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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44화 (144/175)

144 새로운 벨로디나 (2)

광명력 993년 11월 16일 오전.

크리미아를 점령 중이던 제니스 공화국 용병들이 대형 선박에 올라 본국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철수를 시작하자마자 크리미아를 벨로디나 혁명군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정오가 됐을 때, 제니스 공화국 용병과 상단 소속 직원들 그리고 3대 상단 부총수들은 모두 배에 올라탔다.

제니스 공화국으로 가는 배의 돛이 펼쳐지고 그들이 항구에서 멀어져갈 때, 그들을 환송해준 것은 아딘과 불카르 아시오게였다.

“이렇게 끝나는 겁니까?”

멀어져 가는 배와, 선미에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제니스인들을 보며 불카르 아시오게가 아딘에게 물었다.

“끝은 아니지요.”

“그러면?”

“이제 시작입니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제니스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불카르 아시오게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주 시원하게 모욕을 하십니다. 흐허허허.”

“이걸 모욕으로 받아들일지, 건설적인 관계 구축을 위한 평화의 신호로 받아들일지, 전적으로 제니스인들의 마음 넓이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딘은 멀어져 가는 선박을 뒤로한 채 크리미아 시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저기다!”

“우와아아아아!”

“구세주가 오신다!”

“만세! 만세!”

아딘이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근처 수산물 시장에 모여 있던 크리미아 주민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만세!”

“아딘 콘스탄틴 만세!”

“우리를 승리로 이끄소서!”

“만세! 만세!”

미리 준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것인지, 불카르 아시오게는 판별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당분간은 저 인간의 아성을 건들 도전자는 없겠네.’

자기 입장에선 아쉬울 것이 없다 생각하며 불카르 아시오게는 아딘으로부터 살짝 떨어진 곳에서 그의 뒤를 따랐다.

“와아아아! 우릴 향해 손을 흔드신다!”

“만세! 만세!”

치안대 역할을 할 혁명군이 세운 인의 장벽 사이로 지나치며 아딘은 자신을 보며 환호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에 주민들 가운데에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마저 흘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호랑이에게 날개에다가 용의 심장까지 달아준 격이야.’

그리고 그 모습을, 근처 지붕 위에서 고양이의 모습을 한 채 바라보고 있던 빅토르 다비도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당분간은 자중해야 해. 아딘 콘스탄틴을 향한 민중의 광적인 열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약해질 거야.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조용히 참고 견디면 될 거야. 그때까지만…….’

* * *

제니스 공화국 세력이 크리미아에서 물러나면서 비로소 벨로디나 왕국 전역이 혁명 정부의 수중에 떨어졌다.

혁명중앙위원회는 내무총괄위원 명의로 크리미아에 행정관을 파견하고, 주민들의 생활 실태 조사 및 식량 배급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외무총괄위원의 명의로 별도의 허가가 있기 전까진 제니스 공화국 측과는 일체의 사적 접선도 허가하지 않겠다는 포고령이 떨어졌다.

군무총괄위원의 명의로는 혁명에 가담한 쿠만족 용병과 카판족 용병 그리고 민병대 가운데 뜻이 있는 사람을 위주로 정규군으로 전환할 것임이 발표됐다.

그 외에도 많은 포고령이 콘스탄티노바를 중심으로 벨로디나 전역에 뿌려졌다.

비로소 사람들은 실감했다.

자신들이 해방됐음을.

부당하고 억압적인 제니스 공화국과 그 괴뢰로서 호의호식하던 자들이 물러나고, 민중을 위해 일하는 정의로운 혁명 정부가 들어섰음을.

“여론은 좋아요.”

11월 25일 저녁.

겨울 궁전에 자리한 아딘의 방에서 로제는 그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콘스탄티노바뿐만 아니라 이번에 오라버니가 장악한 크리미아에서도 혁명 정부에 대한 여론은 좋아요. 무엇보다도 오라버니에 대한 숭배 관념도 만연해 있고요.”

그러면서 로제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덧붙였다.

“일부 광적인 사람들 사이에선 오라버니를 재림 선지자로 보기도 하더라고요.”

그 말에 아딘은 차를 마시려다 말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재림 선지자? 내가 마우세스 레비라고?”

“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 정도까지 가면 좀 곤란해지는데 말이야. 원래 광적 숭배는 광적 증오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그리고 광적 증오는 분노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요.”

로제의 말에 아딘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그렇게 안 되게끔 해야겠지?”

그러면서 아딘은 차를 한 모금 넘겼다.

그런 아딘을 바라보며 로제는 말했다.

“팔키르하고는 오라버니가 이야기한 여러 장치를 같이 개발하고 있어요. 개념은 대부분 완성된 상태구요.”

“그 개념을 구현할 방법은?”

“그게 문제예요. 재료가 부족하거든요.”

“재료?”

아딘은 찻잔을 내려놓고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재료가 부족하단 거야?”

로제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팔키르 말로는 오라버니가 주문한 것 중 절반 정도는 마정석이라는 광물을 필요로 한데요.”

“마정석?”

“네. 뭐, 이름은 돌인데 성분은 금속에 가깝다고 하네요.”

“그게 필요하단 말이지?”

“네. 나머지 절반은 그냥 일반적인 철이나 아니면 연금술로 만든 물질로 해결이 가능한데, 다른 절반은 무조건 마정석이 있어야 한다고 해요. 문제는 마정석 자체를 팔키르도 평생에 두 번밖에는 못 봤다고 해요.”

“흐음…… 마정석이라…….”

“팔키르 말로는 지하에 묻혀 있던 게 큰 홍수 같은 걸로 땅이 뒤집어 지면 드러나곤 한다는데…… 벨로디나에 그 정도 홍수가 오긴 할까요?”

로제의 말에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꼭 홍수가 와야 한다는 법은 없지.”

“네?”

“지하에 있다면, 거기까지 갱도를 파고 들어가서 캐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건 맞긴 한데……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죠. 드워프들이 광맥은 진짜 잘 찾는데, 유독 마정석 광맥은 못 찾는대요. 팔키르 말로는 애초에 광맥이란 게 존재하는지부터가 의문이라고…….”

그런 로제를 향해 아딘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찾아볼 테니까.”

그 말에 로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딘을 바라봤다.

그리곤 찻잔을 든 채 물었다.

“신비로운 두루마리로 말이죠?”

그녀의 물음에 아딘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별도의 대답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저 당부만 할 뿐이었다.

“팔키르한테 조만간 드워프들 대거 동원할 준비나 하라고 전해.”

그 말에 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오라버니. 알겠어요.”

* * *

11월 26일 오전.

크리스티나 콘테의 저택.

드넓은 식당에서 크리스티나 콘테와 집정관 헨리 피셔가 마주보고 앉아 조식을 먹은 후 가벼운 티타임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돌아온 용병들 가운데 태반이 퇴직을 원하고, 남겠다는 사람들 태반도 임금 인상과 휴가 의무화 등을 요구하며 파업할 기세에요.”

크리스티나 콘테의 말에 헨리 피셔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크리스티나 콘테의 말이 이어졌다.

“정예 용병을 키우기도 힘들지만, 그들이 자유 용병 신분이 돼 여기저기 퍼져나가거나 최악의 경우 자기만의 용병단을 구성한다면 굉장히 피곤한 일들이 발생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헨리 피셔는 공감했다.

국가 상비군 제도 없이 오롯이 거대 상단의 용병에 치안과 국방을 의존하는 제니스 공화국 입장에서 작금의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로 용병을 구하자니, 게마인샤프트의 자유 용병들조차도 몸값이 너무 뛰었어요. 세상에,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1실버면 충분히 고용하고도 남던 것들이 이제는 기본적으로 골드를 이야기해요.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지는 중이죠.”

그렇게 현실을 개탄하며 말을 내뱉던 크리스티나 콘테가 찻잔을 입에 살짝 댄 채 헨리 피셔에게 물었다.

“집정관님께서는 이 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 물음에 헨리 피셔는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넘겨 목을 축인 후 말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죠?”

“저…… 그게…….”

헨리 피셔가 망설이자 크리스티나 콘테는 차를 한 모금 넘긴 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설사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들어드릴게요.”

그녀의 우호적인 반응에도 헨리 피셔는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다 그는 찻잔에 남은 차를 한입에 쭉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치안 업무에서 용병을 아예 배제해 버리는 겁니다.”

순간, 크리스티나 콘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헨리 피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집정관께서는 알고 계신가요?”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에게 정색하는 크리스티나 콘테의 모습에 헨리 피셔의 손은 떨렸다.

그러나 그는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용병들의 콧대를 꺾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

크리스티나 콘테는 침묵했다.

헨리 피셔는 잠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지만, 헨리 피셔의 말 자체에는 귀를 분명히 기울이고 있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고 헨리 피셔는 이야기했다.

“현재 용병의 수요는 치안과 국방 양쪽 분야에 걸쳐서 존재합니다. 그런 수요 중 하나를 사라지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용병은 과잉공급될 것이고 그러한 과잉공급이 용병의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할 겁니다.”

“…….”

“치안 업무를 정부가 전담하게 된다면 설령 정예 용병들이 따로 용병단을 차린다고 하더라도 따로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상단 호위 같은 것도 전부 정부 치안대가 담당한다면, 달리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겠습니까?”

“…….”

“게마인샤프트로 건너가서 유목민하고 싸우지는 절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지금 용병들이 퇴직이니 파업이니 하는 게 전부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태여 진짜 죽을 수도 있는 곳으로 간다? 전 절대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헨리 피셔는 말을 끝마치고 찻잔을 쥐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조금 전, 차를 다 마셨음을 깨닫곤 어색하게 찻잔에서 손을 놓았다.

그 순간, 크리스티나 콘테가 찻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감사합니다.”

헨리 피셔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잔을 채운 후 크리스티나 콘테는 자기 잔을 쥔 채 그에게 말했다.

“일리 있는 의견이예요.”

순간 헨리 피셔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크리스티나 콘테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저 혼자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긴 어려워요. 공화국의 전통을 뒤집는 결정이니까요.”

그녀는 그대로 차를 쭉 들이켰다.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자 헨리 피셔가 그 잔을 채워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크리스티나 콘테가 말했다.

“일단 다른 두 총수님과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요. 가까운 시일 내로 연락을 드릴테니, 참석하셔서 조금 전 하셨던 말씀을 다시 말해 보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단서를 달았다.

“최대한 상단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근거를 가지고요.”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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