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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04화 (104/175)

104 민란 계획 (2)

“그대는 지금의 봉건정이나 왕정이 왜 민중에 대한 착취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나?”

아딘의 물음에 빅토르 다비도프는 고민 없이 즉답했다.

“귀족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 대답에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겁니까?”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그런 권력을 독점한 귀족이 견제받지 않는 것도 착취로 이어지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지.”

빅토르 다비도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유리 콘스탄틴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제니스 공화국 세력을 축출한다고 하더라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독점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만들 새 벨로디나는 과거의 벨로디나와 별 차이가 없는, 민중을 위한 착취 도구로서나 기능할 걸세.”

“동의합니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혁명이 성공한다면, 권력과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맞출 체계를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네.”

빅토르 다비도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런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혁명 이후의 벨로디나는 현재의 벨로디나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빅토르 다비도프가 공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딘이 말한 이상일 뿐이었다.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런 체제를 만드는 게 쉬울 거라 보십니까?”

“쉽진 않겠지. 분명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혁명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그러한 체제를 만드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빅토르 다비도프의 물음에 아딘은 술잔을 집어 든 채 그 향을 맡으며 이야기했다.

“자네, 왕정이나 공화정이나 권력을 쥔 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두 가지가 뭔 줄 아나?”

“뭡니까?”

“여우의 두뇌와 사자의 심장.”

그리고 아딘은 술을 쭉 들이켰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인상을 살짝 찡그린 채 아딘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때, 빅토르 다비도프는 아딘의 뜻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동조하는 마음을 품게 됐다.

“전하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일단 무력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결국 정보 공작 능력인 건데…….”

“그래서 자네가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나?”

아딘의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는 씩 웃었다.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겸손한 척하지는 마시게. 이 엄혹한 상황에서도 거지와 창녀, 하인들로 벨로디나 왕국의 사정을 손바닥 안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면 뭘 못하겠나?”

빅토르 다비도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대로 술을 쭉 들이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아딘의 물음에 빅토르 다비도프가 씩 웃으며 답했다.

“전하께서 주문하신 일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합니다.”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딘에게 빅토르 다비도프는 이야기했다.

“전하께서 말씀해 주신 날에 맞춰서,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나도록 조치해 두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혁명 이후에 부디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러한 국가를 만들어 주십시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혁명의 배신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싫어. 걱정하지 말게.”

* * *

광명력 993년 1월 14일 아침.

콘스탄티노바 왕궁 여름 궁전.

유리 2세는 발코니에 서서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콘스탄티노바 일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넓은 왕궁과 그 주변에 포진한 귀족의 대저택으로 대표되는 콘스탄티노바의 풍경을 바라보며 유리 2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의 치세가 콘스탄티노바를 더욱 풍요롭고, 벨로디나를 더욱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타샤는 그런 유리 2세의 뒤에 선 채 그를 칭송했다.

그 순간, 유리 2세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살짝 돋아났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과찬이니라.”

유리 2세는 그렇게 이야기한 후 방 내부로 들어섰다.

나타샤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찬바람을 맞아서 그러한가, 짐의 몸이 편치 않으니 그대는 짐을 위하여 따뜻한 차를 내오도록 시종들에게 명하거라.”

유리 2세의 말에 나타샤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대기 중이던 시종에게 유리 2세가 한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곧 시종들이 밖으로 나갔다.

유리 2세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나타샤의 물음에 유리 2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라. 단지 몸이 으슬으슬할 뿐이니, 그대는 걱정하지 말길 짐은 바라노라.”

그렇게 이야기하며 유리 2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는 채 따뜻한 차가 나오기도 전에 잠이 들고 말았다.

나타샤는 시종에게 차를 도로 들고 가라 명한 후 가만히 유리 2세의 곁을 지켰다.

나타샤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 2세는 꿈에서 그의 형, 선왕 블라디미르 2세를 만났다.

둘 모두 젊은 시절이었다.

“아우야.”

블라디미르 2세가 유리 2세에게 물었다.

“말씀하시옵소서, 폐하.”

유리 2세는 형님에게 깍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권력은 한순간이지만, 역사는 영원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2세의 말에 유리 2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에게는 한순간의 권력조차 쥘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폐하.”

유리 2세의 대답에 블라디미르 2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란다.”

그 순간, 유리 2세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그를 향해 블라디미르 2세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내 아들이, 너의 그 순간을 끝내고, 영원한, 역사의, 오명을, 위하여, 갈, 것이다.”

곧 블라디미르 2세의 얼굴이 녹아내렸다.

그 자리에는 오만한 표정으로 세상 만물을 내려다보던 조카,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의 얼굴이 나타났다.

“허억-!”

유리 2세는 눈을 번쩍 떴다.

가만히 그의 곁을 지키던 나타샤가 일순간 움찔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나타샤의 물음에 유리 2세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폐하?”

“아…… 괘, 괜찮느니라.”

그러면서 유리 2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커헉-!”

그 순간, 그는 옆구리에서 강한 통증을 느끼며 다시 침대에 누워야 했다.

그것을 본 나타샤의 표정이 굳었다.

“가서 궁정 사제를 불러오십시오.”

나타샤는 시종에게 그렇게 명령한 후 일그러진 얼굴로 고통을 호소하는 유리 2세의 곁에 바짝 다가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고통 속에서 유리 2세는 나타샤에게 말했다.

“괜찮은 걸로 보이느냐?”

유리 2세의 반응에 나타샤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입을 열었다.

“곧 궁정 사제가 올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나타샤의 말대로 곧 궁정 사제가 나타났다.

사제는 가만히 유리 2세의 곁에 앉아 그를 위한 치유 기도문을 읊었다.

치유 기도문과 함께 찬란한 신성력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와 유리 2세를 감쌌다.

그러나 신성력은 그의 옆구리 통증을 치유하지 못했다.

“모두들…… 나가 있길 바라노라. 이 고통은 나 홀로 있어야만 낫는 것이니라.”

유리 2세의 말에 궁정 사제를 비롯해 모든 시종들이 문밖으로 나갔다.

오로지 나타샤만이 침실 구석에 마련된 조그만 거처로 들어가 계속해서 유리 2세를 감시할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시 통증이 재발한단 말인가?’

유리 2세는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고통이…… 형님께서 내게 주신 고통이…… 다시 이런 식으로……’

아주 오래전, 블라디미르 2세를 향한 반란에 실패한 후, 형님은 동생에게 사형에 준하는 형벌을 내림으로써 그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 형벌로 인해 생긴 옆구리 상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치유됐지만, 아주 가끔 통증이 발현되곤 했다.

그리고 오늘, 유리 2세는 기묘한 꿈과 함께 다시 나타난 통증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통증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꿈에서 블라디미르 2세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아딘…… 아딘이 내게 온다고?’

왕국 유일의 소드마스터와 탈출한 후 끝끝내 찾지 못했던 조카, 아딘을 떠올리며 유리 2세는 눈을 감았다.

‘차라리 그게 잘 되는 것일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 2세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고, 또 참아야만 했다.

* * *

1월 14일 정오, 아딘은 상트 보가르를 떠났다.

그 전날 도시를 떠난 빅토르 다비도프는 곧장 콘스탄티노바로 가지 않고, 아딘이 지목해준 주요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체르노비치 세포 조직들을 결합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뭐, 준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당장 이 도시에 하루에 감자 하나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 3만 명이 넘습니다. 다들 굶주림에 눈이 돌아가 있는 상황인데, 약간만 부채질하면 충분히 민란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이미 곳곳에서 민란의 징후가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통제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벌써 용병들이 살해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령님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그날로 우리는 대략 5만 명 정도 규모로 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돼 있습니다.”

북부의 노보로바야부터 남부의 크리미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중소규모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벨로디나 전역에 분포한 체르노비치의 세포 조직에서는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그러한 보고를 올렸다.

물론 빅토르 다비도프는 보고만 받고 넘어가진 않았다.

그는 직접 고양이로 변신해 도시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모든 것은 준비가 완료됐다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내가 일괄적으로 너희들에게 수정구슬을 통해 봉기를 명령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너희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 도시에서 봉기를 일으켜야 할 것이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체르노비치 세포 조직의 장들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는 콘스탄티노바의 은신처로 되돌아갔다.

“제니스 공화국에서 일부 용병을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콘스탄티노바로 돌아간 그에게 궁정에 암약해 있던 정보원으로부터 하나의 긍정적인 보고가 들어왔다.

비록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향후 전쟁 이후에 제니스 공화국이 벨로디나 왕국을 재침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만큼, 빅토르 다비도프는 한결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이제 곧, 우리가 고대하던 그 날이 다가온다. 이 땅을 집어삼킨 제니스의 마수로부터 이 나라와 민중을 해방할 그 날 말이다. 모두들 그때까지 몸을 사리고 있길 바란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정보원들에게 그러한 전언이 전달되도록 조치한 후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권력 분립과 상호 견제 체계라…….’

아딘이 그에게 일러준, 새로운 벨로디나의 모습.

‘연합 왕국…… 공화정과 왕정을 혼합한 법치국가…….’

분명 모두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아딘은 그러한 것들을 이룰 구체적인 행동 계획까지도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말해주었다.

‘만약 그대로 된다면, 잘만 하면 아딘 콘스탄틴을 허수아비 국왕으로 만들 수 있겠어.’

그랬기에 빅토르 다비도프의 불안은 더 깊어져만 갔다.

‘과연 아딘 콘스탄틴이 스스로 허수아비가 되는 체제를 진정성 있게 만들려고 할까?’

아딘은 분명히 이야기했다.

혁명의 배신자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역사란 결국 승자의 기록에 불과했다.

즉, 아딘이 승자가 된다면 역사는 얼마든지 그를 혁명의 배신자에서 혁명의 주역,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믿어 보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혁명 이후에 대한 불안과 민란을 앞둔 것에 대한 긴장감 속에서 빅토르 다비도프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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