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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21화 (121/175)

121 종단의 장로 (2)

한동안 아딘과 로이는 서로를 지켜보기만 했다.

‘빈틈이 없어. 굉장한 고수다. 괜히 아르게 벤바사가 죽은 게 아니야.’

아딘은 숨죽인 채 칼끝으로 로이를 가리키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단검을 쥔 그의 몸 어디에서도 아딘은 빈틈을 찾지 못했다.

‘쉽게 돌파하긴 어렵겠어.’

로이도 마찬가지로 쉽게 움직이진 못했다.

아딘의 자세에선 약간 허술한 면이 보이긴 했지만, 그의 전신을 뒤덮은 불칸의 갑옷은 그런 허점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아이드 님께서는 싸우지 말라 하셨지만……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로이는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아딘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러더니 빠르게 허공으로 뛰어 올라 그대로 샹들리에를 칼로 갈라버렸다.

커다란 샹들리에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충격파로 거기 꽂혀 있던 촛불들이 모두 꺼져 버렸다.

촛불들이 꺼짐과 동시에 그 불빛을 확대시켜주던 보석들도 빛을 잃었다.

곧 서재는 어둠에 잠겼고, 그 어둠 속으로 로이는 몸을 숨겼다.

[화악-!]

어둠은 곧 신물이 내뿜는 황금빛에 밀려났다.

황금빛은 마치 태양처럼 서재 전체를 비춰주었다.

하지만 애초에 로이가 노린 것은 어둠 속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뒤!’

아딘은 그대로 앞으로 세 발짝 움직인 후 몸을 뒤로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까앙-!]

불멸의 검과 로이의 단검이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혔다.

로이는 불멸의 검을 흘리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그의 단검은 큰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굉장히 놀라운 순간적인 움직임이었지만 아딘은 거기에 놀라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아딘의 공격을 흘린 로이가 곧장 그를 향해 칼을 휘둘러 왔기 때문이었다.

[깡-! 깡-! 깡-!]

순식간에 서른 번의 공방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한 번, 한 번의 공방이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기에, 그 소리가 중첩되어 전체적으로 충돌음은 단 세 차례만 허공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신물의 힘만 가지고서 오만에 잠기진 않은 모양이군. 기본적으로 검술에 대한 조예가 있어.”

마치 평가하듯 이야기하는 로이의 말투에 아딘은 기분이 나쁠 법도 했건만, 그럴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아딘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로이를 바라봤다.

‘난 저런 놈을 설정해 둔 적이 없는데?’

김현수는 소설 속에서 몇 명의 강자들을 설정해 두었다.

그들은 모두 각 국가의 보배 취급을 받는 소드마스터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신물의 힘과 견줄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이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로이라는 인간을 만든 적은 있었나?’

무엇보다도 김현수는 샤펠 제국에 대해 설정을 할 때, 로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만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서, 로이라는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마음껏 칼을 휘두르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이드 님께선 별 걱정을 다 하셨어.’

로이는 당혹스런 표정의 아딘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신물이 강하긴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인간의 그릇이 유한한 이상, 결국 나를 능가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야.’

황제 샤를 드 퐁피두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로이는 아딘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인 채 싸움을 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몇 차례의 충돌 끝에 로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이기고, 저 인간이 지닌 모든 신물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지난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한 감정이 떠올랐다.

‘정령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될 수 있겠지.’

그 욕망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로이는 빠르게 아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더욱 짙어진 검기가 넘실거리는 단검으로 불칸의 갑옷이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곳, 즉 얼굴 눈구멍으로 칼을 찔러 넣었다.

아딘은 그대로 검을 휘둘러 그의 공격을 막았다.

다시 수십 차례 공방이 오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탐색전이 아니었던 만큼, 로이의 공격은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아딘은 가까스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커다란 빈틈이 생기는 것만큼은 막지 못했다.

[까앙-!]

그대로 로이는 훤히 드러난 아딘의 복부를 발로 걷어 찼다.

아딘은 그대로 뒤로 쭉 밀려났고, 그 과정에서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이 갈라졌다.

“커헉-!”

갑옷이 보호해 줬다지만, 상당한 충격이 아딘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아딘은 제빨리 검을 고쳐 잡았지만, 로이가 한발 더 빨랐다.

[꽈앙-!]

로이는 그대로 아딘의 복부에 두 번째 발길질을 가했다.

아딘은 그대로 뒤로 쭉 밀려나 결국 대리석으로 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신물로 온몸을 도배했다지만, 결국 너도 한낱 인간에 불과해.”

로이의 말에 아딘은 당황했다.

‘신물의 존재를 안다고?’

그의 설정상 신물의 존재를 아는 이는 불멸자 샤푸르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로이의 입에서 신물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묵시록 종단…… 그래…… 그자들도 알고 있었지. 신물의 존재를.’

아딘은 검을 고쳐쥔 채 물었다.

“묵시록 종단에서 나왔나?”

로이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너희는 뭐 하는 것들이지?”

“멍청한 두 전도자 놈들에게 들었지 않나?”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길래…… 뭐 하는 놈들이길래…… 존재하는 거지?”

아딘의 질문이 이상했지만, 로이는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그는 곧 죽을 목숨이었고, 죽을 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대체로 논리가 없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내가 만든 세상인데…… 도대체 왜…… 왜…….”

“응?”

별안간 로이는 굉장한 기이함을 느껴야 했다.

아딘의 몸 주변으로 강한 황금빛이 차오르기 시작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뭐, 뭐야? 이 힘은?’

단순히 신물의 힘이라기에는 그 이상의 에너지가 아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로이의 얼굴에서 여유와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바짝 긴장한 채 단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곤 떨리는 눈으로 아딘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도망가야 하나?’

지금이라면 도망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아직 그와 아딘 사이에는 거리가 제법 있었고, 아딘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부들거리고 있는 이때 빠르게 창문을 통해 탈출을 감행한다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야.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하지만 로이의 욕망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로이는 뒤로 도망가는 대신 아딘과의 거리를 좁히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내가 만들지도 않은 것들이 왜 내가 만든 세계에서 깽판을 치고 있어!”

아딘의 입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분노에 가득찬 그의 포효와 함께 순간 강한 황금빛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딘은 그대로 로이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어떠한 변칙도 없이 정직한 직선 찌르기였다.

하지만 그 찌르기에 담긴 거대한 힘은 마치 파도와도 같아서 로이의 숨을 막히게 했다.

‘막을 수 없다!’

로이는 그대로 몸을 바닥에 굴리며 검격을 피했다.

하지만 뒤이어 아딘의 검이 바닥을 구르는 그를 노리며 휘둘러졌다.

자신의 몸을 베어버릴 기세로 다가오는 검을 로이는 다시 몸을 바닥에서 뒤집어 가며 가까스로 피했다.

이번에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했기에, 아딘의 검은 로이의 머리카락을 일부 잘라버렸다.

‘도, 도대체 무슨!’

로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가까스로 일어났다.

그리곤 아딘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단검을 쥔 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힘이 강해질 수 있지?’

하지만 로이가 고민할 틈도 없이 다시 아딘의 공격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엄청난 잔상과 함께 아딘의 찌르기 수십 개가 로이의 전신을 노리고 들어왔다.

‘가짜 공격이 하나도 없어?!’

수십 개의 잔상을 남기는 공격들, 그 잔상들 하나하나가 실제 공격임을 파악한 로이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빠르게 단검을 휘둘러 그 모든 공격들을 흘렸다.

하지만 그중 몇 개는 제대로 흘리지 못했고, 제대로 흘리지 못한 검격은 그대로 로이의 옆구리와 팔,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커흑…….”

로이는 갈라지려는 옆구리를 부여 잡은 채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탈출해야…….’

하지만 그가 탈출을 시도하기도 전에 아딘의 추가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그것을 흘릴 수도 없어서 로이는 몸을 피해야만 했다.

‘아, 안 돼…… 이대로 가다간…….’

그렇게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로이는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대리석으로 된 벽이 그의 등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젠장……’

로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딘을 바라봤다.

이미 팔과 허벅지 그리고 옆구리의 출혈이 너무 심했기에, 더 이상 빠르게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갈라진 옆구리 사이에서 내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움직임 자체를 둔화시켰다.

‘젠장…… 이 몸뚱아리도 여기서 결국 죽게 되는 건가?’

로이는 반쯤 체념한 채 가만히 아딘을 바라봤다.

‘아이드 님께는 뭐라 변명하지?’

어차피 죽더라도 육신이 죽는 것.

영혼은 살아남는 만큼, 로이는 자신의 영혼을 샤를 드 퐁피두가 거두어 주리라 믿었다.

‘어차피 한 번 바꿔야 할 몸이긴 했어. 내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긴 하지만 이대로…….’

[푸욱-!]

그대로 불멸의 검이 로이의 심장을 찔렀다.

심장을 찌르고도 검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검은 대리석 벽까지 뚫었고, 로이의 심장에 검이 끝까지 박혔다.

“커헉-!”

그 순간, 로이는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이, 이, 이, 이……’

불멸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황금빛.

그것은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오로지 신들만이 가질 수 있다는 거룩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 거룩한 힘은 단순히 로이의 육신뿐 아니라, 그의 영혼, 정령 엘드랄의 정수까지 찔러 버렸다.

‘아, 안 돼…….’

로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봤다.

‘이, 이대로 소멸된다고?’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영혼의 정수까지 소멸돼 가는 것을 느끼며 로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런 식으론 아니야. 도대체…… 왜……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로이는 입을 벌리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다.

“내 세계에서 당장 꺼져!”

그런 로이에게 아딘은 한국어로 소리질렀다.

그 순간, 강한 황금빛이 아딘의 전신에서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그 빛은 순식간에 로이를 뒤덮었다.

그 빛 속에서 로이는 육신과 영혼의 정수 모두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이렇게……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아이드 님!’

마지막으로 로이는 간절하게 자신의 주인을 불렀다.

그러나 저 멀리 서쪽 아퐁의 황궁에 있는 주인의 반응은 그가 어떻게 접할 수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대로 로이는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남긴 채 황금빛 속에서 육신과 영혼의 정수 모두가 가루가 돼 흩어져 버렸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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