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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14화 (114/175)

114 혁명의 대의 (3)

광명력 993년 4월 3일 정오.

콘스탄티노바 권역 북부를 총괄하는 행정 중심지이자 콘스탄티노바와 노보로바야 사이를 오가는 교역 중심지인 북방 요새.

“저것들 도대체 뭐야?”

북문과 동문 그리고 서문에 각각 1천가량 되는 정체불명의 군대가 모여 고함을 치며 소란스럽게 한다는 보고를 받은 북방 요새 사령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민중 반란군인가?”

요새 사령관의 물음에 참모들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콘스탄티노바에서 온 전언에 따르면 쿠만족이 민중 반란군에 합류한 상태라고 하던데, 그것들 아니겠습니까?”

한 참모의 말에 요새 사령관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쿠, 쿠만족이라고? 그, 그 야만 전사들이 왜?”

“저도 거기까지는 잘…… 그냥 콘스탄티노바에서 온 전언에 그런 말이 있어서…….”

“쿠, 쿠만족이라니…….”

일당백의 야만 전사로 알려진 쿠만족이 고함을 지르며 시위하고 있을 수도 있단 사실에 요새 사령관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참모들도 대게가 사령관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젊은 참모가 입을 열었다.

“쿠만족이 비록 용맹한 전사 일족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용맹은 어디까지나 백병전에서나 그럴 뿐입니다. 우리는 요새를 끼고 있습니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젊은 참모의 말에 요새 사령관은 순간 움찔했다.

젊은 참모의 말이 계속됐다.

“일단 용병대장에게 말해서 병력을 동서남북 4개 문에 배치시키라고 하고, 저들의 공격이 시작될 경우 남문에 자리한 병사들은 원군 요청을 하러 콘스탄티노바로 가게 해놓고 나머지 병사들로 방어를 한다면 충분히 우리가 이기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그럴듯한 말에 다른 참모들의 안색이 점차 밝아졌다.

참모진들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젊은 참모는 신이 나 더 떠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쿠만족의 전투력에 대한 설은 그냥 옛날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보다 좀 덩치가 크고, 문명화되지 않아 사납다고는 하지만, 어쨌건 그들도 사람 아닙니까? 성벽에서 화살을 날리면 그들의 살가죽이라고 안 뚫리겠습니까?”

그 순간, 요새 사령관이 강하게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거기까지만 발언하라.”

요새 사령관의 격앙된 반응에 젊은 참모는 살짝 기세가 죽었다.

그가 입을 다물자 요새 사령관은 주위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용병대장에게 일러서 병력을 4등분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구체적인 분배 규모에 관하여서는 전적으로 용병대장에게 일임하겠지만, 용병대장은 향후 참모회의에 참여하여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전황을 알릴 수 있게도 조치하라.”

요새 사령관의 명령에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사령관은 다시 젊은 참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경고하겠는데, 쿠만족을 얕보거나 하지는 말길 바란다.”

그 말에 젊은 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생각은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동과는 정반대였다.

‘흥. 허수아비 주제에 요새 사령관이라고 하니 자기가 군사 전문가인줄 아나 보지? 이름만 요새 사령관이지 하는 일은 그냥 행정사무관에 불과하면서…….’

그러면서 그는 중년의 참모들을 훑어봤다.

‘이 노친네들하고 이야기할 바에야 좀 덜떨어지긴 했어도 실권을 가진 용병대장하고 이야기하는 게 낫겠어.’

* * *

“모두 준비됐습니다.”

북방 요새 민병대장의 말에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 병력 700, 민중 가담자 15,432명. 도합 16,132명이 전하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아딘은 씩 웃으며 가볍게 민병대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늦어도 오늘 저녁이면 대다수의 용병들이 성곽으로 가게 될 것이다. 첫닭이 울기 전, 요새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혁명군의 소리가 잠시 잦아들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움직일 때다.”

아딘의 말에 민병대장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딘의 말이 계속됐다.

“1조는 무기고, 2조는 곡물 저장고 그리고 3조는 마구간을 점령한 후 수성에 총력을 가한다. 그러면 곧 성벽의 용병 중 일부가 우리를 진압하러 올 것이다. 그때가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란 사실은 그대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딘의 말에 민병대장과 그 뒤에 서 있던 3인의 조장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만 버티라. 그때만 버티면 곧 성문이 열릴 것이고, 혁명군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고 혁명군이 그대들을 구원하기 위해 올 때쯤, 요새 사령관과 용병대장의 머리가 관청 정문에 걸릴 것이다.”

그러면서 아딘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민병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가만히 아딘을 바라봤다.

아딘은 왼손으로 민병대장의 오른손을 잡아 자신과 악수하도록 만들었다.

뒤이어 아딘은 3인의 조장들에게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민병대장과 아딘이 나눈 악수를 보았던 그들은 모두 어색해하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모두와 악수를 나눈 후 아딘은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모두, 살아 남거라.”

그 말에 네 사람은 살짝 벅차오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도 반드시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그들의 반응에 아딘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곤 등을 돌려 골목으로 사라졌다.

빈민가 골목으로 모습을 감추는 아딘을 잠시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민병대장은 이내 자신과 같은 눈을 한 조장들과 짧게 결의를 나눈 후 흩어졌다.

‘상징은 행동의 누적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냄새 나는 빈민가 골목으로 숨어든 채 조용히 관청까지 향하며 아딘은 생각했다.

‘아딘 콘스탄틴은 망나니였어. 비록 그 사실이 귀족 사회 내에서나 알려졌고, 민중에게까진 전해지지 않았다지만, 이대로 내가 콘스탄티노바 왕궁에 들어설 경우 결국 아딘 콘스탄틴이 지닌 망나니라는 상징은 내 발목을 잡게 될 거란 거지.’

아딘이 꿈꾸는 혁명 이후의 벨로디나.

거기서 아딘의 공식적인 지위는 국가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아딘 이후 그 자리에 앉게 될 사람들은, 불멸의 검으로부터 택함을 받지 못하는 이상 상징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게 될 터였다.

‘상징의 첫 단추가 망나니라면 앞으로 국왕의 권위는 항상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징의 첫 단추가 망나니가 아닌, 민중과 함께 전선을 누빈 위대한 전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 첫 단추가 자신인 만큼, 아딘에게는 자신의 상징이 망나니가 아닌 긍정적인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했다.

‘자애로운 자, 용맹한 자,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자…… 모두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청이 보이는 골목 안에서 아딘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일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네.’

단순히 유리 콘스탄틴에게 복수하겠다던 처음의 각오와는 달리, 점차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는 사건의 스케일에 아딘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해 봐야겠지. 이래나저래나, 김현수로 돌아가기 전까진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까.’

문득 김현수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품었을 때, 아딘의 뇌리로 또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돌아갈 수…… 있을까?’

아딘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지금은 이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그렇게 자신의 혼란해지기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아딘은 기다렸다.

자신이 움직여야 할 시간을.

* * *

4월 4일 새벽.

성벽에서 경계하는 용병들이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로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던 쿠만족 용병들이 일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한번에 입을 다무는 일이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존재하던 가장 큰 소음이 사라지자 용병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뭐지? 물러나려는 건가?”

“물러날 기세는 아닌데?”

“목이 쉰 거 아니야?”

“쟤들 돌아가면서 소리 질렀잖아.”

용병들은 성벽으로부터 딱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 만큼 떨어진 쿠만족 전사들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뭐 아무렴 어때? 눈이나 좀 이 기회에 붙여야지. 에이 더러운 새끼들.”

게마인샤프트 출신인 그들에게 있어서 쿠만족의 언어나 벨로디나의 언어나 별반 차이는 없었던 만큼, 그들은 심각하게 바깥에서 하루 종일 고함치던 것들의 정체를 고민하기보단 당장에 한숨 자는 것에 더 가치를 두었다.

그렇게 잠시 그들이 긴장을 풀었을 때, 요새 내부에서는 본격적인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다 불질러 버려!”

“다 끌어내!”

민병대장을 필두로 1조, 2조, 3조로 나눠진 민병대가 각각 미리 연락이 통했던 민중 가담자를 이끌고 무기고와 곡물 저장고 그리고 마구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스, 습격이다!”

“모두 전투 준비해!”

전략 물자가 비축된 장소였던 만큼, 그곳을 지키는 용병들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규모로는 경무장한 민병대와 몽둥이와 식칼을 든 민중 가담자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용병 중 선두에 서 있던 일부는 그대로 민병대의 칼과 민중 가담자의 몽둥이에 찔리고 맞으며 죽어버렸다.

그리고 후미에 있던 자들은 전세가 압도적으로 불리함을 깨닫곤 개구멍이나 담장을 이용해 도망하는 것을 택했다.

[꼬끼오-!]

그렇게 북방요새의 민병대는 첫닭이 울기 전, 손쉽게 아딘이 명령한대로 세 군데의 전략 거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무기고와 곡물 저장고, 마구간을 점령한 순간 그들은 잠시 환호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정신을 붙들고, 각자의 자리로 향해 다가올 적들의 반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무기고가 왜 점령 당해?”

“무, 무기고뿐만이 아닙니다. 곡물 저장고와 마구간도 폭도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세 번째 닭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질 때쯤, 관청 관사에서 쪽잠을 자던 요새 사령관은 요새 내 전략 거점이 점령당했다는 말에 황급히 참모들을 불러 모았다.

“이, 이보시오. 용병대장. 어, 어서 성벽에 나가 있는 용병들을 불러오시오. 폭도들을 진압해야 하지 않겠소?”

요새 사령관의 말에 그의 맞은편에 있던 용병대장은 통역으로부터 말을 전해 듣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건 곤란하다고 합니다. 성 밖의 적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함부로 병력을 분산시키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된다고 합니다.”

통역의 말에 요새 사령관은 살짝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저 폭도들이 이곳을 점거한답시고 오는 순간 모든 건 끝입니다. 나나 당신이나 저 폭도들이 밀고 들어오면 안 죽고 버틴다는 보장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 말은 그대로 용병대장에게 전해졌다.

용병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 통역이 그 말을 요새 사령관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러면 절반을 요새 내부로 돌리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에 요새 사령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무리 폭도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결국 다들 경무장 상태야. 중무장한 용병 이천오백이면 충분하겠지.’

요새 사령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도대체 왜 하필 내가 이곳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이야? 왜? 하여간 콘스탄티노바 것들…… 귀족이랍시고 거드럭거릴 줄만 알지 애초에 자기들이 식량 공급 계획을 제대로 짜기만 했어도 민란이 발생할 정도로 식량난이 생기진 않았을 거 아니야!’

물론 그에게도 최소한 북방 요새에 거주하는 백성들만이라도 굶주리지 않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있었다.

요새 사령관이 과거에 비해 행정사무관 수준으로 격하됐다곤 하지만, 요새 내에 주둔 중인 용병들을 먹일 식량은 결국 그의 결재가 있어야만 풀렸다.

‘멍청한 것들. 대귀족이랍시고 설치더니 결국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아간 거야.’

하지만 그에게 자기반성 따위는 없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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