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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38화 (138/175)

138 혁명중앙위원회 (2)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괴짜들은 아딘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썩 밝지는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이야기했다.

“우리가 뭐 달리 은둔했겠습니까? 별로 쓸모도 없는 연구나 한다고 은둔했지.”

그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환상 마법은 어디까지나 눈속임일 뿐, 물리적 실체를 가진 게 아니에요.”

“공간 왜곡 마법이야 규모가 크면 대규모 군대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연구하는 건 규모가 매우 작은 것들을 옮기는 공간 왜곡 마법입니다.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스무 명의 괴짜들이 동시에 그렇게 떠들어대자 삽시간에 회의실은 시끄러워졌다.

아딘은 가볍게 원탁 위에 놓인 잔을 손가락으로 쳐서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괴짜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회의실에 다시 침묵이 내리자 아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들의 연구가 쓸모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이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인지는 융합소위의 활동이 낳을 결과가 말해 줄 거라 생각하오.”

아딘의 말에 괴짜들은 별다른 토를 달진 않았지만, 대체로 회의적인 냉소를 지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아딘은 힘주어 말했다.

“나는 융합소위가 반드시 역사를 바꿀 굉장한 발명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소.”

그러면서 아딘은 로제와 팔키르를 바라봤다.

결국 융합소위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할 둘의 역량이 중요한 사항이었다.

아딘은 눈빛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기대를 전달했다.

로제와 팔키르는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광명력 993년 5월 22일 정오.

아딘은 봄의 궁전에 자리한 혁명중앙위원회 의장 집무실로 복귀했다.

그의 복귀는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안톤과 빅토르 다비도프, 불카르 아시오게를 비롯해 여러 위원들에게 알려졌다.

그의 복귀가 알려지자마자 의장대행 역할을 하던 안톤이 빅토르 다비도프와 불카르 아시오게와 동행하여 의장 집무실로 찾아왔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하옵니다, 의장님.”

안톤의 인사에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는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내무총괄위원.”

“아니옵니다. 다비도프 위원과 아시오게 위원께서 협조해 주신 덕분에 의장님께서 계시지 않은 동안 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었사옵니다.”

그 말에 아딘의 시선이 빅토르 다비도프와 불카르 아시오게에게로 향했다.

“항상 두 위원들 덕에 내가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 말에 불카르 아시오게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빅토르 다비도프는 그저 의례적인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 뒤로 아딘은 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부재 기간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여러 현안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중요도가 높은 것은 세 가지였다.

“곡물이 점차 바닥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버티고 버티더라도 8월 초에는 더 이상 배급할 게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이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식량 수급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딘은 거기에 대한 해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잠시 외유를 나간 이유는 사실 식량 공급책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딘의 말에 세 사람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잭슨 가문과의 사이에서 체결한 식량 공급 계약에 관해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아아, 실로 대단하옵니다. 오로지 의장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대한 협상이었사옵니다.”

안톤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아딘을 찬양했다.

“허허허. 이래서 사람은 항상 착하게 살아야하는 모양인가 봅니다. 흐허허허.”

불카르 아시오게도 감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유일하게 빅토르 다비도프만이 우려 섞인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규모 식량 공급처가 확보된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다시 벨로디나에 제니스의 자본이 들어오도록 문을 연다는 것이라면…….”

빅토르 다비도프는 말끝을 흐렸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아딘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혁명이 안정되고, 국가 통치가 정상 궤도에 오른다면 시장 개방은 당연히 뒤따를 순서 아닙니까? 유리 콘스탄틴 시절처럼 하는 것도 아니고, 벨로디나 국적을 지닌 집단이나 개인과 50%씩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로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입니다. 유리 콘스탄틴 시절의 정신나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안톤이 거들고 나섰다.

“맞사옵니다. 거기다 파라곤의 잭슨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3대 상단과는 다른 존재이옵니다. 3대 상단처럼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권리만 누리는 쓰레기가 아닌, 마땅히 파라곤에 대한 책임을 짐과 동시에 권리 또한 행사하는 신사적인 자들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자 빅토르 다비도프가 안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파라곤이 대대로, 공화국 성립 이전부터 잭슨 가문의 영지와도 같던 곳인 만큼 그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벨로디나는 그들에게나 3대 상단에게나 똑같은 외국입니다. 아무리 잭슨 가문의 평판이 좋다 한들 결국 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단물만 먹고 빠지면 그만 아닙니까? 뒷수습은 남아야 하는 자들이 하는 거고?”

분명 시선은 안톤을 향하고 있었지만, 실상 말은 아딘을 향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안톤은 필사적으로 아딘에게 이야기가 가지 않게 하고자 반박하기 시작했다.

“합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잭슨 가문의 자본만으로 설립되는 것이 아닌, 벨로디나인과 반반씩 업장을 나눠 가지는 방식이라면 일방적으로 단물만 빨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들이 얼마나 이재에 밝은 자들인가를 모르십니까? 제니스 상인이 할 수만 있다면 자기 가족도 비싸게 쳐서 팔아먹을 만큼 냉혹한 돈벌레들이란 것을 잊었습니까?”

“그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난 1년간 착취당한 것의 이면에는 상행위에 관해 제대로 된 지식과 관습이 이 나라에 없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벨로디나 경제는 농업과 소규모 광산업 위주로 돌아갑니다. 제니스 식의 상업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논쟁이 지속되자 결국 아딘이 개입하고 나섰다.

“이미 결정이 된 일입니다.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말에 안톤이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빅토르 다비도프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건 단순히 식량을 공급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혁명 이후 정상 궤도에 오를 정부에까지 영향을 끼칠 사안입니다. 외무총괄위원으로서 정식으로 이 안건을 혁명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 올릴 것을 요청합니다.”

그 말에 안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의장님께서 손수 적국에 가셔서 목숨을 걸고 협상을 해 오신 겁니다. 그런데 이걸 회의에 올리겠다니…… 회의에서 무산시키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이 나라의 미래가 의장님의 의지 하나에 좌우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의장님께서는 어디까지나 혁명 정부의 대표이실 뿐, 이 나라 전체 의지를 대변하는 분은 아닙니다.”

“뭐요?! 어찌 그런…….”

두 사람 모두 감정적으로 격앙돼 가자, 아딘이 손을 들어 둘을 제지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자 아딘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체회의에서 이 안건을 다루자는 것이 그대의 생각입니까? 외무총괄위원?”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아딘의 말에 안톤은 물론 불카르 아시오게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심지어 빅토르 다비도프조차도 아딘이 순순히 자신의 뜻에 따르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한 시선에 아딘은 양쪽 입꼬리를 모두 끌어 올리며 웃었다.

* * *

5월 22일 밤.

혁명 이전, 알레그로프 백작의 저택으로 쓰이던, 지금은 외무총괄위원 관사로 쓰이는 대저택.

그곳으로 빅토르 다비도프는 재무총괄위원과 식량총괄위원을 초대했다.

벨로디나 왕국의 옛 관료 출신인 그들은 빅토르 다비도프와 아주 친하진 않았지만, 상당한 구면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늦은 시간에 자신을 찾은 빅토르 다비도프의 의중을 알아차리고자 가만히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혁명의 설계자인데다 가장 먼저 혁명위원에 임명된 세 사람 중 하나잖아.’

‘실세 중에 실세지. 잘 보여서 나쁠 건 없겠지. 근데 왜 부른 거지?’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3개의 잔에 모두 따뜻한 꿀차를 따른 빅토르 다비도프는 두 사람의 앞에 잔을 내민 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래저래 우리 중에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그래도 그대 두 위원께서 가장 고생이 많다는 건 중앙위원회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니겠소?”

그 말에 두 위원들은 찻잔을 양손으로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우리야 뭐 책상에 앉아서 서류나 검토하는 거고, 실질적으로 협상장에서 싸우시는 다비도프 위원님이야말로 가장 고생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그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 빅토르 다비도프는 적당히 일상적인 이야기와 그들에 대한 칭찬 및 격려를 입으로 내뱉으며 적당히 분위기를 완화했다.

처음에 상당히 긴장해 있던 두 위원도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을 편안하게 먹기 시작했다.

중요한 일로 찾은 것이 아닐지라도, 아니 중요한 일로 찾지 않았기에 도리어 그들은 괜한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그래, 실세가 이렇게 별거 아닌 일로 찾아주는 게 뭘 의미하겠어?’

‘앞으로 사적으로 친해지면 얼마든지 더 좋은 미래를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적당히 분위기가 풀어졌을 무렵, 빅토르 다비도프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곧 머지않아,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릴 것이오.”

그가 공적인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자 다시 두 위원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안건은 의장께서 제니스의 잭슨 가문과 체결한 협약에 대한 공식 비준 여부요.”

두 위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보았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최대한 그들에게 담백하게 아딘이 잭슨 가문과 체결한 계약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사적 감정을 담으면 좋지 않겠다는 판단에 최대한 아딘에게 들은 내용을 위주로 그들에게 설명한 후, 빅토르 다비도프는 잠시 그들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표정은 굉장히 복잡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란스러워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빅토르 다비도프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혁명의 대의는 민중을 위한 국가의 건설이오. 그런데 시작부터, 정식 정부도 아닌 혁명정부가 미래에 부담이 될 협정을 한 사람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체결한다는 것이 말이 되오?”

빅토르 다비도프의 말에 두 위원은 가만히 찻잔만 바라볼 뿐이었다.

“힘으로 보여줘야 할 때요. 그 힘이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력과 그것에 기반한 상식적인 의사결정이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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