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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74화 (174/175)

174 콘스탄틴 제국 (2)

광명력 997년 6월 1일 오전.

아딘은 운터트링겐으로 돌아왔다.

“오라버니!”

그런 아딘을 가장 먼저 나서서 반긴 것은 로제였다.

하지만 아딘은 그런 로제를 차가운 눈으로 한 차례 슥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오라버니?”

로제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아딘을 다시 한 번 더 불렀다.

하지만 아딘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연합군 수뇌부가 모인 회의실로 들어섰다.

로제는 당황하면서도 최대한 그런 감정을 감춘 채 아딘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아딘 콘스탄틴 폐하 만세!”

“로제 콘스탄틴 폐하 만세!”

“만세! 만세!”

회의실로 두 사람이 들어서자, 안톤을 비롯한 벨로디나 대신들과 알프레드를 비롯한 게마인샤프트 대신들이 두 사람을 보며 만세를 외쳤다.

아딘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아딘은 상석에 마련된 두 개의 의자 중 우측에 앉았다.

로제는 흔들리는 눈빛을 최대한 진정시킨 채 좌측 상석에 앉았다.

두 사람이 착석하자 회의는 시작됐다.

“6천억 골드는 정확하게 절반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게마인샤프트도 그리고 벨로디나도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동원했고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본 만큼, 합당한 처사라고 여겨집니다.”

“연합군 체제의 경우, 이번에 그 효율성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운용할 계획입니다.”

“제니스 공화국 측에서 벨로디나 왕국을 향해 지난날의 악감정을 잊고 새로 시작하자며 축하 서한을 보내왔습니다.”

대신들의 보고를 듣는 내도록 아딘은 실없이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아딘의 웃음에 대해 지적하거나 의문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당장 아딘뿐 아니라 대신들 모두가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샤펠 제국 황제의 목을 베고 제국의 심장인 아퐁에서 엄청난 배상금과 제국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될 만큼 굴욕적인 협정을 맺고 온 사람인 만큼, 아무도 그의 권위에 의문을 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 한 사람, 로제만이 떨리는 눈으로 그런 아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회의는 대신들의 보고를 아딘과 로제가 가만히 듣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게마인샤프트와 벨로디나의 궁정대신들이 마지막으로 보고를 끝내자 아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다들 수고했어. 아주 수고가 많았어. 다들 훌륭해. 아주 훌륭해. 흐하하하-!”

아딘이 박장대소하자 대신들도 모두 소리내어 웃었다.

딱 두 사람만이 그렇게 웃지 못했다.

바로 안톤과 빅토르 다비도프였다.

‘폐하께서 저렇게 웃으신다고?’

‘아딘 콘스탄틴이 공식 석상에서 저런 말투를 쓴다고?’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로제는 정확하게 잡아냈다.

그러는 사이 아딘은 회의 종결을 선언했다.

“다들 오늘 하루는 푹 쉬자고! 어?! 흐하하하-!”

회의가 끝나고, 아딘은 서둘러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안톤과 빅토르 다비도프는 의구심을 가진 채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르보프, 다비도프.”

그런 두 사람을 로제가 불렀다.

안톤과 빅토르 다비도프는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로제는 가만히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두 사람은 이내 로제를 따라 그녀의 처소로 들어갔다.

“오라버니가 이상하다는 거, 두 사람 다 느꼈죠?”

로제의 물음에 안톤과 빅토르 다비도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람되오나, 폐하께옵서 오늘 보이신 행동은 마치…… 마치…….”

안톤이 차마 말을 잇질 못하고 있을 때, 빅토르 다비도프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오늘 오라버니는…… 오라버니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런 로제의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중간에 잠시 다른 곳으로 빠졌다가 돌아오신 걸로 아는데…… 혹시 어디 갔다 오셨는지 아십니까?”

그 물음에 로제는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가 그건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흐음……”

“으음…….”

세 사람은 한동안 머리를 맞댄 채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폐하께 우리 셋이 직접 가서 여쭤보고 확인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빅토르 다비도프의 제안에 로제와 안톤은 모두 동의했다.

그대로 세 사람은 로제의 처소를 빠져나와 아딘의 침실로 갔다.

“어쩐 일로?”

방안에서 실실 웃으며 장식용 장검을 꺼내 칼날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던 아딘이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막상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우물쭈물 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아딘은 씩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장검을 든 채 천천히 세 사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왜, 내가 이상한가?”

그 말에 세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딘은 세 사람과 1m 간격을 둔 채 멈춰선 후 그들을 슥 바라봤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빅토르 다비도프에게서 멈춰섰다.

아딘은 씩 웃으며 말했다.

“빅토르 다비도프. 굉장히 똑똑하고 또 열성적인 늙은 마법사.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반역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지. 자신이 꿈꾸는 급진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민중적이면서도 귀족적인 모순된 이상을 위한 반역의 꿈을 말이야.”

빅토르 다비도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 순간, 아딘은 망설임없이 그의 복부에 장검을 박아 넣었다.

“꺼억…….”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로제도, 안톤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딘은 죽어가는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아딘 콘스탄틴이 호시탐탐 끊어낼 생각을 했지. 그래도 너한테 좋은 소식을 알려주자면, 아딘 콘스탄틴은 널 죽일 생각까진 안 했다는 거야. 단지 권력에서 멀어진 상태로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게 할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을 뿐. 근데 뭐, 솔직히 너 같은 것들은 죽이는 게 속이 편하거든. 뒤탈도 없고 말이야.”

[쑤욱-!]

그대로 아딘은 칼을 뽑았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배를 움켜쥔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그대로 아딘은 안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안톤은 소드 마스터답게 아딘의 검을 잽싸게 피했다.

“폐, 폐하! 어찌 이러시옵니까!”

“흐하하하-! 그래, 계속 피해 보라고!”

아딘은 계속해서 안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안톤은 그것을 피하기만 급급할 뿐, 방어를 하거나 반격을 할 생각을 하질 못했다.

“흐하하하-! 그래! 이 맛이지, 이 맛이야! 이게 인간으로 사는 맛이야! 흐하하하-!”

“폐, 폐하!”

그렇게 약 5분간 일방적인 칼질이 이어졌다.

그리고 안톤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벽에 부딪쳤을 때, 로제가 아딘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라버니!”

그러나 아딘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미간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폐하!”

안톤이 화들짝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꽉-!]

로제는 자신의 미간을 향해 다가오던 장검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흐허허허-! 용의 딸이라 그런가 확실히 용감해. 그래, 불멸의 검이 아닌 이상 이런 일반적인 장식용 장검 정도는 손으로 막아 볼 수 있겠다, 이거지? 그래. 네 손가락이 잘리나 칼이 부러지나 한번 해보자. 흐하하하하-!”

그대로 아딘은 힘을 더 세게 주며 검을 찔러 넣었다.

로제의 손가락과 손바닥이 베이며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흘러나와 검신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며 그녀의 볼을 적시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제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아딘을 바라보고 호소했다.

“흐하하하하-!”

아딘은 그저 미친 듯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폐, 폐하……”

안톤은 양손을 덜덜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렇게 점차 장검이 로제의 손에 깊은 상처를 남겨가며 그녀의 이마를 노리고 찔러 들어갈 때였다.

별안간, 장검에 가해지던 아딘의 힘이 사라졌다.

아딘의 얼굴 가득하던 광기 어린 미소도 사라졌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그리고 아주 차분한 음성이 마치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아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 돼!]

끝으로 아딘의 정수리에서 거대한 뱀의 눈 하나가 뛰쳐나왔다.

[안 돼!]

뱀의 눈은 비명을 지르며 아딘의 머리 위에서 발작했다.

그러다 그것은 이내 먼지가 돼 허공 중으로 사라졌다.

“로, 로제!”

그리고 아딘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딘은 그대로 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러자 로제도 쥐고 있던 칼날을 놓았다.

[쩡그렁-!]

장검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딘은 당황스러워하며 그녀의 양손을 붙잡고 손바닥을 살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이, 이게 전부…….”

아딘은 당황스러워하며 로제를 바라봤다.

로제는 비로소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온 아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로제의 손에 난 상처는 그녀의 마법으로 말끔히 치료됐다.

죽은 빅토르 다비도프의 복부에 난 자상도 그녀의 마법으로 말끔히 원상 복구됐다.

바닥의 피마저도 로제가 마법으로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아딘은 로제와 안톤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가를 들을 수 있었다.

“다비도프가…… 결국…….”

아딘은 빅토르 다비도프의 시신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 어떻게 된 거예요? 오라버니의 정수리에서 나온 그 눈알은 도대체 뭐예요?”

로제의 물음에 아딘은, 김현수에 관한 것을 숨기고, 약간 각색을 하여 울지콰야와 있었던 일을 로제에게 말해주었다.

뱀 인간의 존재는 로제도 알고 있었던 만큼, 아딘은 적당히 울지콰야를 엘프숲의 뱀 인간들이 숭배하는 사악한 신 정도로 묘사했다.

아딘에게서, 울지콰야가 아딘의 육신을 빼앗으려 했고, 실제로 아딘의 영혼을 의식 구석에 몰아넣은 후 잠시 빼앗았다가 결국 아딘의 강인한 정신력과 신물의 힘 덕분에 영원히 소멸됐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로제와 안톤은 모두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불멸의 검은 그래서 향후 500년 간 봉인될 거야. 그 누구도, 심지어 이제는 나조차도 뽑을 수 없어.”

아딘의 이야기가 끝나자 로제와 안톤이 각각 한마디씩 그에게 말했다.

“다행이에요, 오라버니.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 대단하시옵니다, 폐하. 오로지 폐하만이 유일하게 악신을 몰아낸 인간으로 기억될 것이옵니다.”

그 말에 아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악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 역사에 기록되면 안 돼.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천수를 누린 채 죽은, 위대한 혁명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벨로디나 신왕국 초대 외무대신 빅토르 다비도프를 위해서라도, 그 이야기는 절대 후세에 전해지면 안 돼.”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딘은 가만히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보았다.

그 말뜻을 알아차린 로제와 안톤도 가만히 빅토르 다비도프의 시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론 가공된 이야기가, 진실보다 더 감동적이고 교훈적이기도 한 법이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딘은 가만히 죽은 빅토르 다비도프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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