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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13화 (113/175)

113 혁명의 대의 (2)

광명력 993년 3월 30일 늦은 밤.

노르드바의 1군단 병력 3,000과 소보렌그라드의 2군단 병력 2,300은 수정구슬을 통해 조율한 일정대로 거의 같은 시간에 각각 남쪽과 서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2군단이 공략할 동방요새와는 달리 우리가 공략해야 할 북방요새는 굉장히 삼엄한 경비 태세를 보이고 있다.”

대략 12시간 정도를 진군하여 중간에 자리한 조그만 촌락에 거점을 삼은 뒤 아딘은 곧장 참모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현재 북방요새에는 제니스 용병 5천이 주둔 중이다. 그들 모두 게마인샤프트 출신 비정규 용병이긴 하지만, 여지껏 우리가 상대했던 자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정예화된 자들이다.”

그러면서 아딘은 테이블 가운데 펼쳐진 북방요새 지도의 몇몇 지점들을 칼집으로 가리켰다.

“일단 1군단은 3방향으로 찢는다. 각각 요새 북문과 동문, 서문을 공략하는데 외부에서 크게 고함을 지르며 시끄럽게 하는 데 주력하라. 결코 요새를 향해 돌격하거나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딘의 말에 참모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우리가 무식하다고 소문이 났어도, 그런 진짜 무식한 짓은 안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불카르 아시오게의 말에 아딘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북방요새 내부협력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세 방향에서 소란을 일으켜 용병들의 시선을 흩어버리는 데 성공하면 곧장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아딘의 칼집이 요새 내부의 몇몇 장소들을 차례로 가리켰다.

“무기고와 마구간 그리고 식량 저장고를 민병대가 접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성곽을 지키던 용병 가운데 일부가 요새 내부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 세 방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이 열릴 때, 모두 돌입하라.”

그러면서 아딘은 불카르 아시오게를 바라봤다.

“노보로바야에서 온 물건들은 잘 챙겨뒀소?”

그 물음에 불카르 아시오게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챙겨뒀소. 우리 목숨줄이 될 귀한 건데 당연히 잘 챙겨야지.”

“병력 손실의 최소화는 항상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임을 기억하시오.”

아딘의 당부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요새를 점령한다면 콘스탄티노바로 가는 관문이 열릴 것이다. 콘스탄티노바는 특별히 선왕 블라디미르 2세께서 샤펠 제국의 장인들을 불러와 15년에 걸쳐 재정비를 한 만큼, 여태껏 우리가 점령해왔던 성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단함을 자랑한다. 모두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해 병사들의 생존을 우선시하길 바란다.”

아딘의 말에 참모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리라 다짐했다.

그들의 다짐을 받으며 아딘은 저녁에 이동하기 위해 병사들을 휴식케하라 명령한 후 회의를 끝냈다.

“이번에도 혼자서 요새 사령관 목을 따러 가실 생각이오?”

참모들이 모두 나가고 난 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불카르 아시오게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딘에게 물었다.

아딘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허허허!”

한 차례 호탕하게 웃은 불카르 아시오게는 이내 아딘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막사를 떠났다.

“상징은 그 행동이 만들어내는 법이지. 암.”

불카르 아시오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딘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심만 있는 게 아니었어. 불카르 아시오게…… 정치를 아는 사람이야.’

순간 아딘의 눈가에 예사롭지 않은 빛이 흘렀다.

그 빛은 이내 아딘이 시선을 테이블 위의 북방요새 전도로 돌림에 따라 사그라들었다.

* * *

3월 31일 늦은 밤.

샤펠 제국 수도 아퐁.

자신의 처소에서 쉬고 있던 샤를 11세는 벨로디나로부터 온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촛불 아래에서 그것을 확인한 그의 입에서 침중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흐음…… 민란이라……”

샤를 11세의 말에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로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샤를 11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미 벨로디나에는 제이크 로버츠가 있는데, 뭐 구태여 자네가 갈 필요가 있나?”

“제이크 로버츠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인간입니다. 아이드님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의 돈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간사한 종자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간사한 종자치고는 제법 구체적인 정황들을 모두 적지 않았나? 아딘 콘스탄틴이 민란의 주동자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러면서 샤를 11세는 가만히 로이를 바라봤다.

“그래도 못 미덥다 이건가, 엘드랄?”

“네, 아이드 님.”

샤를 11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게.”

샤를 11세의 허락에 로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다만…… 혹여나 아딘 콘스탄틴과 대면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망치도록 하게. 그가 신물의 힘을 절반 이상 흡수했다면 자네는 결코 그의 상대가 되질 못하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곧 로이는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것을 확인한 샤를 11세는 다시 시선을 보고서로 돌렸다.

<…… 폐하께서 별도의 명을 내리시기 전까지 이곳에 남아 추이를 지켜보겠사옵니다.>

제이크 로버츠가 거점이동장치를 통해 인편으로 보낸 보고서를 끝까지 읽은 샤를 11세는 곧장 그것을 촛불로 태워 버렸다.

“돈에 미치긴 확실히 미쳐 있군.”

샤를 11세는 제이크 로버츠의 보고서 행간에서 확인된, 벨로디나에 투자한 자신의 자산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의 욕구에 헛웃음을 지었다.

“인간이란…… 인간이란…… 자기네들을 창조한 신들과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 세상을 위하는 척, 대의를 바라보는 척하면서…… 뒤로는 결국 자기 일신의 안위와 소유물에 집착하지.”

그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창가로 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당신들도 갑갑하겠지. 예전과는 다르게 세상에 개입하지 못하는 현실이 말이야.”

별을 바라보는 샤를 11세의 눈에 불같은 적의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운명의 신을 탓하라고. 그 작자가 다가올 운명을 예견하고 차원의 경계에 단단히 벽을 세웠으니까.”

샤를 11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기대하라고. 곧 내가 당신들이 이 땅에 선물인 척 던져둔 신물을 모두 손에 넣고서 무슨 일을 할지를 말이야.”

그의 시선이 밤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와 서쪽 검은 바다 너머로 향했다.

“이 대륙에 나를 위한 거대한 종교를 세우고, 곧 바다 건너 그대들이 방치해둔 대륙에도 나의 자비가 뻗어 나가도록 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라고.”

그렇게 샤를 11세는 보이지 않는 신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밤을 보냈다.

* * *

4월 2일 정오.

1군단은 북방요새 북부 10km 지점에 집결했다.

그보다 일찍 동방요새 동부 15km 지점에 집결한 2군단은 1군단의 연락을 받자마자 행동을 개시했다.

[휘유우우웅-!]

[콰앙-! 콰앙-! 콰앙-!]

먼저 로제의 마법이 동방요새의 망루에 떨어져 내렸다.

허공 300m 지점에서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푸른 불덩어리의 파괴력 앞에서 망루는 손쉽게 무너져 내렸고 불탔다.

“우와아아아-!”

“혁명군이다!”

“혁명이다!”

“귀족들을 다 찢어 죽여!”

그것이 신호가 돼 동방요새 내에 자리하고 있던 체르노비치 조직원들은 일제히 민병대를 일으켰다.

“화살! 화살을 쏴!”

“거리가 안 됩니다! 너무 수직입니다!”

“무기고를 폭도들이 점령했습니다!”

“곡물저장소가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마구간이 적들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동방요새는 혼란에 휩싸였다.

주둔 중이던 4천 명의 제니스 공화국 용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화염과 요새 내부에서 발생하는 화재 그리고 동문을 향해 진격하는 쿠만족 용병의 기세에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북문 앞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남문의 땅이 가라앉았습니다!”

“서문 일대에 폭풍이 불어 닥치는 중입니다!”

동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관문은 로제의 마법에 의해 확실하게 봉쇄됐다.

“동문이 열렸습니다!”

“동문이 폭도들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로제의 마법이 날아들고서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동문을 장악한 민병대는 혁명군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때부턴 혁명군의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으아아악-!”

“항복! 항복! 항……”

“항복한다잖아, 이 새끼들아!”

사기가 순식간에 바닥을 친 제니스 공화국 용병들은 항복을 외쳤다.

하지만 게마인샤프트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쿠만족과 카판족 정예 전사들은 무기를 버리는 그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게마인샤프트 놈들 다 죽여!”

“다 찢어 버려!”

“개돼지 같은 새끼들!”

어찌어찌 혁명군을 피해 도망치는 데 성공한 제니스 공화국 용병들은 이내 분노한 민중과 마주해야 했다.

그간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온갖 폭력과 약탈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제니스 공화국 용병을 향한 민중의 분노는 그들의 심장과 복부에 죽창이 꽂히는 결과를 낳았다.

“사령관을 끌어 내려!”

“그 돼지 새끼 모가지를 썰어 버려야지!”

“우와아아-!”

순식간에 제니스 공화국 용병은 와해됐고, 동방요새의 지휘체계는 무너졌다.

분노한 민중은 죽창을 든 채 중무장한 민병대와 함께 사령관 처소로 향했다.

“여기다! 뒷간에 숨어 있다!”

“더러운 새끼! 살아 보겠다고 똥통에 들어가?!”

“갈고리로 찍어서 끌어내!”

분노한 민중을 피해 뒷간으로 도망가 똥통 아래로 내려가 숨어 있던 요새 사령관은 갈고리에 양팔뚝이 꿰뚫린 채 끌어 올려졌다.

분노한 민중은 요새 사령관을 끌어올리자마자 죽창과 몽둥이로 신나게 두들겨 팼다.

“끄으윽-! 사, 살려……”

요새 사령관은 애원했지만, 민중들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요새 사령관은 민중이 휘두른 몽둥이에 결국 머리가 터지며 죽어버렸고, 그 시체는 사령관 거처 마당에서 불에 태워졌다.

공략이 시작된 지 6시간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동방요새는 2군단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곳곳에 숨어 있던 제니스 공화국 용병들은 무장한 민병대의 손에 속속들이 잡혔고, 자정이 지나 4월 3일이 됐을 때, 로제는 동문을 제외한 3대 관문에 펼쳐 두었던 마법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

“하아……”

다소 무리를 한 만큼 로제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침대에 그대로 엎어져 잠들었다.

“수고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방에 찾아온 다리아는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든 로제를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세라도 똑바로 하지.”

다리아는 엎드린 로제를 똑바로 뒤집어 주었다.

그리곤 이불을 끌어 올려 그녀의 목 아래까지 덮어준 후 그녀의 방을 나섰다.

“대마법사께서는?”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야민 벤키시가 물었다.

“자고 있어.”

“아…… 그럼 콘스탄틴 전하께는 우리가 보고를?”

“그래야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혁명군 최고지휘부가 된, 옛 요새 사령관 집무실로 들어갔다.

“근데 이거 어떻게 작동하는 줄 알아?”

하지만 막상 수정구슬 앞에 앉았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은 그것의 작동 방법을 로제만이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그렇네요.”

“에이…… 뭐, 내일 그럼 로제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다리아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고?”

야민 벤키시의 물음에 다리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포로들 처형하러 가야지.”

그러면서 그녀는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순간 야민 벤키시는 알 수 없는 소름을 느끼며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어야 했다.

“이왕이면 고급 정보가 없나 심문도 해보고 말이야.”

심문이란 말에 야민 벤키시는 소보렌그라드에서 봤던 시체들을 떠올렸다.

‘나 같으면 차라리 지금 혀를 깨물고 죽을 거야.’

집무실을 나서는 다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야민 벤키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족장님이 살아 계셨다면…… 조금은 덜 야만적이었을까?’

포로의 살가죽을 천천히 벗기며, 심문을 빙자한 순수한 가학행위를 즐기는 다리아와 그것을 보며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거드는 다른 쿠만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야민 벤키시는 죽은 아르게 벤바사를 추억했다.

‘족장님이 살아 계셨다면…… 분명 저들의 행동에 제동은 거셨겠지.’

모든 인간적인 것을 잃어가며 죽었던 포로들을 떠올리며 야민 벤키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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