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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51화 (151/175)

151 국왕 아딘 콘스탄틴 (1)

광명력 994년 7월 18일 새벽.

왕과 그 혈족 및 왕이 지명한 인사가 거주하는 겨울 궁전.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드넓은 침실에서 아딘은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그곳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는 촛불이 발하는 빛을 반사하는 황금빛 검신이 아딘의 의지에 따라 허공의 특정한 지점을 찌르거나 베어냈다.

아딘의 발은 검의 길을 인도했고, 그의 시선은 검의 목표를 정확하게 특정했다.

그렇게 한 차례 불멸의 검을 휘두르며 아침 운동을 한 아딘은 이내 그것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새벽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곧 태양이 뜸과 동시에 뜨거워질 바람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 시간 만큼은 아딘이 흘린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시원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네.’

하루 전, 아딘의 대관식이 하늘에서 내려친 두 줄기 번개와 함께 성대하게 치러진 후, 저녁 파티 직전에 국가평의회에서는 아딘에게 내각의 수립에 관한 안건을 통과시켜 바쳤다.

그리고 저녁 파티 직후, 아딘은 그 안건에 인장의 찍음으로써 공식적인 내각의 출범을 승인했다.

‘빅토르 다비도프가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어.’

혁명중앙위원회에서 만든 왕국 헌법에 따르면, 내각의 수립과 해체는 전적으로 국가평의회의 독자적인 결정에 달려있다.

형식상 왕의 인장이 필요하다곤 하지만, 사실상 왕에게는 국가평의회의 결정을 뒤집을 공식적인 권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딘의 취임과 함께 수립된 내각은 전적으로 아딘의 뜻에 따라 구성됐다.

초대 내각 수립에 국가평의회가 끼친 영향은 그저 만장일치로 내각 수립에 관한 포고령을 통과시킨 것뿐이었다.

‘뭐, 어차피 자기는 그대로 혁명중앙위원회 외무총괄위원에서 내각 외무대신으로 가는 거니까, 당분간은 잠잠하겠지.’

어차피 빅토르 다비도프는 실질적인 힘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외국어 실력이라든가, 오랜 세월 쌓아온 외교 수사적 기술 그리고 로제보단 못하지만 나름 쓸모 있는 마법적 지식은 여전히 아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어차피 내각은 총리대신이 된 르보프를 따르게 돼 있어. 정착하게 될 쿠만족도 군무대신이 된 불카르 아시오게 때문에라도 불만을 안 가질 거고, 야민 벤키시도 목축산업대신으로 임명했으니 카판족 전사들도 불만은 없겠지.’

혁명중앙위원회 총괄위원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모두 그대로 이름만 총괄위원에서 대신으로 바뀐 채 내각에 입각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몇 가지 대신직이 생겼고, 그 자리에는 혁명을 도왔지만 혁명중앙위원회에선 자리를 얻지 못했던 이들, 예컨대 야민 벤키시 같은 자들과 고위 행정관으로 혁명 정부에서 활동했던 이들 가운데 유능한 자들이 임명됐다.

‘샤를 드 퐁피두는 언젠가는 벨로디나를 침공하려 할 거야. 자기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자가 죽었으니까.’

지난밤, 아딘은 두루마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샤를 드 퐁피두가 추방한 유리 콘스탄틴의 부인, 메로네바 왕후와 그 자식을 손에 쥔 채 어떤 음모를 꿈꾸고 있는가를.

‘북방을 황제 직할령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만큼, 당장에는 침략이 어렵겠지만 제국 북방이 안정되면 언제든지 또 침략할 수 있지.’

그때까지 아딘은 최대한 벨로디나를 키워 놓아야 했다.

겨우 용병 5만 명을, 그것도 벨로디나 전역에 분산시켜 두었던 제니스 공화국과는 달리 최대 30만까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제국과의 전쟁은 아딘과 로제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나와 로제가 적의 주력을 궤멸시키고 황제의 목을 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들이 퇴각한다고 하더라도, 폐허가 된 벨로디나가 어떤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새벽 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하던 아딘은, 이내 저 멀리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발걸음을 욕실로 옮겼다.

‘지금부터 바쁘게 살아야겠지. 적어도 3년 동안은, 미친 듯이.’

그렇게 국왕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의 하루가 시작됐다.

* * *

7월 18일 정오.

마리오 드라기의 저택 서재.

3대 상단 총수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헨리 피셔가 던진, 유목민 왕조 견제를 위한 벨로디나와의 전략적 제휴와 그 외 정치 현안이었다.

“기계적으로 보자면 맞는 말이지만, 당장에 자산을 강탈당한 상인들이 가만히 있겠소?”

마리오 드라기의 말에 마르코 루비오가 답했다.

“기계적으로 봐도 틀린 말 아닙니까? 차라리 역으로 유목민놈들과 손을 잡고 벨로디나를 응징해서 우리의 정당한 자산을 되찾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3대 상단 가운데 가장 벨로디나에 많은 돈을 투자했고, 또 그만큼 가장 많은 손해를 본 루비오 상단이었기에 그 입장은 일견 당연해 보였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유목민 왕조를 이끄는 라인하르트라는 자가 게마인샤프트의 독립 영주들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가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그는 아딘 콘스탄틴과 닮았다고 볼 수 있어요.”

크리스티나 콘테의 말에 마르코 루비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입은 극심한 손해로 인해 던진 말이긴 했지만, 그들 기준에서 야만스럽기는 아딘과 다를 바 없는 라인하르트의 유목민 왕조와 손을 잡는다는 것도 다소 황망한 이야기이긴 했다.

“항복하지 않는 성읍은 모든 주민을 몰살한 후 완전히 불태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항복한 성읍이라 하더라도 그곳의 귀족과 부유한 상인은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삼고…….”

마리오 드라기의 혼잣말에 크리스티나 콘테는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일단 우리는 동쪽 국경에 대한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해요. 혹여나 유목민 왕조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려 군대를 끌고 온다면 굉장히 곤혹스러워질 거예요.”

그 말에 마리오 드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유목민 왕조의 주력은 기병이지. 빠른 기동력으로 만약 동부의 요새를 우회해 아라곤까지 직행해 온다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야.”

하지만 마르코 루비오는 거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당장에 트링겐과 뵌가르트도 건들지 못하는 것들이, 무슨 담력으로 감히 공화국을 건든단 말이오?”

크리스티나 콘테가 마르코 루비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해 주었다.

“트링겐과 뵌가르트를 다스리는 루돌프 폰 콘스탄티노프는 늙고 자식도 없는 처지지만 그 냉철함과 현명함 그리고 조직적인 능력은 여전해요. 일찌감치 트링겐과 뵌가르트에 있던 모든 용병을 고용해 정규군처럼 굴리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그녀의 말을 마리오 드라기가 이어 받았다.

“우리 상단에서 파악한 것만 해도 트링겐에만 4만의 용병이 무장한 채 대기 중이라고 하니, 유목민 입장에서도 쉽게 공격할 순 없겠지.”

그의 말을 크리스티나 콘테가 또 이어 받았다.

“거기다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트링겐은 육로를 봉쇄한다고 해서 굶어 죽는 도시가 아니에요. 거긴 애초에 해상 운송을 중심으로 먹고사는 도시니까, 유목민 왕조가 다른 도시들을 망가뜨렸을 때와 같은 전략으로 어찌 도모할 수가 없고요.”

“여차하면 트링겐을 버리고 뵌가르트로 도망가면 되고 말이지.”

마르코 루비오가 그렇게 말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마리오 드라기와 크리스티나 콘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벨로디나 놈들과의 협상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도록 합시다.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습니까?”

그 말에 마리오 드라기와 크리스티나 콘테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르코 루비오가 말을 이었다.

“피셔 집정관 말입니다. 최근에 좀 건방져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마리오 드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이제 군대를 가졌다, 이거겠지.”

그 말에 마르코 루비오가 콧방귀를 뀌었다.

“기껏해야 경무장 상태인 치안대를, 그것도 한량들을 모집해 겨우 충원한 주제에 꼴에 군대를 보유했다고 그러는 거라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그 말을 듣던 크리스티나 콘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10만 명의 한량이죠.”

10만이라는 숫자에 마르코 루비오와 마리오 드라기는 입을 다문 채 가볍게 침음성을 흘렸다.

크리스티나 콘테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헨리 피셔 집정관은, 우리가 내세운 존재예요. 무능하고 수동적인 늙은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능하고 능동적이면서도 우리의 말을 잘 들을 젊은 정치인을 넣은 셈이죠.”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넘긴 후 말을 이었다.

“최근에 그가 다소 예전보다 고개가 뻣뻣해졌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겠어요. 분명 제 앞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그러자 두 총수의 표정이 변했다.

“뭐? 콘테 총수, 그대 앞에서도 그랬단 말이오?”

“이 자식이 건달 10만 명 모았다고 정신줄을 놓았나……. 우리가 원로원에다 방구만 뀌어도 쫓겨날 인간이!”

두 남자의 분노를 지켜보던 크리스티나 콘테는 이내 손을 들어 둘을 진정시킨 후 말했다.

“너무 흥분하지는 마세요. 적당히 그런 자신감은 필요하니까요. 그래도, 아직은 우리의 수중에 있는 사람이에요. 단지, 그간 자기가 주장한 것들이 모두 우리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다소 우쭐해하는 거니까, 너무 부정적으로는 생각하지 말자고요.”

그녀의 말에 마르코 루비오와 마리오 드라기는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해산했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날게요.”

먼저 크리스티나 콘테가 자리를 뜨자, 서재에 남은 두 남자는 그녀를 두고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콘테 총수 말이오. 아무래도 피셔 집정관과 정말 뭐가 있는 것 같지 않소?”

마리오 드라기의 말에 마르코 루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중에 두 사람이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뭐, 일단 두 사람이 부정하고 있고 또 콘테 총수의 성격이나 취향을 우리가 알고 있으니 그간에는 헛소문으로 취급했는데…….”

“남자를 보는 취향이야 얼마든 바뀔 수 있소. 나도 그렇고 그대도 그렇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호하던 여자와 지금 선호하는 여자가 다르지 않소?”

“여자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결국 다 똑같은 인간이니까.”

“하긴, 콘테 총수 입장에선 자기랑 나이도 비슷하겠다, 뭐 자기 말도 잘 듣겠다, 나쁜 남자는 아니겠지요.”

“일단, 이 이야기는 당분간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소. 콘테 총수가 나이는 젊어도 머리는 우리보다 더 늙었으니까. 괜히 주름 없는 늙은 여우 소리를 듣는 게 아니지.”

“여하간 참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미한 가문 출신이 집정관이 되더니,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원칙마저도 무너뜨리고…….”

“그거야 우리도 동의해준 것이니 그런 거지. 일단은 기다려보는 게 좋겠소이다. 어차피 원로원이 우리 손에 있는 이상, 피셔 집정관은 우리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야지요.”

마르코 루비오는 싸늘한 눈빛과 함께 대화를 끝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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