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지금은 센고쿠시대 (5)
고니시 부자가 돌아간 뒤, 소에키는 자신의 사형에게 사카이가 돌아가는 꼴을 한탄했다.
“참으로 무례한 짓이 아닙니까.”
“별 일은 없을 게야.”
사제의 우려와는 달리 이마이 소큐는 그렇게 단언했다.
“지금 미요시 가문이 쿄코지에서 승전한 이후로 욱일승천하는 중인데, 대놓고 척질 짓을 하겠느냐?”
“드러내 놓고야 허튼수작을 부리진 않겠지만 어른들의 권력다툼에 어린아이의 기를 꺾을 짓을 하다니요. 참으로 세인들의 업이 깊습니다.”
사람됨이 선한 소에키가 중립파에 들어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양대 파벌이 벌여놓는 정치판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 파벌 중 하나에 속한 야쿠로를 어린아이로 보는 사람은 셋츠파와 야마시로파를 불문하고 아무도 없었지만, 이 승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고니시 부자는 이틀 뒤의 다도 모임을 두고 마음이 급했는지, 성 하나와도 바꿀 값어치의 다기는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갔지만, 이 두 사형제는 원래 약속했던 대로 조선산 백자 다완과 주전자를 감상하며 혀를 찼다.
소에키로서는 자신의 사형에게 낯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민망했다. 자신에게 급하게 만나기를 청하는 류사의 전언에는 간절함이 진하게 묻어있어서 자신의 사형에게 양해를 구하고 불렀더니, 갈수록 더해가는 이 마을의 추악한 광경을 같이 보자고 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소에키가 돌아간 뒤에도, 이마이 소큐는 다실에 홀로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고니시 류사의 욕심이 눈을 흐린 게로군. 조금만 생각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별일은 없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했을 것인데······.
헌데, 초대는 승낙해놓고, 요시로(소에키의 아명)에게 부탁을 한다고?”
잠시 명상하던 소큐는 피식 웃었다.
“견부호자로군.”
이 무기상인이 판단하기에도, 그 자리는 셋츠파로 기울어진 사카이의 추를 돌려놓기 위한 자리이기는 했다.
다만 류사가 어리석어서 구체적인 수단을 착각했을 뿐.
“어린아이에게서 가장을 떼어놓고 어떤 감언이설로 홀리려 할꼬?”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장부를 펼쳐보았다.
한 달 치 장사를 확인하려면 몇 장을 넘겨도 모자랄 분량이었는데, 지금은 고작 한번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파악이 되었다.
“고작 아홉 살짜리가 이런 걸 만들어냈다고….”
이마이 소큐는 처음 시토라는 것을 접했을 때, 단지 고니시 류사가 자신의 아들을 에고슈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야쿠로야말로 오다 노부나가를 보좌할 만한 인물이라 여겼다.
“장차 소하와 비견할 재목이 아닌가.”
중국을 통일했던 한 고조는 공신 중에서 소하를 으뜸으로 세웠다. 거대한 대륙을 다스리려면 행정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데, 소하가 그 수요를 감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큐의 눈에는 시토를 만든 야쿠로 또한 소하 같은 명재상이 될 것처럼 보였다.
어떤 자료든 대번에 파악하게 만든다는 건 비단 장삿일만이 아니라 통치에도 필요한 수단이었으니, 이처럼 대단한 것을 고작해야 장사에나 쓰려는 자들이 어리석게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화씨지벽도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한갓 돌에 불과한 취급을 받았다. 유일하게 가치를 알아보고 진상했던 사람은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
야쿠로도 마찬가지. 일개 평민에 불과한 이 아이를 흔쾌히 품을 그릇은 오직 노부나가밖에 없다는 것이 소큐의 결론이었다.
“가즈사上総(오다 노부나가의 관위, 가즈사노스케上総介의 약칭)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받지 않을 터.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했으니 야쿠로도 결국 가즈사의 가신이 될 것이다.”
새싹을 두고 양대 파벌이 어떤 재미난 힘겨루기를 할지 궁금해진 이마이 소큐는 하인을 불렀다.
“츠다 댁에 사람을 보내야겠다. 이틀 후에 열리는 다도 모임에 초대받을 수 있는지 여쭈어라.”
* * *
츠다 소규는 교토의 유력자들이 사용하는 각종 기물을 납품하는 업자였다. 현대로 치면 백화점 오너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의 집이기 때문이었는지 이마이 소큐의 집과는 달리 그의 다실 주변은 대단히 화려했다.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게 놓은 의자부터, 문틀, 심지어 데미즈야까지 나무로 된 모든 부분은 전부 옻칠이 되어 붉은 광택을 뽐냈고, 돌은 잘 손질이 되어 반들반들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원을 온실로 꾸며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라 야외에 꽃은커녕 풀 한 포기도 없었는데, 따뜻한 온실 내부에는 보기 힘든 귀한 기화요초가 가득했다.
“신기한가?”
“아직 날씨도 쌀쌀한데 꽃이 활짝 피어있잖습니까.”
내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는데, 다케노 조오의 두 제자는 딱 그 한마디만 하고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온화한 상태였으니, 이것이야말로 혼네와 다테마에의 태세전환인가 싶었다.
“허허, 어서들 오시지요. 제 초대에 응해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황금 다실을 꾸밀 만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사치스러웠다. 금으로 된 찻잔과 옥으로 된 쟁반이 손님들 앞에 놓였고,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양초가 얼마나 많이 켜졌는지 대낮같이 환했다.
다도를 행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명분에 가까웠고, 오히려 잔칫상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굳이 차를 마시는 예법을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게다. 먹고 마시는 걸 사양하는 것이 오히려 주인을 불쾌하게 할 테지.”
이마이 소큐의 조언이었다.
그의 다실에서 행해졌던 것들을 생각하면 상당한 폭언에 가까웠던지라, 놀라서 소에키 선사를 보았지만 그 역시 빙긋 웃기만 할 뿐 자신의 사형을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첫 인상만 놓고 보면 츠다 소규는 체형부터 표정까지 둥글둥글한 사내였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신경질적인 자라고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역시 연회의 주최자였기 때문일까. 쇼군의 어용 상인은 다시없을 호인처럼 행세했다.
“오, 사카이의 신동이시구려. 아무래도 내가 아무래도 자네의 부친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여 이리 지내고 있지만, 시토는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 아닌가. 답례를 하고 싶었네.”
셋츠파는 고니시류 부기법이라는 명칭으로 밀고 있었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시토를 주로 언급해왔다. 역시 그 연장선인 듯싶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어르신.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나를 겨냥한 것이 틀림없는 카스테라부터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상차림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빌미도 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무미건조한 답을 해야만 했다.
“이 사카이는 말이오, 미천한 상인들을 쇼군께서 친히 들어쓰시는 터전이었단 말이외다. 그분을 잘 따르기만 하면, 부가 굴러들어오는데 어찌 우리가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이까.”
술이 몇 순배 돌자 자리는 왁자지껄해졌다. 역시 쇼군을 지지하는 야마시로파가 주축인 자리답게 막부를 칭송하는 소리가 드높았다.
하지만 이마이 소큐는 그들을 냉랭하게 보고 있었다.
“저치는 제 부친의 목이 날아갔어도 여전히 쇼군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로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목청 큰 상인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소큐가 풀어놓는 그의 내력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내가 소싯적에 야마시로덴의 도공으로 일하면서 목격한 것이지. 저자는 시바츠지 가문인데······.”
전국시대라면 있을 법한 이야기라 할 만한 것이었는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 가신들에게 명검을 하사하려 하는데, 명나라의 철이 좋다고 하더군. 가서 사 오도록 하라.
선대 시바츠지 상인은 당시 쇼군에게 한 가지 임무를 부여받아 명나라로 건너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신의 자격으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금령까지 뚫어야 하는 신세. 천신만고 끝에 덩이쇠를 매입했지만 풍랑 때문에 늦어진 것이 그의 비극이었다.
- 네놈이 기한을 지키지 못해 가신들이 검을 받지 못하였느니라!
억지 같은 내용이었지만 악조건을 뚫고 명을 받들었던 그는 쇼군의 체면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참수당했다고 했다.
무사는 상업이나 수공업 따위 천역에 종사할 수 없다는 것이 옛부터 내려온 율법이었다. 하지만 분업의 효율성에 기초한 이 율법의 의미는 갈수록 퇴색되어갔다. 외국과의 교역은 장삿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치의 영역에 속한 것. 성패 여부는 당연히 위정자의 권위와 직결된 문제였다.
위신이 곧 자신의 지위와 목숨이었던 무사들은 머리를 굴려서 기가 막힌 술수를 내놓았다.
일이 잘 풀리면 지시를 내린 자신의 공으로 만들고 실패하면 자신들이 부리던 상인들의 책임으로 던져버리는 것. 이런 경우는 비단 시바츠지만 겪은 일도 아니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고작?”
“별수 없지 않습니까. 무사와 평민의 구분이 엄연하니 죽이면 죽고, 살리면 살아야죠.”
21세기를 경험한 입장으로서 16세기의 사람에게 신분 차별을 이야기하자니 약간 우스웠지만, 이 시대에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무기상인은 아직 불혹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무척이나 노회한 자였다. 이 자리에 동석한 것부터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
“그렇겠지. 하나 한갓 새조차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 법이거늘, 하물며···.”
말속에 뼈가 느껴졌다. 새가 가지를 가려 앉는다 함은 인재가 주군을 고를 때 흔히 쓰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은 못 알아들은 척 하기로 했다.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그저 조심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런가······. 네 말이 옳다.”
뭔가 더 말하려다 중간에 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상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역시 위험한 일이라 나 역시도 이 주제를 더 끌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다른 이들은 벌어지는 술판을 만끽하고 있었기에 우리 일행의 대화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소에키조차도 요란한 소음에 얼굴을 찌푸릴 뿐, 억지로 자리를 참느라 옆에서 무슨 밀담이 오갔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거나 돌아갔는데, 소에키 역시도 이마이 소큐가 와 있었기에 적당한 시간에 가버렸다. 아마도 그로서는 이런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했으리라.
아무래도 정식으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 만큼 좀 더 친해지면 본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싶어서 돌아갈 채비를 하자 집주인이 다가왔다.
“이마이 소큐 님. 잠시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으신지요?”
“내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라도 하려는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지만, 소큐 님의 인품을 믿으니 같이 들으셔도 무방하겠지요.”
중립파 사람이 들어도 괜찮은 이야기라면 그다지 마음을 잡아끄는 화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며칠 전에 쇼군 전하를 알현한 적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