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독점 자본의 형성 (1)
세이슈지(정수사 政秀寺)는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충신 히라테 마사히데(평수정수 平手政秀)를 기리며 지었던 절이다. 오와리의 다이묘는 독실한 불자는 아니었지만 종종 이곳에 들렀다. 그리고 가신들은 주군의 뜻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함부로 세이슈지에 가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사카이의 이마이 소큐가 주군께 서찰을 보냈습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주군에게 철포와 함께 온 편지를 전했다.
오다 가문은 미인이 많기로 유명했지만, 그중에서도 오다 노부나가는 남달랐다. 훤칠한 키에서부터 보이는 영웅의 풍모는 보잘것없는 자신을 더욱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쥐새끼 같은 외모로도 주군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면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특히 오래된 가신들은 감히 들어오려 하지 않는 이 절에 자신이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제지하려 드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점에서 자신은 가즈사노스케(상총개上總介, 오다 노부나가의 관위)께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마저 갖고 있었다.
오다 가문의 당주는 서간을 읽은 뒤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마이 소큐는 많은 무사들에게 존중을 받았고, 특히 노부나가와는 뜻이 통하는 구석이 있어 제법 친근한 사이였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주군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쓰여져 있었습니까?”
“별 것 아니다. 기요스(청수清洲) 성으로 돌아가지.”
노부나가가 떠날 채비를 마치자 절의 주지가 배웅을 나왔다.
“이번에 돌아가면 한동안 오지 못하겠군.”
주지는 다이묘의 말에 소리 내 답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자네는 좀 편해지겠구만. 나와 마주치지 않아도 되잖나.”
주군이 가신들에게 흔히 하는 식의 농담이었다. 하지만 주지는 마치 묵언수행 중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벌써 몇 년이 지났나. 이제 입을 좀 열 때도 되었을 텐데? 이제 자네는 안전하다고. 할복한 자네 부친을 봐서라도 이 절 안에 박혀 있는 동안은 결코 해코지할 생각이 없단 말일세.”
히데요시가 보기에 주군은 관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승려는 무언가를 말하는 대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원, 재미없기는. 가자.”
“저 스님은 왜 저러는 겁니까?”
“네가 알 것 없다.”
주군이 그리 말하면 따라야 한다. 말씀에 토는 달지 않는다.
이것이 히데요시의 행동원리였다.
오다 가문의 하인을 어엿한 가신 중 하나로 만들어 준 수단이기도 했다.
성조차 갖지 못한 비천한 신분. 이것이 그에게 붙어 다니는 꼬리표였다. 모든 이가 그 출신을 비웃고 업신여겼지만, 유일하게 오와리의 다이묘만이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만 해도 칭찬과 상이 따라온다는 것은 기요스 성에서 그가 처음 겪은 일이었다.
어엿한 가신 중 하나가 된 뒤에도 이 자세는 바꾸지 않았다.
다른 가신들이 뒷주머니를 차거나 자신의 주관을 내세울지라도 히데요시는 철저히 복종했다.
아니, 자신의 재산을 보태서라도 주군이 원하는 것을 갖다 바쳤다. 그런 모습을 보일수록 총애가 뒤따랐다.
“철포가 필요하다······.”
“이마이 소큐 님께서 보내 주시지 않습니까?”
“서신에 쓰기를, 미요시 가문의 감시가 붙어서 앞으로 공급이 힘들 거라더군.”
노부나가는 자기 시종에게 무슨 변덕인지 아까 편지를 찢으면서 ‘별것 아니라’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선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다.”
노부나가는 다른 가신들을 불러 모아서 아자이(천정浅井) 가문과 동맹을 강화할 것을 천명했다.
아자이 가문은 오미국 북부의 다이묘. 그 소유지는 철포의 삼대 생산지 중 하나라는 쿠니토모(국우國友)가 포함된 영지였다.
하지만 주군은 다른 가신들에게 내막을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동맹의 유익한 점으로 오직 교토를 향해 상락上洛할 때의 유리함만 언급했다.
‘다른 녀석들은 주군의 뜻을 모른다······.’
히데요시는 혼자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 * *
“가셨던 일은 잘되신 모양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는 유키나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극동 선교의 대의명분을 위해서 마지못해 그를 돕고 있었다.
이 소년은 벼슬이 있기는 해도 영지조차 없는 신세. 게다가 개종을 하기는 했으나 신앙심은 전무했다. 그런 그를 돕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이 소속된 수도회의 장상이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신부님께서 번역해 주신 책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흠.”
마지못해 이 땅의 언어로 옮겨 주기는 했지만 유키나가가 언급한 것은 지상의 도덕을 어지럽히는 금서였다. 그런 책으로 칭찬을 들어본들 전혀 반갑지 않았다.
처음 자신을 찾아온 유키나가는 개종할 뜻도 비치지 않으면서 기괴한 요구를 했다.
“야금술, 인쇄술, 그리고 <군주론>을 포함한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전부 주신다면 성당과 학교를 지을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제안만 놓고 보면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의 손으로 결코 할 수 없는 조건이 하나 붙은 상태였다.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루터파의 공세에 가톨릭교회는 도덕률을 강화하는 것으로 맞섰다. 그 일환의 하나가 트리엔트 공의회였고, 거기서 최초의 인덱스, 금서목록이 만들어졌다. 덕을 해치고 사람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서적들을 지정한 것. 그중에는 유키나가가 요구했던 <군주론>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디서 그 금서의 이야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주를 모시는 보편 교회의 사제로서 감히 수락할 수 없는 말씀이십니다.”
“현지의 풍습을 최대한 따르는 것이 예수회의 사목 방침이라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마키아벨리가 지팡구의 사람이었습니까?”
루이스 신부는 거절했지만, 유키나가는 그 이상으로 끈질겼다.
“성당과 학교.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대신 금서는 가톨릭 교인들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다이묘들을 구슬리기 위한 수단이니 신부님의 장상께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마치 교활한 뱀처럼 이 소년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적어도 속임수는 없었지만, 금기를 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뱀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
“드나드는 남만 상인들은 많습니다. 조금 걸리기는 해도 고아에 편지를 보내기는 어렵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좋은 기회를 신부님의 착오로 지연시킨다면 복음의 전파가 얼마나 늦어지겠습니까?”
자신의 관구장을 거론하는 시점에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천주의 군대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예수회 소속.
선교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할 수 있어야 했다.
천주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마음으로 프로이스는 관구장에게 유키나가의 요구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걱정은 너무나 무색할 정도로 시원한 답변이 나왔다.
- 주님께서 가신 골고다 언덕길을 따라가며 동방에 복음을 전하는 루이스 형제에게,
고니시 유키나가가 자신의 주장대로 부지와 건축비를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야금술은 전부 전수할 수는 없지만 인쇄술에 필요한 만큼은 전수할 수 있으며, 형제가 걱정하는 마키아벨리의 금서는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조건을 건다면 모든 서책을 현지언어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시기 바랍니다.
유키나가는 루이스의 장상이 제시한 조건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관구장은 현지의 사정에 가장 밝을 사제에게 책의 번역을 명했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프로이스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성모경을 읊으며 금서를 일어로 옮겨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결코 유키나가를 좋게 볼 수는 없었다. 오직 이 천주의 말씀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 그 하나만을 위해서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다행히도 유키나가는 그런 점을 제외하면 어느 귀족보다도 신사적이었다.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실제로 성당 부지와 건축가들을 제공했다.
교토의 난반지(남만사南蠻寺) 보다도 넓은 부지가 마련되었다. 그 규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카이의 성당은 일본 가톨릭의 중심지로 변해 갔다.
“이마이 소큐 님과 이야기는 모두 끝났습니다. 기술자들이 오면 곧바로 이마이 단야소로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요.”
* * *
오다 노부나가와 끈이 닿았던 무기상인도 내 편으로 포섭했지만, 나는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죽은 듯 지내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를 표방하며, 에고슈의 거상들과 친교를 다지는 일을 제외하면 오직 집과 성당만을 오갔다.
미요시 나가요시 휘하의 무사들은 그런 나를 경원시했다.
어쩌다 주군의 눈에 띄어 벼락출세한 꼬마놈.
그것이 나를 보는 그들의 관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도 존재했다.
“반갑습니다, 이치노스케(서시우西市佑, 고니시 유키나가의 관위, 약칭) 님.”
“여기는 성당이 아닙니까. 아우구스티노면 충분합니다.”
사카이의 성당에는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는데, 다카야마(고산高山) 가문도 그중 하나였다. 현 당주인 다카야마 토모테루(고산우조高山友照)는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들이자 후계자인 나가후사(장방長房)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세례명 유스토, 아직 관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우콘을 칭하는 자였다.
다카야마 부자는 독실한 기리시탄으로 사카이 성당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나하고도 친분이 있었다. 비록 미요시 나가요시의 직속 봉신은 아닐지라도, 그 휘하에서 나를 거리끼지 않는 소수의 무사들 중 하나였다.
“이번에 저도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습니다. 탄죠(탄정弾正,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관위)께 칸죠(감장感状)도 받았지요.”
이제 열두 살인 그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키가 컸다. 어려서부터 무술을 단련했기 때문이었을까.
역시 벌써부터 출전한 것을 보면 그도 전형적인 무가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은 가톨릭 교우로서 평민 출신인 나를 존중해 주는 편이기도 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유스토 님께는 칸죠가 별 의미는 없지 않습니까?”
다이묘가 자기 휘하의 무사에게 포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금전 면에서 으뜸은 영지 수여, 가장 큰 명예는 주군의 이름 중 하나를 쓰도록 허락하는 헨키(편휘偏諱).
간혹 보물, 주로 다기를 주기도 했지만 흔치는 않았다.
그리고 가장 어정쩡한 포상법은 칸죠, 감사장을 발급해 주는 것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전공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 하지만 현대로 치면 이력서의 경력이나 포트폴리오에 한 줄이 늘어나는 것에 불과했다.
이미 물려받을 토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시원한 포상법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셈이다.
그는 미소를 띤 채 나에게 답했다.
“물론 그렇기야 합니다마는 칸죠도 받아 둘 수 있을 때 받아야죠.”
그러고 보니 다카야마 가문은 작은 편에 속했다. 미요시 가문의 직속 봉신도 아니었다. 비록 그들의 주군인 마츠나가 히사히데(송영구수松永久秀)가 배분이 높다고는 해도 직속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작지 않았다.
“칸죠가 그렇게나 유용한 겁니까?”
“세상사 어찌 될지 알 수 없잖습니까. 가문은 보전해야지요.”
“그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해도 괜찮으신지?”
나로서는 상당히 부러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누구는 어디에 감시의 눈길이 있을지 몰라서 숨죽이고 사는데, 누구는 태연하게 이적을 논할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