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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59화 (159/175)

159 돌아온 성녀 (2)

“크우우…….”

한 차례 토악질을 끝내고 알프레드는 머리를 감싼 채 눈을 떴다.

“다들 괜찮아?”

그의 물음에 부하들과 여인들은 모두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일단은 자기들이 생존해 있음을 알려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알프레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여관?”

한때 번성했지만, 지금은 영업을 중단한 채 버려진, 알프레드와 그의 비밀 결사가 아지트로 사용하는 슈타인하르츠 여관.

마구잡이로 자란 무성한 풀로 가득한 여관 뒷마당에 자신들이 있음을 확인한 알프레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 분명 평원에 있었는데……’

그가 당혹스러워할 때, 한줄기 음성이 그의 귀를 때렸다.

“갑작스러운 공간 이동이라 다들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다들 살았잖아. 안 그래?”

알프레드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마당 한켠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 로제를 볼 수 있었다.

“……성녀?”

알프레드가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람들이 한때 그렇게 불렀지.”

“…….”

알프레드는 한동안 말을 잇질 못했다.

그저 멍하니 떨리는 눈으로 로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알프레드에게 로제가 말했다.

“네가 저항 조직을 이끌고 있지?”

그녀의 물음에 알프레드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로제에게 말했다.

“먼저, 오랜만에 뵙습니다, 성녀님. 그간 많은 세월이 흘렀지요? 성녀님께서 혹시 저희를 평원에서 이곳까지 옮겨 주신 겁니까?”

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저희를 구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프레드는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어머…… 성녀님 아니야?”

정신을 차린 여인들 가운데 일부가 로제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그녀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로제로부터 가족이나 지인이 치유를 받았던 만큼, 그들은 로제를 인지하자마자 곧장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을 향한 여인들의 시선에 로제는 그녀들에 한 차례 가볍게 눈인사를 보낸 후 다시 알프레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말 돌리려고 하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하시지?”

로제의 말에 알프레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래. 우리를 해하려 했다면 그냥 거기 내버려뒀겠지. 아니면 유목민 장막으로 우리를 이동시켰거나.’

알프레드는 로제가 행한, 평원에서 슈타인하르츠 여관 뒷마당으로의 공간 이동에 담긴, 자신에 대해 우호적인 것 같은 그녀의 감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성녀님은 과연 성녀님인가 봅니다. 그런 것도 알고 계시고.”

알프레드의 시인에 로제는 미소를 지었다.

“뭐, 사실 그래서 당신을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니겠어?”

로제의 말에 알프레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로제가 말했다.

“해방 전쟁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 말이야.”

그 말에 알프레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 * *

라인하르트의 카반드 왕조가 나타난 이후, 게마인샤프트 독립 영주들은 빠르게 무너졌다.

“중부의 발터하임 가문이 무너지면서 사실상 승기는 유목민 왕조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광명력 995년 3월 22일 저녁.

슈타인하르츠 여관 본관 꼭대기에 자리한 알프레드의 거처에서 그는 로제에게 지난 날의 일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브라운실트 가문이 실각하고, 뢰벡은 한동안 광명교 사제 요하네스와 우리 가문 그리고 몇몇 유력자들이 집단으로 통치하는 체제로 굴러갔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알프레드는 가장 적극적으로 독립 영주 간의 연대를 주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호응하는 영주는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기네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한 바보들이 많았던 탓이죠.”

연대해도 이겨낼까 말까 한, 50만 유목민 기병과의 싸움에서 독립 영주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싸움에 임했다.

“소수의 부유한 영주들이 용병들을 싹쓸이했고, 덕분에 가난한 영지부터 차근차근 유목민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영주들도, 용병들의 잦은 이탈과 고용료 인상 요구 및 태업과 파업 등에 시달렸다.

“결국 유목민 왕조에 의해 모든 도시가 무너졌습니다. 그나마 뢰벡은 제니스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저들이 마지막에야 쳐들어왔지만, 시간이 딱히 우리에게 기회를 주진 않았습니다. 그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기간만 늘어났을 뿐이었죠.”

그렇게 뢰벡마저 무너졌고, 도시를 다스리던 이들은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저는 가까스로 뢰벡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뢰벡을 탈출한 알프레드는 옛 인맥 중 살아남은 것들을 총동원해 사람을 끌어모았다.

“사실상 돈도 없고, 가문의 영광도 없었기에 모여든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게 유목민 왕조에 대한 증오와 그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치만을 보고 온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곧장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니었다.

“무기도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기병을 상대할 전술이 없습니다.”

마냥 창과 방패로 방진을 치고 있기에는 유목민 왕조 기병의 궁술이 너무 막강했다.

“그래서 지금은 게릴라 수준으로 적들을 괴롭히거나, 아니면 일반 민중 사이에 섞여 민란을 선동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하는 게 없습니다.”

그마저도 게릴라 수준의 괴롭힘은 혼자 있는 유목민을 살해하는 수준이었고, 민란 선동 또한 민중의 호응이 밋밋했기에 잘 되지는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네.”

가만히 알프레드의 이야기를 듣던 로제는 그렇게 그의 활동을 평했다.

알프레드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제가 알프레드를 보며 물었다.

“왜 민중이 호응하지 않을까?”

그 물음에 알프레드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려움 때문 아니겠습니까?”

“유목민 왕조에 대한 두려움?”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시체와 폐허뿐입니다.”

유목민의 잔혹함에 대해선 익히 아딘에게 들었기에 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야기했다.

“그럼 두려움의 근원을 없애면, 민중도 저항 의지를 가질 수 있겠지?”

로제의 말에 알프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제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가 없애줄게. 네가 민중을 다시 설득해 봐.”

그 말에 알프레드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그 말에 로제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라인하르트를 만났어.”

알프레드가 눈을 부릅떴다.

“유목민의 추장 말입니까?”

“그래. 트링겐을 점령하려고 군사를 20만이나 모았더라고.”

“어, 어떻게 됐습니까?”

“물러났지. 라인하르트가.”

“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알프레드에게 로제는 말했다.

“너희한테 유목민이 두려움의 대상이듯, 라인하르트한테는 내가 두려움의 대상이거든.”

그러면서 그녀는 가만히 차를 한 모금 넘겼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알프레드는 심히 요동치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 * *

3월 23일 아침.

렝고스 서북부 메콩가강.

“허어…… 엄청 발전했네?”

상류부터 시작해 하류에 이르기까지, 강변에 들어선 상당한 규모의 오크 촌락과 촌락들 사이를 잇는, 투박하지만 그런대로 지나다닐 만해 보이는 도로를 보며 아딘은 감탄했다.

‘겨우 3년이야. 내가 카르갈에게 철제 무기를 선물로 준 게. 근데 그 사이에 이렇게 발전해?’

두루마리를 통해 확인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상공에서 직접 보니 오크의 발전상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석기시대 원시 부족 수준에서, 청동기 시대 농경민 수준으로 발전한 카르기아족 녹색종 오크의 모습에 한동안 감탄하던 아딘은 그대로 방향을 상류로 돌렸다.

상류에는 도시라고 불러도 괜찮을 수준의, 상당히 거대한 규모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서로 5km, 남북으로 6km 상당의 거대한 마을은 외곽지대에 높이 7m 상당의 목책을 세운 채 외부로부터 내부를 철저히 방어하고 있었다.

마을 중심부에는 3층짜리 목조 건물이 올라가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일종의 상업지로 보이는 구역이 형성돼 있었다.

‘오크가 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종족이었나?’

아딘은 의아함을 느끼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응?”

“뭐, 뭐야!”

황금빛 불칸의 갑옷으로 온 몸을 두른 채 아딘이 땅으로 내려오자 오크들이 그를 발견하곤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 아툼바의 사자다! 아툼바의 사자가 내려온다!”

오크들은 그렇게 외치며 제자리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닥에 엎드려 아딘을 향해 절하기 시작했다.

‘뭐지?’

아딘은 의아함을 느끼며 지면에 착지했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크들 사이를 지나쳐 3층 목조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목조 건물 대문가에 도착했을 때, 문이 활짝 열리며 카르갈과 그의 예언자가 호위병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아툼바의 사자시여!”

예언자는 그대로 아딘을 보며 엎드려 절하면서 크게 소리쳤다.

“아툼바의 사자시여!”

카르갈도 아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를 올렸다.

아딘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카르갈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가만히 그의 귓가에 대고 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날 모르겠나?”

아딘의 목소리를 들은 카르갈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잔뜩 낮춰 이야기했다.

“알고 있습니다. 일단 여기선 우리 장단을 좀 맞춰 주십시오.”

그 말뜻을 이해한 아딘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잠시 목청을 가다듬은 후 녹색종 오크어로 외쳤다.

“너희 필멸의 존재는 아툼바께로부터 메시지를 들고 온 내게 경배하라.”

그러자 여기저기서 오크들이 언어인지 의성어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시끄럽고 무질서하긴 했지만, 그것이 어떤 경배의 의미임을 알았기에 구태여 아딘은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 아툼바의 사자시여. 삼가 카르기아의 왕 카르갈의 집으로 초대하오니, 초대에 응하여 주소서.”

왕을 자칭하는 카르갈의 모습에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노라.”

그렇게 아딘은 카르갈과 예언자를 따라 3층 목조 건물, 즉 카르갈의 왕궁으로 들어갔다.

“단순히 문명만 발달한 줄 알았는데, 통치기술까지 발달했네?”

왕궁 3층에 자리한, 인간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초라했지만 오크 기준에선 상당히 화려한 어전에서 아딘은 카르갈의 안내에 따라 상석에 앉았다.

카르갈과 예언자는 그의 좌우에 앉았다.

“그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을 응용했을 뿐입니다.”

카르갈의 말에 아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내가 왕이라는 개념을 가르쳐 줬던 것 같긴 한데…… 종교적 신앙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는 방법은 안 알려준 것 같은데?”

그 말에 카르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대, 인간의 왕 아딘 콘스탄틴이 나 오크의 왕 카르갈에게 가르쳐 준 건, 인간과 잘 소통하면 많은 좋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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