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콘스탄티노바 (4)
“거기 서!”
“저 새끼 잡아!”
“옆 골목에서 더 몰려오고 있어!”
“썅!”
콘스탄티노바는 아수라장이었다.
서문을 뚫고 들어온 혁명군과 성 내부에서 봉기를 일으킨 체르노비치, 그리고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 분노한 민중 반란군까지.
그곳을 지키는 콘테 상단과 루비오 상단의 용병들은 도망치는 반란군을 쫓다가도 이내 몰려든 반란군에 쫓기게 되는 신세가 되길 반복했다.
“야, 조심히 들어! 흠집이라도 나면 장물로 팔기도 어려워 져!”
“그럼 네가 거들던가! 아가리만 놀리면서 말이 많아 인간이!”
혼란한 와중에 용병도, 경비도, 하인도 그리고 주인도 모두 도망쳐버린 어느 귀족의 저택.
그곳을 차지한 것은 전문적으로 남의 집을 터는 도둑이었다.
“일단 갖다가 한 몇 달 숨겨두면 나중에 처리하기 편해지겠지?”
수레에 황금 신상을 비롯한 수많은 공예품을 싣고서 도둑들은 천으로 그것들을 가렸다.
“이런 기회, 다시는 안 온다. 무조건 뽕을 뽑아야지. 흐헤헤헤.”
“대충 이거 정리하고 나면 조용히 시골로 떠나고 싶다. 시골에 가서 시골년들을 갖다가 돈으로…….”
그렇게 두 도둑이 싱글벙글 미래를 계획하며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서려 할 때였다.
[뻐억-!]
저택 옆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일단의 무리가 느닷없이 그들을 향해 몽둥이 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정통으로 정수리를 맞은 수레를 끌던 도둑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고, 뒤에서 수레를 밀던 도둑은 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와 사타구니를 보호하며 최대한 목숨만은 부지하려 했다.
[뻐억-!]
그러나 빈틈은 생기기 마련이었고, 결국 그 도둑도 머리에 몽둥이를 맞고 죽어 버렸다.
“챙겼냐?”
“네, 형님.”
“그래. 가자.”
순식간에 두 도둑을 처리한 여섯 명의 건달들은 수레 내부를 확인한 후 씩 미소를 지었다.
“이만하면 콘스탄티노바에서 나중에 사업체를 차려도 되겠습니다, 형님.”
“형님이 총수가 되시면 그 밑에 따까리들 관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임마, 니가 뭔데 한다 만다야? 내가 해야지.”
자기들끼리 떠들며 좋아라 하는 부하들에게 수레를 맡기고 건달 두목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을 주문했다.
“응?”
한참을 가던 와중에 건달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두 남자가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귀족인가?”
“귀족들이 옷을 저렇게 입었나?”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건달들은 저마다 연장을 꺼내 들었다.
두목은 칼을 꺼내 꽉 쥐면서 가만히 두 남자를 바라봤다.
그래도 두목이라고 어디서 본 건 있었기에, 그는 두 남자 중 한 남자의 복장이 제니스 공화국의 부유층이 즐겨 입는 복장임을 알아차렸다.
“야, 제니스 부자님들이시다.”
두목의 말에 건달들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거, 호박이 넝쿨…….”
그러나 그들의 웃음과 두목의 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풀썩-!]
순식간에 그들 사이로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리고 그림자가 반대편에서 두 남자의 모습으로 드러났을 때, 건달들은 목과 심장에서 피를 쏟아내며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바깥에선 거대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도둑질이나 하고…… 하여튼…….”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로이가 혀를 찼다.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제이크 로버츠는 살짝 떨면서 로이에게 말했다.
“사, 상황이 제니스 측에 그리 유리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귀족 거주지조차 이렇게 털리는 걸 보면…….”
“정규군도 아닌 용병이 민중 반란을 막아 봐야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
“이, 이곳을 지키는 용병은 그래도 3대 상단이 정성들여 키운 용병입니다. 근데도 이 정도로 통제가 안 된다는 건…….”
“그래 봐야 용병은 용병. 어디까지나 계약 내용대로만 움직이려 하고, 최대한 죽음을 피하려 드는 게 놈들이지.”
로이의 냉소적인 말에 제이크 로버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에 온 목적이 용병과 정규군의 수준 차이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었으니까.
“아딘 콘스탄틴의 위치는 파악이 되셨습니까?”
제이크 로버츠의 물음에 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왕궁으로 돌렸다.
“아딘 콘스탄틴이 왕궁에 있습니까?”
제이크 로버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로이를 바라봤다.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진다. 강한 힘이 느껴진다.”
“아, 아니…… 아딘 콘스탄틴이 왕궁에 있다는 건…… 만약 그가 왕을 사로잡았다면 이 전쟁은 사실상 끝난 건데…….”
제이크 로버츠의 혼잣말을 무시하고 로이는 가만히 왕궁을 바라봤다.
육안으론 볼 수 없지만, 인간 로이가 아닌 정령 엘드랄의 눈으로 그는 볼 수 있었다.
왕궁 여름 궁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신물의 힘을.
신물의 힘이 풍기는 가슴 뛰는 강렬한 에너지를.
떠나온 고향의 냄새를.
“가자.”
로이가 제이크 로버츠의 팔을 잡았다.
“자, 장로…….”
제이크 로버츠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아, 아딘……”
유리 콘스탄틴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딘을 불렀다.
아딘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냉소했다.
“조카들 둘 다 쳐 죽이고 왕이 되셨으면 왕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시든가, 이게 뭡니까?”
아딘의 말에 유리 콘스탄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면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일어나십시오.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아딘은 검끝을 유리 콘스탄틴을 향해 겨누었다.
“나는 그쪽처럼 혈육을 고문하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기도 하고, 복수한답시고 고문하고 그러는 스타일도 아니니까.”
그러면서 아딘은 나타샤를 바라봤다.
“저 여자는 주제에 국왕을 능멸한 것도 모자라 콘스탄틴 왕가에 메로네프의 더러운 씨를 뿌리는 데 일조한 년이라 몇 대 쥐어박아 줬습니다.”
아딘의 말에 순간 유리 콘스탄틴이 눈을 부릅떴다.
“어, 어, 어떻게 그걸……!”
기겁하는 유리 콘스탄틴을 향해 아딘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했잖습니까. 필요한 정보는 다 알고 있다고.”
그러면서 아딘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그렇지 고자가 왕후를 임신시켰다고 해버리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 정도로 권위가 없습니까?”
유리 콘스탄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일어나십시오. 마음 같아선 기절이라도 시켜서 끌고 가고 싶지만, 그래도 어쨌건 아버지의 동생인데 위신은 세워드려야지 않겠습니까?”
아딘의 말에 결국 유리 콘스탄틴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씁쓸한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며 말했다.
“꿈에서 형님이 나더러 그러더군. 곧 자기 아들이 날 찾아올 거라고 말이야.”
그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개꿈이라고 믿었는데…… 진짜 형님께서 날 찾아오셨던 거였어.”
아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투구 부분을 장착했다.
유리 콘스탄틴을 뒤에 둔 채 아딘은 다시 나타샤의 머리채와 제임스 틸러의 머리를 잡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 고문님!”
“차, 참모도 당했어!”
“뒤에 저거 왕 아니야?”
여름 궁전 국왕 침실에서 벗어나 1층 홀로 내려왔을 때, 때마침 문을 열고 나타난 용병들이 창 끝으로 아딘을 겨눈 채 그의 손에 잡힌 두 사람과 그의 뒤를 죄수처럼 따르는 유리 콘스탄틴을 확인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딘은 바닥에 나타샤와 제임스 틸러의 머리를 내려놓고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르보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야?”
그러면서 아딘은 용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100명에 이르는 용병들은 빠른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아딘을 보며 놀라면서도 빠르게 진을 구축했다.
외부를 창으로 두르고, 내부에서 칼과 활 등으로 아딘을 견제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보다 아딘이 그들 사이에 뛰어든 게 더 빨랐다.
“아아악-!”
“끄아아아-!”
“크헉-!”
검으로 베고, 찌르고.
주먹으로 치고, 손으로 뽑고.
어깨로 뭉게고 무릎으로 부수고.
그렇게 아딘은 빠르게 100명의 용병을 무력화시켰다.
“후, 후퇴! 후퇴!”
후미에 있던 5명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채 도망치면서 5분 간의 혈투는 끝났다.
아딘은 가만히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보았다.
곧, 불칸의 갑옷이 황금빛을 잠깐 내뿜었고, 외피에 묻어 있던 피와 붙어 있던 살점은 그대로 녹아 없어져 버렸다.
아딘은 다시 유리 콘스탄틴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아딘은 나타샤가 저 멀리 창문을 통해 도망하려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아아악-!”
아딘은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유리 콘스탄틴 앞으로 끌고 왔다.
그리곤 그대로 나타샤의 양쪽 발목을 짓밟아 버렸다.
“아아아아아악-!”
[뻐억-!]
발목이 짓이겨진 채 비명을 지르던 나타샤는 아딘이 휘두른 주먹에 턱을 맞고 그대로 기절했다.
“이 애는 무례하기도 하고 또 심문할 것도 있고 해서 살려뒀는데, 도망을 치려고 하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아딘은 유리 콘스탄틴에게 말했다.
“혹여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쪽도 도망을 시도한다면 이렇게 될 겁니다. 제가 바깥에서 만난 동생이 있는데, 걔가 사람 치료를 되게 잘합니다. 죽이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원상복구시키니, 그걸 염두에 두십시오.”
아딘의 경고에 유리 콘스탄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딘은 그대로 유리 콘스탄틴과 나타샤를 끌고 여름 궁전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주변이 시끄러운 가운데 어디선가 치솟은 불길이 보였다.
“부, 불이…….”
유리 콘스탄틴은 여름 궁전 밖에서 왕궁 남문 일대에 화재가 난 것을 확인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란이 발생한 만큼 화재와 약탈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건……”
아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아딘이 도착한 곳은 겨울 궁전이었다.
그곳에 자리한 거대한 홀에 들어서자마자 아딘은 자신을 반기는 31인의 습격단원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유리 콘스탄틴!”
“더러운 찬탈자!”
게 중 더러는 유리 콘스탄틴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아딘은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킨 후 바닥에다 제임스 틸러의 머리와 나타샤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유리 콘스탄틴에게 손짓하여 그가 바닥에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체를 이불로만 가린 왕후의 곁으로 가게끔 했다.
“르보프는 아직 오지 않았나?”
아딘이 습격단원들에게 물었다.
“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사옵니다, 전하.”
“흐음…… 아직 안 끝난 건가?”
아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겨울 궁전 문이 열리며 안톤이 나타났다.
“때마침 오는군.”
아딘은 안톤을 보며 웃었다.
안톤은 그에게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예를 표한 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한 차례 유리 콘스탄틴을 힐끔거린 후 아딘에게 보고했다.
“전하께서 명하신대로 총대주교의 홀을 확보했사옵니다.”
그러면서 안톤은 품에서 50cm가량 되는 총대주교의 홀을 꺼내 아딘에게 건넸다.
아딘은 그것을 받아들고서 씩 웃었다.
“됐어. 이것만 있으면, 총대주교의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겠어.”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