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지금은 센고쿠시대 (3)
센 리큐(千利休 천리휴).
쇼군 직속 예인이었던 다나카 센아미의 손자로, 그 역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가 중 하나와 닿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민으로 굴러떨어진 신세. 아예 성을 센(千 천)으로 고쳐버리고 장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집안 출신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마이 소큐의 사제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다도법을 확립시킨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리큐라는 이름은 원래 그가 덴노를 알현할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신분을 높여주기 위해 거사 칭호를 받으면서 사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소에키(宗易 종역)라는 승려로서의 법명을 쓰는 것이 당연했다.
‘센 리큐도 동시대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관백의 다두, 그러니까 차와 관련된 일을 맡았던 사람이지만, 한국에는 다른 의미로 유명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키려는 히데요시를 만류하다가 참수당한 이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로지(露地노지, 다실에 딸린 정원)는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선계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오사카성의 다실은 천박한 금칠로 유명했는데, 역시 타이코(太閤태합, 원 역사상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벼슬이자 호칭) 합하란 놈의 취향이었나.’
센 리큐가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고 목이 날아간 이유도 짐작이 갔다.
보나 마나 차밖에 모르는 이 순진무구한 승려는 과시욕 강한 원숭이와 불협화음을 빚었을 테고, 명성 때문에라도 마지못해 그를 존중하는 척 했던 히데요시는 전쟁을 구실로 참해버렸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단지 유명하기 때문에 사도우(茶頭다두)로 초빙한 것이라면, 다른 대안도 많았을텐데.
대체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참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주최자가 울리는 종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작해야 다실을 둘러싼 정원에 들어왔을 뿐인데 혼자만의 생각에 집중할 정도로 바깥과는 다른 고요함이라니.
아마 주인이 종을 울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생각에 잠겨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닐 게다.”
몇 번 와본 적이 있으셨던 아버지께서 고개를 저으며 지적하셨다.
과연 그 말대로 자세히 들어보니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그런데 바로 옆임에도 불구하고, 먼 데서 나는 소리처럼 은은하게 들렸다.
소에키 선사는 이곳을 자신의 사형이 신경 써서 지었노라고 자랑했다.
“스승님께서는 무사나 승려가 아닌 사람들도 다도가 주는 안정을 누렸으면 하셨다네.”
그동안 고작해야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일에 무슨 도까지 닦으랴는 생각을 살짝 고쳐야 했다.
이들 사형제의 스승은 다케노 조오(武野紹鷗무야소구)라는 이전 세대의 상인이었는데, 다도를 무사와 승려들의 전유물에서 평민들도 누릴만한 것으로 바꾸고자 했다는 것이 선사의 설명이었다.
무사가 소유하는 장원도, 승려가 거처하는 사찰도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에, 고요한 다실을 위한 자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평민은 그렇지가 못하니 일터 주변일지라도 다도를 행할 수 있는 공간을 고안하자는 것이 이들 유파의 사상이었다.
바로 옆의 대장간에서 두드리는 쇳소리의 잡음이 오히려 생각을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은은하게 울려 퍼지도록 바꿀 정도라니,
이만하면 나름의 철학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노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십시다.”
방문객은 아버지, 나, 그리고 소에키 선사까지 셋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사람은 손님이라기보다는 주인을 돕는 보조 역에 가깝다 했으니 우리 고니시 부자만이 초대를 받은 자리라고 봐야 했다.
일부러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놓은 작은 문인 니지리구치(躪口인구)를 지나자 다다미 넉장 반의 작은 공간이 펼쳐졌다.
방 가운데 놓인 코타츠에서는 숯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가이세키(懐石회석, 차를 마시기 전 나오는 음식)가 마련된 상태였다.
“오, 어서 오시게. 아드님과 같이 오셨구만.”
차카이(茶會차회)의 주최자인 이마이 소큐(今井宗久금정종구)였다.
무기상인이라는 배경 때문에 약삭빠르거나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직한 장인에 가까운 중년인이었다.
아버지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아직 센 리큐가 예법를 정립하기 전이었기 때문인지, 이후 진행되는 과정이 내가 알던 순서와는 약간 달랐다.
차시츠(茶室다실)의 장식과 화로, 그리고 그 위에 걸린 가마를 감상한 뒤, 주최자가 내놓은 가이세키 요리를 맛본다. 그리고 디저트에 해당하는 화과자로 식사를 마무리한 뒤 정원으로 나간다. 다음 준비가 끝나면 다시 실내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차를 음미하고 다기를 감상하는 것으로 끝.
이것이 현대에까지 전해진 방법이었다면 지금 대접받는 방식은 다소 간결했다. 중간에 정원으로 나가는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차를 내왔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동안에는 별일이 없었다. 주인은 상을 내오고, 손님은 감사를 표하며 받고, 다기와 각종 장식을 감상했다.
슬슬 지루함이 느껴질 무렵, 이마이 소큐가 대화 중에 흥미로운 주제를 꺼냈다.
“아시다시피 차 끓이는 일로 허명을 얻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었소. 그러다 보니 온갖 사람들을 다 보게 되는구려.”
“천하가 넓으니 기인도 많겠지요.”
나중에야 센 리큐가 다도를 정립하고 다성 소리를 듣지만, 현 시점의 이마이 소큐는 그의 사형인 만큼 아직 거사 호를 받지 못한 소에키보다 훨씬 더 유명했다.
다이묘들을 비롯한 무가는 물론이고, 조정의 공가들도 앞다투어 다도를 배우려 들었기 때문에 소큐의 발은 넓었다.
“한 번은 오다 가문의 초대로 기요스(清洲청주) 성에 방문했는데 그 성주인 노부나가라는 분이 참으로 괴짜였소.”
“가즈사노스케(종6위하 上総介상총개, 오다 노부나가) 말씀이십니까?”
소큐는 잠시 회상하는 듯하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대개 일국의 다이묘쯤 되는 이들은 홀로 차를 즐기거나 기껏해야 물 끓이는 하인 몇을 둘 뿐인데, 가즈사(가즈사노스케)께서는 가신들과 한데 모여서 떠들썩하게 자리를 마련하더구려.”
다도에 밝지 못한 내가 듣기에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다.
고요하게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아니라, 거의 무슨 회식 같은 느낌이 아닌가.
“저, 어르신. 무릇 차라 하면 정신에 묻은 속세의 풍진을 씻어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요란하게 즐긴다니 어불성설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 허나 나는 그 자리에서 오히려 스승님께서 추구하시던 바를 볼 수 있었네.”
대강 납득이 되었다. 여행 중에 보았던 다케다 조오의 동상에는 그가 사카이에 다도를 들여왔다고 했었다. 여기는 무사 계급이 직접 지배하지 않는 마을이다. 다시 말해서, 다케다 조오는 신분에 상관없이 다도를 향유하도록 전파했다는 이야기도 될 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같은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셨기 때문인지 말실수를 하셨다.
“다이묘가 가신들과 뒤섞여서 차를 마신다니, 체면이 상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눈에는 순간 경멸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너무나도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내가 정말로 그렇게 본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이치대로라면 우리 같은 평민들 역시 차에는 감히 손대서는 안 되겠구려.”
“우리야 무사 나으리들과 합석을 하지는 않잖습니까. 합석하게 허락해줄 리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대로 이 주제의 대화가 끊겨버리고 말았다.
이마이 소큐의 스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들을 기회가 잘려버리고 말았다.
다만 센 리큐가 어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가 되었는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방문의 유일한 소득이었다.
어색한 가운데 모임이 끝나고, 우리 부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지금 소큐가 보여주는 모습은 오다 노부나가와 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사카이의 철포가 오다 노부나가의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단서였다.
“아버지. 오와리는 너무 먼데 이마이 님은 너무 마음을 두신 것 같습니다. 혹시 딴마음을 품은 것이 아닐지요?”
“그치가 한 말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 오다 노부나가는 간토(관동関東)의 촌놈일 뿐,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자다.”
넌지시 장년의 무기상인이 제3의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해보았지만 묵살당하다시피 했다.
전국시대 일본의 주도권은 기나이를 누가 장악하느냐였다는 걸 감안하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버지께서는 그가 오다 노부나가를 언급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계셨다.
“원래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자다. 직접적으로 막부를 옹호하거나 미요시 가문에 기우는 듯한 언행을 하는 순간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테니, 그런 식으로 말을 돌리는 게지.”
“알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오직 하나다. 셋츠파에서 에고슈의 차기 대표를 내는 것 말이다. 이왕 내가 직접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더욱더 좋겠지.”
* * *
사카이는 태풍의 눈이나 다름없었다.
이 마을이 쇼군의 직할령이라는 지위 덕에 전란의 여파가 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접한 율령국인 셋츠(摂津섭진, 현재의 오사카시와 효고현 남동부 일대), 가와치(河内하내, 현재의 오사카부 동쪽 일대), 이즈미(和泉화천, 현재의 오사카부 남서쪽 일대)에서는 미요시 가문과, 이들을 대적하는 하타케야마(畠山전산)-롯카쿠(六角육각) 연합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초 뿌리가 덜 갈렸잖나! 좀 더 잘게 만들어야 한다고.”
“동백유가 다 떨어졌어? 호마유도 없다고? 그럼 콩기름이라도 쓰도록 해!”
그리고 고니시 약재상 역시 미요시 가문의 군대에 상처약을 공급하기 위해 매일같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저, 상방 어른. 감초를 다 쓴 듯싶습니다.”
사환 중 하나가 아버지께 난처한 기색으로 재고가 다 떨어졌노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창고에 족히 오천 근은 쌓여 있을 것이거늘.”
“보십시오, 상방 어른.”
그가 내민 것은 창고에 보관 중인 물품의 목록이었다.
“일단 가 보자.”
잠시 후 창고에서는 한가득 쌓인 감초가 잔뜩 나왔다.
재료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아버지의 낯은 여전히 언짢은 표정이셨다.
“약재가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렇긴 하다만······.”
“혹여 다른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잠시 따라오거라.”
일꾼들 귀에 들어가서는 안 될 말인듯싶어 조용히 시키신 대로 했다.
“목록과 실제로 창고에 쌓여있는 수량이 차이가 나서 말이다.”
“그걸, 왜 여기까지··· 아!”
고니시 약재상에는 일하는 심부름꾼만 족히 한 손을 채우고도 남는다. 나야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돈 될만한 상품을 빼돌릴 일은 없지만, 발각당할 걱정이 없어진다면 다른 이들은 딴마음을 품게 될 터였다.
적어도 중임을 믿고 맡길 정도로 오래 일한 가족 같은 사환은 아직 없었다.
“창고의 출납 내역이 일치하기만 한다면, 누가 드나들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래서야······.”
“지금이라도 정리를 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내 제안에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어느 세월에? 족히 열흘은 걸릴 텐데······. 그동안 새로 들어오는 일들은 또 어찌하고?”
장부 정리가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지만 오랜 기간 상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말씀이 틀릴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자가 장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해마다 새로 기입하는 방식이라 두 달 치에 불과했지만, 족히 한 권은 되어 보였다.
나 역시도 상단 돌아가는 사정은 대강 파악하고 있었기에 장부가 이렇게나 두툼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가와치의 쿄타로에게서 당귀 100근을 매입함.’
‘코무라에게 호마유 20동이를 매입함.’
‘다케야마에게 청심단을 4상자 판매함.’
하지만 막상 표지를 열어보니 이런 식으로 불필요하게 문장으로 된 내역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총계 같은 건 따로 없어서 볼 때마다 일일이 계산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 사흘 정도면 정리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된다. 결코 그렇게 간단하고 적은 양이 아니야! 혹시 약을 조제하는 일이 싫다고 꾀를 부리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의심조차 타당할 정도로 약재를 다듬는 일은 고역이었다. 냄새야 일하다 보면 금세 잊을 수 있었지만 쉬지 않고 작두로 썰고, 절구로 찧거나 맷돌로 가는 작업이 너무나도 많았다.
“대신 사환 한 명만 붙여주십시오. 만약 기한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때에 한 명의 노동력을 더 끌고 가겠다니, 고민이 되시는 듯했다. 갓 끓인 차가 알맞게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는 다짐을 받듯 질문하셨다.
“정말 사흘이면 충분하겠지?”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