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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62화 (162/175)

162 해방자에서 군주로 (2)

광명력 995년 3월 25일.

뢰벡에 성녀가 재림했다.

성녀는 굉장한 마법적 능력으로 뢰벡 시민을 억압하던 카반드 왕조 기병들을 불태웠고, 그녀는 시민들에게 천상의 계시를 전해주었다.

3월 26일 새벽, 슈타인하르츠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알프레드 폰 슈타인하르츠를 중심으로 뢰벡 시민 저항군이 결성됐고, 순식간에 무장을 끝마친 그들은 적절한 장소에 배치돼 적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3월 28일 정오.

뢰벡 시민들은 5만에 육박하는 흑기부대와 대면하게 됐다.

* * *

“이봐, 제3만인대장.”

흑기 대장군 요제프의 부름에 제3만인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뢰벡이 자네 부대장과 그 정예병을 죽일 만한 힘을 가지고 있나?”

그 물음에 제3만인대장은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 채 그저 우물쭈물거리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요제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분명 말했지. 대왕님께서 우리에게 하사하신 도시를 약탈할 생각만 하지 말고, 그들이 정확히 어떠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파악하라고 말이야.”

그 말에 제3만인대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아니지, 이 사람아. 자네 밑에 있는 것들이 현황 파악은 안 하고 그저 약탈에 살육만 일삼아서 일어난 참사가 아닌가?”

제3만인대장은 땅을 파고 숨고 싶을 만큼의 수치를 느꼈다.

그런 그에게 요제프는 명했다.

“그러므로 나는 제3만인대가 이번 뢰벡 반란 진압의 선봉에 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지?”

그 물음에 제3만인대장을 포함해 총 다섯 만인대장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만장일치로, 제3만인대가 선봉에 서서 대왕님의 은덕을 거부하는 자들을 씻어내는 과업을 이룰 명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됐다. 가서 너희들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해라.”

그 말에 제3만인대장은 우렁차게 외쳤다.

“알겠습니다!”

곧 그가 밖으로 나갔고, 뒤이어 다른 만인대장들도 요제프의 장막을 떠났다.

홀로 남은 요제프는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머저리 같은 것들.”

요제프는 그러면서 인상을 썼다.

‘여기서 내가 진압하지 못하면, 아돌프처럼 바보가 되는 거야. 형님이 직접 군을 이끌고 뢰벡까지 오시게 할 수는 없지.’

라인데른의 반란을 아돌프의 적기부대는 제대로 진압하지 못했다.

그 결과 라인하르트가 직접 친위대를 이끌고 라인데른으로 향했고, 그가 참전하고 나서야 라인데른의 반란군은 모조리 불탈 수 있었다.

‘제3만인대 부대장을 죽였다곤 하지만, 애초에 그 인간이 대규모로 간 건 아니겠지. 들어보니 어디 마법사 하나가 숨어 있다 나온 것 같은데, 아무리 마법사가 대단해도 우리가 쏘는 화살을 다 막을 순 없겠지.’

요제프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젖술을 쭉 들이켰다.

* * *

“적들입니다.”

뢰벡 성벽 동문 망루에서 병사가 외쳤다.

“규모는 대략…… 1만 정도입니다! 배후의 기병들도 모두 출정 준비를 마쳤습니다!”

거듭되는 병사의 말에 성벽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다른 병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러는 사이 흑기부대 제3만인대 기병들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두에 선 것은 기병이 아닌, 일반 기수와 공성무기를 멘 짐말이었다.

[히히히힝-!]

성벽을 300m 앞둔 지점에서 짐말들은 멈췄다.

곧 공성무기에 올라타 있던 공성병들이 공성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발사!”

그것을 지켜보던 동문 수비대장이 외쳤다.

외침과 동시에 수백 발의 화살이 공성병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푹-! 푹-!]

그 가운데 일부는 짐말과 기수, 그리고 일부 공성병을 꿰뚫었다.

[탁-! 탁-!]

그러나 대부분은 공성병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방패병들의 거대한 방패에 막혔다.

그렇게 방패병들이 화살을 막는 사이, 공성병들은 공성병기를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발사!”

[터엉-!]

공수가 뒤바뀌어, 공성병기가 크고 작은 돌들을 성벽으로 날렸다.

[쿠웅-!]

커다란 것들은 성벽에 부딪히며 벽을 뒤흔들었다.

[퍽-!]

[뻐억-!]

작은 것들은 미처 방패를 들지 못했거나 몸을 숨기지 못한 병사들의 몸통과 머리를 때리며 그들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발사!”

공성병기가 두 번째로 돌들을 성벽으로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인명 피해는 적었지만, 성벽이 멀리서도 흔들리는 게 보일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흥! 란돌프 이 머저리 같은 인간은 별것도 없는 것들한테 당한 건가?”

그 모습을 보며 제3만인대장은 코웃음을 쳤다.

“돌격대! 다들 준비하고 있어라! 조만간 성벽이 무너지면 거기를 타고 넘어갈 거니까!”

그 명령에 3000에 이르는 돌격대가 준비를 끝마쳤다.

오로지 기동성 하나에만 모든 것을 투자한 돌격대의 역할은 성벽이 무너질 시 그곳을 타고 넘어가 성문을 열고 성 내부를 1차로 휘젓는 것이었다.

“버틸 수 없습니다!”

한편, 성벽 위에선 민병대의 버틸 수 없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팔을 불어!”

동문 수비대장의 명령에 병사 다섯이 준비한 나팔을 불었다.

나팔 소리는 동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임시 지휘부에 전달됐다.

“성녀님.”

지휘소에서 대기 중이던 알프레드가 곁에 앉은 로제를 불렀다.

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휘소 밖으로 나갔다.

[뿌우-! 뿌우-! 뿌우-!]

미친 듯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로제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가만히 그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합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오-!”

그 빛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로제는 점차 빛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적절한 높이에서 공중부양을 멈춘 후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성녀님이시다!”

“성녀님!”

동문 근방 성벽에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민병대가 로제를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로제는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준 후 곧장 시선을 공성무기로 돌렸다.

“저건 뭐야?”

공성병들 사이에서 의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로제의 손이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화르륵-!]

로제의 손이 공성병기를 가리킨 순간, 로제와 300m가량 거리를 둔 채 배치돼 있던 공성병기에 불이 붙었다.

“부, 불이야!”

“마법사다!”

그 한 번의 발화 공격에 순식간에 공성병의 사기는 뚝 떨어졌다.

엄청난 기세의 사나운 불길이 순식간에 공성병기와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공성병 그리고 방패병을 덮쳤다.

“후퇴! 후퇴!”

공성 지휘관의 명령에 공성병은 모두 짐말에 올라타 기수의 허리를 감싼 채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후퇴하는 속도보다도 로제의 손가락이 그들을 향하는 게 더 빨랐다.

[화르륵-!]

“끄아아악-!”

순식간에 말과 사람이 불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성벽 위 민병대는 사기가 충만해 함성을 내질렀다.

“저자다! 저자가 마법사구나!”

그리고 제3만인대장은 눈앞에 나타난, 부하를 통해 보고를 들은 마법사의 등장에 이를 갈았다.

“궁기병 준비해!”

제3만인대장의 명령에 돌격대는 뒤로 빠지고 궁기병 2000이 앞장섰다.

궁기병 지휘관은 그대로 궁기병을 몰고 천천히 전진했다.

로제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공성무기가 여전히 타오르는 곳 상공에서 멈췄다.

그것을 보며 적당히 거리를 맞춘 궁기병 지휘관은 이윽고 전진을 멈춘 후 발사를 명했다.

[휘이이익-!]

1열 200기의 궁기병이 200개의 화살을 로제에게 날렸다.

그것들은 아주 정확하게 로제의 상반신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의 상반신을 향해 근접했을 때, 로제는 손을 한 번 휘저었다.

[휘유우우웅-!]

그 순간, 강한 돌풍이 불어닥쳤다.

돌풍은 순식간에 화살들을 집어삼켜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까지 날려 보냈다.

“2열 발사!”

궁기병 지휘관은 굴하지 않고 2열에 발사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들의 화살 또한 허공에서 돌풍을 만나 어지러이 춤을 추다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그렇게 궁기병 5열까지 화살을 쏘고, 그것들이 모두 막혔을 때쯤, 별안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좋아. 딱 됐어.’

로제는 미소를 지었다.

적정 수준의 마력을 유지하며 적들을 제거할 방법을 고민하던 찰나에, 때맞춰 비가 내린 덕에 손쉬운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두둑-!]

굵은 빗방울이 곧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그대로 궁기병들과 그 후미에 자리한 제3만인대를 적셨다.

허공에서 적당히 그들이 빗물에 젖는 것을 지켜보던 로제는 이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궁기병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꽈릉-!]

그 순간, 묵직한 천둥소리와 함께 로제의 손에서 한 줄기 번개가 뿜어져 나가 그대로 궁기병대를 타격했다.

[파지지직-!]

엄청난 전류가 그대로 물에 젖은 궁기병대를 휘저었다.

산개하지 않은 채 뭉쳐 있던 궁기병들은 그대로 대부분이 번개의 사슬에 걸려 타 죽었다.

“산개! 산개해!”

그것을 지켜보던 제3만인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그의 지휘에 따라 제3만인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흩어지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급들의 면면을 확인한 로제는 그대로 빠르게 허공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꽈릉-! 꽈릉-! 꽈릉-!]

로제는 오로지 지휘관급만을 목표로 삼아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번개는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했고, 순식간에 제3만인대의 지휘관들은 불에 타 죽기 시작했다.

“다들 화살을 꺼내! 어서!”

제3만인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발악했다.

그 순간, 로제의 시선이 제3만인대장에게로 향했다.

“헉-!”

로제와 눈이 마주친 제3만인대장은 당황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번개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본 마지막 빛이었다.

[파지직-!]

만인대장마저 죽자 병사들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으아아아-!”

일선 지휘관의 부재와 최고 지휘관의 사망에 병사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성문이 열리며 말을 탄 민병대가 창을 들고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다 죽여 버려!”

“우와아아아-!”

말을 탄 민병대는 사기가 충만하게 차 오른 상태였다.

미처 혼란 중에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던 유목민 병사들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됐다.

“끄아아악-!”

그들은 창에 찔려 죽거나, 말 발굽에 밟혀 죽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는 민병대의 눈에는 살기와 함께 희열과 해방감 등의 감정이 맴돌았다.

“이겼다!”

“우와아아아-!”

성벽 위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모두 함성을 내질렀다.

“성녀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승리한다!”

“우와아아아-!”

점차 폭우로 변해가는 비 속에서 민병대의 환호가 뢰벡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환호는 퇴각하던 유목민 병사를 살육하고 되돌아온 말을 탄 민병대원들의 함성이 더해지며 더 커졌다.

그 모든 모습을, 허공에서 바라보며 숨을 고르던 로제는 자기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지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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