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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22화 (122/175)

122 종단의 장로 (3)

“허억…… 허억……”

로이가 가루가 돼 흩어졌다.

아딘은 거칠게 호흡하며 벽에 박힌 불멸의 검을 가만히 바라봤다.

‘뭐지?’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 전 로이와의 대결에서 그의 뇌리를 장악했을 때, 별안간 거대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어쨌건 지금은 이렇게 숨을 쉬고, 모든 감각을 느끼며 살고 있다지만, 이 세계는 어디까지나 김현수가 창조한 세계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김현수의 창조물이자 자식이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김현수의 의지와 무관하게 끼어든 것들이 창조주를 몰라보고 덤벼들고 있다.

그 사실이 아딘을 분노케했다.

그리고 그 분노가 그의 전신을 두르는 신물들과 감응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했다.

문제는 그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여 로이를 소멸시킨 후였다.

“후우…….”

긴 심호흡을 아딘이 내뱉자 불칸의 갑옷이 해체됐다.

그는 힘겹게 검을 뽑아낸 후 칼집에 넣었다.

그리곤 그대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저, 전하!”

때맞춰 안톤이 그의 서재로 들어왔다.

로이가 소멸되던 순간, 서재에서 뿜어져 나간 강한 에너지의 흐름이 소드 마스터인 그의 감각에 잡혔기에 찾아온 것이었다.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바닥에 쓰러진 아딘을 안톤은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후…… 피곤하구나.”

“치, 침소로 안내하겠사옵니다.”

안톤의 말에 아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날 저기 의자에 앉혀다오. 이대로 침소로 가다가 혹여나 다른 이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좋은 결과가 도출되진 않을 터이니.”

“전하…… 알겠사옵니다.”

안톤은 결국 아딘을 의자에 앉혔다.

“물을 대령하겠사옵니다.”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안톤에게 한 가지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체력이 회복되기 전까진, 그대만 이곳에 출입을 허하노라.”

“알겠사옵니다.”

안톤은 밖으로 나갔다.

아딘은 가만히 의자에 몸을 누인 채 천장을 바라봤다.

‘죽기 직전에 초인적인 힘이라도 나온 걸까? 아니면 신물이 어떻게든 날 지켜주려고?’

묵시록 종단부터 엘프숲의 뱀 인간 그리고 자신이 조금 전 이끌어낸 초인적인 힘에 이르기까지.

‘내가 짠 설정과 무관한 게 너무 많아.’

아딘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안톤이 물을 들고 들어왔을 때, 아딘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찬탈자 유리 콘스탄틴과 그의 음란한 배필을 우리가 확보한 상태다. 바깥 사정도 그리 나쁘진 않을 터이니, 잠시 주무시게 해 두는 것도 좋겠지.’

안톤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서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입구에 서서 호위를 서기 시작했다.

* * *

“커헉-!”

[쨍그랑-!]

“폐, 폐하!”

광명력 993년 4월 14일 늦은 밤.

샤펠 제국 수도 아퐁의 중심에 자리한 황궁.

그곳의 소연회장에서는 황제 샤를 11세와 그 신하들 그리고 신하들의 식구들이 조그만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북부의 혼란과 여전히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동부의 민란으로 인해 시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신료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충성심을 모으기 위한 방안으로서 열린 파티는, 그러나 별안간 샤를 11세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림으로서 분위기가 잔처럼 산산조각났다.

“어, 어서! 어서 궁정 사제를! 궁정 사제를 모셔오거라!”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신하들은 모두다 황제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샤를 11세의 주변 2m 근방에서나 서성일 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진 못했다.

‘독살 시도인가?’

‘누가 감히 황제를?’

‘자칫 손이라도 잘못 댔다간 괜한 의심을 살 수가 있어.’

신료들이 그렇게 거리를 둔 채 안타까움과 놀라움만 표현하는 사이 샤를 11세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에, 엘드랄! 엘드랄이 어찌하여…… 어찌하여!’

심장을 찌르는 통증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본체, 아이드와 연결된 정령 엘드랄의 영원한 소멸에서 오는 강한 영적 타격의 육체적 현현이었다.

‘누, 누가! 누가 엘드랄을…… 정령의 정수를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천계의 신들조차도 할 수 없는 게 정수의 파괴이거늘!’

그렇게 샤를 11세가 10분 간 바닥에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떠는 사이, 파티에 참여하지 않고 홀로 황궁 내에 자리한 성전에서 기도하던 궁정 사제가 근위병의 손에 이끌려 소연회장에 도착했다.

“다들 왜 그러고 계시오?”

궁정 사제는 거리를 둔 채 발만 동동 굴리는 귀족들을 황당하단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리와 보시오.”

귀족들의 재촉에 궁정 사제는 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샤를 11세 앞에 섰다.

그리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곧장 기도를 시작했다.

“은혜로우신 천계의 지존자들이시여…….”

그의 기도와 함께 그의 전신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소연회장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끄아아아악-!”

그러나 그의 신성력이 샤를 11세에게 닿자마자 샤를 11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끄으으아아아악-!”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뎅굴뎅굴 구르는 샤를 11세의 모습에 귀족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침만 꼴깍 삼켰다.

“끄으으으…… 당장 이 자식 치워!”

샤를 11세가 고통 와중에 비명처럼 근위병들에게 명했다.

근위병들은 곧장 궁정 사제의 양팔을 붙들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뭣들 하는 게요!”

궁정 사제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근위병들을 바라봤다.

“폐하께서 그대를 치우라고 하시었소.”

“지금 폐하의 치료가 중요한 것 아니오?”

그러면서 궁정 사제는 샤를 11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여전히 남아 있던 신성력이 그의 영안을 잠시 뜨게끔 해 주었다.

‘헉-!’

영안은 그에게 육안으론 볼 수 없었던 각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샤를 11세의 본질은, 다른 신료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등한 존재의 정수였다.

‘도, 도대체 폐하는…….’

그가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다시 영안이 닫혔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떨리는 고차원적 존재의 영적 정수가 아닌 고통에 찡그리며 신음하는 샤를 11세의 얼굴이 인식됐다.

“침소로…… 침소로 날…… 크으윽…… 날 이끌거라…….”

샤를 11세의 명령에 다른 근위병들이 그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궁정 사제는 자기 팔을 잡은 근위병들의 억센 손을 뿌리친 후 멍한 눈으로 샤를 11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 도대체 황제 폐하의 몸에…… 무엇이 들어있단 말인가?’

그가 본 것은 분명 인간 이상의 고등한 존재였다.

문제는 그 고등한 존재라는 게 꼭 천계의 선한 영들, 즉 천사들이나 신들이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궁정 사제가 영안으로 봤던, 샤를 11세 내부에 있던 고등한 존재는, 선한 그 무언가와는 결이 다른 본질을 지니고 있었다.

‘경전…… 선지자께서 남긴 경전…… 거기에 답이 있을 수 있다.’

궁정 사제는 서둘러 성전으로 되돌아갔다.

이 모습을 지켜본 귀족들은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파티는 자연스럽게 해산됐다.

‘설마…… 설마 엘드랄이…… 아딘 콘스탄틴에게?’

근위병들의 부축을 받아 침소에 도착한 샤를 11세는 옷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였다.

근위병들은 그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황제가 손을 휘휘 저으며 나가라 명하자 그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근위병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가 된 샤를 11세는 눈을 감은 채 엘드랄의 마지막 기억과 접촉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영혼의 정수가 사라진 엘드랄의 존재는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진 상태였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엘드랄…… 크으윽…….’

실로 오랜만에 샤를 11세, 아니 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타락한 신 아이드는 슬픔과 상실감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 * *

4월 15일 아침.

콘스탄티노바를 동방에서 떠오른 태양이 비추었다.

태양 아래 콘스탄티노바의 모습은, 유혈이 낭자한 시체들의 무덤이었다.

“크흑……”

“아악-!”

“후, 후퇴…… 컥-!”

그리고 그 위에선 여전히 살아남은 인간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젠장…… 이건…… 이건…….”

[서걱-!]

왕궁과 귀족 거주지 사이에 자리한 조그만 호수.

그곳에 놓인 다리 위에서 몰려드는 민병대를 칼로 베어가던 콘테 상단 소속 정규 용병은 홀로 남은 자신의 처지를 도저히 수용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이겨…… 이건…… 이건…… 젠장…… 이건…….”

[서걱-!]

이미 그의 근육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가 휘두르는 칼에는 여전히 힘이 담겨 있었지만, 처음과 같은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민병대의 조악한 전투력은 그런 그의 검에도 쉽게 목숨을 내주곤 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했음을 용병은 느끼고 있었다.

“으잇-!”

그 증거로 조금 전 그가 휘두른 두 차례의 칼질 중 한 번은 정확히 죽창을 든 민병대의 목을 베었지만, 다른 한 번은 도끼를 든 민병대의 머리카락만 베었다.

“이야압-!”

도끼를 든 민병대는 용감하게 용병을 향해 돌진했다.

용병에겐 그것을 막을 힘이 없었다.

그대로 민병대는 용병을 덮친 상태에서 도끼로 사정없이 그의 목과 안면을 내리 찍었다.

결국 용병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버렸다.

“우, 우와아아아-!”

도끼를 든 민병대원은 자신의 얼굴에 튄 용병의 피에 묘한 흥분과 광기를 느끼며 앞으로 달려갔다.

[피흉-!]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의 미간을 뚫었고, 그는 그대로 목이 꺾인 채 뇌수와 피를 흘리며 죽어 버렸다.

“젠장-!”

왕궁 남문쪽 망루에서 장궁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민병대의 머리를 꿰뚫은 드라기 상단 소속 정규 용병은 이를 갈았다.

“이미 끝났어.”

그는 확신했다.

이곳에까지 도끼를 든 허섭한 민병대원이 들어올 정도면 이미 콘스탄티노바는 민중 반란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라고.

“이젠 탈출도 불가능해.”

그는 고민했다.

그가 이끄는 남문 경비대원들을 이끌고 별도로 탈출을 해볼지, 아니면 투항하고 민병대에게 문을 열어 버릴지.

‘크리미아의 군대가 올라온들 이미 그때면 이곳도…….’

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투항하라-!”

별안간 뒤편에서 제니스어로 투항하란 목소리가 엄청난 음파와 함께 왕궁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을 그는 포착했다.

그는 곧장 뒤로 돌았다.

“뭐, 뭐야 저거!”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허공에 뜬 황금 갑옷과 그의 손에 들린 벨로디나 국왕의 왕관을.

“찬탈자 유리 콘스탄틴과 그의 음탕한 여인이 내 손에 있다. 그리고 벨로디나 왕국의 위엄과 자원을 착취하는데 앞장서던 자 제임스 틸러의 목 또한 내게 있다.”

“뭐, 뭐?”

용병은 떨리는 눈으로 동방에서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갑옷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은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살 것이고, 저항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그리고 동시간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용병들을 향해, 아딘은 투항을 명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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