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콘스탄틴 제국 (1)
[키아아아악-!]
톡 건들면 산산조각 날 유리병처럼 온몸에 난 금에서 음울한 보랏빛과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며 울지콰야는 발악했다.
[키에에엑-!]
신전 입구 쪽 복도에 도열해 있던 100마리의 뱀 인간들도 모두 땅바닥을 구르며 발악하고 있었는데, 놈들도 울지콰야처럼 온몸에 금이 간 상태였다.
차이가 있다면 놈들에게선 그 어떠한 빛도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서로 이어져 있는 존재인가?’
아딘은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울지콰야를 바라봤다.
‘설명을 들으면 놈은 진짜 신적 존재라 봐도 무방해. 그저 활자에 불과한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실제 세계로 만들었으니까.’
그런 존재가, 비록 아딘 자신의 생존이 필요한 만큼 덜 공격적일지라도,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란 게 아딘의 판단이었다.
그의 판단대로, 울지콰야는 장장 1시간을 바닥에서 발악하며 꿈틀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세기는 강해졌고 그의 발악 강도는 약해졌다.
‘죽는 건가?’
아딘은 상공에서 가만히 울지콰야를 바라봤다.
그 순간, 울지콰야의 힘빠진 눈동자도 아딘을 응시했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것 같아?!]
그 말을 남기고, 울지콰야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감는 순간, 그의 몸은 산산조각 났다.
[키에에엑-!]
울지콰야의 육신이 부서지는 순간, 뱀 인간 100마리의 육신도 박살 났다.
‘끝났나?’
아딘은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울지콰야의 조각난 육신 덩어리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불멸의 검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불멸의 검이 아딘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울지콰야의 정수는 내가 흡수했어. 하지만 소화하기엔 좀 과할 만큼 거대한 에너지야. 아마 한동안 난 칼집 속에서 이 에너지를 죽이고 흡수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
갑작스러운 불멸의 검의 말에 아딘은 당황한 표정으로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검은 칼집에서 단 1mm도 뽑혀 나오지 않았다.
“무, 무슨…….”
아딘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불멸의 검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500년 정도는 이렇게 있어야 해. 뭐, 어떻게 보면 날 뽑지 못하는 이에게 절대 권력을 주지는 않겠다던 네 뜻이 이루어지는 셈이긴 하지.]
“이, 이봐!”
그것을 끝으로, 불멸의 검은 더 이상 아딘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던 빛도 사라졌다.
아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검은 마치 칼집과 한 몸인 양 뽑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봉인…… 된 건가?”
아딘이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불멸의 검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으윽-!”
별안간 아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커헉-!”
마치 두개골 안에서 뇌가 밖으로 미친 듯이 팽창하는 것 같은, 그런 고통에 아딘은 몸을 움츠린 채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나?]
고통 속에서 아딘은 뇌내에 울리는 울지콰야의 목소리를 인지할 수 있었다.
[난 이대로 안 죽어. 절대 못 죽어. 억겁의 세월, 빅뱅 이전부터 지금까지 난 살아남았어. 모든 자연이, 모든 우주가, 모든 신적 의지가 날 죽이려 들었지만 난 살았어. 근데 고작 너 따위에게 내가 죽어? 내가 생명을 부여한, 너의 이 조잡스러운 창작물한테 죽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어!]
아딘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칸의 갑옷이 다시 벨트로 돌아가 아딘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아딘은 바닥에 웅크려 바들바들 떨면서 코피를 쏟아냈다.
그의 코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가 이내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어차피 널 살려두기만 하면 돼. 네 영혼을 의식의 한구석에 몰아넣고, 영원히 거기에 격리시키면 그만이야. 그리고 나는 네 육체로 영생하는 거지.]
[어차피 인간들은 네놈의 우습지도 않은 퍼포먼스 덕분에 널 신의 축복을 받은 왕이라 생각하고 있어. 신의 축복을 받은 왕이 불멸한다는 게 뭐 이상하진 않겠지.]
[그리고 적당한 때에, 감히 내 정수를 흡수한 저 쇳덩어리가 다시 깨어나면, 그때는 놈이 지닌 모든 정수를 다 내가 흡수하겠어.]
[마침내 내가 완벽해진다면, 그래서 천상의 신들을 압도하게 된다면, 난 비로소 천상으로 올라가 완벽한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거야.]
[크하하하하-!]
점차 아딘은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고, 두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존재한다는 의식만이 흐릿하게 남아 마치 망망대해에 부유한 것 같은 그런 관념만이 남았다.
* * *
[따악-!]
가볍게 자신의 머리를 치는 나무막대기의 감촉에 김현수는 눈을 떴다.
“졸지 마라.”
무테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다시 한번 더 김현수의 머리를 가볍게 들고 있던 회초리로 때리곤 교실을 나갔다.
‘여, 여긴…….’
김현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바쁘게 샤프와 볼펜을 써가며 공부하는 아이들부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칠판을 보며 멍때리는 아이 그리고 졸다 깬 듯한 풀린 눈으로 다시 꾸벅꾸벅 조는 아이까지.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달머리 스타일을 한 10대 후반의 남자들이 교실에 앉아 있었다.
창밖이 어두컴컴한 것을 확인한 김현수는 본능적으로 칠판 위에 달린 시계를 바라봤다.
시계 바늘은 8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히 저녁이리라.
‘뭐, 뭐야…… 왜 내가 학교에…….’
김현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그가 졸업했던 고등학교였다.
그는 다급히 자신의 와이셔츠 왼쪽 가슴께를 확인했다.
<2학년 5반 김현수>
분명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등학생 시절 명찰이었다.
‘어, 어째서?’
아딘은 가만히 자기 볼을 꼬집어 보았다.
분명히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볼펜 하나를 꺼내 그대로 있는 힘껏 자기 허벅지를 찔렀다.
“흐윽-!”
뇌가 짜릿해지는 통증에 김현수는 그만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지르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킬킬거렸고, 몇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들은 다시 자기 할 일에 몰두했다.
“잠이 덜 깼냐?”
그때, 김현수의 곁에 있던 짝지가 물었다.
김현수는 인상을 쓴 채 짝지를 바라봤다.
‘철수?’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3년 연속 같은 반이었던 단짝친구 강철수.
1학년 때는 비슷하게 성적이 중하위권이었지만,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3학년 때 성적이 확 튀어 최종적으로 성대에 간 친구였다.
“너 또 그 소설인가 쓴다고 늦잠 잤지?”
강철수의 물음에 김현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소설은 대학교 가서 써. 너 이대로 가면 인서울은커녕 천안 아래쪽으로 학교 다니게 될 수도 있어.”
마치 예언과도 같았던 그 말을 다시 들으며 김현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꿈이었다고?’
김현수는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의 삶.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늘 중하위권이었던 성적.
수능 가채점 이후 담임과의 진학 상담.
결국 영남권 4년제 사립에 진학.
그리고 금수저와의 분쟁과…… 빙의.
‘진짜 꿈이었다고?’
그렇게 김현수는 45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보냈다.
“오늘은 가서 적당히 일찍 자고 내일부터는 좀 졸지 좀 마라. 수업 시간 때도 졸다가 빠따 맞더니, 야자 때까지 졸면 어떻게 하냐?”
함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먼저 하차하며 강철수가 말했다.
김현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며 그를 보냈다.
‘맞아. 이거 전부 다…….’
김현수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스마트폰이 아닌, 슬라이드폰이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고등학교 2학년.
2009년이었으니, 당연히 스마트폰이 나올 수가 없었다.
‘진짜 꿈이었다고? 아니 이게 말이 돼? 소설 속에 빙의한 건 꿈이었다고 쳐도, 아니 내가 이 현실에서 본 것들은 그럼 다 뭐야? 군대, 스마트폰 등등……’
그렇게 의구심을 가진 채 김현수는 집에 도착했다.
‘엄마랑 아빠가 아직 퇴근 안 한 것까지…….’
야근에 잔업이 일상인 부모님은 11시나 돼야 집에 도착할 터였다.
김현수는 씻는 것을 뒤로하고 곧장 컴퓨터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켠 것은 그의 소설 폴더였다.
‘맞아. 이제 겨우 1부를 쓰고 있던 때였어.’
김현수는, 한창 프랭클린 하이로드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1부 파일을 닫고 설정집 파일을 열었다.
‘맞아. 다 이거였어. 다 이거…… 어?’
그 순간, 김현수는 이상한 것을 찾았다.
‘내가 이런 설정도 넣었나?’
설정집 가운데 제목이 #0인 설정집.
최초 문서 생성 날짜가 2007년 12월 21일인 그 문서.
‘초창기 설정집인가?’
김현수는 조심스럽게 그 문서를 열람했다.
4p 정도 되는 분량의 문서는 김현수가 거의 평생을 쓴 소설 『영웅일대기』의 창세 신화였다.
‘중학생 땐 이랬지. 막 창세 신화부터 일단 적고 시작했으니까.’
김현수는 부끄러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끼며 창세 신화를 쭉 읽어갔다.
기성 종교와 신화를 뒤섞은 창세 신화는, 천상의 신들이 창조주에 의해 다양하게 진화한 종들의 이름을 붙이고, 그 종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자신들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류에게 계시를 내리는 장면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신화를 읽은 김현수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창조주는 외부 세계의 평범한 이였다. 그는 스스로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우주를 창조했고 신들을 출산했다.>
<창조주는 백지 위에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백지 위에 이루어진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 순간, 김현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리한 시공이 무너지는 것을.
그 모든 시공이 무너지고, 오로지 자신과 모니터상의 백지만이 남은 것을.
김현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곤 빠르게 모니터상의 백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삽입했다.
<창조주는, 비록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혀, 비루한 피조물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세계에 절대적인 영향권을 행사하며, 그 세계에 속한 그 무엇도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적은 순간, 김현수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자신이 말을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그대로 될 수 있다는 확신감을.
김현수는 다시 한번 더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곤 가만히 눈을 감고 느꼈다.
실존하는 것.
유일하게 실존하는 자신의 자아와 관념을.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시절도, 자신의 방도, 그 무엇도 실존하지 않음을, 실존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식뿐임을 느낀 순간, 그는 입을 열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그 순간, 그는 들을 수 있었다.
[안 돼!]
울지콰야의 비명을.
그리고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그가, 자신의 의식에서도 그리고 자신이 만들고 현재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영원히 살 세계에서도 완벽하게 소멸됐음을.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