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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70화 (170/175)

170 울지콰야 (1)

광명력 997년 3월 4일.

정오를 기점으로 제국군과 연합군은 린덴바움 평원에서 대규모 백병전에 돌입했다.

제국군의 소드 마스터 기동 전술과 연합군의 신무기 및 오크 용병 선봉대 사이의 충돌은 양측의 싸움을 호각지세로 이끌었다.

하지만 제국군의 수장 황제 샤를 11세와 연합군의 두 수장 아딘과 로제의 싸움에서 샤를 11세가 죽음으로서 승기는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후퇴! 후퇴해!”

제국군은 후퇴하기 급급했다.

일선 지휘관들이 어떻게든 질서 있게 퇴각을 유도하려 했지만, 황제의 죽음으로 이미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군대를 통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추적해! 추적해서 모두 사로잡아!”

연합군은 추격전을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기병이 우회하여 제국군의 전면을 막아섰고, 측면에서는 로제의 화력 지원을 받는 보병이, 후미에서는 아딘과 함께 움직이는 오크 용병이 제국군을 포위했다.

순식간에 제국군은 와해돼 갔고, 실시간으로 제국군 장성들은 병력이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끄아악-! 항복-! 항복!”

결국 여기저기서 제국군 병사들은 연합군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복한 인간들 가운데 일부를 오크 용병들이 몰래 챙겨갔다.

“전군 항복! 항복하라!”

군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던 장성들은 결국 한목소리로 항복할 것을 결정했다.

황제가 죽고 사방에서 오크와 인간 그리고 황금빛 검기와 화려한 마법을 뿜어대는 연합군 군주들이 덮쳐오는 상황에서 사실 항복만이 답이긴 했다.

“제국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한데 모아라.”

항복한 제국군을 보며 아딘은 공격 중단과 함께 제국군을 포로로 사로잡아 정렬시키란 명령을 내렸다.

연합군의 병사들은 인간과 오크 할 것 없이 그 명령을 준행했다.

“기억해라. 최대한 인간들을 빼돌려야 한다.”

그와중에 오크 용병대장 자격으로 참전한 카르갈의 차남은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제국군 포로를 빼돌렸다.

그 과정에서 어설프게나마 샤펠어를 할 줄 알던 인간 기술자가 나름 큰 도움이 됐다.

“원래 직업이 뭐였소?”

“어릴 때 아버지 밑에서 대장간 일을 돕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원래 뭐 하던 사람이었소?”

“징집되기 전까지 광산에서 일했습니다.”

덕분에 오크 용병들은 대장간과 광산에서의 노동 경험이 있는 포로들을 선별할 수 있었고, 최대한 아딘과 로제의 눈을 피해 그들을 빼돌릴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아딘의 눈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저것들 뭐 하는 거지?’

눈에 너무나도 잘 띄는 녹색종 오크가 인간을 선별해 따로 빼돌리는 모습은 공중에서 너무나도 잘 보였다.

하지만 아딘은 거기에 대해 터치하거나 하지 않았다.

‘인간 기술자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았으니, 당연히 이 기회에 기술자를 많이 가져가고 싶겠지.’

오크 용병이 생각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됐던 만큼, 아딘은 그들이 하는 행동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사실, 그들의 행위를 일일이 통제하기에는 아딘이 할 일이 너무 많았다.

* * *

3월 4일 린덴바움 평원 전투는 3월 5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정리가 끝났다.

결과는 연합군의 완승이었다.

제국군은 전체 50만 병력 가운데 절반 이상인 30만이 죽거나 회복 불가능한 중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20만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거나, 설령 신체가 멀쩡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반쯤 공황에 빠져 전투 불능 상태가 됐다.

연합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긴 했다.

40만 병력 가운데 인간 병력 10만이 모두 죽었고, 10만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오크 용병의 경우 전체 10만 가운데 5천이 죽고 3천이 약간의 골절상 및 자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제국군이나 연합군이나 손실이 서로 적지 않게 일어난 전투였다.

그러나 제국군은 황제를 잃었고, 연합군은 두 군주가 모두 무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합군은 여전히 쌩쌩한 오크 용병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아퐁까지 갈 것이다.”

3월 5일 이른 아침.

포로에 대한 처분을 두고 막사에서 로제와 함께 앉아 수정 구슬로 안톤과 대화하던 아딘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퐁으로 가서 공식적으로 저들의 항복 서한을 받아낼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막대한 배상금도 달려 있겠지.”

거기에 대해 안톤은 약간 우려했다.

아무리 승리했다 하더라도, 제국의 본진까지 가는 것은 자칫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아딘은 딱 잘라 말했다.

“지금 제국 본토에는 우리 군을 가로막을 자들이 없다.”

그렇게 아딘은 아퐁으로의 진격을 알린 후, 사신을 제니스 공화국으로 보냈다.

* * *

3월 7일 정오.

제니스 공화국 수도 아라곤 집정관 관저.

집정관 헨리 피셔는 어두운 표정으로 연합군 사신이 보내온 서신을 읽고 있었다.

“시한이 촉박합니다. 대왕님들께서는 10일에 국경을 건너시길 희망하고 계십니다.”

사신은 그 자리에서 헨리 피셔를 압박했다.

‘젠장…….’

헨리 피셔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국군이 공화국을 통과하게 했는데도 여기저기서 불만이 높아졌어. 그런데 이번에는 뭐? 게마인샤프트와 벨로디나의 군대를 통과시켜?’

벨로디나 해방 전쟁 이후, 3대 상단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됐다.

루비오 상단은 더 이상 정치권을 금권으로 쥐락펴락할 수 없게 됐고, 콘테 상단은 상단주가 집정관의 정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화국 정부에 예속됐다.

그리고 다른 두 상단이 그렇게 되자 드라기 상단은 자연스레 예전만 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반면 집정관의 힘은 막강해졌다.

시민들도 집정관에 대해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제국군이, 비록 평화롭게 지나갔다곤 하지만, 공화국을 가로질러 게마인샤프트로 쳐들어감에 따라 제니스 공화국 시민 사이에선 민족주의적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젠장……’

그 상황에서 연합군마저 통과시킨다면, 그 불만은 집정관 자신을 향한 퇴임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거머리들이 더 날 물어뜯으려 하겠지.’

집정관의 권한이 강해짐에 따라, 원로원 내에서 차기 집정관 자리를 노리는 인간들이 늘어났다.

아마 그들이 이 일을 구실로 헨리 피셔의 사퇴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합군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국군 50만을 무찔렀어. 저것들을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장담컨대 불가능할 것이라 헨리 피셔는 생각했다.

“알겠소. 통과하도록 허락하겠소.”

결국 헨리 피셔는 사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 * *

3월 10일 오전.

인간 12만, 오크 8만으로 구성된 연합군 병력 20만이 제국군 고위 장성을 포로로 삼은 채 국경을 건너 제니스 공화국 영내로 진입했다.

선두에선 아딘과 로제가 각각 백마를 탄 채 군을 이끌고 있었다.

제국 최동단 도시 프런티어파인더는 또다시 외국군이 머무는 곳이 됐다.

연합군은, 제국군이 그러했듯 민간인을 약탈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프런티어파인더 시민들은 제국군이 주둔했을 때보다 더한 두려움을 연합군으로부터 느껴야 했다.

“저, 저 괴물들은 뭐래?”

“쉿! 듣겠어!”

“렝고스에 산다는 오크라는 것들 같은데?”

“오크?”

“건장한 장정을 맨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다던데?”

“저런 것들이 연합군을 따르고 있다고?”

“세상에…….”

녹색종 오크가 가져다주는 위압감에 프런티어파인더 시민들은 압도당했다.

그것은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3월 21일, 연합군이 아라곤에 입성했을 때, 아라곤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프런티어파인더 시민들 이상이었다.

“세상이 망했구나. 세상이 망했어!”

“오오…… 신들이시여…….”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화국을 수립한 이후, 단 한 차례의 침략도 허용하지 않았던 아라곤에, 비록 지나가는 길이라곤 하지만 외국군이 들어선 것도 불만이었는데 아예 종이 다른 것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것은 3월 29일 정오에 연합군이 국경을 건너 샤펠 제국 동부에 진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많이 발전했다, 그치?”

동부에 만들어진, 아퐁까지 이어지는 큰길을 지나며, 길가에 선 농민들의 불안 가득한 시선을 받는 상태에서 아딘은 로제에게 말했다.

“언제쯤 오라버니랑 다시 여행다운 여행을 갈 수 있을까요?”

“뭐,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두 사람은 과거 여행하던 시절을 추억하며 기분 좋게 길을 지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웃음이 짙어질수록, 샤펠 제국 신민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 * *

샤를 11세는 벨로디나 정벌을 위해 상비군 가운데 고작 1만 명만을 본토에 남겨두고, 징집병까지 끌어모아 50만을 동원했다.

덕분에 아딘과 로제가 샤펠 제국 영토로 들어섰을 때, 그들의 앞을 막을 만한 병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왕후를 자처한 년과 그년이 낳은 더러운 핏줄은 우리가 처리했으니, 우선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광명력 997년 4월 14일.

마침내 아딘과 로제가 연합군을 이끌고 아퐁 근교에 도착했을 때, 미리 두 사람을 마중 나와 있던 제국의 대신들은 메로네바 왕후와 그녀가 낳은 아들의 목을 대령하며 아딘의 분노가 가라앉길 빌었다.

아딘은 그런 두 사람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고, 화장하여 뼛가루를 바다에 뿌릴 것을 주문한 후 대신들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아퐁으로 들어섰다.

아퐁으로 들어서자마자 연합군 가운데 인간 7만, 오크 3만이 아퐁의 출입문을 모두 장악했다.

그리고 황궁으로 들어서자 나머지 10만이 황실 근위대의 무장을 해제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대들의 대표자를 불러오라. 우리는 이곳에 점령군 행세를 하러 온 것이 아닌, 그대들과의 평화 협정을 맺기 위해 왔다.”

아딘은 대신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대신들은 한 여인과 갓난아기 하나를 아딘과 로제 앞에 대령했다.

“샤펠 제국의 황후 마리안느 클라우디에 드 퐁피두가 황태자 클로드 드 퐁피두를 대신해 황실을 대표하게 됐습니다.”

황후는 예의를 갖추어 품격 있는 모습으로 아딘에게 인사했다.

‘샤펠 제국도 곧 무너지겠군.’

품위가 있지만, 눈빛에 야망도 함께 있는 황후와 죽은 황제 샤를 11세가 남긴 유일한 갓난아이 황태자.

그리고 샤를 11세의 형제들과 사촌들.

그들이 일으킬 피의 난동을 예상하며 아딘은 황후와 주요 대신들을 앉혀두고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통보했다.

“현금으로 6천억 골드를 전쟁 배상금으로 내놓으시오. 그리고 상비군 규모를 10만으로 제한하겠다는 협정서도 작성하시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제국 입장에선 달리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 * *

엘프숲 동쪽 끄트머리.

한때 드워프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던 요새.

그곳 중심부에 뱀 인간 100마리가 모여 있었다.

[스으윽-!]

[스으윽-!]

뱀 인간들은 혀를 날름거리며 서로 소통하더니 이내 요새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뱀 신상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경배를 올렸다.

[스으윽-!]

[스으윽-!]

뱀 인간들의 소리 없는 찬양이 울려 퍼지며 묘한 공명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공명에 뱀 신상이 호응했다.

[우우웅-!]

진동이 한 차례 요새 전체에 퍼졌다.

그리고 진동이 가라앉았을 때, 요새는 버려진 신전으로 변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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