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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06화 (106/175)

106 민란 계획 (4)

아딘 콘스탄틴의 망나니 행보는 귀족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 이외 집단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왕족은커녕 귀족조차도 자주 볼 일이 없는 서민은 물론 동방광명교 사제들도 아딘 콘스탄틴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총대주교와 그 직속 대주교 정도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총대주교 성전 집사장에 불과했던 막심 트리마코프도 아딘 콘스탄틴의 본질적 모습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잘생기고 훤칠한,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왕자가 일주일에 한 번 선지자 석상 앞에서 참회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봤을 뿐이었다.

“모, 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자신을 향해 무릎 꿇은 막심 트리마코프를 바라보며 아딘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라.”

아딘의 말에 막심 트리마코프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의식 속에 남아 있던 아딘 콘스탄틴의 음성과 눈앞에서 자신을 구타하던 자들이 살해당한 것을 본 충격 등으로 비밀 통로를 알려줬던 거겠지.’

그렇게 막심 트리마코프의 심리 상태를 대강 분석한 아딘은 천천히 그에게 이야기했다.

“대량의 아편을 버려진 하수도를 통해 총대주교 성전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곡식을 받아 다시 나오는 과정을 혼자 했을 리는 없을 테고, 함께하는 동지가 있는 건가?”

아딘의 물음에 막심 트리마코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제가 집사장이던 시절에 제 밑에서 일했던 녀석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 보니 체르노비치에는 포섭되지 않은 모양이야.’

아딘의 머릿속에서 막심 트리마코프와 그 동지를 활용할 방법에 대한 생각이 무수히 떠올랐다.

‘나중에 다비도프와 연결시켜 주면 되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아딘은 막심 트리마코프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당분간 그 누구에게도 날 봤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길 바란다.”

막심 트리마코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딘에게 물었다.

“혹시 전하께서는 무슨 뜻을 품고 계신 겁니까?”

그 물음에 아딘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그 미소에 막심 트리마코프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빈민들 사이에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심 트리마코프의 말에 아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문?”

“전하께서 살아계시며 어딘가에서 힘을 길러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할 거라는 소문이 전설처럼 빈민들 사이에 돌고 있습니다.”

순간 아딘은 정색했다.

‘다비도프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건가?’

아딘은 막심 트리마코프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가 떠돌았지?”

“반년도 넘었을 겁니다. 작년 여름부터 곡식이 귀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으니.”

반년 전, 즉 여름이라면 아직 빅토르 다비도프와 접촉하기 한참 전이었다.

아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전설 같은 소문이군.’

그러면서 아딘은 황당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딘 콘스탄틴은 어디까지나 망나니 색마였는데…… 빈민들 사이에서는 무슨 메시아처럼 여겨지고 있다니…….’

아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막심 트리마코프에게 당부했다.

“아무튼 절대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령 네가 가장 믿는 동지라 하더라도.”

“네, 명심하겠습니다.”

막심 트리마코프의 다짐에 아딘은 씩 웃으며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 *

광명력 993년 1월 17일.

아딘이 한창 전략 수립을 위해 벨로디나 왕국 주요 도시들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무렵,

쿠만 발리크 요새 인근 마을 여관에선 로제와 안톤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딘이 안톤을 총사령관으로 삼겠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딘이 없는 지금, 안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되살아난 오른팔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도록 매일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로제는 더했다.

그녀는 아예 아딘이 자신과 함께 별동대로 편성했기에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자연히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대화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됐다.

대체로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아딘과 관계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로제가 안톤의 오른팔을 다시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내건 것이 아딘과 자기 사이에서 그가 중매를 놓는 것이었던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라버니에 대한 충성심이 정말 남다르네.’

대화를 통해 로제는 안톤이 지닌 아딘에 대한 충성심이 진심임을 깨달았다.

‘도대체 왜 이 정도까지?’

아딘으로부터 과거의 망나니 색마 시절을 전해 들었던 만큼, 로제로서는 다소 의아한 부분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안톤에게 물었다.

“오라버니께 듣기론, 오라버니는 본래 망나니 색마였다고 하셨는데 그런 옛 모습을 잘 알고 계실 분이 왜 이 정도로 충성을 다 바치는 거죠?”

로제의 물음에 순간 안톤은 할말을 잃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로제를 바라보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고는 천천히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것이 기사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예요?”

“주군에게 영원의 충성을 맹세한 기사에게 그 이상의 이유는 사족일 뿐입니다.”

대단히 고지식한 귀족적 사고방식이 충성심의 이유였다는 사실에 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서 귀족들이란…….’

안톤만큼은 아니었지만, 아테인 가문의 기사들도 굉장히 앞뒤가 꽉 막힌 고지식한 작자들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아테인 가문에서 로제가 학대를 당할 때도 주군의 일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란 이유로 혹은 귀족이 노예를 마음대로 다루는 건 당연하다는 이유로 방관하기만 했다.

‘근데 오라버니의 계획대로라면 이런 귀족적 사고방식은 이제 쓸모가 없을 텐데?’

문득 로제는 아딘으로부터 어렴풋이 들었던 혁명 이후의 세계, 귀족도 노예도 없는, 왕조차도 법의 지배 아래에 있는 세계에 관한 이상을 떠올렸다.

왕이라는 직위조차도 하나의 기호요 상징에 불과하게 될 시대에 안톤이 지닌 귀족적 보수성이 설 자리가 있을까?

뇌리를 스치고 간 생각에 로제는 다시 안톤에게 물었다.

“그쪽은 오라버니가 만드시려는 새 나라가 어떤 것인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

로제의 물음에 안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럼 그 세계에서 그쪽이 지금 지닌 충성심이란 게 무의미하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안톤은 잠시 침묵했다.

로제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줬다.

잠시 후, 안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제가 기사로 임명될 때 천계의 신들과 위대한 선지자 마우세스 레비께 했던 맹세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안톤의 모습에 로제는 살짝 질색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을 질색하게 만드는 안톤의 귀족적 보수성이 아딘에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한편, 안톤도 나름대로 로제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를 분석하고 있었다.

‘굉장히 당돌한 아가씨다. 그리고 내면에 귀족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도 보이고.’

안톤이 이제껏 보아왔던 귀족의 아가씨들과는 많이 다른 로제의 모습에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왕후 후보로서는 부적격이지만…… 강한 마법적 힘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전하께서 구축하시려는 새로운 왕국에 비추어 보았을 때, 괜찮을지도…….’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내리며 아딘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 * *

막심 트리마코프에게 철저하게 당부한 후 아딘은 사흘을 더 콘스탄티노바에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그는 비밀 통로를 통한 성 내부로의 침입과 왕궁 주요 거점 장악 및 요인 확보, 성 내외로의 협공 등에 대한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1월 19일 오전, 아딘은 콘스탄티노바를 떠났다.

북방의 대도시 노보로바야부터 남부의 항구도시 크리미아까지, 벨로디나 왕국 주요 거점 도시를 모두 둘러보며 전략을 세운 아딘은 1월 25일 다시 콘스탄티노바에 들렀다.

그곳에서 빅토르 다비도프와 접촉한 아딘은 그에게 구체적인 일정을 알려준 후 막심 트리마코프와의 접촉에 대해서도 당부한 다음 마침내 1월 27일 오후, 쿠만으로 떠났다.

* * *

광명력 993년 3월 10일.

여전히 날씨는 추웠지만, 한겨울 혹한과 비교하면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는 날씨였다.

무엇보다도 쿠만과 벨로디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눈이 어느 정도 녹아 길이 드러난 만큼, 출정하기에 딱 알맞은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자고.”

발리크 요새 내부의 막사에서 아딘은 로제와 안톤, 불카르 아시오게, 다리아, 야민 벤키시를 앉혀놓고 마지막으로 작전을 점검하고 있었다.

“우선 7천의 군대는 각각 4천, 3천씩 둘로 나누어 한쪽은 벨로디나 북부를, 다른 한쪽은 동부를 칠 것이다.”

아딘의 시선이 불카르 아시오게와 야민 벤키시 그리고 다리아에게로 향했다.

“북방을 칠 1군단 4천은 불카르 아시오게 그대가 지휘하고, 동방을 칠 2군단 3천은 야민 벤키시와 다리아 아시오게 두 사람이 지휘하고.”

아딘의 말에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군이 본격적으로 공성을 시작하면 성 내부와 도시 곳곳에선 민란이 발생할 것이다. 도시 점령 후 민중 반란군을 중심으로 치안대를 결성하여 점령지를 안정화시키는 것은 총사령관인 안톤 르보프가 전담하고.”

아딘의 말에 안톤은 고개를 한 차례 푹 숙이며 알아들었다는 표현을 했다.

“나와 로제는 별동대로 전장을 오가며 유연하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처하고.”

그 말에 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가 북방과 동방을 장악하면 저들은 분명 콘스탄티노바와 크리미아를 사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콘스탄티노바 점령 및 유리 콘스탄틴을 비롯한 주요 귀족들을 포로로 잡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아딘은 비밀 통로를 이용한 콘스탄티노바 성채 내부 진입에 관한 작전을 읊었다.

“불카르 아시오게는 본대에 남아서 공성전을 통제하고, 로제는 크리미아와 콘스탄티노바 사이를 오가며 적 보급부대에 대한 습격에 힘쓰고.”

불카르 아시오게와 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르보프 총사령관과 다리아 아시오게는 각 50명씩 잘 훈련된 보병을 이끌고 나와 함께 습격조가 돼 성채 내부에 진입하여 요인 확보 및 성문 개방에 힘쓰시고.”

안톤과 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민 벤키시는 정예 전사단과 함께 문이 열리는 즉시 성채 내부에 진입하여 사방에 불을 지르도록 해.”

야민 벤키시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외에 여러 자잘한 작전 내용까지 다시 재점검한 아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전쟁의 의미는 단순히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하자는 것이나 찬탈당한 왕위를 되찾는 것 혹은 적대적 외세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키자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딘은 찬찬히 막사에 모인 지휘부를 바라봤다.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이번 전쟁의 진정한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모두들, 서로의 차이와 갈등은 잠시 묻어두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전쟁에 협력해주길 바란다.”

아딘의 말에 막사에 모인 지휘부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해 봐야 뭐 그 말이 그 말일 테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출발하지.”

아딘의 말에 불카르 아시오게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뭘 좀 알고 있구만. 그래, 전쟁이고 사냥이고 결국 현장에서 칼 휘두르고 화살 날리고 창 던지는 게 전부지, 혓바닥으로는 아무것도 못 해.”

그러면서 그는 아딘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아딘 또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그럼 출발하지.”

아딘이 먼저 막사를 나섰다.

그 뒤를 이어 차례로 지도부가 막사를 나섰다.

잠시 후, 발리크 요새 밖으로 나간 그들은 출정 준비를 끝마친 7천여 명의 전사들과 마주했다.

“콘스탄티노바에서 만납시다.”

1군을 이끄는 불카르 아시오게가 그렇게 이야기하곤 서북쪽으로 나아갔다.

“콘스탄티노바에서 뵙겠습니다.”

2군을 이끄는 야민 벤키시도 같은 말을 하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아딘은 로제와 안톤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도 천천히 이동해 볼까?”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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