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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24화 (24/225)

24화 조선을 만나다 (5)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 원래 아타기 숙부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요시히메는 예전을 떠올렸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숙부님들 중에서는 가장 따뜻한 분이셔서, 처음에는 많은 것이 의심스럽기만 했어. 짓큐 숙부가 전사했을 때도, 전혀 아타기 숙부를 의심하지 않았지.”

그녀가 말하는 짓큐 숙부라는 건, 아마도 미요시 유키토라를 말하는 것일 터. 미요시 나가요시의 첫째 동생인 그는 짓큐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사실 짓큐 숙부가 쿠메다(久米田구미전)에서 돌아가시지만 않으셨어도, 내가 전면에 나서야 할 이유는 없었지.”

미요시 나가요시는 자신의 형제들을 가문의 기둥으로 세웠다.

첫째 동생은 시코쿠의 미요시 세력을 총괄케 하고, 둘째는 아와지시마에서 수군을 관장하며 두 영지 사이에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넷째는 기나이에서 자신을 보좌하고 막내는 시코쿠에서 미요시 짓큐를 돕는다.

이 계획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미요시 가문의 요절징크스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었다.

먼저 형제들 중 막내였던 노구치 후유나가가 시코쿠에서 전사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넷째 소고 카즈마사가 죽었다. 기나이에서 용맹을 떨치며 ‘오니 소고’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요시히메가 언급한 대로, 작년에 벌어진 쿠메다 전투에서 짓큐가 전사하고 말았다.

“만약 아버님께서 끝내 아들을 보지 못하게 되신다면, 짓큐 숙부에게 가독을 잇게 할 참이었지. 아버님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문무 양면에 능하셨으니까.”

그러나 차기 당주 후보는 이미 죽어버렸고, 상황은 다급하게 돌아갔다.

당시 반미요시 연합은 쿠메다 전투의 기세를 몰아서 카와치(河內하내, 오사카 부 동쪽 일대)국의 쿄코지(敎興寺교흥사)로 치고 들어왔다. 이어진 쿄코지 전투는 미요시 가문의 승리로 끝났고, 야전 지휘관 노릇을 담당했던 미요시 요시오키가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진짜 요시오키는 죽은 상태, 그 실체는 지금 우리집에 숨어 있는 요시히메였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쿄코지 전투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정말 아가씨께서 군재를 지니고 계셨다면, 직접 승계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셨을 텐데요.”

실제로 그런 사례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두 가지 사례 모두 이제 일어나게 될 예정이지만, 역사상 여성 당주가 존재하기는 했다.

도쿠가와의 가신이었던 이이 가문의 나오토라, 그리고 오토모의 가신이었던 타치바나 긴치요. 그런 점에서 쿄코지 전투의 요시오키가 보여주었던 군재가 그대로 요시히메의 것이었다면, 그녀가 가독을 잇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요시히메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일단 그때 아버님이나 나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 그 정도로 사정이 급박했으니까. 건재함을 보여주어야 군대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었지.”

당시에는 단순히 시간벌이용으로 요시히메가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친오빠를 가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더도덜도 아니고 당주가 적남을 얻을 때까지만. 하지만 그 계획부터 틀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독을 잇는 건 곤란했어. 우리 가문이 비빌 언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거야. 쇼군과 맞설 정도의 정점에 선 미요시는 조금의 약점도 노출해선 안 됐어.”

그렇다면 역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노리는 자들도 많은 법. 그런 상태에서 일차적인 그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클 터였다.

내가 머리를 굴려가며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요시히메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아타기 숙부를 정점에 세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셨지.”

“어째섭니까?”

“첫째로, 아타기 숙부는 너무 무르다고 여기셨어.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그때 단조가 끼어들었다.

“아가씨. 이런 이야기는 직접 이야기하셔선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말하도록 하지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껄끄러운 말이었는지, 요시히메는 고개를 끄덕여 승낙의 의사를 표했다. 그걸 본 단조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미요시 가문의 배신자나 다름없었소. 처음 짓큐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첩보를 들었을 땐, 모두가 반신반의했지. 하지만 이후 그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소. 아쿠타가와 성에 첩자를 밀어 넣더군.”

아쿠타가와 성이라면 다름아닌 요시오키의 거성이었다. 사사롭게는 숙질 관계가 되지만, 공식적으로는 당주 후계자와 가신의 입장에 불과했다. 가신이면서 주군과 관련된 정보를 캐낸다는 것은 곧 역심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당주가 될 수밖에 없도록 끊임없이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었소. 그 야심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길이 갈수록 치밀하게 들어오면서, 진상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 거요.”

“아가씨께서 실은 카게무샤(影武者영무자, 지체높은 이의 대역)셨다는 것 말입니까?”

“그렇소. 그 자의 야심이 다이부의 위신을 해칠 지경에 이르고 말았소. 그래서 아가씨께서는 다시 신변을 숨기셔야 했고······.”

듣고보면 결국 첫 단추를 잘못 꿴 결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요시오키 본인이 죽었을 때, 나가요시는 후계구도를 정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가 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대강 이야기가 정리되자 요시히메는 다시 본제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아까의 어두운 기색은 간데없이 사라졌고, 다시 10대 소녀의 모습이 돌아온 상태였다.

“아타기 숙부가 널 어떻게 볼 진 몰라. 하지만 어쨌거나 내, 푸하하하하.”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그런가 싶어서 물끄러미 보다가, 나도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아가씨가 바로······.

“그러니까 명목상으로는 네가 요시오키에게 입적한 상태잖아. 잠재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요시히메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말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배를 움켜잡으며 웃어댔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21세인 줄 알았던 양부가 사실은 이제 13세의 소녀에 불과했다니.

여자는 성장기가 일찍 찾아온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처럼 성장기가 길게 이어지지도 않는 시대였다. 소위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사실은 성징이 드러나는 시기에 맞춰서 나온 단어라고도 하지 않던가.

게다가 요시히메는 성인 남성과 비슷할 정도로 키가 컸다. 환생 전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초등학생 시절에 종종 일찌감치 성장한 여자애들이 없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면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웃음기가 옮아서 한참을 같이 웃다가 새삼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라고 입적을 하고 싶어서 했느냔 말이다.

“제가 원해서 된 것도 아닌데······.”

“그런 사정까지 봐줄 리가 있겠어?”

결국은 나도 당사자로 엮일 만한 사안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미요시 나가요시가 자신의 동생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걱정이 되진 않았다.

*       *       *

장마가 끝날 무렵, 관선(関船) 다섯 척이 인도되었다. 길이는 약 20미터 정도에 밑바닥이 좁은 형태. 판옥선에 비하면 작았지만, 당장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함선이 완성된 것이다.

오백 석짜리 관선를 보니, 길이가 그 반토막 수준이었던 이백 석짜리 변재선(弁才船)이 떠오르면서 감개가 무량했다.

“참 크네.”

나는 아직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배를 어루만졌다. 조선공도 자기가 만든 배에 자부심을 느낀 듯, 어깨를 펴고 나를 맞이했다.

“노예들은 일을 잘 하고 있나?”

“물론입죠. 나으리처럼 후한 주인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 노꾼으로 썼던 노예들은 10년을 기한으로 잡아서 풀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배를 만드는 일은 바다로 나가는 위험이 없었다. 그래서 기한을 길게 놓고 약속을 걸었다.

- 여기 선 자들은 너희들보다 먼저 팔려온 노예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뒤에 풀려날 예정이지.

- 너희들도 배를 타겠다면 10년을 기한으로 잡아서 풀어주도록 하겠다. 물론 바다에 나가고 싶지 않은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는 20년만 일하면 역시 해방시켜 주겠다.

원래 노예를 부리는 일은 상당히 생산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역시 자유민보다 의욕도 떨어지고, 단순한 일만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기를 부여해주자, 그들은 충분한 의욕을 보이며 노동력을 제공했다. 해외로 팔려나가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자들에게 빛을 보여주자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역시 소나무를 쓰는 건 안되겠지?”

“포기하십쇼. 저도 용을 써봤지만, 어떻게 만들 수는 있어도 제작 기간이 한없이 늘어질 겁니다.”

인력을 대폭 증강해도, 안 될 일은 역시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놈의 똥철도 문제네. 이보게, 센시로. 만약 공구를 좀 더 괜찮은 걸로 쓰면 가능하겠나?”

내가 인수했던 조선소 주인의 이름이 센고로(船五郎선오랑)였다. 역시 성은 없다고 했다. 그는 비록 힘이 좋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차돌이 연상될 정도로 단단한 인상이었다.

자본을 투자해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자, 그는 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번에도 무작정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한번 더 생각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가능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공구를 만드는 비용이 무척이나 비싸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말이라도 해두는 것일세. 재질이 단단할수록 좋지 않던가.”

센고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조선공의 대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스즈키 시게히데(鈴木重秀영목중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여기에 타면 되는 건가?”

“이것도 있고, 아직 전부 완성된 건 아니야. 총 스무 척에 나눠서 타야지.”

“한 척에 철포수 열 명씩은 조금 곤란하지 않아?”

당연히 파도로 요동치는 바다보다는 육지에서의 명중률이 높다. 스즈키는 사이카슈의 철포수만을 전력으로 쳐서 이야기하는 듯했다.

보통 고바야부네만 해도 전투인원으로 3, 40명은 승선시킨다. 그리고 세키부네는 그보다 훨씬 컸으니, 그런 점에서 스즈키의 지적은 타당했다.

“훈련은 잘 되어가고 있어?”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배 위에서 사격하는 건 다른 이야기지.”

“배 위에서도 연습은 계속 시킬 거야. 대책도 준비되어 있고.”

내 말에 스즈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포에 관해서만큼은 사이카슈가 일본 제일이었다. 그런데 자기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대책이 있다고 하니 신기하게 들렸던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리려는 거야?”

“보면 알아.”

*       *       *

지난 번, 나는 이마이 소큐에게 수석식 총의 개념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신무기 연구를 부탁해두었다.

얼마 전, 그 중의 하나가 완성되었다고 했다. 마침 오늘은 세키부네의 인도 외에 다른 일이 없었기에, 나는 곧장 소큐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도 이 철포는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약 낭비가 아닐런지요?”

소큐가 내민 철포는 기존의 것보다 구경을 살짝 크기를 키우고, 총구의 모양도 다른 형태였다. 이름 그대로 나팔총이라 부르던 물건이었다. 아직 서양에서조차 나오지 않은 종류지만, 개념 자체는 간단했는지 금방 만들어진 듯했다.

“화약도 기존의 철포보다 배로 들어가는데, 조준 사격이 아니라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나팔총은 쉽게 말해서 샷건이었다. 근거리에서 방향만 겨냥하고 쏘는 화기인 셈이다.

화약이 상당히 비쌌기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화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격 방식은 기존의 철포와 같겠지요?”

“그야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여전히 이마이 소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원래는 나팔총을 실전에 투입할 때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었지만, 그에게는 말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소큐 님. 생각해보시지요. 육지에서야 적병이 흩어지면 소용이 없다지만, 배 위에 밀집한 상대를 이 나팔총으로 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연!”

내 말을 들은 무기상인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라 하셨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집니다. 당장 보시기에는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지만, 모두 필요한 것들이니, 잘 좀 신경써주셨으면 좋겠군요.”

“이 늙은이가 어찌 유키나가 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겠습니까. 다른 것들도 만들어보기는 했습니다마는, 양산하기가 어려워서 좀더 지켜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수석식 총을 비롯한 다른 개념이 벌써 시제품까지 나왔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까다로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로지 한 켠에 연습하실 수 있게 꾸며두었으니, 오신 김에 살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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