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게마인샤프트의 여왕 (1)
광명력 995년 3월 28일.
카반드 왕조 흑기부대 제3만인대장은 자기 휘하 공성병 전멸과 지휘관급 인사 대다수의 사망이라는 치욕스러운 결과물을 들고서 요제프에게 갔다.
“이 머저리 같은 자식이, 마법사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해서 지휘관급까지 다 날려!”
요제프는 분노했고, 그의 분노는 곧장 제3만인대장의 사형으로 이어졌다.
그는 제3만인대 생존자를 자신의 친위대에 모두 배치시킨 후, 하루가 지난 3월 29일 정오에 직접 전군을 이끌고 뢰벡으로 향했다.
“동문 한 지점만 돌파해! 거기만 돌파해도 충분해!”
전날 세차게 내리던 비는 새벽녘에 그쳤고, 아침에 떠오르는 햇빛이 땅을 말린 덕분에 어제처럼 번개 마법에 단체로 죽거나 할 일은 없었다.
그랬기에 요제프와 일선 지휘관들은 병력을 최대한 뭉친 상태로 성의 동문을 송곳처럼 돌파하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친위대가 앞장서서 성문을 뚫어! 너희들이 성문에 붙어서 불이라도 붙이면, 알아서 열릴 거 아니야!”
요제프의 작전은 간단했다.
친위대가 선봉에 서서 동문에 불을 붙이는 것.
문제는 이것이, 필연적으로 인명 손상을 전제로 하는 작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제프는 그리고 그의 지휘관들은 그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서 너희의 명예를 회복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요제프가 선봉에 세운 친위대는, 제3만인대의 생존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돌프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나까지 흔들리면 슈타이너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오. 안 되지. 그 꼴은 내가 볼 수 없지.’
라인하르트가 자신을 따르는 의형제들에게 5만의 병력을 나눠주고 왕국의 서부와 남부 그리고 동부를 지키게 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열악한 유목민의 행정력이었고, 둘째는 권력의 적절한 안배와 상호 견제였다.
그리고 현재 남부를 지키던 아돌프의 권위가 상당히 실추된 이때, 서부를 지키는 자신의 권위마저 떨어진다면 결국 슈타이너에게 부족의 유력자들이 몰리게 될 것이란 게 요제프의 생각이었다.
‘마법사가 있다지만, 그게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근 5만에 가까운 기병이 한 번에 덤벼들면 뭐 어쩔 건데?’
1만 정도까지는 죽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요제프는 제3만인대 패잔병들을 앞세워 성으로 보냈다.
[둥-! 둥-! 둥-!]
[뿌우-! 뿌우-! 뿌우-!]
패잔병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짚단과 조그만 기름 주머니 그리고 횃불을 든 채 말을 타고 동문으로 달려오기 시작하자, 뢰벡 민병대는 곧장 북과 피리를 통해 병력을 집결시켰다.
“문에다 불을 붙이려고 한다! 다들 문에다 물을 뿌려 놔!”
“화살 준비해!”
“뜨거운 물하고 돌도 준비해!”
기병이 달려오는 동안, 준비는 끝났다.
민병대는 바짝 긴장한 채 기병이 화살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사정권 안에 들어왔을 때, 궁수들은 시위를 놓았다.
[휘휘휙-!]
수백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그대로 기병들을 때렸다.
[푹-! 푹-!]
변변한 방어구도 없이 그저 횃불과 짚단 그리고 기름 주머니만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기병들은 그대로 화살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진 자들보다 여전히 많은 숫자의 기병들이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휘휘휙-!]
다시 두 번째 화살 세례가 기병들을 향했다.
이번에도 상당수가 죽었지만, 이미 성문과의 거리는 굉장히 좁혀진 뒤였다.
성문 앞에 도착한 기병들은 곧장 말에서 내린 후 짚단과 기름 주머니를 챙겨 들고 성문으로 달려갔다.
“투석!”
그들을 향해 민병대는 돌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뻐억-!]
제법 큰 돌덩어리였기에, 성문으로 접근하던 이들 중 상당수가 또 죽거나 다쳤다.
“뜨거운 물을 뿌려!”
돌에 그치지 않고, 민병대는 뜨거운 물을 성벽 아래로 쏟아부었다.
그렇게 민병대는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숫자로 밀고 오는 이들 앞에서 결국 그 저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화르륵-!]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 기병들은 마침내 성문 앞에 짚단을 쌓고 그 위에다가 기름 주머니와 횃불을 집어 던졌다.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한 이들은 곧장 뒤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대기 중이던 말 중 상당수가 화살에 맞아 죽었기에, 말에 올라탄 이들은 소수였다.
대다수는 어떻게든 도보를 이용해 빠르게 도망치려 노력했다.
“화살!”
[휘휘휙-!]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그들의 등을 노리고 날아든 화살에 막혔다.
그렇게 요제프가 보낸, 사실상의 자살 특공대는 절반 정도만 생존한 채 본진으로 되돌아왔다.
“됐어!”
본진에서 성문에 불이 붙고 거기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요제프는 탄성을 내질렀다.
“전군, 돌격 준비!”
요제프의 명령에 흑기부대는 돌격 태세를 갖췄다.
“송곳처럼 찔러! 성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전투 준비를 끝마친 흑기부대 기병들은, 민병대가 나와 불길을 잡는 것을 보고는 곧장 돌격하기 시작했다.
자살 특공대와는 달리 방패부터 투구, 갑옷 등 적절한 방어구를 모두 갖추었고, 후미에서 궁기병이 성벽 위의 민병대를 요격할 만반의 준비를 끝마치고 있던 만큼 돌격대는 자신 있게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이, 성벽을 불과 1km 앞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쿠구구구구-!]
별안간 땅이 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 지진?”
뒤에서 돌격대를 따라가던 요제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고삐를 꽉 잡았다.
[히히히힝-!]
갑작스러운 지진은 사람뿐 아니라 말들도 놀라게 했다.
“워워워-!”
모두가 숙련된 기마인이었던 만큼, 기병들은 돌격을 멈추고 말들을 진정시켰다.
‘설마…… 이것도 마법이라고?’
그제야 요제프는 뭔가 일이 잘못 굴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콰콰콰콰-!]
갑작스럽게 땅에서 검은 역청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여기에 왜 역청이 있어?”
“역청은 북쪽에나 있는 거잖아!”
북부 출신 기병들은 갑작스러운 역청의 역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굳으면 큰일이야!”
“어서 발을 빼! 말들의 발을 빼!”
약 1만 5천의 돌격대가 역청이 만들어낸 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뢰벡 성벽에서 로제가 찬란한 빛을 후광으로 한 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으허억-! 마법사다!”
어제 로제의 공격을 마주했던 제3만인대 출신 패잔병들은 그대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궁기병! 궁기병! 요격해! 마법사를 요격하라고!”
요제프가 악다구니를 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돌격대와 함께 역청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궁기병이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그 상황을 허공에서 지켜보던 로제는 이내 역청이 사람의 발목 깊이까지 차오른 대지를 향해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로제의 손 앞에 거대한 푸른 화염이 구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의 지름을 자신의 키 정도까지 키운 로제는 그대로 그것을 역청 뻘밭에 날렸다.
[휘유우우웅-!]
[콰아앙-!]
불덩어리는 그대로 역청 뻘밭에서 폭발했다.
거대한 푸른 불꽃의 폭발은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기병들을 휩쓸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이 역청에 붙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화르륵-!]
순식간에 1만 5천을 가둔 역청 뻘밭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흐아아악-!”
[희히히힝-!]
사람과 말의 비명이 어우러진, 지옥과도 같은 풍경을 연출한 로제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불바다 뒤편에 자리 잡은 나머지 3만 병사들을 바라봤다.
“이이…… 이 마녀가!”
요제프는 그런 로제를 바라보며 화살을 먹이고 활시위를 당긴 채 그녀를 겨낭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로제의 눈에 그대로 포착됐다.
‘갑옷의 상태라든가, 말의 크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등에 달고 있는 2개의 검은 깃발…… 저 사람이 최고 지휘관이겠구나.’
로제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요제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피슈웅-!]
로제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요제프는 그대로 활시위를 놓았다.
그의 화살은 빠르게 로제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지난날, 모든 궁기병의 화살이 그러했듯, 그 화살 또한 로제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가볍게 화살을 실드로 잡아 부순 로제는 그대로 요제프를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가리켰다.
‘어?’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요제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했을 때쯤, 로제의 손가락으로부터 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푸른 불꽃이 만들어졌다.
“후, 후…….”
그리고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한 요제프가 후퇴를 명령하려 할 때, 그의 혀가 굴러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로제의 푸른 불꽃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퍼엉-!]
붗꽃은 그대로 그의 상반신을 때리며 폭발했다.
요제프는 말과 함께 그대로 폭발에 휘말려 증발했다.
“대, 대장군님이 돌아가셨다!”
“흐아아아아-!”
요제프가 사망하자 흑기부대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됐다.
이미 불바다에서 녹아내린 1만 5천의 돌격대와 궁기병으로 인해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던 사기는 대장군의 죽음으로 완벽하게 바닥을 찍었다.
그대로 그들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약 3만의 생존자들이 무질서하게 도망치자, 여기저기서 충돌이 발생했다.
로제는 그런 그들에게 간단한 화염 마법 몇 개를 던짐으로써 혼란을 극대화했다.
대략 2km를 후퇴하는 과정에서 8천이 압사하거나 낙마하며 크게 다쳤다.
그리고 2km를 마저 후퇴하는 과정에서, 계속된 로제의 마법 공격에 여전히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기병들은 추가로 1만의 병력을 더 상실했다.
그리고 그들이 1km를 추가로 더 도망쳤을 때, 그들은 반대편에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한 무리의 기병을 볼 수 있었다.
“워, 원군인가?”
그들은 내심 원군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달려온 것은 약 2천 명 규모의 민병대 기병이었다.
그리고 그 2천의 민병대는,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흑기부대 생존자의 무장해제를 시도했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지만, 저항하는 자는 죽인다!”
여전히 흑기부대는 1만 2천이 생존해 있었고, 그들의 무장 상태는 양호했다.
하지만 배후에서 마법을 뿌리는 로제의 존재와 전우 1만 5천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불바다에서 녹아내리고 대장군 요제프가 허무하게 죽어 버린 것에서 비롯된 사기 저하는, 그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 항복할게!”
“사, 살려줘!”
그렇게 뢰벡 민병대는 1만 2천의 흑기부대 생존자를 무장해제시키는 데 성공했다.
곧 성에서 1만 명의 보병이 나와 무장해제를 돕기 시작했다.
“성녀님 만세!”
그리고 모든 무장해제가 끝나고, 1만 2천의 유목민 기병이 포승줄에 굴비처럼 묶였을 때, 민병대는 그때까지 허공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로제에게 환호를 보냈다.
로제는, 심장이 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들에게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