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40화 (140/175)

140 혁명중앙위원회 (4)

“지, 지당하신 말씀이긴 하오나…….”

혼란에 빠진 안톤의 반응이 퍽 우스워 아딘은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면 될 거야. 어차피 드워프는 그냥 난쟁이 인간하고 다를 바 없으니까.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야.”

그 말에 일단 안톤은 수긍하기로 했다.

“저는 그저 의장님의 뜻만 따를 뿐이옵니다.”

자신을 향해 다시 충성을 맹세하는 안톤의 모습을 미소를 띤 채 바라보며 아딘은 생각했다.

‘최대한 빠르게 정국을 수습하고 혁명기를 끝내야겠어. 그래야지 다비도프 같은 반동분자도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거니까.’

* * *

광명력 993년 5월 31일 정오.

혁명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를 빌어 두 사람의 총괄위원이 새로이 임명됐음을 공표합니다.”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위원들을 향해 아딘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제와 팔키르에게 손짓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원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들에 대한 소개는 아딘이 대신했다.

“저기 있는 여인은 정보총괄위원으로 임명된 로제 콘스탄틴이며, 혁명전쟁에 있어서 대단한 마법적 능력으로 자칫 많은 인력의 소모를 부를 수도 있었던 동부 전선에서의 싸움을 깔끔하게 정리한 공로가 있습니다.”

그 말에 위원들 가운데 혁명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시 로제를 바라봤다.

‘콘스탄틴?’

‘왕족이야?’

‘아니, 왕족 중에 저런 여자애가 있었나?’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아딘은 팔키르를 설명했다.

“저기 있는 분은 기술총괄위원으로 임명된 드워프 족장 팔키르입니다.”

아딘의 소개에 위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잠시 발생했다.

“드워프?”

“진짜?”

“설마설마 했는데……”

그런 위원들을 손을 한 차례 휘저어 조용히 시킨 후 아딘은 소개를 이어갔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드워프의 손재주는 인간 장인조차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고 대단한 면이 있습니다. 비록 현재 당장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지만, 장차 드워프가 만들 장치가 상용화되면 의사소통의 문제는 말끔히 사라질 것입니다.”

로제의 마법으로 팔키르도 말을 알아 들는 가운데 그렇게 새로이 임명된 위원들에 대한 소개를 끝낸 후 아딘은 전체회의 안건을 꺼냈다.

“오늘 전체회의에서는 파라곤의 잭슨 가문과 본 의장 사이에 체결된 협약을 논의해볼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딘은 차분히 위원들에게 자신이 체결한 협약 내용을 알려주었다.

아딘의 발표는 20분가량 이어졌다.

“이에 관하여 혁명중앙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혹시 할 말 있는 분은 거수하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발화가 끝나고 아딘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딘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봤다.

“외무총괄위원께서 혹여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는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책상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훌륭한…… 협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아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번 협상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과제인 식량 수급과 향후 혁명 정부의 역할이 끝나고 정상적인 정부로 정권이 이양된 다음 경제 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식량총괄위원과 재무총괄위원 그리고 조세총괄위원께서 한 말씀 씩 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아딘의 말에 식량총괄위원과 재무총괄위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장님의 협약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달리 대안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조세총괄위원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탁월한 결정입니다. 비록 제니스와는 악연이 있고, 현재 전쟁 중이라고는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정리되면 결국 우리가 다시 좋게 지내야 할 이웃 아닙니까? 다시는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도 않으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까지도 챙긴 훌륭한 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법무총괄위원과 치안총괄위원도 조세총괄위원의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이만한 협상이 벨로디나 역사상 몇이나 있었겠습니까?”

“식량 문제가 해결되고 향후 벨로디나를 꾸준히 인도할 경제 성장 동력이 생겼으니, 자연스럽게 치안도 좋아질 것입니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안톤을 한 차례 바라봤다.

안톤도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한 차례 고개를 가만히 숙였다.

아딘의 시선이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빅토르 다비도프에게로 향했다.

‘애초에 정치 싸움으로 끌고갈 생각을 한 시점에서, 당신은 패배한 것이었어.’

빅토르 다비도프는 혁명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보이고 싶어 했다.

만약 표결에서 아딘이 체결한 협정안이 부결되거나, 가결되더라도 가까스로, 그러니까 한 표 차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가결이 된다면 빅토르 다비도프의 입김은 커질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빅토르 다비도프가 초반에 회유하고자 했던 식량과 재무 두 총괄위원은 안톤의 끊임없는 찬동 분위기 조성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처음부터 찬동했던 조세와 법무 두 위원은 이것이 단순한 의견 대립이 아닌 권력 투쟁임을 깨닫곤 조용히 힘 있는 자의 편에 섰다.

애매한 입장이었던 치안총괄위원도 자신이 권력 투쟁의 한복판에서 이도저도 아닌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파악하곤 곧장 찬성으로 뜻을 굳혔다.

‘다비도프. 그대는 민중을 무시했지. 왕을 필요로 하는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말이야. 하지만 진정으로 왕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중간 계급들이었음을 잊은 모양이군.’

혁명중앙위원회 총괄위원 중 식량, 재무, 조세, 법무, 치안 이 다섯은 과거 블라디미르 2세 치세에 실무 관료로 활약했던 중간 계급이었다.

귀족에 준하는 대우는 받지만, 신분적으론 평민이었으며, 귀족처럼 부유하진 않지만 평민보단 압도적으로 부유했던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자기 세력만 모으면 왕과도 맞설 수 있었던 귀족과는 달리, 왕이 수틀리면 곧바로 파직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죽여버릴 수도 있었던 중간 계급 관료들 입장에선 당연히 왕이 여전히 두려운 존재겠지.’

예전 다섯 총괄위원이 섬기던 왕이 귀족조차도 두려워했던 블라디미르 2세였던 만큼, 그들 마음에 심어진 두려움은 엄청날 터였다.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걸 보면, 확실히 만만한 인물은 아니야.’

아딘은 물을 한 모금 넘기며 잔 너머로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봤다.

의장이 전제군주처럼 일을 처리하는 것에 반발했고, 전체회의를 통해 의장의 권한은 유한한 것임을 입증하려던 시도가 실패했을 때, 그는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반대 의견을 개진할 법도 하건만, 빅토르 다비도프가 선택한 것은 순응이었다.

‘일단 지금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는 대세에 맞서지 않는다는 판단……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길인데…….’

귀족 출신이고, 체르노비치라는 비밀 결사를 운용하며 혁명을 꿈꾸었던 마법사.

그런 자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는 구태여 아딘이 깊게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르 다비도프는 일시적으로 자존심을 굽혔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나중을 기약하기 위함이겠지.’

아딘은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거수로 찬반을 결정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동의하십니까?”

아딘의 말에 안톤이 동의한다고 외쳤다.

“자, 그럼 모두 거수로 찬반 의견을 표하여 주십시오.”

안톤을 제외하고 내무, 외무, 군무, 식량, 조세, 법무, 재무, 치안, 정보, 기술 총 10명의 총괄위원들이 표결에 참여했다.

찬성은 8표였고, 반대는 0표였으며 기권이 2표였다.

“어…… 내가 뭘 압니까? 솔직히 오늘 인간들과 함께 무슨 정치를 한다는 것도 어색한데…… 일단 모를 때는 침묵하라고 아버지가 가르쳐주셨으니 그 가르침대로 한 겁니다.”

팔키르의 말에 아딘과 다른 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외무총괄위원께선 기권 이유에 대해 혹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딘의 물음에 모든 위원의 시선이 빅토르 다비도프에게로 쏠렸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가만히 침묵하다가 천천히 한 마디 내뱉었다.

“만장일치는 제가 별로 좋아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서 본 의장이 파라곤에서 잭슨 가문과 합의한 식량 수급 및 향후 벨로디나 투자에 관한 안건은 찬성 8표, 반대 0표, 기권 2표로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아딘의 말이 끝나자 안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불카르 아시오게가 일어나 박수했고, 줄줄이 위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오로지 아딘과 팔키르 그리고 빅토르 다비도프만이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선지자시여 교회를 지키소서, 천사들이시여 이 땅을 수호하소서, 위대한 신들이시여 지고한 분을 돌보아주소서.”

안톤의 입에서 옛 벨로디나 왕실에서 쓰이던 왕국 찬가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모르는 로제와 불카르 아시오게, 팔키르는 입을 다물었고 중간 계급 출신 위원들은 모두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로지 빅토르 다비도프만이 얼굴색이 시커멓게 죽은 채 입을 다물 뿐이었다.

* * *

빅토르 다비도프의 첫 번째 반항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 내용 자체가 국가 기밀이었던 만큼, 자세한 이야기는 왕궁 담장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빅토르 다비도프가 혁명 정부에서 겉돌고 있으며, 그의 입지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문은 혁명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끝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 제니스 공화국 수도 아라곤까지 퍼졌다.

“빅토르 다비도프. 어떤 인물이오?”

6월 10일 저녁, 드라기 총수의 저택 서재에서, 3대 상단 총수와 곧 집정관이 될 것이란 소문이 확정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법무관 헨리 피셔가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마리오 드라기가 물었다.

그 물음에 크리스티나 콘테가 대답했다.

“다비도프 백작가의 가주이자 이전에 백작위를 들고서 죽은 드미트리 콘스탄틴을 따르던 귀족이었어요. 지금은 귀족 작위를 잃긴 했지만 여전히 혁명정부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요.”

“흠…… 그런 사람이 왜 혁명 정부에서 외톨이가 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이오? 듣자 하니 혁명에 있어서 제법 중요한 역할을 했다던데?”

“어느 조직이나 힘겨루기는 있는 법이죠. 합리적인 선에서 추론해 보자면, 최근 우리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니까 아무래도 저쪽 내부에서 강경파가 득세하지 않았겠어요? 자연히 협상을 이야기하는 온건파의 입지는 줄어들었겠지요.”

크리스티나 콘테의 말을 곧 마르코 루비오가 이어 받았다.

“콘테 총수 말대로, 실제로 저번에 그쪽에 그 야만인이 그랬다고 합디다. 이대로 쭉 계속 가 달라고. 그러면 전쟁을 하자는 자기가 힘을 얻게 될 거라고.”

“흐음…….”

마리오 드라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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