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울지콰야 (3)
“이리 온, 아가야.”
울지콰야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두루마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두루마리는 재롱을 부리는 강아지 마냥 울지콰야의 손등을 쓱쓱 문질렀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아딘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루마리와 울지콰야를 바라봤다.
울지콰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간 이 아이가 자네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한 거로 아는데, 뭐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나?”
울지콰야의 말에 아딘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어째서 이런 물건이 하필 자네가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빙의했을 때 자네의 손아귀에 들어갔는지 의아했던 적이 없었나?”
울지콰야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 물건이 있었기 때문에, 자네가 이 자리까지 왔는데, 어째서 자네는 이 물건의 존재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은 거지?”
“그건…….”
“고민이 깊지 않은 것은 이 물건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야. 자네는 묵시록 종단에 대해서도 더 깊게 파고들 생각을 하지 않았지.”
“…….”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자네와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 이 대화에 쓰이는 언어에 대해서도 깊게 고찰하지 않고 있지.”
그 말에 아딘은 그제야 자신과 울지콰야가 자연스레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어떻게…….”
아딘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울지콰야는 낄낄 웃었다.
아딘은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칼끝으로 울지콰야를 겨누었다.
“도대체 넌 누구지? 난 너 같은 걸 만든 적이 없는데?”
그 말에 울지콰야가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난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자라고.”
“궤변은 그만두고, 제대로 된 진실을 말해 보지?”
그 순간, 아딘의 몸을 불칸의 갑옷이 덮었다.
그리고 아딘의 전신에서 황금빛이 사납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울지콰야는 계속해서 웃었다.
“누구냐 넌.”
아딘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물음에 울지콰야는 대답했다.
“네 글에 들어와 생명을 부지한 존재라고나 할까?”
그리고 울지콰야는 손뼉을 쳤다.
그 순간, 아딘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마치 물 위에 뜬 것처럼, 온몸의 힘이 쭉 빠진 채로 아딘은 축 늘어졌다.
“편안하게 감상하길 바란다.”
울지콰야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대로 아딘은 사방이 암전되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도대체…….’
그리고 잠시 후, 아딘은 거대한 환상 속에서 그가 보고자 하던 것을 보게 됐다.
* * *
울지콰야의 근원에 대해서, 아딘은 볼 수 없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 존재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는 모두 가려졌다.
그러나 그가 김현수의 나이 28세 무렵에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왔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내 생존을 위해, 그리고 영생을 위해 새로운 세상이 필요했다. 때마침 네가 오랫동안 써두었던 소설이 보였고, 난 그 소설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었지.”
하지만 그 작업 중에 울지콰야는 중대한 하자를 발견했다.
그것은 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은 소설 속 세계가, 창작자인 김현수가 죽으면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불어넣은 덕분에 난 이 세계에 묶이게 됐지. 그래서 난 너의 영혼을 이곳으로 부를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어느 날, 김현수가 자살을 시도했다.
“내가…… 자살을?”
자신이 살던 빌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김현수의 모습을 보며, 아딘은 당황했다.
“내가 왜? 왜 자살을……”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던 만큼, 아딘이 느끼는 당혹감의 크기는 엄청났다.
“금수저와의 싸움에서 넌 일시적으로 이겼지만, 결국에는 패배한 거지. 네 아버지는 네가 싸우는 와중에 돌아가셨고, 네 어머니는 금수저가 감옥에 들어간 이후 그 아비의 괴롭힘을 받으며 직장에서 쫓겨나고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으니까.”
결국 모친마저 홧병으로 죽고, 금수저마저도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김현수는 삶의 희망을 모두 잃게 됐다.
“다행히도 넌 죽진 않았어. 단지 의식불명 상태가 됐을 뿐이었지.”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원에 도착한 김현수.
육신에서 간신히 붙어 있던 그의 영혼을 울지콰야는 소설 속으로 빙의시켰다.
“근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어. 창작자인 네가 이 세상에 개입하게 되면서, 모든 시간선이 비틀리게 됐지.”
그때, 비틀린 시간선 속에서 김현수가 짜놓은 모든 스토리를 천상의 신들 가운데 하나였던 아이드와 그를 따르는 정령 엘드랄이 보게 됐다.
“아이드와 엘드랄은 샤펠 제국의 황제와 환관의 몸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그 상태로 몸에서 몸으로 전이해가며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했고 말이야.”
샤펠 제국 황제가 된 아이드는 엘드랄을 수하로 부리며 역사에 개입했다.
하이로드 가문이 멸망했고, 화산 열도는 끝끝내 통일 국가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널 이 세상에 끌어들이느라 힘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아이드의 행동을 막지 못했지.”
이후 아이드는 샤를 11세로 전이하여 아딘이 지닌 신물들을 노렸다.
“신물을 모두 손에 쥐면, 아이드는 비로소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될 터였지.”
하지만 결국 아이드는 신물을 손에 넣지 못했다.
도리어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신물에 의해 그 존재마저도 소멸되는 최악의 저주를 받게 됐다.
“그리고 오늘, 난 드디어 원래의 힘을 회복했지.”
다시 환상이 사라지고, 아딘은 신물로 무장한 상태에서 신전 내부에서 울지콰야와 대면했다.
“그래서…… 너도 신물을 노리고 있는 건가?”
아딘은 울지콰야에게 물었다.
울지콰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했잖아. 난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자라고. 인간도, 오크도, 엘프도, 드워프도 그리고 각종 짐승과 괴수도, 심지어 천상의 신들도. 모두 나로부터 생명을 얻은 것들이야. 구태여 내가 그런 것들이 만든 물건을 노릴 이유가 있을까?”
“그러면…… 왜 날 이곳으로 불렀지?”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지.”
“진실?”
울지콰야는 천천히 제단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김현수의 신상이 근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울지콰야는 그 발치에 앉아 아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이 세상에 오게 되면서, 그리고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지게 되면서, 넌 이 세상의 창조자이자 한 부분으로 남게 됐다. 덕분에 이제 김현수의 본체가 죽더라도, 이 세상은 유지가 될 수 있게 됐지. 마지막 조건 하나만 달성한다면, 이제 이 세상은 영원히 김현수의 세계와 분리된 독립적 시공간으로 남게 될 거야.”
아딘은 검을 아래로 향하게 내렸다.
그리곤 가만히 울지콰야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지막 조건이란 게…… 뭐지?”
울지콰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간단해. 네가 이 세상에 너의 씨를 남기고 네 수명을 다하는 거야. 그러면 모든 조건이 충족되지.”
아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울지콰야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아딘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함참을 웃던 아딘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지콰야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정체도 모르고 뭘 원하는지도 모를, 이상한 뱀 인간을 부려서 숲의 생명체를 마구잡이로 죽이고 하는 네놈의 생존을 위해 날 이 세계로 끌고 왔다? 그리고 내가 이 세계에서 천수를 누려야 한다?”
“뭐, 냉소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웃기고 있네.”
아딘은 다시 검을 세워 울지콰야를 겨누었다.
“내가 왜, 너를 위해 그래야 하지?”
울지콰야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아딘에게 대답했다.
“그야, 내가 자살을 택한 너를 이곳으로 불러 계속 살게 해 줬으니까.”
“그게 날 위한 거였나?”
“결과적으로 널 위한 게 됐지. 과연 네가, 김현수로 계속 살았으면, 이만한 힘과 권력 그리고 사랑을 누릴 수 있었을 것 같아?”
“난 결과도 중요하게 보지만, 동기도 중요하게 보는데 말이야.”
검을 쥔 아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불멸의 검에서 황금빛 검기가 탐욕스러운 뱀의 혀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찔러! 저것의 심장을 찔러!]
불멸의 검이 아딘에게 애원했다.
그 순간, 울지콰야의 표정이 굳었다.
“너…… 아니지?”
당혹스러워하는 울지콰야를 향해 아딘이 말했다.
“넌 너무 많은 걸 나에게 알려줬어.”
아딘이 전투태세를 갖추자 울지콰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울지콰야의 몸에서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그 연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뱀 형상을 띄었다.
그리고 곧 연기는 살아있는 거대한 뱀이 됐다.
그 뱀을 향해 아딘은 말했다.
“네 말을 종합하면, 이제 이 세상이 유지되는 데에 넌 필요가 없어. 불필요한 존재지. 아니, 이젠 있으면 안 되는 존재지.”
그대로 아딘은 하늘로 도약했다.
[캬아아아-!]
지상에 있던 뱀 인간들이 포효했다.
[어리석은 놈!]
울지콰야도 분노하며 아딘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아딘은 꼬리를 가볍게 피한 후 그 위에 올라탔다.
“정체불명의, 일개 소설에 불과한 활자의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실제 세계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존재를 내 세상에 계속 두면 곤란하지 않겠어?”
그대로 아딘은 울지콰야의 꼬리에서 도약해 놈의 머리로 향했다.
울지콰야는 아가리를 쫙 벌리며 아딘을 향해 독물을 뿜어냈다.
[치이이익-!]
독물은 아딘의 몸을 두른 황금빛에 닿자마자 타오르며 시커먼 증기를 사방에다 뿌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난 널 죽여도 되지만, 넌 날 죽이면 안 된다는 거야.”
그 말과 함께 아딘은 그대로 울지콰야의 얼굴을 향해 검을 그었다.
엄청난 검기가 그대로 불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며 울지콰야의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 순간, 울지콰야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몸을 뺐다.
검기는 아슬아슬하게 울지콰야의 피부 겉면을 가르고 지나갔다.
[키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울지콰야를 향해 아딘은 발부터 검까지 일직선으로 만든 후 그대로 다가갔다.
[키이이엑-!]
울지콰야는 당혹스러워하며 아딘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휙-!]
울지콰야가 아딘으로부터 몸을 비틀어 그의 공격을 피했을 때, 아딘은 그대로 울지콰야의 아가리를 향해 불멸의 검을 집어 던졌다.
아딘이 집어던지는 순간, 불멸의 검과 불칸의 갑옷 그리고 네르갈의 목걸이가 황금빛 공명을 일으켰다.
[번쩍-!]
말 그대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불멸의 검은 울지콰야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다.
[키에엑-!]
울지콰야는 당혹감을 느끼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울지콰야가 고통을 호소하자, 뱀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며 아딘은 말했다.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아무리 네가 대단하다 해도 그 존재를 이길 순 없겠지.”
그 순간, 울지콰야의 전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금으로부터 황금빛 광채와 음울한 보랏빛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