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콘스탄틴 제국 (3)
광명력 997년 6월 2일 아침.
트링겐으로부터 콘스탄티노바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벨로디나 혁명 영웅이자 신왕국 초대 외무대신이었던 빅토르 다비도프가 향년 6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벨로디나 국왕 아딘의 명의로 전송됐다.
곧 벨로디나는 일주일 간의 추모 기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6월 5일 아침.
마법으로 보존 처리가 된 빅토르 다비도프의 시신이 크리미아 항구에 도착했다.
국왕 아딘과 총리대신 안톤은 운구 마차의 선두에서 말을 몰며 혁명 영웅의 시신을 콘스탄티노바까지 옮겼다.
그리고 6월 8일 정오.
총대주교 알렉세이가 집전하는 가운데 빅토르 다비도프의 국장이 거행됐다.
“짐이 혁명을 일으킴에 있어, 고인은 앞길을 닦아두는 자의 역할을 했으니, 혁명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고인의 이름을 모르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노라.”
아딘이 직접 추도사를 낭독하며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1호 혁명 영웅 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6월 11일 정오, 빅토르 다비도프는 콘스탄티노바 북부의 드넓은 공원에 마련된 혁명 영웅 묘지에 묻혔다.
그렇게 아딘은, 울지콰야가 죽인 빅토르 다비도프를 혁명 영웅이자 과로로 죽은 참된 관료로 추켜세워주며 고인을 명예롭게 만들어 주었다.
* * *
빅토르 다비도프의 죽음으로 벨로디나가 숙연해진 가운데, 어느덧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시작하던 10월 중순 경, 벨로디나와 게마인샤프트 양쪽 모두 경사로 삼을 일이 일어났다.
바로 게마인샤프트 여왕 ‘성녀’ 로제와 벨로디나 국왕 ‘영웅’ 아딘이 혼례를 올린다는 소식이었다.
<혼례는 광명력 998년 3월 1일 정오에 트링겐에서 성대히 치러질 것이다.>
양국 궁정대신의 명의로 벨로디나와 게마인샤프트 곳곳에 붙은 선언문은 곧 양국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안주로 삼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성녀님이나 벨로디나 국왕이나 혁명 동지였다지 않았나?”
“이야, 진짜 이건 대단한 결합이야. 신의 축복을 받는 영웅과 신의 뜻을 전하는 성녀의 결합이라니.”
“암. 그야말로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
“거기다 두 사람 다 상당한 실력자들 아닌가?”
“상당한 정도가 아니지. 성녀님은 아예 대마법사를 능가하는 존재시고, 벨로디나 국왕도 소드 마스터를 능가하는 존재 아닌가?”
“내 친구가 린덴바움 전투에 참전했는데, 그 친구 말로는 소환수를 부리는 샤펠 제국 황제의 목을 글쎄 벨로디나 국왕이 뎅겅 잘랐다는 거 아니겠는가?”
“하여간 대단한 결합이야.”
게마인샤프트나, 벨로디나나 서민은 두 영웅적인 인물의 개인적 결합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나라의 국왕이 결혼을 해서 자손을 본다면, 그 자손은 어느 나라의 왕이 되는 거지?”
“둘 이상이면 분할 상속을 하면 그만인데, 만약 한 사람이라면 벨로디나와 게마인샤프트의 왕위를 동시에 가지게 되는 것 아니겠나?”
“그럼 뭐야? 게마인샤프트하고 우리가 통합이 된다는 건가?”
“뭐, 한 분의 왕이 계신다면 그렇게 되지 않곘나?”
“허어…… 그게 쉽나?”
양국 지식인의 경우 두 군주의 개인적 결합이 아닌, 국가와 국가의 결합이란 측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서민들의 기대와 지식인들의 고민 속에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 * *
광명력 998년 3월 1일 정오.
트링겐에 마련된 거대한 광장에서 아딘과 로제는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천상의 신들이시여, 당신들이 택하신 영웅과 성녀의 결합이 곧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축하하여주옵소서.”
“선지자시여 그대의 재림날까지 우리가 평화와 번영 속에서 그대가 남긴 말씀을 잘 지켜나가며 살아가는 계기가 되도록 이 결혼을 축하하여주옵소서.”
트링겐 주임 사제와 동방광명교 총대주교 알렉세이가 동시에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며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번쩍-!]
그 순간, 황금빛 번개가 제단 위에 놓은 송아지 일곱 마리 위로 떨어져 그것들을 불태웠다.
“오오오-!”
그 모습을 보며 결혼식 하객들은 모두 탄성을 지르며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사전에 계획이 없었던 일에 아딘은 놀란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았다.
로제 또한 상당히 놀란 얼굴로 아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로?’
문자 그대로,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서, 그 누구의 개입도 없이 떨어진 번개였다.
* * *
아딘과 로제.
벨로디나와 게마인샤프트의 국왕이 결혼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두 나라는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 들어갔다.
“우리 가문의 영지를 국가에 헌납하오니, 부디 받아주소서.”
광명력 998년 3월 3일.
콘스탄티노프 공작 루돌프 3세는 아딘과 로제에게 자신의 영지를 헌납한다는 선언을 했다.
아딘과 로제는 세 차례 거부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루돌프 3세에게 죽을 때까지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해 주었다.
트링겐과 뵌가르트가 아딘과 로제에게 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은 양국 통합을 위한 준비 작업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변했다.
그리고 약 6개월의 준비 끝에 광명력 998년 9월 1일, 벨로디나와 게마인샤프트는 공식적으로 국가 통합을 선언했다.
“벨로디나 국가평의회 만장일치로 양국의 통합안을 승인합니다.”
“게마인샤프트 시민총회 총의로 양국의 통합을 받아들입니다.”
트링겐은 공식적으로 통합 왕국의 수도로 지정됐고, 대대적인 확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광명력 999년 3월 1일.
드워프의 설계와 인간의 노동력이 결합해 안전하고 튼튼하면서도 빠르게 만들어진 통합 왕궁에 아딘과 로제가 입주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6월 1일, 트링겐에서 전국으로 여왕 로제의 임신 사실이 공표됐다.
* * *
동쪽에서 게마인샤프트와 벨로디나가 통합하고, 통합 왕국의 공동 국왕인 로제가 임신하는 사이, 제니스와 샤펠 제국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샤펠 제국은 어린 황제 클로드 3세는 통치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렸던 만큼, 곧장 모후 마리안느의 섭정 체제로 전환됐다.
야망이 컸던 섭정 마리안느는 피폐한 제국을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세금 징수 방안을 발표함과 동시에 샤를 11세에 충성을 맹세했던 대신들을 자신의 깃발 아래 모았다.
가혹한 징세를 통해 상당한 현금을 확보한 마리안느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이에게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뿌린 덕분에, 그녀의 세력은 삽시간에 제국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가혹한 징세로 인해 농민의 불만이 심화됐고, 중앙으로 들어간 세금이 지방으로 전혀 전이되지 않는 불균형 현상까지 발생했다.
수도 아퐁은 인플레이션에 허덕였고, 지방은 디플레이션에 허덕이는 기현상 속에서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각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관들에게는 반란군을 진압할 병력이 없었고, 순식간에 제국 곳곳에 농민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미 상비군이 모두 날아갔고, 새로 충원한 상비군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했던 중앙 정부는 지방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각 지역 유지들이 각자의 사병을 대거 모집해 반란군을 격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섭정 마리안느는 그들에게 작위를 하사하고 그 지방의 반영구적 지방관으로 임명하는 식으로 그들을 치하했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샤펠 제국의 중앙집권 체제는 와해됐고, 다시 과거와 같은 봉건제 시대로 회귀했다.
그리고 그 봉건제 속에서, 섭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어린 황제의 삼촌들은 지방 세력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광명력 999년 1월 31일, 샤펠 제국 전역에서 황족들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샤펠 제국의 거점을 장악했고, 황제를 농락하는 섭정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며 수도 아퐁을 압박했다.
섭정 마리안느는 최대한 군을 끌어모아 수도와 그 근방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이상 진압하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5월 1일, 왕을 자처하는 이들 간의 전쟁이 여기저기서 발발하면서 마침내 샤펠 제국은 대분열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남부의 슈드 자치령은 사실상 독립 국가가 돼 스스로를 슈드 공화국이라 칭하며 아퐁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버렸다.
제니스 공화국의 경우, 샤펠 제국과 같은 급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내부적으로 국경을 외국군에 열어준 책임을 물어 집정관 헨리 피셔가 실각하고 그 자리를 원로원 노인들의 지지를 받는 파라곤 시장 피터 잭슨이 차지했다.
피터 잭슨은 잭슨 상단을 동생인 토리 잭슨에게 넘겼고, 토리 잭슨은 잭슨 상단을 통해 제니스 공화국과 통합 왕국 간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한편, 샤펠 제국의 정세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용병들의 수요가 그쪽으로 몰렸고, 벨로디나 혁명 이후 반백수 상태로 지내며 사회 불안 요소가 돼 가던 용병들이 대거 샤펠 제국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에 맞춰 화산 열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해적들이 제니스 공화국의 연안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마침내 광명력 999년 4월 7일, 집정관 피터 잭슨은 원로원의 동의를 받아 정식으로 정부군의 창설을 선언했다.
일부는 그것을 건국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 반발했지만, 양 대국의 군대가 자국의 영토를 지나간 것과 해적의 약탈에 불안해하던 시민 다수는 정부군의 등장을 환영했다.
* * *
광명력 1,000년 3월 1일 새벽.
트링겐 왕궁에서 우렁찬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왕자님입니다. 왕자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임신 10개월 하고도 3일 차에 로제는 아딘의 아들을 낳았다.
아딘은 자신의 아들에게 블라디슬라프라는 벨로디나식 이름과 콘라드라는 게마인샤프트식 이름을 동시에 지어주었다.
그리고 3월 13일, 아딘과 로제는 아들 블라디슬라프-콘라드를 벨로디나와 게마인샤프트의 적법하고 유일한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다.
블라디슬라프-콘라드는 뛰어난 스승과 후견인을 둔 채 무럭무럭 자라났다.
부모가 부모인 만큼, 그도 상당히 비범한 존재로 자랐다.
블라디슬라프-콘라드가 비범한 존재로 자라나는 사이, 국제정세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샤펠 제국은 아퐁의 황제 클로드 3세와 섭정 마리안느가 광명력 1,003년 7월 5일 새벽에 갑작스레 황궁에서 발생한 화재로 모두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황제 자리를 두고 다시 한번 자칭 왕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퐁은 귀족들에 의한 집단 지도 체제 속에서 샤펠 제국 안의 독립적인 국가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샤펠 제국은 해체됐다.
그리고 샤펠 제국이 해체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벨로디나-게마인샤프트 통합 왕국이 제국으로 격상됐다.
공식적으로 벨로디나-게마인샤프트 통합 왕국은 여전히 통합 왕국이라는 명칭을 고수했지만, 샤펠 지역의 지방 정권들과 제니스 공화국은 외교 문서에 통합 왕국을 콘스탄틴 제국이라 칭하며 아양을 떨어댔다.
그리고 마침내 1,016년 3월 1일.
16세 생일을 맞이한 블라디슬라프-콘라드 아디노비치 콘스탄틴에게 아딘과 로제가 왕위를 선양하면서 벨로디나-게마인샤프트 통합 왕국은 스스로 제국임을 선포하고 국명을 콘스탄틴 제국으로, 블라디슬라프-콘라드 아디노비치 콘스탄틴을 초대 황제로 하는 황제정 국가로 변모했다.
물론 블라디슬라프-콘라드가 불멸의 검을 뽑지 못했기에, 그는 상징으로서의 황제 역할을 하게 될 뿐이었지만, 부모보단 못할지언정 나름 비상한 머리에 초대 황제라는 상징성은 그를 국민 통합의 상징 이상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모든 걸 물려준 아딘과 로제는 아무도 모르게 불멸의 신전으로 향했다.
* * *
“허허허.”
여전히 정정한 샤푸르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물을 손질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훗.”
곁에서 낚싯대를 점검하던 루이 알랭도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후를 여기서 보낼까 싶어 찾아 왔습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아딘이 말했다.
“아직 나이도 젊은 사람들이 무슨 벌써 노후야.”
샤푸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함박 웃음을 지으며 아딘에게 다가갔다.
아딘은 가볍게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고, 샤푸르는 그런 그의 손을 맞잡으며 그를 반겼다.
“다행이구나. 내 삶이 50년 정도밖엔 안 남았는데, 내 최후를 지켜봐줄 딸과 사위가 와서.”
루이 알랭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로제에게 양팔을 벌렸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버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로제는 가볍게 그의 품에 안겼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이들이 여기서 평생을 보낼 수 있겠어?”
샤푸르가 아딘과 로제에게 물었다.
아딘과 로제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가끔 여행도 다니고 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 말에 샤푸르와 루이 알랭은 함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딘과 로제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완결>
* * *
그동안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를 사랑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부족한 저의 작품을 끝까지 봐주신 독자님들,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는 수르코프가 될 것을 다짐하며,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