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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10화 (110/175)

110 전쟁 (4)

‘왜 출동하지 않는 거지?’

1군단에 파견된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는 자기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아딘을 바라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이산성부터 오산성까지. 분산 주둔 중이던 병력이 최소 유지 인원 빼고 다 노르드바에 모여 있습니다.”

“현재 민중 반란군을 진압하고 있는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진 못했습니다.”

참모들의 말에 아딘은 그저 침음성을 흘릴 뿐이었다.

‘전하는 수정 구슬로 계속 소통 중이실 텐데?’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는 굳은 얼굴로 가만히 아딘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전하.”

그 부름에 아딘은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말해 보라.”

“제가 노르드바의 상황을 파악하러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참모들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노보로바야에서도 그렇고, 이상하게 우리는 정탐병을 보내는 일을 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참모가 가는 게 모양이 이상하긴 하지만, 벨로디나인이니 만큼 나쁠 건 없을 것 같긴 하오만?”

쿠만족 참모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의 말에 공감했다.

“안 된다.”

하지만 아딘의 답변은 단호한 거부였다.

그러자 모든 참모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찌하여 안 된다는 겁니까?”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가 되물었다.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참모를 보낼 순 없는 노릇이다. 또한 참모 아래 보좌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것 또한 불가하다. 노르드바 내에 존재하는 우리의 내부 협력자 쪽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기 전까진, 그 누구도 내려갈 수 없다.”

아딘의 말에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거 너무 사리는 거 아니오?”

보다 못한 불카르 아시오게의 물음에 아딘은 고개를 저었다.

“3,850명의 병력. 거기서 노르드바에 주둔시켜야 할 500명을 빼면 3,300. 이걸로 콘스탄티노바까지 가야 하오. 조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그건 그렇긴 한데……”

결국 정탐병 파견은 없는 일로 됐다.

참모들은 대체로 아딘의 결정에 대해 어쩔 수 없지만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거 아니냐? 하는 수준에서 반응했다.

‘이상해. 너무 이상해.’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만이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다.

‘지난번에 일산성을 습격한 거라든가 그런 걸 보면 전하의 성격상 본인이 직접 다녀오시고도 남을 건데…… 어째서?’

그렇게 의문만을 남긴 채 광명력 993년 3월 24일 1군단 참모 회의는 끝났다.

* * *

‘노르드바 주둔 용병 현재 1,603명 생존. 민병대는 32명 생존. 그 외 민란에 합류한 민중 15,322명 사망.’

3월 24일 밤.

홀로 두루마리를 보며 전력을 파악하던 아딘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만하면 됐나?’

근 16,000명의 시민을 희생시킨 결과 도합 5천에 이르던 용병들의 숫자는 확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진압에 지친 자들과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자들이었다.

‘좋아. 이 상태면 문제없겠어.’

아딘의 입가에 미소가 걸쳐졌다.

그때였다.

“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의 목소리가 아딘의 막사 입구에서 들려왔다.

아딘은 두루마리를 말아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인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오라.”

아딘의 허락이 떨어지자 참모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가볍게 아딘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갖춘 뒤 양손을 앞으로 한 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노르드바 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까?”

참모의 물음에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구슬이 며칠 동안 조용하다. 처음에 시작될 때까지는 몇 차례 연락이 왔는데, 그 뒤로는 다비도프 수령 쪽에서만 연락이 올 뿐이다.”

“수령님께서는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쪽도 노르드바 쪽하고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군.”

“아…….”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건가?”

참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딘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잠시 후, 참모가 입을 열었다.

“민병대의 무장은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

“그마저도 일반 민중에게는 몽둥이와 주먹뿐입니다.”

“…….”

“노르드바로 용병들이 집결하고서 이미 사흘이 지났습니다. 용병들도 충분히 피해를 봤겠지만, 민병대나 민중이 입은 피해는…….”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조심해서 다녀오겠습니다. 정탐 나갈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참모가 아딘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아딘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전하.”

자신을 향해 항의하려는 참모를 향해 한 차례 미소를 지어준 후 아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가 갈 필요가 없어.”

“네?”

“내가 대신 다녀오지.”

“저, 전하……”

“자네보단 내가 조용히 갔다 조용히 올 가능성이 높을 거 같은데…… 아닌가?”

* * *

어둠 속에서 몰래 도시로 잠입하자마자 아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죽은 아이의 시체였다.

그리고 아이의 시체를 봄과 동시에 아딘은 그 아이를 어떻게든 도망시키려다 죽은 듯한 어미의 시체를 밟았다.

“우웁-!”

그 순간, 아딘은 헛구역질했다.

아딘 콘스탄틴의 자아는 묽어졌고, 김현수의 자아가 다시 비대해졌다.

‘이건…… 이건……’

전략적으로 유효한 판단이라 생각했다.

잔인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민중이 죽어 나간다면 선전용으로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아딘은 약간의 죄책감은 느낄지언정 그것에 대한 그 어떠한 망설임도 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딘 콘스탄틴의 자아가 비대해졌기에, 민중의 피해에 대한 공감대가 옅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바로 지금, 노르드바 초엽에서 죽은 이들의 시체를 보고 밟는 이 순간, 아딘 콘스탄틴의 자아는 숨어들었고 김현수의 자아가 눈을 떴다.

그것이 아딘은 괴롭게 했다.

‘학살이야…… 이건 무의미한 학살이야…….’

거리를 걸으며, 제대로 치워지지도 않은, 아직은 쌀쌀한 벨로디나의 기후 덕에 겨우 부패만 면하는 민중의 시체를 바라보며 아딘은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은 도시를 한 바퀴 빠르게 돌고 나서, 새벽 동이 터올 무렵 일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멈췄다.

울음만 멈춘 게 아니었다.

도시에서 느꼈던 죄책감과 괴로움도 말끔히 사라졌다.

일산성 남문에 걸린, 병력 증원 요청을 하러 왔다 봉변을 당한 게마인샤프트인 용병의 머리를 보고서 아딘은 성벽을 타고 넘어가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저, 전하. 벌써 정탐을 끝마치셨습니까?”

돌아가 있으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사 앞에서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던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는 아딘이 도착하자 벌떡 일어나 그에게 물었다.

“끝났다.”

“어, 어떤 상황이옵니까?”

그 물음에 아딘은 참모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당장 모든 참모들을 불러 모으라.”

그 말의 뜻을 파악한 참모는 고개를 끄덕인 후 빠르게 다른 참모들을 깨우러 이동했다.

‘차가워져야 한다. 감성에 지배당해선 안 돼.’

막사로 돌아가 참모들이 오기 전까지, 그들을 기다리며, 아딘은 생각했다.

‘노르드바에서 발현한 김현수의 자아는 후에 국가가 안정됐을 때, 나라는 존재가 신성불가침의 독재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할 때에나 필요해. 지금 필요한 건 아딘 콘스탄틴의 자아야.’

자아가 원할 때 뽑아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지금 필요한 건 아딘 콘스탄틴의 자아야.’

그렇게 생각하며 아딘은 주먹을 쥔 채 침묵했다.

덕분에 아딘의 부름에 급하게 일어나 들어오던 참모들은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급하게 부른다고 해서 왔는데, 분위기가 왜 이래?”

불카르 아시오게가 나타나고서야 비로소 분위기는 반전됐다.

“사령관까지 왔으니 회의를 시작하지.”

아딘은 불카르 아시오게가 앉자 입을 열었다.

“아침을 먹고나서 곧장, 우리는 모두 노르드바로 진격한다.”

갑작스러운 아딘의 선포에 참모들이 웅성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불카르 아시오게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도 있는 거요?”

아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새벽, 나는 노르드바에 다녀왔다.”

그 말에 참모들의 수군거림이 더 커졌다.

아딘은 그들에게 자신이 직접 본 것과 두루마리를 통해 확인한 것을 취합하여 담백하게 현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들은 민중의 희생에 관한 부분을 들으며 분개했고, 쿠만족 참모들은 용병의 피해를 들으며 충분히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겠다며 안도했다.

그 상반된 반응을 살피며 아딘은 이야기했다.

“예정된 시각에 출병할 수 있게끔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라.”

아딘의 명령에 참모들은 우렁차게 “네!”를 외쳤다.

* * *

광명력 993년 3월 25일 아침.

일산성에서 3,800에 이르는 쿠만족 용병들이 소리없이 빠르게 노르드바를 향해 내려갔다.

선두에는 불칸의 갑옷을 입은 아딘과 불카르 아시오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 저것들은 또 뭐야?”

“제, 젠장……!”

도시 외곽에서 경비를 서던, 얼굴 곳곳에 멍과 베인 상처가 있는 용병들은 아침부터 달려오는 1군단의 위용에 사기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흐아압-!”

그런 그들을 향해 불카르 아시오게의 칼이 휘둘러졌다.

순식간에 두 용병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노르드바를 해방하라!”

선두에 선 아딘이 허공으로 가볍게 뛰어오르며 외쳤다.

“우와아아아-!”

그 순간, 쿠만 용병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도시로 들어갔다.

노르드바 북부에서 1천, 서부와 동부에서 각 1천이 돌입해 중심부를 향해 달려갔다.

800은 남부로 향하여 혹시 모를 도망자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노보로바야 공방전에 이어 북부 두 번째 도시 점령을 위한 노르드바 시가전이 시작됐다.

물론 결과는 노보로바야 공방전보다도 더 일찍, 더 혁명군에 유리한 쪽으로 나왔다.

이미 민병대와 폭도로 변한 민중을 진압하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였던 용병들은 자신들을 압도하는 덩치와 숫자로 밀고 오는 혁명군의 모습에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거걱-!]

무엇보다도 황금빛 찬란한 불칸의 갑옷을 입은 채 불멸의 검이 내뿜는 검기로 사람은 물론 벽돌까지도 썰어버리는 아딘의 위용은 용병에게 가히 악몽과도 같았다.

“사, 살려주세……”

[서걱-!]

“하, 항복하곘습……”

[푹-!]

“포, 포로로 잡아달라는데 왜……”

[서걱-!]

항복하는 자, 포로 대우를 요구하는 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칼이 날아들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

특히나 체르노비치에서 파견한 참모들의 칼놀림은 굉장히 감정적이었다.

노르드바 시내 곳곳에 쓰러진 민중의 시체에 대해 딱히 별다른 감흥이 없는 쿠만족 용병과는 달리, 동족 의식이 강한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들 입장에선 외세에 의해 자국 민중이 살해당한 것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광명력 993년 3월 25일 아침에 시작된 시가전은 그날 저녁, 차오른 보름달 아래에서 노르드바에 주둔 중이던 제니스 공화국 용병들이 모두 도륙당함에 따라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

“혁명군 만세!”

노르드바 행정관청에 혁명기가 내걸릴 무렵, 숨어있던 민병대와 공포에 억눌려 있던 민중들은 모두 관청으로 나와 함성을 내질렀다.

불카르 아시오게를 비롯한 쿠만족 참모들과 체르노비치 소속 참모들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했다.

“거, 전하는 어디로 갔나?”

환호하는 군중을 바라보며 불카르 아시오게가 참모에게 물었다.

“잔당들 제거하러 갔습니다.”

“허. 거 참. 잔당 제거는…… 어차피 우리 쪽에서 철저해도 2군단 쪽에서 한두 놈 놓쳤다면 이미 콘스탄티노바에도 보고가 들어갔을 거 아니야?”

“그래도 만전을 기하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하여간 벨로디나인 아니랄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불카르 아시오게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솔선수범 지도부가 나서는 모습은 딱 우리 쿠만족의 기상과도 닮았단 말이지.’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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