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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39화 (139/175)

139 혁명중앙위원회 (3)

빅토르 다비도프가 차를 쭉 들이켯다.

그리곤 두 위원을 향해 힘주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전체회의에서 두 분이 그런 힘을 보여주시길 바라오. 이번 전체회의가 향후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음을 두 분이 파악한다면,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에 두 위원은 바짝 긴장한 채 떨리는 눈으로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볼 뿐이었다.

* * *

빅토르 다비도프의 관사에서 재무와 식량 두 위원이 떠난 지 2시간이 지난 시점.

불카르 아시오게는 자기 관사 서재에서 한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식량총괄위원과 재무총괄위원이었습니다. 그들이 외무총괄위원의 관사에 있다가 떠나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자신이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붙여 둔 정탐꾼으로부터의 보고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거리 싸움을 하려는 모양이구만.”

“네?”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너랑 네 친구랑 절대 외무총괄위원한테서 눈을 떼지 마. 내가 그만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나가 봐.”

곧 정탐꾼은 서재를 나갔다.

불카르 아시오게는 가만히 의장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진짜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드는 게 없구만.”

이곳에 있으면서 육체적으로는 분명 편했다.

음식도 쿠만에서 먹던 것보다 부드럽고 맛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쿠만에서 사냥터지기로 사는 것보단 확실히 더 대우를 받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불카르 아시오게에게는 독으로 작용했다.

“아흐…… 그냥 서로 불만 있으면 칼질 몇 번 하면 될 것을…….”

제니스 공화국과의 지루한 협상부터 회의 표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정치까지.

그 모든 것이 불카르 아시오게에는 맞지 않았다.

‘그나마 다리아는 이게 좀 맞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빅토르 다비도프의 감시를 총괄 지휘하는 딸 다리아를 떠올리며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어리니까.’

자신과는 달리 그럭저럭 콘스탄티노바 생활에 적응한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카르 아시오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좀 쑤셔서 못 해 먹겠네.”

그는 괜히 인상을 찡그리며 엉덩이를 벅벅 긁었다.

“후우…… 갑갑하다, 갑갑해.”

그렇게 그는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창밖, 콘스탄티노바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광명력 993년 5월 23일 아침.

봄의 궁전에 자리한 내무총괄위원 집무실로 안톤은 법무, 재무, 식량, 치안, 조세를 총괄하는 다섯 위원을 불렀다.

“곧 혁명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릴 것입니다.”

안톤의 말에 재무와 식량을 제외한 다른 세 위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안건은 의장께서 친히 적진인 제니스 공화국 파라곤으로 가시어 곡물을 확보한 계약에 관한 논의가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역시나 식량과 재무를 제외한 다른 세 위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안톤을 바라봤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곡물을 확보하셨단 말입니까?”

“의장님께서 직접 제니스로 가셔서? 아,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안톤은 가만히 다섯 위원의 상반된 반응을 살폈다.

‘식량과 조세. 저 둘은 다비도프에게 미리 언질을 받아 뒀구나.’

안톤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위원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현재 이 나라가 당면한 문제는 식량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니스의 타락한 3대 상단에 의해 유린당한 지난 1년의 상처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식량 문제란 것입니다.”

그 말에 위원들은 대체로 동의했다.

안톤이 말을 이었다.

“일단 식량난이 해결된다면, 그 이후에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현재 지루하게 끌고 있는 제니스와의 평화 협상도, 정식 정부로의 정권 이양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안톤은 식량 공급을 대가로 잭슨 가문이 가져갈 특권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 대목에 이르자 위원들의 표정이 서로 갈렸다.

“솔직히 제니스가 야만인이긴 하지만, 그들의 상행위에 관한 규정이나 기술은 분명 배울 만합니다.”

“거기다 자본금의 절반이 벨로디나의 것이라면, 지난 1년처럼 착취만 당하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조세와 법무, 두 총괄위원은 대체로 찬동을 표했다.

“하지만 아무리 잭슨 가문이 평판이 좋다고 해도 어쨌건 벨로디나인이 아닌 제니스인 아닙니까? 과연 그들이 벨로디나에서 자기네 나라에서 하듯 하겠습니까?”

치안총괄위원은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식량과 재무 두 위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안톤이 물었다.

“두 위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갑작스러운 안톤의 지명에 두 사람은 흠칫 놀랐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저, 저도…… 이, 이게 워낙에 어렵고 난해한 문제이다 보니…….”

그 말에 안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무총괄위원이시야 정부의 재정을 담당하는 분이니 당장에는 뜻을 정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식량총괄위원께서는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식량총괄위원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일주일의 첫날, 저의 책상에는 크리미아를 제외한 벨로디나 전역에서 올라온 행정관들의 보고서가 쌓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가는 개별 분야의 정보를 모두 취합한 종합적인 보고가 제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톤은 힘주어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식량이라고.

소도시나 농촌에서 벌어지는, 민병대에 의한 옛 귀족 학대라든가 민병대의 범죄 단체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극적인 방안에 대해 식량총괄위원께서 아무 생각이 없으시다는 것은…… 뭔가 어폐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안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메시지의 묵직함과 압박감은 엄청났다.

특히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그의 무력적 배경에 관한 관념이 주는 근원적인 공포감이 그런 압박감을 배가시켰다.

“시, 식량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사, 사실…… 의, 의장님께서는 괴, 굉장히 옳은 일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식량총괄위원은 백기를 들었다.

그러자 혼자 바보가 된 재무총괄위원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런 재무총괄위원을 향해 안톤이 말했다.

“재무총괄위원께서도 잘 생각해 주십시오. 언제까지 이 나라가 농사만 짓고, 소규모 광산업자의 작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로 최대한 제니스의 선진적인 기법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합자회사 설립입니다. 생산성이 좋아질수록, 결국 정부의 재정도 좋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시 혼란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던 재무총괄위원도 결국 식량총괄위원처럼 백기를 들고 말았다.

“드, 듣고보니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안톤은 씩 웃으며 다섯 위원을 둘러보고 말했다.

“5월이 끝나기 전, 의장께서 전체회의를 여실 겁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오늘처럼 각자의 뜻대로 찬성에 표하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안톤은 모호한 입장을 표명하던 치안총괄위원을 바라봤다.

“치안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면, 후에 정식 정부로 정권이 이양될 때, 치안총괄위원께서 그 자리를 계속 가져가시거나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치안총괄위원은 여전히 모호한 표정이긴 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사람 모두 찬성할 것을 표하자 안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의 단결된 힘이야말로 빈곤과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조국과 백성을 자유롭게 할 근원 아니겠습니까?”

* * *

“흐음…….”

5월 23일 정오.

아딘은 안톤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톤이 아딘을 향해 말했다.

“표결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옵니다, 의장님.”

그 말에 아딘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비도프 위원이 가만히 있겠나?”

“다비도프가 아무리 설득하려고 돌아다녀 봐야, 이미 대세는 기울었사옵니다.”

“모르지. 대세가 기울지, 어떻게 될지.”

그러면서 아딘은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안톤에게 별안간 물었다.

“자네는 다비도프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 물음에 안톤은 한 차례 심호흡한 후 천천히 대답했다.

“업무적으로는 필요한 사람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언젠가는 숙청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아딘의 말에 안톤은 고개를 조아렸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옛 악연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위험한 인물이옵니다.”

“계속 이야기해 보게. 가만히 듣고 있겠네.”

아딘의 말에 안톤은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민중을 위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발상은 급진적이오나, 벨로디나를 계속해서 농경과 소규모 광업 경제 체제로 유지하려는 생각은 지나치게 수구적이옵니다. 의장님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권력에 대한 분점 주장은 급진적이오나, 민중을 배제하고자 하는 발상은 수구적이옵니다.”

아딘은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물을 한 모금 넘겼다.

안톤이 말을 이었다.

“분명 그에게는 공로가 있사옵니다. 신은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곘사옵니다. 그가 체르노비치라는 비밀 결사를 운영했기에, 혁명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사옵니다. 또 그의 외국어 능력이라든가 사교성을 생각하면 분명 외무에서도 필요한 인재이옵니다.”

안톤은 숨을 크게 들이쉰 후 그것과 말을 동시에 내뱉었다.

“하오나 그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사옵니다. 지금이야 의장께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계시고, 민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계시오니 참고 있을 뿐이옵니다. 언젠가는 의장께 칼을 꽂으려 들 인물이옵니다.”

안톤의 말이 끝났다.

아딘은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을 지으며 가만히 안톤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물잔을 비운 아딘이 안톤에게 이야기했다.

“5월 31일 정오에 전체회의를 열 것이다.”

“그리 하명해 두겠사옵니다.”

“그대는 전체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모두가 찬성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찬성이 과반은 넘겨야하지 않겠나?”

그 말에 안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팍 숙였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런 안톤에게 아딘은 말했다.

“그리고 그날 새 위원들이 둘 합류할 것이다.”

“새로운 위원 말이옵니까?”

“한 사람은 로제. 정보총괄위원을 맡길 생각이야.”

그 말에 안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뒤이어 아딘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는 그만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치켜들고 말았다.

“그리고 기술총괄위원으로 팔키르라고, 드워프 족장을 임명할 생각이야.”

“드, 드워프를 말이옵니까?”

그 반응을 보며 아딘은 미소를 지었다.

“능력이 있다면, 드워프면 어떻고 또 엘프면 어떻고 또 오크면 어떻나?”

아딘의 말에 안톤은 한동안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만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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