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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7화 (17/225)

17화 독점 자본의 형성 (8)

속도부터 모든 것이 비슷한 두 군선은 계속해서 추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양측이 싸우면서 생긴 소음은 주변의 군선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야시로 남쪽 해역은 어느새 모리와 이요, 두 수군의 군선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우리 일행은 모두가 겁에 질렸다.

“슬슬 도망가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니, 이 틈에 내뺍시다.”

이치로가 애원하듯 내게 말했다. 그리고 카지도 역시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흘겨보자 지은 죄가 떠올랐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좀 더 기다려 보게.”

크고 작은 싸움배가 수십 척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추격전은 지루한 대치 상태로 변했다. 그러나 서로 작은 배가 한번씩 오간 뒤, 이요 수군이 먼저 뱃머리를 돌렸다.

“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일행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 사건이 마무리되었지만, 이들이 또 방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뒤따라오던 모리 소속 군선, 내가 어젯밤에 불러놓은 걸세. 묘하게 기분이 찜찜하더군.”

“그, 그런······. 소인이 너무 방심했습니다.”

“어쨌건, 도움을 받았으니 기다려보는 것이 예의겠지.”

곧바로 이 일대를 떠나고 싶어하는 카지도와 이치로를 말렸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염치가 없었는지, 잠자코 내 의견을 따랐다.

이쪽은 모리 수군의 구조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계속 대기했지만 모리수군은 우리가 탄 벤자이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해산해 버렸다.

“됐으니 갑시다. 최대한 안전하게.”

하지만 날은 금방 어두워져서, 우리는 야시로 섬 남쪽에 붙어 있는 오키카무로 섬에서 묵어야 했다.

이후로는 무난한 항해가 이어졌다.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고를 필요도 없이, 우리는 단노우라를 넘어서 하카타에 도착했다.

*       *       *

숙부는 아버지와 비슷한 외양이었지만, 조금 더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아니, 야쿠로가 아니냐? 여기까지 어떻게······.”

“그간 격조했습니다. 하여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찾아뵈러 왔습니다.”

바람도 쐴 겸했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숙부는 내가 찾아온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이번 해의 설에 못했던 세배를 올렸다. 그제야 숙부는 정신을 차리셨다.

“그, 그래. 어리디어린 야쿠로가 여기까지 찾아와주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피곤할 터이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마저 회포를 풀자꾸나.”

우리 일행은 모두 숙부 일가족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이치로는 그대로 뻗어 버렸고, 카지도는 갈 곳이 있다며 따로 숙소를 마련했다.

“사랑채에서 머무르는 편이 낫지 않겠나?”

“뱃놈은 육지에서 해야 할 것들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출발할 때에 맞춰서 돌아오도록 하지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 선원의 주인은 내 동지였지만, 본인은 그렇지가 않았다. 굳이 곁에 둘 이유는 없었다. 마침 이치로는 앓아누운 상태였다.

하카타로 건너온 진짜 목적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았다.

다음 날, 나는 숙부를 찾아가서 용건을 말했다.

“목화를 사들이고 목면을 팔겠다고?”

“그렇습니다.”

숙부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거래를 하려는지는 모르겠다만, 결코 적은 양은 아닐 테지.”

역시 상인의 감각이라는 것일까. 역시 장삿일로 잔뼈가 굵은 숙부의 추측은 정확했다.

“목화는 최대한 많이 사들일 생각입니다. 아마 그걸로 만드는 만큼의 목면을 여기로 보내게 되겠지요.”

직조 산업은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하다. 전체 가격에 비해서 원재료값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흠······. 여기가 사카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포목상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그들과 경쟁하려면 쉬운 일은 아닐 게다.”

기존 상인과 충돌하는 것쯤은 예상했던 장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툴 수도 없었고, 숙부께 짐을 얹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고니시 약종상도 유지가 되어야 했다.

“저는 하카타의 포목상과 경쟁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무슨 수로?”

“그들에게 적당한 값에 넘길 생각입니다.”

숙부는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히 손해를 보지 않고서는 팔기 힘들 텐데?”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업체라면 직접 쇼핑몰을 경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회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판을 따로 두고, 도매가로 넘겨 버리지 않던가.

“저 역시 상인입니다. 지금은 직접 나서긴 힘들지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대리인으로 서 주십시오. 하카타의 상인들과 교섭을 하고 싶습니다.”

하급일망정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직접 나서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마침 숙부는 여기에서 뿌리를 내린 사람이었기에, 중개 겸 대리인 역으로는 적당했다.

“하필 포목상이라니······. 좀 까다롭겠구나. 하카타의 오도시요리(大年寄대연기, 상인회의 우두머리)가 옷감을 취급하니, 함부로 거스르기가 쉽지 않아.”

“그와 척을 질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손을 잡게 되겠지요.”

“한번 연통을 넣어 보마.”

*       *       *

숙부가 오도시요리에게 연통을 넣어서 이틀 뒤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정한 날짜에 숙부와 같이 에고슈의 회관을 방문했다.

“고니시 이치노스케 유키나가라 합니다.”

내 소개를 듣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오직 사족만이 벼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체 높으신 분들이 상인을 찾는 경우는 대체로 상인에게 손해가 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이들이라고 별반 차이는 없었을 터.

“귀하신 분이 오셨구려. 고니시 님께서도 일문에 광영이 비쳤으니, 참으로 좋으시겠습니다그려.”

“저로서야 놀라울 뿐이지요.”

하카타 에고슈의 사람들이 숙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약간의 미사여구가 오가고 나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이치노스케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좋은 이야기를 들고 왔는데, 들어주실 만한 분이 스에츠구 오도시요리 님뿐이라 하시더군요.”

이 자리에서 가장 상석에 앉은 이가 반응을 보였다. 그가 스에츠구 코젠, 하카타의 오도시요리이면서 포목상을 경영한다는 사람인 것 같았다.

“멀리 오신 귀빈께서 제게 좋은 이야기를 가져오셨다니, 반가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이야기인지는 먼저 들어봐야 알 수 있겠군요.”

나와 숙부를 위한 자리가 놓여졌고, 차도 한 잔씩 나왔다. 다른 상인들은 그대로 남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제 동업자들입니다. 돈을 모아서 사업을 꾸려나가고, 출자한 만큼 이익을 나누지요.”

일종의 주식회사 같은 구조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이들을 뿌리치고 밀실에서 의논할 필요는 없었다. 주위를 물려달라고 하는 대신, 바로 용건을 이야기했다.

“스에츠구 님께 목면을 납품하고 싶습니다. 제가 조정의 벼슬을 지내는 몸이라 직접 거래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제 숙부께서 나머지를 맡아주실 겁니다.

그래도 교섭만은 말씀을 드리는 제가 직접 해야겠지요.”

“그렇습니까. 고니시 님이라면 그래도 믿을 만한 분이시니······.”

다행히도 숙부는 내 대리인으로서 활동하기에 충분한 신뢰를 얻고 계신 듯했다.

“직접 보고 판단하십사 하고 목면을 좀 가져왔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견본품을 하카타의 포목상에게 넘겼다. 그는 받은 옷감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당겨보기도 하고, 일부를 살짝 칼로 뜯어보기도 했다.

검증이 끝나고 그가 입을 열었다.

“품질은 확실하군요. 차후 사카이에서 보내오는 목면은 전부 이 정도는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이런 목면이라면 한 탄(反반, 일본에서의 옷감 단위, 약 1필과 유사)에 은 한 돈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져간 것은 상등품이었다. 앞으로는 이 수준이 최소한의 표준이 되겠지만, 당장은 그랬다. 그리고 이들을 만나러 오기 전에 알아본 바로는, 하카타에서 상등품 목면은 한 탄에 은 세 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가격에 넘겨도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이미 사카이에서 와타다, 하야시와 의논했을 때, 도매가를 한 탄당 은 반 돈을 받아도 이익이라는 결론을 냈다. 선박의 통행세까지 감안한 값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결과를 잠시 접어 둘 때였다.

이익의 최대화, 상인에게 당연한 지상과제다.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앞으로 가격은 계속 내려갈 예정이다. 그걸 본 총판 역을 하던 자들이 터무니없이 후려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골치가 아프지 않으려면, 지금 제값에 팔아야 했다.

“두 돈 반. 생산을 해서 하카다 항까지 날라다 드리는 가격입니다.”

“허허. 여기는 사카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니면 하카타에 목면을 팔 수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길쌈이나 나르는 일이나 모두 번거로운 일이니 한 돈 반은 드릴 수 있지요.”

스에츠구 코젠은 의기양양했다. 개도 자기 집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던가. 자기들이 아니고서는 하카타에서 목면을 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다. 보아하니 시장의 점유율을 독식하지 않고서야 보이기 힘든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독점 상태야말로 외부의 경쟁자가 치고 들어가기 좋은 조건이 아니던가.

“만약 여기에 목면 한 탄당 은 두 돈 반에 풀린다면, 여러분들은 감당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자 몇몇 상인들의 낯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미 독점해 놓은 시장이 흔들리는 걸 바랄 사람은 없다.

중등품 정도가 한 탄에 은 두 돈 반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만약 상등품의 소매가가 그 가격으로 나온다면, 기존에 포목상은 자연스럽게 출혈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을 터. 저들로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다이묘께 직접 납품해도 좋겠군요. 혹시 루이스 프로이스라는 기리시탄의 승려를 아십니까? 그분하고도 안면이 있는데, 마침 규슈탄다이(九州探題구주탐제, 지금의 오토모 소린)께서 기리시탄이시라더군요.”

물론 이건 블러핑이었다. 규슈탄다이면 조정의 정식 벼슬은 아니지만, 규슈 내에 존재하는 다이묘를 총괄하는 자리다. 그런 사람이 한갓 장삿일에 관여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편을 들면 몰라도.

하지만 동시에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소문이 난 자였다. 게다가 규슈는 가톨릭이 전래된 길목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른 다이묘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터. 루이스 신부도 히라도에 머무르다 사카이로 건너왔으니, 한번 찔러나 보았다.

처음에는 사제의 이름값이 이들에게 통용될지도 미지수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루이스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카이의 성당에서 거처하고 계십니다. 돌아가거든 안부를 전해드리지요.”

상인 중 하나가 프로이스 사제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독실한 신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영향력을 인정할수록 협상에서 불리해질 것이라 예상한 모양이었다.

스에츠구 코젠 역시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하카다의 오도시요리는 입을 열었다.

“두 돈. 한 탄에 은 두 돈으로 합시다. 우리도 남는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낮은 가격이면 앞날을 보기가 힘듭니다.”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괘씸했다. 한 탄에 은 세 돈짜리를 삼분의 일로 후려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이제 와서 불리해질 것 같으니 두 돈을 제시하는 꼴이라니.

찻잔을 입에 댔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할까. 이들의 반응을 보면, 루이스 프로이스의 서신 한 통으로도 오토모 소린을 움직일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또 다이묘와 엮이는 건 반갑지가 않고. 귀찮은데 일단 두 돈에 넘기고 나중에 싹 고사시켜버릴까?’

고민하는 동안 차가 싸늘할 정도로 식어 있었다. 마저 후루룩 마셔버리고 나서, 이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두 돈 반.”

내가 못을 박아버리자 상대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어쩔 수 없군요. 이치노스케 님의 말씀대로 두 돈 반에 사도록 하겠습니다. 단, 오늘 보여주신 것과 같은 품질이어야 합니다.”

나는 씩 웃었다.

“그거라면 안심하셔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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