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혁명 (1)
아딘이 잠에서 깼을 때, 그에게는 보고가 2개 들어왔다.
하나는 로제로부터 들어온 보고였고, 다른 하나는 빅토르 다비도프로부터 들어온 보고였다.
“오라버니. 콘스탄티노바는 확실하게 장악했어요.”
“전하, 말씀하신대로 제니스 공화국 시민들을 따로 억류해 두었습니다.”
수정구슬을 통해 보고를 들은 아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르보프.”
“네, 하명하시옵소서, 전하.”
“이제 끝낼 때가 되지 않았나?”
아딘은 안톤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 피를 흘리기보단 외교 협상 도구를 확보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 이 말이야.”
그리고 그것이 아딘이 직접, 유리 콘스탄틴이 쓰고 있던 벨로디나 국왕 왕관을 들고 드라기 상단 소속 정규 용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결정을 내리게끔 했다.
“항복하라. 혁명 전쟁은 벨로디나 민중의 승리로 끝났다.”
신물의 힘을 받아,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아딘의 목소리는 왕궁 사방에 주둔하며 바짝 긴장한 채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용병들에게 똑똑히 전달됐다.
“항복하는 자, 정당한 포로 대우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자, 민중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아딘의 선포에 용병들은 갈등했다.
그들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해외에 파병된 용병 같은 경우, 전쟁이 끝날 것 같으면 전력 보존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행동해야 했다.
“끝났어.”
“이 이상 우리가 피를 흘릴 이유는 없어.”
용병들은 하나둘 무기를 거두기 시작했다.
왕궁 바깥, 콘스탄티노바 일대는 이미 민중 반란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곳에 있던 콘테 상단과 루비오 상단의 용병은 처참하게 죽거나,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구타를 경험한 끝에 포로가 됐다.
왕궁 내부에서 중심을 지켜야 할 국왕은 사로잡혔고, 실질적으로 벨로디나를 조종하던 고문은 목이 잘렸다.
이 상황에서 용병들이 선택할 길은 아딘의 말에 따라 항복하는 것뿐이었다.
‘됐어.’
아딘은 활짝 웃었다.
“르보프.”
아딘은 지상에서 10명의 습격단원들과 대기 중이던 안톤을 불렀다.
“왕궁 남문을 열어라. 그리고 혁명군만 우선적으로 들어와 용병의 무장 해제와 생포를 돕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아딘의 말대로 안톤은 습격단원들과 함께 남문으로 향했다.
그들이 남문으로 향하는 것을, 용병들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곧 남문이 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천 명의 쿠만족 전사들이 불카르 아시오게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섰다.
“항복한 자들을 모두 생포하라. 그리고 예우를 다해 수용소로 안내하라.”
그들을 향해 아딘은 허공에서 쿠만어로 명령했다.
‘허.’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불카르 아시오게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무슨 신의 전사야, 뭐야? 저 연출은 무엇을 위한 거야?’
불카르 아시오게는 황당해하면서도 일단 할 일을 했다.
곧 1천 명의 쿠만족 전사들이 5천여 명의 드라기 상단 정규 용병들을 생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허공에서 바라보던 아딘은 이내 시선을 콘스탄티노바 전체로 돌렸다.
여기저기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러나 큰 파괴 행위는 보이지 않는 벨로디나의 수도를 바라보며 아딘은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껴야만 했다.
‘드디어…… 드디어…….’
광명력 993년 4월 15일.
마침내 아딘과 혁명군은 수도 콘스탄티노바를 점령했다.
* * *
“뭐?”
크리미아 주둔 용병대 총괄대장 에이브 제퍼슨은 굳은 표정으로 정탐병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인가?”
정탐병은 숨을 몰아 쉬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사, 사실입니다. 코, 콘스탄티노바가 적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에이브 제퍼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곳에 있던 용병들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일단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허어…… 어떻게 이런…….”
에이브 제퍼슨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적들의 움직임은?”
“일단 콘스탄티노바를 점령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 알겠다. 계속해서 북쪽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도록.”
“네.”
에이브 제퍼슨은 정탐병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곤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에이브 제퍼슨은 이내 고개를 들고 고함쳤다.
“부관! 부관!”
곧 문이 열리며 부관이 들어왔다.
“본국에서는? 별다른 전언은 없고?”
“네, 위치를 사수하라는 말만 반복될 뿐입니다.”
“하…… 위치 사수…… 말이 위치 사수지…… 그래. 일단 알겠다. 나가 봐.”
부관마저 내보내고 에이브 제퍼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바가 민중 반란군의 손에 떨어졌다면, 왕궁이라고 무사하진 않겠지. 더구나 본국에서 지금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걸 보면 고문이 죽었거나 사로잡혔단 거겠지. 고문이 잡혔다면 당연히 왕도 잡혔을 거고.’
에이브 제퍼슨은 고민했다.
현장 용병 총지휘관으로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그의 고민은 길었다.
그러나 긴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확고했다.
“부관!”
그의 부름에 부관이 들어왔다.
그는 부관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크리미아 주둔군 전체에 명령하라. 철군을 준비하라고.”
부관은 살짝 떨리는 눈으로 에이브 제퍼슨을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그 명령을 받들었다.
‘재정비해서 다시 쳐들어오든, 아니면 이대로 벨로디나에서 완전히 손을 떼든, 일단 지금은 크리미아에 남은 병력이라도 유지해서 철군하는 게 제일 중요해.’
그렇게 상식적인 판단을 내린 에이브 제퍼슨은 곧 자리에 앉아 깃펜에 잉크를 묻혀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서신의 내용은 자신의 결정과 그에 대한 이유의 간결한 나열이었다.
‘전쟁은 졌어. 공화국은 벨로디나 괴뢰화에 실패했고.’
서신을 쓰다말고 에이브 제퍼슨은 손을 멈췄다.
‘벨로디나가 공화국의 손에서 벗어난다면, 공화국이 벨로디나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물러난다면…… 앞으로 세계의 질서는…….’
그러다 이내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곤 서신을 마저 썼다.
‘이건 뭐…… 3대 상단 총수들이 알아서 하곘지. 내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야.’
* * *
‘됐어!’
겨울궁전 서재.
그곳에서 두루마리를 통해 크리미아 상황을 살피던 아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루마리에서 보이는 용병들의 움직임은 그들의 철군이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성공이야.’
아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공했어.’
그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창 밖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저녁 바람에 휘날리는 혁명기가 들어왔다.
‘도박이 성공한 거야.’
아딘은 그대로 청틀을 잡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박.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쿠만족 전사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카판족 궁기병이 아무리 날래다지만, 1만도 되지 않는 숫자로 5만에 이르는 제니스 공화국 용병을 상대로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
그마저도 카판족 같은 경우에는 족장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뿔뿔이 흩어지면서 규모는 더 줄어들었다.
빅토르 다비도프의 사조직 체르노비치와 그들이 만들어낸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단기간에 엄청난 숫자의 민중 봉기를 가능케하긴 했지만, 민중 봉기는 그야말로 민중 봉기일 뿐이었다.
일부 경보병 수준의 민병대를 제외한 민중 반란군의 무장 수준은 무장이라 부르기도 처참했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괴뢰화 1년 만에 어마어마한 적자를 내며 공화국의 재정에 부담을 주는 벨로디나 왕국의 경제력과 그것을 두고 고민하던 제니스 공화국의 지도자들.
그들의 고뇌가 가장 큰 변수였다.
그리고 아딘은 그 변수와 자신의 힘 그리고 로제의 마법을 두고 고심한 끝에 승부를 걸었다.
그 결과 아딘은 승리했다.
그를 잡아다 고문하고 죽이려 했던 유리 콘스탄틴은 붙잡혀 가을 궁전에 왕후와 함께 유폐됐다.
크리미아를 비롯한 남부 지방을 제외한 벨로디나 주요 거점에 혁명기가 꽂혔다.
제니스 공화국의 용병들은 대다수가 죽었거나 사로잡혀 외교 도구로써 쓰임 받길 기다리고 있다.
혁명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1차적으로는 제니스 공화국이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다.’
비록 적자를 봤다곤 하지만 벨로디나 왕국 북부에서 생산되는 자원은 분명 그들에게 매력적인 것이었다.
제니스는 분명 이것에 대한 권리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제니스가 전열을 재정비해서 재침공을 해올 수도 있어. 괴뢰국에서 보호국 정도로 격하시킬 생각을 하고 자치권을 부여할 계획을 짠다면, 충분히 그런 행동을 하고도 남겠지.’
그것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그다음은 경제였다.
‘문제는 식량이야. 당장에야 군량미를 풀어서 어느 정도 버티게 한다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해.’
농경의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까진 부족한 식량을 국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문제는 당장 수입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
‘게마인샤프트의 소국들한테 수입해봐야 물량의 한계가 명확해. 샤펠 제국이나 슈드 자치령은 너무 오래 걸리는데다 그들이 순순히 수출해 줄지도 의문이야.’
결국 그가 수입해야 할 곳은 딱 정해져 있었다.
‘제니스 공화국.’
문제는 제니스 공화국이 절대 그것을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으리란 것.
‘식량을 무기로 유리한 조건을 따낼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혁명은 아무 의미가 없게 돼.’
혁명의 기둥은 아딘과 로제 그리고 7천에 이르는 쿠만족 용병이었다.
하지만 그 기둥이 세워진 주춧돌은 이 나라의 굶주리고 억압받던 백성이었다.
‘혁명 초기가 가장 힘든 건, 프랑스에서도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확인이 됐지.’
실제 역사적 사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혁명 초기는 힘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리 아딘이 혼란을 방지할 시스템을 구상했다 하더라도, 막상 그것이 현실에 적용이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당장에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니스가 식량을 무기로 아딘을 압박한다면, 더 나아가 혁명 자체를 와해시킬 조건들을 요구한다면, 결국 아딘이 꿈꾸었던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될 터였다.
‘이래서 사람은 업보가 중요해. 항상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업을 쌓아야지. 그래야 나중에 그게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도움이 돼 돌아오니까.’
아딘은 씩 웃으며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곤 가만히 두루마리를 바라보며 한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떠올렸다.
곧 두루마리 위에 떠 있던 크리미아의 용병 배치도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여인과 그 여인이 속한 가문의 정보가 두루마리 위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토리 잭슨. 그리고 잭슨 가문.’
아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들이라면…… 충분히 나한테 도움을 줄 수 있겠지.’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잭슨 가문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정치적 지위, 경제적 능력, 유통망 등등.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파악이 끝났을 때쯤, 아딘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됐어. 충분해. 이만하면 초반의 위기는 충분히 넘길 수 있어.’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