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2화 (12/225)

12화 독점 자본의 형성 (3)

나는 다실 한 켠에 병풍으로 가려두었던 기계들을 끄집어냈다.

“베틀이로군요.”

“하나는 물레인데······.”

와타다와 하야시가 한마디씩 했다. 역시 자신이 취급하는 상품에 관련된 것들은 쉽게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네. 이번에 개량해봤습니다. 장담하건대, 생산량을 최소한 열 배는 늘려줄 수 있는 기물이지요. 게다가 품질 또한 일정하게 나올 겁니다.”

네 사람의 반응은 업종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던 이마이 소큐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으며, 소에키는 내 말을 그대로 믿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반신반의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아무리 고니시 님의 재간이 뛰어난들, 어찌 그렇게 바꿔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숙련된 솜씨의 아낙네조차도 갓 길쌈을 배우기 시작한 처녀에 비하면 고작해야 서너 배 빠를 뿐입니다. 고작 기계 하나로 열 배라니요.”

둘은 입을 모아 의문을 제기했다.

“여러분께서 한번 작동시켜보시지요. 그러고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저 역시 깔끔하게 물러나 드리겠습니다.”

하야시는 베틀을, 와타다는 물레를 잡고 작동시키려 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을 사용한만큼, 먼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물레부터 설명하도록 하지요. 저는 이걸 보시소우치(방사장치紡絲裝置)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방적기였다. 이따 보여줄 베틀과는 달리, 이름을 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던가. 일치하는 맥락이라 보긴 어려웠지만, 복잡한 명칭보다는 본질에 연결되는 이름이 낫겠다 싶었다. 앞으로 만들 물건이 많은데, 그때마다 고니시식 어쩌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보시다시피, 재료를 제자리에 끼워 넣고 실마리를 끄집어낸 다음,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만 하면 알아서 실이 나옵니다. 길쌈 솜씨와는 무관하지요.”

내가 만든 것은 뮬 방적기였다. 처음에는 제니 방적기를 떠올렸지만, 굳이 단계를 밟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중간은 생략했다.

손잡이를 돌려서 작동시키자,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개의 밀대가 실을 균일한 굵기로 뽑아냈다.

““이, 이럴 수가!””

목화에서건, 누에고치에서건 실을 뽑아내는 원리는 동일했다. 포목상들은 자신의 상품에 관해서는 전문가였기에 지금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감정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직접 돌려보시겠습니까?”

“제, 제가 한번 해보지요.”

와타다가 나서서 내가 했던 것처럼 작동시켰다. 그는 상인이었기에, 길쌈 자체에는 그리 능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좋은 품질의 실을 자아낼 수 있었다.

“부처여······. 제가 보는 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제가 부처는 아니지만, 네. 이것이 사실입니다.”

방적기에 꽂아두었던 목화가 다 떨어지도록 그는 얼떨떨해하며 방적기를 돌렸다. 순식간에 큼직한 실뭉치가 스무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다음은 베틀이군요. 토바스히키(비사기飛梭機, 나는 북 베틀)라 하시면 됩니다.”

방적기의 이름을 정할 때에 비하면 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개선점의 본질은 ‘나는 북’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바스히키라······. 이번에는 제 차례로군요.”

하야시는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 토바스히키 앞에 앉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발판을 누르자 북이 알아서 씨실을 날실 사이로 밀어 넣었다.

“어이쿠야!”

하야시는 순식간에 움직이는 북을 보며 놀랐다.

“이렇게 손은 앞뒤로 왕복시켜주고, 그때마다 발판을 밟아서 엮어주는 겁니다.”

와타다가 보시소우치를 가지고 그랬던 것처럼, 하야시 또한 걸려있던 날실이 전부 소진되도록 토바스히키를 작동시켰다. 그러고 나서도 그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떠십니까? 이만하면 충분하리라 보는데······.”

유통 비용을 줄이는 것만 가지고는 가주의 독단으로 과거를 청산하기 어렵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훨씬 더 큰 이익이라면 어떨까.

“확실히, 이거라면 가솔들을 설득하는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양측이 합작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와타다가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다.

“···혹시 무상으로 제공해 주시는 겁니까?”

와타다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고서야 이런 막대한 이득을 쥐어줄 호구가 어디 있겠는가. 조심스러운 질문에 나는 준비해둔 조건을 마저 꺼내들었다.

손을 들어 활짝 펼쳤다. 다섯 손가락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하자 그들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5, 5할······.”

세금조차도 5공5민이면 관대하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다. 하물며 내가 신기술로 직접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이들에게 전수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흠. 저를 무도한 자들과 동렬에 세우시다니,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합니다.”

““네?””

다섯 손가락이 5할이 아니라는 말을 듣자 그들은 다시 충격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무사란 자들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오직 윗사람의 눈치만 볼 뿐이지요.”

“그, 그야 그렇습니다만······.”

저들이 대의에 공감한다고는 해도, 매출의 반을 뜯어가서야 다른 사족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보다는 합리적인 수준으로 설정해서 감복하도록 만들 참이었다.

“5년간 5푼. 이것들을 이용해서 올리는 매출의 5푼을 분배해주시는 조건입니다.”

현대의 특허권이 20년간 지속된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짧은 기간이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발전의 여지가 많은 시기. 아마도 5년 뒤에는 저들 스스로가 자극을 받아 새로운 기물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의미없는 기간을 붙들면서 탐욕을 부리기보다는, 저들이 진정으로 동지가 되도록 하는 편이 더 중요했다.

““기꺼이 고니시 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와타다와 하야시는 내게 무릎을 꿇으며 한목소리를 냈다.

“무릎까지 꿇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조건, 그것만 잘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대의를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사카이 내에서 앙숙으로 이름 높았던 두 상인이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그 감격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있었다.

“분명 놀라운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장차 이 기계들의 비밀이 새어나갈 텐데, 그것은 어찌하시렵니까?”

이마이 소큐의 지적이었다. 특허를 강제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

“당분간은 비밀을 유지해야겠지만, 나중에는 별 상관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5푼의 사용료는······.”

상인답게 하야시는 자신들이 어떤 손해를 보게 될지 빠르게 계산을 냈다.

“물론 이 구조를 흉내내는 자들이 나오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최대한 비밀을 유지해주신다면, 나중에 가서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열 손이 도둑 하나를 못 잡는다고 했습니다.”

와타다가 하야시의 말을 거들었다.

“저는 이 비밀이 끝까지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방금 말하셨던 대로, 언젠가는 새어나가겠지요. 아무리 철통같이 보호한들, 5년이 한계겠지요.

어차피 돈 될 만한 일에 경쟁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한 법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몇 년 뒤라면 남들이 보시소우치와 토바스히키를 사용한다 해도 우릴 따라잡을 수 없을 겁니다.”

“무슨 수로 다른 이들을 뿌리친다는 말씀이십니까?”

“규모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소큐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대강 감이 잡힐 듯 말 듯 한 것처럼 보였다.

“고니시 님께서 대책도 없이 일을 꾸미셨겠습니까?”

“하긴 그렇기도 하지요.”

정작 질문자를 침묵시킨 것은 와타다였다. 그만이 아니라 동업자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공방을 운영할 두 사람은 새로운 기물의 등장에 취해서 어떤 의문도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노회한 무기상인조차도 그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큐야말로 가장 가까이에서 내 행적을 지켜본 사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내 답을 비판없이 수용해버리고 말았다.

“그보다도, 전 일본의 상권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사님.”

전 일본의 상권.

돈깨나 만져본 상인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소에키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내게 시선을 모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붓을 들어 큰 글씨로 천하포상天下布商이라 썼다.

“우리가 당장 천하를 무력으로 움켜쥘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사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차시츠 한가운데 놓인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부는 스스로 모이는 습성이 있지요. 가만히 살펴보니 동부의 돈은 이세(이세伊勢)국의 오미나토(대주大湊)를 지나고, 서부의 물산은 하카타(박다博多)에 모이더군요.”

하카타, 예로부터 그 일대는 외국과의 핵심 교역항이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서부의 상업허브 노릇을 했다.

이세국의 오미나토. 간토(관동関東)조차도 아닌데 동부의 상업 중심지 노릇을 하는 항구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미래의 도쿄 일대조차도 늪지대 투성이의 미개척지와 다름없는 상태. 오와리의 다이묘조차도 상락上洛 이후로는 촌놈 취급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지도 정중앙의 사카이를 짚었다.

“기나이 상업의 배꼽, 사카이. 이 세 마을을 거점으로 교역망을 형성할 계획입니다.”

수로를 이용해서 부가 모이는 허브를 연결한다.

아직 각지의 다이묘가 항쟁 중일 때에나 가까스로 가능한 일이었다. 단일 정권 아래에서라면 모든 교역을 통제받겠지만, 갈기갈기 찢어져 치고받는 상태라면 이이제이도 가능했다.

언뜻 보면 도시들의 연합체였던 한자 동맹이 떠오르는 연결망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단 한 가지. 직조 산업을 기반으로 한 일본 전역의 단일 상권 형성이었다. 목화나 누에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생산되었고, 옷감은 누구에게나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감당할 공방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은 그대로 사카이의 인구가 될 터였다.

“일본 전부를 감당할 정도로 대규모의 공방, 아니 공장을 만들 생각입니다.”

공방과 공장의 차이는 간단했다. 집에서 소소하게 상품을 만드는 공간은 공방, 그리고 전적으로 생산이라는 목적만을 추구하면 공장이 된다. 이름부터가 방 하나짜리냐, 장소 전체냐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좁은 마을에 많은 사람이 모여살 게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이 필요했다.

태합검지에 의하면 일본의 추정 인구는 약 천팔백만. 이 시장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장정 십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 장대한 계획에 놀라고, 한편으로는 질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예상했던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내 부탁으로 포목상들을 포섭했던 이마이 소큐까지도.

나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