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혁명중앙위원회 (1)
불카르 아시오게는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터뜨리곤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황급히 불카르 아시오게를 따라가며 부총수들에게 말했다.
“열흘 후에 여기서 이 시간에 보는 걸로 알고 있겠소. 그때까지 제대로 된 걸 좀 준비해 오시오.”
빅토르 다비도프마저 예배당에서 빠져나가자 그제야 부총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원, 무슨 저런 무식한 인간이 다 있단 말입니까?”
드라기 부총수의 말에 루비오 부총수가 거들었다.
“쿠만족이 미개한 야만인이란 말은 듣긴 했지만, 저건 야만인도 아닙니다. 차라리 렝고스의 오크가 더 말이 통할 것 같습니다.”
콘테 부총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거, 우리가 계속 여기 나와도 되는 겁니까? 이대로 가다가 진짜 저 야만인이 앞뒤 안 가리고 우리 혀부터 뽑아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 말에 드라기 부총수가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콘테 부총수가 경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좀 전에 보지 않으셨습니까? 진짜 다음에는 저 야만인은 좀 못 나오게 하든가 해야지 원…….”
그러자 루비오 부총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협상을 하러 온 건지, 수명을 깎으러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드라기 부총수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동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아…… 원래라면 지금쯤 바다를 보면서 근사한 해물 정찬이나 먹고 있었을 건데…….”
콘테 부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서 갑시다. 난 여기 잠시라도 더 있기 싫습니다.”
그 말에 두 부총수들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콘스탄티노바를 향해 출발하는 벨로디나 혁명정부 소유 마차 내부에서도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연기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빅토르 다비도프의 말에 상의를 입으며 불카르 아시오게가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혁명중앙위원회의 역할이 끝나면, 콘스탄티노바에서 연극 배우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있소이다. 흐하하하.”
“하하하. 혹시라도 하신다면 꼭 보러 가겠습니다.”
“정가는 내고 오시오.”
“하하. 아무렴요.”
그렇게 가벼운 담소로 웃음꽃을 잠시 피우던 두 사람은 이내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도무지 협상 의지가 없는 것 같지 않소?”
불카르 아시오게의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흐음…… 아무래도 저자들도 멍청하진 않은 만큼, 우리 약점이 무엇인지를 꿰고 있기에 저렇게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지저분한 것들…… 옛날부터 다른 건 다 몰라도 사람 먹는 문제로 장난질하는 건 아니라고 배웠는데…….”
“의장께서 돌아오신다면, 이야기를 좀 해 봐야 하지 싶습니다. 이대로 계속 협상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나도 동감이오. 이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좀 쑤시는 짓을 해야 하는지 원…….”
그렇게 두 사람은 제니스 공화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성토하며 콘스탄티노바까지 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봄의 궁전에 자리한 혁명중앙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갔을 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안톤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네? 드워프 말입니까?”
빅토르 다비도프의 물음에 안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장께서 명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서부 엘프숲 인근에 가보니 드워프들의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의장께서 주신 증패를 보여주니 모두가 우리를 따라 이곳으로 왔습니다. 현재 콘스탄티노바에 있는 귀족들의 저택에 나눠서 수용하고 있습니다.”
“드워프라니……. 도대체 의장께서는 언제 그들을…….”
빅토르 다비도프가 의문을 표하는 가운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불카르 아시오게가 입을 열었다.
“그…… 드워프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그 물음에 안톤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간의 친척쯤 되는 이종족입니다. 키가 보통 인간 어린이 수준으로 작지만, 근육이 단단하고 무엇보다도 손재주가 좋습니다.”
“대장장이 뭐 그런 겁니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대장장이이자 귀금속 제작자이자 기술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드워프들이 만든 칼은 인간 장인이 만든 칼보다도 훨씬 단단하고 날카롭다고 하니 말입니다.”
“허어. 그런 것들이 있습니까? 쿠만에서는 뭐 금시초문인지라…….”
불카르 아시오게의 말에 안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장께서 드워프 무리의 우두머리에게도 적절한 자리를 주신다 했으니, 곧 만나시게 될 겁니다.”
그러자 빅토르 다비도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드워프에게 혁명중앙위원회 위원직을 준다는 겁니까?”
그 말에 안톤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장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상컨대 기술총괄위원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주시지 않을까 합니다.”
“아, 아니…… 같은 인간도 아니고 이종족에게…… 뭐, 그런 걸 내가 거부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위원들과 상의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안톤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다비도프 외무총괄위원. 그대는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혁명중앙위원회 위원 임면권은 전적으로 의장께 있습니다. 그리고 내무총괄위원인 제게는 추천권 정도가 있고 말입니다. 의장께서 그리하시겠다면, 그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빅토르 다비도프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꼴통 자식…….’
혁명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직함만 바뀌었을 뿐, 안톤에게 아딘은 여전히 영원히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해야 할 주군이었다.
그런 외골수 기사도 추종자를 상대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빅토르 다비도프는 침묵했다.
그사이 불카르 아시오게가 안톤에게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협상 말이오. 이거 더 이상 이어갈 필요가 없을 것 같소.”
불카르 아시오게는 협상에서 제니스 공화국 측이 주장하는 것을 안톤에게 알려주었다.
“이 이상 협상을 진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전쟁을 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 말이오.”
안톤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협상이 솔직히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긴 합니다. 일단 이 문제는 의장께서 복귀하시면 한번 전원 회의에서 논의해 보도록 건의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빅토르 다비도프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의장께서는 언제 복귀하신다고 합니까?”
안톤이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보며 답했다.
“못해도 내일이나 모레 오전에는 도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운다고 하셨으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 비우셨는지…….”
“다 의장께서 돌아오시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퍽이나.’
그저 속으로 안톤을 비꼬기만 할 뿐이었다.
* * *
광명력 993년 5월 22일 오전.
아딘은 콘스탄티노바로 복귀했다.
복귀한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드워프를 수용한 옛 귀족들의 저택이었다.
“해방자시여.”
그를 보자마자 드워프 족장 팔키르가 경의를 표하며 인사했다.
아딘은 그런 그를 일으키며 양손을 꼭 잡아 주었다.
“반갑소, 팔키르. 콘스탄티노바에 온 것을 환영하오.”
“해방자께서 일구신 터전을 밟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영광이옵니다.”
“너무 낯간지러울 정도로 경배하지는 마시오.”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딘은 한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그대는 벨로디나 혁명중앙위원회에서 기술총괄위원의 직을 수행할 테니 말이오.”
그 말에 팔키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인간의 직책을 제가 맡게 된다는 것이옵니까?”
그 물음에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건 없지 않소?”
“그, 그렇긴 하오나…… 아, 오, 오해하지는 마소서, 해방자시여. 저, 저는 단지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이러는 것이옵니다.”
일리있는 말이었다.
당장 아딘이야 어차피 김현수의 창조물들이 쓰는 모든 언어에 통달해있다곤 하지만, 다른 위원들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충분히 해결이 가능할 터였다.
“뭐, 장차 드워프도 벨로디나어를 배우긴 해야겠지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는 의사소통을 위해 어떤 마법적 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면서 아딘은 팔키르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곧 팔키르는 아딘을 따라 마차로 향했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팔키르는 왕궁 별채, 수국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팔키르는 아딘의 주선 하에 로제가 그간 모아놓은 스무 명의 괴짜 마법사들과 조우했다.
‘뭐 이리 다들 음침하게 생겼어?’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은 상태에서 팔키르는 괴짜 마법사들을 빤히 바라봤다.
대부분 오랫동안 햇빛을 피해온 삶을 살았던 만큼, 창백한 안색에 눈이 퀭했다.
‘드워프다!’
괴짜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스승으로부터의 구전 전승으로나 들었던, 혹은 책에서나 봤던 드워프의 모습을 신기한 듯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딘과 로제는 나란히 붙어 앉은 상태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딘이 가볍게 유리잔을 손가락으로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팔키르와 괴짜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아딘은 로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로제가 원탁 전체에 걸쳐 통역 마법을 걸었다.
순간적으로 웅장한 마력의 흐름에 괴짜 마법사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을 해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이내 감탄한 얼굴로 로제를 바라보았다.
아딘이 입을 열었다.
“우선 이 자리에 이렇게 모두가 모인 것은 정말 많은 수고가 뒤따랐기에 가능했음을 알리는 바요.”
아딘의 말에 괴짜 마법사들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이미 아딘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아딘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따를 만한 대상은 로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아딘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혁명중앙위원회 의장으로서 이 자리에 앉은 로제 콘스탄틴을 정보총괄위원으로 임명하고, 드워프 대표 팔키르를 기술총괄위원으로 임명할 생각이오.”
그리고 아딘은 찬찬히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혁명정부가 그 역할을 다하는 날까지는, 정보총괄위원과 기술총괄위원이 함께하는 정보기술융합소위원회를 구성할 것이오.”
그 말에 마법사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줄여서 융합소위로 불릴 이 위원회는 내가 직접 의장을 맡을 생각이오. 다만, 실질적으로 소위를 이끄는 건 로제 콘스탄틴과 팔키르 이 둘이 될 것이오.”
그러면서 아딘은 그들에게 융합소위가 할 일에 대해 알려 주었다.
“융합소위는 여기 계시는 스물의 마법사 여러분들과 앞으로 벨로디나의 일원이 될 드워프들이 손을 잡고 첩보와 전쟁 그리고 농사와 경제에 필요한 물건을 개발하는, 그런 역할을 할 것이오.”
개발이라는 말에 마법사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로지 팔키르만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마법사 중 하나가 손을 들어 물었다.
“그 개발이라는 것에 왜 우리가 필요한 거요?”
그 말에 아딘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여러분들이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이어온 연구가 하나같이 기상천외한 것들이니까.”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