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콘스탄티노바 (1)
‘콘스탄티노바를 향한 본격적인 공략이 시작되면, 실질적으로 우리는 이때까지 가지고 있던 이점을 모두 상실해 버린다고 봐도 좋아.’
현재 콘스탄티노바 공략에 동원 가능한 혁명군 숫자는 5천 남짓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바에는 왕궁에 5천 그리고 외곽에 1만의 용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아무리 쿠만족 용병이 용맹하고 전투에 타고난 종자들이라 한들, 공성전에서 수적 우위에 있는 수비 진영을 상대하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물론 혁명군에는 제니스 공화국 용병 진영에는 없는 전략 병기들이 있었다.
삼대 신물을 모두 모으고, 그 힘을 상당히 흡수한 아딘이라든가 대마법사로 각성한 로제, 그 외 소드 마스터 안톤과 다리아.
그들의 존재감은 하나하나가 분명 혁명군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콘스탄티노바에서 언제든 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돼 있는 체르노비치의 조직원들과 분노하고 굶주린 민중의 존재는 마냥 혁명군이 외연적 숫자의 부족함만으로 공성전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약 크리미아에 주둔 중인 2만 명의 용병이 북진한다면…… 상당히 사태는 심각해질 거야.’
여태껏 혁명군이 상대했던 용병은 게마인샤프트 출신 비정규 용병이었다.
전투력 측면에서 분명 하자가 있는 존재란 것이다.
반면 현재 콘스탄티노바와 크리미아에 주둔 중인 용병은 제니스 공화국 3대 상단이 직접 먹이고 훈련하고 키운 정예 용병이었다.
정예 용병 3만 5천이 성 안팎에서 혁명군을 덮친다면, 아무리 로제가 대마법사고 아딘이 신물의 힘을 발휘한다 한들, 혁명의 성공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관건은 크리미아의 용병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 그리고 안톤이 얼마나 제대로 된 조직원들을 모았느냐인데…….’
아딘은 가만히 두루마리를 쳐다봤다.
그 순간, 두루마리 위에 나타나 있던 벨로디나 전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안톤 외 31인의 초상화와 간략한 정보가 떠 올랐다.
가만히 그것을 살펴본 아딘의 입가에 곧 미소가 걸렸다.
‘역시. 안톤 르보프. 실망시키지 않아.’
아딘은 안톤을 총사령관에 앉히면서도 그에게 정작 현장 지휘 임무를 맡기진 않았다.
대신 아딘은 그를 콘스탄티노바로 보내 아딘과 함께 트리마코프가 알려준 비밀 통로를 이용, 왕성 내부로 잠입할 조직원을 구해오는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그리고 안톤은 아주 만족스러울 정도로 임무에 성공했다.
‘보아하니 다들 한때 날 섬겼던 기사들이야. 다비도프 건도 있고, 드미트리를 섬겼던 기사들도 부를 수 있었겠지만……’
혹시 모를 배신을 방지코자 오로지 과거 자신과 함께 아딘 콘스탄틴을 섬겼던 기사들만 모은 안톤의 치밀함에 아딘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충성심에 조심성, 치밀함이라면 충분히 나를 대신해서 내각을 통솔할 수 있겠지.’
아딘은 가만히 두루마리를 접고 그것을 마법 주머니에 넣은 후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시선은 혁명 이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니스 공화국이 의외로 쉽게 벨로디나를 떠나고, 무사히 혁명이 끝난다면, 그때부터 난 또 다른 싸움을 해야만 한다.’
혁명 이후의 벨로디나.
즉 새로운 벨로디나는 국왕을 전제군주가 아닌 국가 상징으로 하여 총리대신이 내각을 총괄하는 형태의 통치 기구를 가지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아딘의 계획대로 권역 정비가 끝나면, 권역별로 선출된 대의원들로 구성된 국민공회가 내각을 감시하고 국정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며 내각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할 터였다.
끝으로 사제와 상인, 군인, 농민 등 각 직업군을 대표하는 대의원들과 쿠만족과 카판족에서 파견한 대의원들로 구성된 왕국회의가 내각과 국민공회를 모두 감독하는 기구로서 자리할 예정이었다.
물론 아딘은 단순한 상징으로만 머물 생각은 없었다.
단순히 국가 상징으로서 모든 통치를 내각을 비롯한 조직들에게 위임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아딘은 이런 복잡한 형태의 혁명을 생각지도 않았을 터였다.
‘아예 헌법에 조문으로 넣는 거지. 불멸의 검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는 국가 상징으로서의 군주라는 지위와 함께 왕국회의 의장 지위까지 겸임하는 걸로 말이야.’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를 모두 갖춘 존재.
혁명을 앞에서 이끌며 싸운 존재.
그런 존재가 아딘이 꿈꾸는 자신의 지위였다.
그것이 네르갈과 약속한 인류의 진화를 촉진할 시발점이라고 아딘은 굳게 믿고 있었다.
아딘은 다시 눈을 떴다.
‘불카르 아시오게를 국방대신으로 임명한다면 충분히 그를 통제할 수 있겠지. 국방대신이자 동시에 쿠만 지방 총독으로 임명하면 그의 정치적 야망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될 거야.’
무엇보다도 이번 혁명에 참여한 쿠만인 전사들이 쿠만보다 살기 편한 벨로디나에 정착하면, 장기적으로 불카르 아시오게의 지지기반이 될 쿠만 지방은 소수의 쿠만인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할 뿐인, 이름뿐인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거기다 불카르 아시오게는 자기 딸을 내게 시집보내려 하고 있어. 최소한 나를 밀어내고 더 큰 꿈을 꾸겠다는 건 아니란 거지.’
문제는 빅토르 다비도프였다.
‘다비도프는 급진적인 사람이야. 비록 구 귀족들을 관료로 임명해야한다는 타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 체제를 혁명 벨로디나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무엇보다도 빅토르 다비도프는 분명히 의심을 하고 있을 터였다.
노르드바에서 했던, 고의적인 출격 지체에 대한 의심을.
‘무엇보다도 다비도프는 안톤과는 달리 내 사람이 아니었어.’
하지만 마냥 빅토르 다비도프를 숙청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선대왕이 어느 정도 중앙집권화를 이루어놨다곤 하지만, 여전히 벨로디나의 중앙 행정 조직은 전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했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아딘은 체르노비치의 조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체르노비치의 조직이 벨로디나 전역에 광범위하게 뿌려져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들 조직은 추후에 양성화해서 일종의 경찰이나 정보부 같은 보안조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당장에는 빅토르 다비도프가 필요했다.
‘다비도프를 대신해 양성화된 체르노비치를 이끌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진 난 그와 함께 갈 수밖에 없어.’
아딘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정말 어려운 길로 가는구나.’
아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이렇게 복잡하게 할 생각이 없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 * *
광명력 993년 4월 7일.
제니스 공화국 수도 아라곤.
드라기 상단 총수 마리오 드라기의 저택에서 3대 상단 총수와 법무관 헨리 피셔가 머리를 맞댄 채 회의하고 있었다.
“북방 요새와 동방 요새가 함락당했다고 하오.”
마리오 드라기의 말에 크리스티나 콘테와 마르코 루비오, 헨리 피셔는 모두 침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재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반란군은 소수의 쿠만족과 다수의 벨로디나인들로 구성돼 있다고 하오.”
그 말에 크리스티나 콘테가 물었다.
“쿠만족이야 원래 용병이라지만, 벨로디나인의 정체는 뭐죠?”
“민병대라고 하오.”
“결국 민란이라는 이야기네요.”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마르코 루비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용병을 대동한 민란이라니…… 허 참. 듣도 보도 못한 소리야. 건국의 아버지들이 들으셨다면 기가 차셨을 거야.”
그 말을 무시하고 마리오 드라기가 말을 이었다.
“콘스탄티노바 성벽이 벨로디나 것 치고는 단단하고, 또 그곳을 지키는 우리들의 용병이 용맹하고 단련된 자들이라곤 하지만, 민란이 이런 식으로 벨로디나 전역을 뒤덮고 있는 이상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게 될 뿐이오.”
크리스티나 콘테와 헨리 피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리오 드라기가 헨리 피셔를 향해 물었다.
“법무관께서는 혹시 현 벨로디나 정세에 관해 생각해둔 해결 방안이 있으시오?”
갑작스러운 질문에 헨리 피셔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목청을 가다듬고 천천히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 벨로디나는 총수님들께서도 지난번에 말씀하셨지만, 효율이 낮은 식민지라 볼 수 있습니다.”
세 총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민란까지 터진 마당에 이런 말씀이 어떻게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구태여 우리가 그곳을 계속해서 쥐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크리스티나 콘테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말씀은 우리가 벨로디나를 버려야 한다는 걸로 해석해도 될까요?”
헨리 피셔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깔끔하게 벨로디나를 버리시고, 추후 벨로디나에 들어설 정권과 협상을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협상이라 함은?”
“뭐, 파괴된 제니스 공화국 시민의 재산에 대한 보상이라든가 유리 콘스탄틴 국왕으로부터 우리가 얻어낸 벨로디나 내 자원 광산에 대한 권리 보장 등에 관한 걸 협상하는 게 민란을 진압하는 것보다 더 효율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말에 세 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 하던 생각도 헨리 피셔와 비슷했기에 대체로 그들은 헨리 피셔의 의견에 동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손을 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관해선 제가 아무래도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 마땅한 대안을 생각해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헨리 피셔는 죄송스럽다는 양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리고서 마리오 드라기는 입을 열었다.
“아니오. 그 정도면 훌륭한 식견이라 할 수 있소. 사실 철수 방법에 관해서는 우리들도 생각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못한 만큼,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일단 실무진들에게 맡겨보자는 게 내 생각이오.”
그러면서 마리오 드라기는 두 총수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티나 콘테와 마르코 루비오도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크리스티나 콘테는 자기 의견이 있는 양 가만히 마리오 드라기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민란도 결국 주도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세력의 수뇌부와 접촉해보면 어떨까요?”
마리오 드라기와 마르코 루비오 모두 관심을 보였다.
“수뇌부와의 접촉 말이오?”
“네.”
“흐음…… 어떤 식으로?”
크리스티나 콘테는 마리오 드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드라기 총수께서 총애하시는 프런티어 상단 총수 제이크 로버츠. 그 사람이 벨로디나에 상당한 인맥을 구축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마리오 드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을 때, 노보로바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일단 아직 완전히 연락책이 사라진 건 아닌 것 같으니 내 한 번 그를 찾아 이야기를 해 보겠소.”
“감사합니다.”
그렇게 총수들의 회의는 끝이 났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향해 흩어졌다.
같은 시각.
“어흐흐.”
“왜 그러십니까?”
“그냥 갑자기 떨리네.”
노보로바야의 아지트에 있던 제이크 로버츠는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어야만 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