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조선을 만나다 (6)
사격 연습장은 단야소 옆에 숨겨져 있었다. 쇠를 두드리는 소음에 폭발음이 가려질 만한 장소였다.
“우선, 신형 철포의 위력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러시다면 저기 표적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지켜보시지요.”
곳곳에 나무인형이 놓여 있었다. 어떤 것들은 파손 상태가 심각한 걸 보니, 제작자 스스로도 몇 차례 시험해본 것 같았다.
이마이 소큐가 자신의 작품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류했다.
“제가 직접 쏴보고 싶습니다.”
“아직 어려우실 겁니다.”
아무리 구닥다리 화기라고 해도, 반동은 결코 경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소큐도 내가 반동을 견디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나는 어깨에 개머리판을 제대로 견착시키며 말했다.
“보아하니, 제가 부탁드린 대로 잘 만들어주셨던데,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혹시······.”
그는 자신이 철포의 뒷부분에 무엇을 부착한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맞습니다. 이렇게 몸에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으면, 반동은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
개머리판은 어깨에 제대로 붙일 수 있도록 각도도 알맞게 깎여 있었다. 곧바로 눈앞의 나무 인형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표적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걸레가 연상될 정도로 갈가리 찢겨나갔다. 나무토막이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다시피 했다.
“이크.”
표적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나는 신무기를 손에 들고 눈으로 주변을 쓱 훑었다.
“나무 인형 말고 다른 표적은 없겠습니까?”
“사람을 상대로 쓸 무기니, 최대한 비슷한 형상에 시험하시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마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 신개념 병기는 조준사격이 불필요한 형식이었다. 초기형 산탄총에 명중률은 무의미할 터. 나는 어느 정도의 면적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널빤지, 그것도 최대한 넓은 종류로 있으면 좋겠군요.”
소큐는 자기 손으로 한쪽 벽을 가리켰다.
“그러시다면 저 벽에다가 대고 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여 뚫리기라도 하면······.”
무기상인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내 걱정을 일축했다.
“애초에 시험용으로 준비한 공간입니다. 절대 뚫리지 않도록 나무 벽을 두껍게 세워둔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그러시다면 사양않고 쏘도록 하지요.”
이번에는 표적과의 거리를 미리 정했다. 10보 단위로 거리를 넓혀가며 면적의 차이를 비교할 생각이었다. 이마이 소큐는 내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처음은 10보의 거리를 두었다.
타앙!
결과를 확인해보니, 약 1m 반경의 원이 벽에 새겨졌다. 역시 총구를 벌려놓은 것 때문인지, 총탄이 생각보다 넓게 퍼진 모양으로 나왔다. 그리고 생긴 탄흔의 깊이는 재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20보, 30보 거리에서 다시 사격한 뒤, 결과를 비교해보았다.
20보에서는 방금 전의 사격에 비해서 정확히 네 배의 면적에 탄이 흩뿌려져 있었다. 탄흔의 깊이는 내 검지 손가락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만들어졌다.
당연하게도 30보 사격의 결과는 훨씬 넓은 피탄 면적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총탄이 얕게 박혀 있었다. 일부는 튕겨 나와서 흠집을 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역시 너무 멀어도 곤란하겠군요. 하지만 이만하면 훌륭합니다.”
바다에서 쓰기에는 적당하게 보였다. 어지간히 가깝지 않고서야 제대로 된 명중률을 내기도 어려울 터. 양측의 선박이 갈고리를 걸고 육박전을 벌이기 직전에 쏠 수 있는 거리면 충분했다.
“음, 확실히 배 위에서라면 도망갈 데도 없겠습니다. 역시······.”
이 신무기는 기존의 철포에 비해, 두 배의 화약과 네 배의 탄을 소모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일격에 여럿, 어쩌면 수십 명까지도 처치할 위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 철포는 이름을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감히 제가 어떻게 유키나가 님의 작품에 멋대로 명칭을 붙이겠습니까. 유키나가 님께서 결정하시면, 그대로 하도록 하지요.”
소큐는 신무기의 명명을 내게 떠넘겼다. 나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입구가 앞을 향해 나팔처럼 벌어져 있으니, 나팔총이라고 합시다.”
“총, 입니까?”
이름을 들은 제작자는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이렇게 생긴 무기는 철포 아니면 대철포라고 불렀으니, 총이라는 명칭은 생소할 터. 하지만 굳이 철포라는 이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명나라에서는 이런 무기를 총이라고 한다더군요. 그리고 이시비야(石火矢석화시, 일본에 전래된 불랑기포)처럼 큰 화기를 포라고 한답니다. 철포는 부르기도 번거로우니 총이라는 명칭이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면 유키나가 님 말씀대로, 이 철포는 나팔총이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나팔총의 이름이 결정되자, 이마이 소큐는 어딘가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간 말씀해주셨던 개념을 적용한 시제품입니다. 아무래도 시험 제작이다 보니 크기는 좀 작게 만들었지요.”
소큐는 내게 심지 대신 부싯돌로 화약을 점화하는 화기를 건넸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끼울 수 있는 골무도 같이 주었다.
내가 준비를 마치자, 그는 누르스름한 금속 덩어리 하나를 주며 말했다.
“여기, 약실에 미리 탄약을 재어 두었으니, 그대로 끼우고 쏘시기만 하면 됩니다.”
한쪽 면에 구멍 여섯 개를 뚫어놓은 원통 형태. 안에는 이마이 소큐의 말대로 탄약에 장전되어 있었다.
그가 내게 준 화기는 현대의 사람들이 리볼버 권총이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흡사했다.
“한번 사격하신 다음에, 약실을 돌려주셔야 합니다. 맨 손으로는 뜨거울 터이니 쓰실 때는 반드시 골부를 끼워주십시오.”
나는 건네받은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의외로 빨리 나온 것 같습니다. 족히 몇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제작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순간 몇 년은 늙어 보인다 싶을 정도로 지친 기색이 확 올라온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건 너무 까다롭습니다. 부품 일부는 청동 주물로 만들었지만, 역시 대량으로 찍어내기에는 번거로움이 많더군요.”
아마도 약실을 비롯한 몇몇 누르스름한 부분이 쇠가 아닌 청동 재질인 모양이었다.
“차라리 기존의 철포에 부싯돌을 다는 정도는 어떻게든 재료만 있으면 가능하겠더군요. 하지만 이 자포라는 걸 끼워 넣는 건, 정말이지······.”
제작자는 역시 가장 까다로울 것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약실이 통짜형인 기존의 철포보다는 총신에 엉성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으니, 그만큼 만들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리볼버 구조는 복잡하니, 양산은 기대도 하지 말라는 투였다.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야 뭐.”
나는 먼저 첫 발을 쏘고, 약실을 손으로 돌려서 다시 한 발을 쏘았다. 여섯 발 모두를 쏘는데, 체감상 1분도 걸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확실히 연사 능력은 좋군요. 게다가 짧으니 소지하기도 용이하겠고······. 어려우시겠지만 그래도 이 방식에 관한 연구는 계속 부탁드립니다.”
텅 빈 약실에 재장전을 한 다음, 다시 한번 사격을 했다. 이 정도면 내구도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시험이 전부 끝난 후에, 나는 제작자에게 시제품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소큐는 받아들지 않았다.
“마음에 드신다니 가져가시지요. 혹시나 싶긴 합니다마는, 실전에서 사용한 경험도 중요하니 말입니다. 나중에 소감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시다면 기꺼이 받도록 하지요.”
* * *
노잡이를 확충해서 연습시키고, 경비대의 훈련을 감독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서신을 한 통 받았다. 전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요시히메였다.
- 모월 모일, 미요시 지쿠젠노카미 요시오키 사망.
“단조가 가져온 거야. 아버님께서 네게 전달하라고 하셨대.”
혹시 숨겨진 의미라도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역시 요시오키가 죽었다는 문구 이상의 뜻은 없었다. 다만 날짜가 특이했다.
“보름 뒤가 아닙니까?”
내 말을 단조가 받았다.
“그렇소. 다른 일정은 비워두고 준비해두었다가 참석하라는 명이 있으셨소이다.”
적절한 빌미를 만들어두었으니, 반드시 방문하라는 의미였다.
“보름 뒤에 요시오키의 장례식이라······.”
나는 요시히메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면 본인의 장례식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일단은 해방감이 앞서는 기분인데, 섭섭함이 없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좀 이상하네.”
그녀는 씩 웃었지만, 평소 같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요시오키로 살았던 시기가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요시히메 님도 참석하십니까?”
“무슨 수로······?”
“어떻게든 변장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마는, 머리가 짧으시니 여승이나 기리시탄의 수녀로 꾸미셔도 되겠군요.”
다행히도 남장으로 지낸 세월이 있어서, 머리는 다른 여인들처럼 긴 생 머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요시오키를 연상시키지만 않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래도 하나의 삶인데, 마무리는 짓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단조도 내 말을 듣더니, 요시히메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것 같았다. 그도 자기 주군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아가씨. 얼굴에 몇 가지 변화를 주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건 간단합니다.”
그도 내 말에 동의했다.
* * *
예정된 날, 나는 병문안을 빙자해서 아쿠타가와 성으로 출발했다. 물론 사전에 단조를 경유해서 미요시 나가요시와 모든 걸 맞춰놓은 상태였다.
내가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와 친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여승과 같이 오는 건 어색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시히메는 수녀로 변장을 하고, 루이스 신부의 대리인이라는 이유를 꾸며서 동행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정말 이가류의 변장술은 놀랍군요.”
처음에는 괜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만약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될 터. 하지만 이리저리 뜯어 볼수록 요시히메의 얼굴은 없었다.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인상이었으니, 누구도 그녀에게서 자기 가족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터였다.
저녁쯤 되어서 성에 도착하자, 이미 상중이라는 걸 알리는 등불과 깃발이 내걸려 있었다.
미요시 가문은 가톨릭에 관대했지만, 개종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러지는 것 같았다. 상주는 나가요시가 직접 맡고 있었다.
영전으로 나아가기 전에, 요시히메가 내게 귓속말로 질문했다.
“지금 나는 기리시탄(가톨릭 신자)으로 위장한 상태인데, 불교식을 따라도 괜찮은 거야?”
“손님 된 입장에서 주인의 예법에 맞추는 거니까 상관없을 겁니다.”
일본에 가톨릭을 들여온 예수회는 현지 풍습에 관대했다. 나중에는 다른 수도회와 갈등을 빚다가 교황에게 된서리를 맞게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이 정도는 둘러댈 수 있을 만한 허용 범위 내였다.
분향을 마치고 영전을 나서자, 한 장수가 나를 불러세웠다. 덩치가 큰 편에 낯익은 얼굴, 하지만 그가 누구였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머뭇거리고 있으니, 그가 먼저 용건을 말했다.
“이치노스케(종7위하 西市右서시우의 약칭, 고니시 유키나가). 주군께서 찾으시네.”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일전에 저택을 지키고 있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라는 걸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와 요시히메는 그를 따라서 밀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여전히 상복 차림의 나가요시가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이부를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