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독점 자본의 형성 (5)
소에키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배들은 싸움용이라 무사들이 보면 고니시 님의 진의를 추궁하려 들 겁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당장은 위험한 발상인 모양이었다. 정작 그 싸움배들은 평저선에 박살이 날 예정이었으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에도시대쯤 되면 능원회선이나 준회선 같은 화물선도 첨저선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영역도 까다로운 제약이 존재했다.
“이왕이면 멋있는 거로 한 대 뽑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기나이가 천하의 중심이니, 당장 세토 내해에서 통용되는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에도의 뱃길은 태평양에 맞닿아 있는 만큼, 능파성이 좋은 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직은 그 에도조차도 늪지대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조선소로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마침 어선을 몇 척 맡겨 두었는데 찾으러 갈 참이었습니다.”
소에키의 집안은 어물전을 경영했다. 동시에 고기잡이배도 몇 척 보유한 선주였다.
“오, 소에키 선사님이시군요. 맡겨 두신 배는 수선을 마쳐 두었습니다.”
“고맙소. 여기 잔금이외다.”
선주는 조선공에게 송전宋錢 몇 냥을 집어 주었다.
“그리고, 혹시 상인이 쓸 수 있는 배를 한 척 구할 수 있겠소? 크기는······.”
거기까지 말한 소에키는 나를 돌아보며 말을 흐렸다.
“하카타까지 갈 수 있는 배라면 아무래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오, 도련님께서 마련하시려나 봅니다. 하카타라······. 그렇다면 이백 석쯤은 넘겨야겠군요.”
나 같은 손님이 종종 있었는지, 조선공의 답은 시원시원했다.
이 시기에는 어지간한 기준은 대부분이 쌀을 기준으로 측정되는 모양이었다. 다이묘의 영지 크기도 석고로 따지고, 배 역시 몇 석이나 실을 수 있느냐로 구분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구할 수 있는 거라면 팔백 석짜리 하나가 매물로 나와 있습지요.”
현대에서 가끔 하던 게임에서는 천 석짜리 센고쿠부네(千石船)도 흔했다. 하지만 현실이 게임과 일대일로 대입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슬쩍 옆의 승려를 보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장만하는 차에 너무 크다는 뜻인 것 같았다.
“팔백 석은 좀 과한 듯한데, 좀 작은 건 없겠소?”
“그 이하로는 즉시 구입하실 만한 물건은 없고, 대신 주문을 넣으시면 제작해 드립지요. 보통 백 석당 하루씩 걸립니다요.”
얼마쯤으로 발주를 넣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소에키가 먼저 나섰다.
“이분이 배는 처음이시라서, 먼저 구경을 좀 시켜 드리고 싶구려.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을 좀 볼 수 있겠소?”
“그러시지요. 마침 이백, 오백, 칠백 석짜리 배를 만드는 중입니다. 다양하게 구경한 다음 정하시면 되겠군요.”
조선공은 자기 작업장으로 안내했다. 가장 먼저 보여 준 것은 매물이라던 팔백 석짜리 벤자이센(변재선弁才船)이었다.
“이 녀석이 아까 말씀드렸던 매물입죠.”
길이는 약 20미터에, 폭이 7, 8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의외로 작은 편이 아닌가 싶었지만,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썼던 빅토리아호도 길이가 26미터. 21세기의 관점을 떼고 보면 그럭저럭 납득할 만한 규모였다.
일본의 1석은 대강 150킬로그램 정도라고 했다. 일백 석당 15톤쯤 실을 수 있었다.
“노꾼은 열두 명 정도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많이 실을 수 있는 녀석입죠.”
확실히 당장 운용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우리 집안의 상단만 해도 열 명 내외의 사환이 일하는데, 그를 능가하는 숫자만큼의 선원이 필요했다.
“이백 석짜리는 무엇이오?”
“저겁니다.”
조선공은 바로 옆에 거의 완성되어 가는 작은 배 하나를 가리켰다. 길이와 폭이 모두 팔백 석짜리에 비해서 절반씩이었다.
“저건 여섯 명이면 충분히 움직이는 배지요.”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섯 명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두 명의 선원을 한 번에 구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 첫 항해인 만큼 작게 시작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까, 백 석 당 하루씩이라 하셨소?”
“네, 도련님. 하지만 지금 일이 조금 밀려 있어서 오늘 주문하시면 나흘 뒤에 찾아가실 수 있습죠.”
이 조선소에서는 최대 세 척씩만 만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항해를 준비하려면 선박 외에도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했다.
“좋소. 이백 석은 얼마요?”
“송전으로 팔십 냥인데, 선금은 열 냥입죠.”
“여기 있소. 고니시라는 이름으로 주문하리다.”
조선소를 나온 뒤, 소에키는 내게 선원들은 어찌할 것인지 질문했다.
“여섯 명 전부를 새로 구하시렵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습니다마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배에 오르면 곧 목숨을 맡기게 되는 법이니까요.”
역시 배를 장만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선량한 승려는 내게 다시 적절한 도움을 주려 했다.
“선원 한 명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적당한 이들을 고용하시면 될 겁니다.”
“혹시 노예는 어떻습니까?”
“노예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물에 뛰어들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요.”
소에키의 얼굴에는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아마도 철부지의 치기 어린 생각이라 여긴 것처럼 보였다.
내 생각이 이 시대의 방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쪽이 나을 것 같았다.
“대신에 해방을 약속하고 선원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항해가 한 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요, 배도 한 척만 가지고 쓸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매번 선원들을 고용하느라 골치를 썩이기보다는 노예들을 데려다가 양성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선사는 내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동지 중 한 사람. 내 구상을 아는 이들 중 하나였기에, 내 뜻을 이해해 주었다.
“일리 있는 말씀이십니다. 그도 나쁘지 않겠군요.”
* * *
다음 날은 노예상을 찾아갔다.
“만약 노예를 선원으로 쓰시겠다면, 어떤 자들을 사들이실 생각이십니까?”
“노잡이 일이 고되다 들었으니 체력을 먼저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소에키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어선 여럿을 보유한 선주 집안 출신은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체력도 좋아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들이 있지요. 다만 여기에 그런 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강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내 판단이 맞는지 잠자코 지켜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소에키가 앞장서서 들어갔다.
“노예를 좀 보고 싶은데······.”
“어떤 놈들을 원하시는지요?”
아직 소에키 선사는 센 리큐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케노 조오의 제자 중 하나라는 것으로도 남들이 고개를 숙이기에는 충분했다.
최근에는 나나 우리 집안 역시도 상당한 이름값을 자랑했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특히 어른이 나서는 편이 나은 것 같았다.
“해안가 출신은 얼마나 있나?”
“신주 예순여섯 나라 중에서 바닷가 아닌 곳이 드문데,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요.”
노예상이 소에키의 요구를 적당히 뭉개려 들었다. 하지만 이 승려는 더더욱 자세한 조건으로 맞받아쳤다.
“어촌 태생, 스무 구口만 데려와 보게. 그중에서 고르도록 하지.”
노예는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모습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 시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어촌이라······. 알겠습니다요.”
상인은 단호한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대강 차 한잔을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 이쪽의 요구대로 노예 스무 명, 아니 그보다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숫자가 우르르 끌려 나왔다.
“자, 한번 보시지요. 어촌 출신은 몽땅 긁어왔습니다요. 그런데 굳이 어촌 출신으로 쓰시는 까닭이라도 있으신지······.”
“궁금한가?”
“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최대한 맞춰드릴수록 좋지 않겠습니까요?”
언뜻 들어서는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일즈맨 같은 언행이었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그리고 소에키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네가 알 것 없네. 이 중에서 여섯 구만 고르려 하니, 자네는 자네 일 보고 있게.”
“스물을 이야기하셔놓고 고작 여섯만 사신단 말씀이십니까?”
“미리 이야기했잖은가. 그중에서 고르겠다고.”
“엥이······.”
노예상은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소에키는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조금 무서우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인간말종이라 신용하기 어렵지요. 고니시 님께서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명심하지요.”
수십 명 중에서 소에키는 차례차례 구매 대상이 아닌 자들을 골라냈다.
“들어가. 너도, 너도.”
그중에는 덩치가 우람하여 힘깨나 쓰겠다 싶은 노예들도 있었다.
“방금 들여보낸 노예는 체력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만······.”
“노를 저을 때는 혼자서만 힘이 좋아봐야 쓸모가 없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기준이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예능 프로 중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출연자들이 보트 양쪽에서 노를 젓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앉았다가 좌측과 우측의 힘이 차이 나면서 서로 투닥거렸는데, 결국 균형을 맞추고 나서야 제대로 속도가 났던 것 같았다.
“노잡이들은 서로 비슷할수록 좋겠군요.”
“그렇지요. 숙련된 선원들이야 금방 합을 맞춥니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처음이 될 테니, 아예 조건을 맞춰서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자 노예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노잡이라는 말에 상당히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더러 배에 타란 말입니까?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노를 젓진 않을 겁니다!”
노잡이에 대한 인식은 언제 어디서나 열악했던 모양이었다. 조선의 수군도 신량역천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다이묘들도 양인을 고용해야 했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불러다 뱃일을 시키려면 그만큼의 보상을 줘야 했다. 하지만 노예는 사물 취급이었으니, 보상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아직 미신이 통용되는 시절. 오죽하면 안전을 기원하며 배의 종류에 벤자이, 그러니까 물을 관장한다는 변재천의 이름을 붙였겠는가. 아무리 밑바닥 삶이라도 바다에 나가서 죽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진정해라! 나 역시 너희들을 막무가내로 배에 태울 생각은 없다. 10년간 일하면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지. 그 이후에도 갈 곳이 없다면 가솔로서 돌봐주도록 하겠다.”
내가 나서자 노예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동요는 여전했다.
“해방이라굽쇼?”
“그래. 10년간 노를 저으면. 그다음은 자유다.”
노예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한쪽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려는 태도였다.
“고향에서 어부를 했었습니다요!”
“저, 저는 힘이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들은 약 열 명쯤 되었다. 소에키는 그들을 고르기보다는 다시 내게 귓속말을 했다.
“10년은 너무 짧지 않습니까?”
“저들 중에서 쓸만한 자들의 가격은 어떨까요?”
“일반적인 기준에서 상등품은 아니니, 한 구에 네댓 석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철포 하나의 가격은 일백 석을 거뜬히 넘겼다. 그런 점에서 정말 인간의 값이 저렴한 시대였다.
“그럼 선원들에게 주는 삯은 얼마나 됩니까?”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에 따라서 조금 다르긴 합니다. 우두머리급에게는 한 해에 쌀 네 석을 주고, 일한 지 좀 되는 자들에게는 세 석, 신참에게는 두 석을 주지요.”
그걸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이면서도, 소에키는 착실하게 답을 해주었다.
“우두머리급이 되려면 몇 년쯤 걸립니까?”
“보통은 오륙 년 정도 걸리더군요.”
“그렇다면, 저들 중 절반만 살아남아도 이득이겠군요.”
일 석은 성인 남성이 한 해 동안 먹는 쌀의 양을 환산한 것이다. 노예도 일을 시키려면 충분히 먹여야 하니, 기본적으로 일 년에 한 석씩은 인건비로 봐야 했다.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