겨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내게 모든 결정권을 넘겼다.

그리고 지금, 미요시 요시츠구가 기나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곧장 방으로 돌아가서 부인에게 오늘 귀가가 늦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유야 방금 들어온 소식 한 가지였다.

“미요시 요시츠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네.”

“설마······.”

“그 설마가 맞을거야.”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할 게 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어느 주군이 가신들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해서, 탈주를 하겠는가.

미요시 나가야스, 소이, 이와나리 토모미치. 후대에 미요시 삼인중(三人衆)으로 이름을 남긴 자들이다.

이 세 사람은 미요시 나가요시의 수하들 중에서 유능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충성심은 그에 비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그저 주인이 고삐를 제대로 쥐지 못하자 폭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주군이 적에게 투신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상공의 예상이 옳았네요. 제가 선택한 분다워요.”

그녀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비록 미요시 가문의 당주가 하극상을 벌였다고는 해도, 그는 여전히 기나이의 패권을 움켜쥔 자였다. 가신들이 순순히 이쪽으로 돌아설지는 알 수 없는 일. 무모하게 판돈을 거는 대신, 조금 더 때를 기다린 열매는 매우 달콤했다.

“오늘은 바빠질지도 몰라.”

내 말에 요시히메는 싱긋 웃더니 살포시 안아 주며 말했다.

“집안일은 염려마시고 다녀오세요.”

“큼큼······. 다녀올게!”

*       *       *

집을 나선 뒤, 나는 가장 먼저 항구로 향했다. 손에 든 패 중 가장 실질적인 무력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거느렸던 선단은 이제 수군을 자처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상태였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아와지 수군이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내 이름을 내걸어도 좋을 때가 되었다.

막사에 들어서자, 교타로가 맞이했다.

첫 번째 항해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이제 내가 거느린 수군의 총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는 여전히 내 노예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선단을 맡기기에 달리 마땅한 사람이 없었고, 신뢰 또한 의심할 이유가 없는 자였다.

다른 이들은 기괴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새로 사들이는 노예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수군의 상태는 어떤가?”

“반은 항로 경비에 나가 있는 상태고, 나머지 반은 인근해에서 대기 중입니다.”

나는 현황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 방면의 항로에 순찰을 늘리도록.”

“예, 주군!”

교타로는 내 지시에 힘차게 답했다.

이 시대의 다이묘들은 수군의 존재를 경시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오다 노부나가라면 무슨 수를 내밀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오와리는 항만으로서도 입지가 괜찮은 편이니, 바다로부터의 기습 또한 염두에 두어야 했다.

수군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곧바로 에고슈 회관으로 움직였다.

아직 예정보다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지,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과연 어떨까······.”

나와 에고슈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한때 삼파전이었던 구도는, 이제 내 편을 드는 자들과 나를 껄끄러워하는 자들로 갈린 상태였다.

쇼군이 참살당한 뒤로, 야마시로파는 그대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그들을 흡수한 이는 다름아닌 소에키와 와타다 오리시로였다.

급진파라 해도 좋을 자들이 등장한 셈이었다.

나라고 무사들의 전횡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너무 앞서나갔다. 하지만 그런 점을 제외하면 역시 협력을 유지하는 편에 속했다.

그나마 이마이 소큐마저 그쪽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에고슈에 속한 거상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모두 모였을 때, 나는 안건을 꺼냈다.

“조만간 기나이에 난세가 도래할 겁니다. 그러니 공장의 이전을 권하려 합니다. 아와지시마면 안전하겠군요.”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제 사카이에는 직조 공장 외에도 다양한 산업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보시소우치(방사장치紡絲裝置)와 토바스히키(비사기飛梭機, 나는 북 베틀)의 등장은 산업의 발달을 자극했다.

그동안 수공업에 만족하던 사람들이 앞 다투어 기계를 고안해 내며, 대량생산의 길을 걷고 있었다.

가장 먼저 소에키가 나서서 질문했다.

“어떤 근거로 말씀하시는지, 연유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침묵한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요시 가문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오다 노부나가가 상락을 재개할 겁니다.”

더 이상 사카이는 후방이 아니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제는 성벽의 보호까지 더해지고 있다지만, 공장들이 남아 있기에는 불안하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아와지시마는 마츠나가 공의 영지가 아닙니까?”

“이제는 제 영지이니, 부지를 제공해 드릴 수 있지요.”

그동안 나와 가까이 지냈던 이들은 알 만한 이야기였다. 요시히메의 정체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가 되겠지만.

예상대로 그들 중 하나인 츠다 소규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그 섬이 고니시 님의 영지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몇 해 전, 사망한 슈리다이부의 사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시히메의 정체도 그 자리에서 공표했다.

웅성거림은 방금 전보다 훨씬 커졌다. 그러다가 내가 일어서서 진정시키자, 다시 장내는 정숙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모두들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기골은 크고 볼 일이었다. 예전같으면 이마이 소큐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겠지만, 지금 내 키는 여느 어른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클 정도였다.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충분한 신체조건이었다.

다시 조용해진 다음, 나는 입을 열었다.

“물론 제가 여러분들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를 장악한 뒤에는, 이 풍요로운 마을을 고이 두지 않겠지요.

저는 이제 다이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고슈를 저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도시요리 대리로서, 여러분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에고슈 대표는 바로 아버지셨다. 하지만 내 키가 성인의 평균 신장을 넘어서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그 권한을 대리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듣자, 와타다 오리시로가 발언권을 청했다.

“그렇다면 아와지시마로 간 다음부터는 고니시 님의 영민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방금 입을 열었던 자는 여전히 협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다른 사족들처럼 평민들을 착취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양새였다.

조선으로 다녀온 뒤, 소에키는 잇코슈(一向宗일향종)과 교류를 늘렸다. 그리고 와타다도 그에게 기울어진 편이었다.

예전에 동지였던 두 사람은 이제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와지시마에서도 사카이와 동일한 통치가 이루어질 겁니다. 여러분들을 무단으로 억누르는 짓은 하지 않겠다 약속드리지요.”

이후로 거상들이 서로 발언권을 얻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별 뾰족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각자 알아서 판단하는 걸로 정해졌다.

내가 오도시요리 대리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이전을 강제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경고와 제안을 보냈고, 선택은 그들의 몫이어야 했다.

회의가 끝나고, 급진파에 해당하는 두 사람이 내 쪽으로 찾아왔다.

“고니시 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소에키와 와타다의 정중한 요청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두 분이시라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지요.”

나는 그들에게 초대를 청했다. 만약 고니시 저택으로 불러들인다면 그들을 압박하는 형국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소에키가 자신의 암자로 나와 와타다를 인도했다.

“고니시 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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