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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99화 (99/175)

099 용병 (2)

“용병?”

쿠만족장 쿤다르 아시오게의 물음에 사냥터지기 불카르 아시오게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뭐, 우리가 곳잘 용병업에 종사하기는 했으니 특이한 건 아닌데…… 이 판국에? 도대체 누구길래?”

“아딘 콘스탄틴이라고 합니다.”

“응? 콘스탄틴? 벨로디나 왕족이라고?”

“지금 왕의 조카라고 합니다.”

“조카? 그럼 뭐야? 이전 왕의 아들이란 거야?”

“그렇답니다.”

“블라디미르 그놈 아들내미들 지금 국왕이 다 쳐 죽였다며?”

불카르 아시오게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허어. 이 뭔……”

쿤다르 아시오게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가만히 콧수염을 쓰다듬더니 술을 한 모금 넘기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몇이나 원한다디?”

“한 3천 명?”

“뭐?”

쿤다르 아시오게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연이어 뀌어대며 혀를 찼다.

불카르 아시오게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뭘 대가로 준다디?”

“아버지한테 벨로디나 작위를 주겠다고 합디다.”

“뭐?!”

쿤다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술을 쭉 들이켠 후 의자에 등을 파묻은 채 살짝 짜증나는 표정으로 불카르 아시오게를 바라봤다.

“아들아.”

“네, 아버지.”

“거 정신병자 같은 놈이 헛소리하면 그 자리에서 입을 찢었어야지.”

“찢으려 했습니다.”

“근데?”

“제가 찢어질 뻔했죠.”

“뭐?”

그제야 쿤다르 아시오게는 뭔가 일이 단순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네 아가리를 찢으려 했다고?”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헛소리하길래 일단 팔 하나 부러뜨리고 시작하려 했습니다. 근데 그 자식이 제 주먹을 다 피하는 거 아닙니까?”

“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칼을 뽑아서 휘둘렀는데…… 그게…… 그 자식이 손으로 제 칼을 잡았습니다.”

“뭐? 손으로 잡았다고?”

“네.”

쿤다르 아시오게는 굳은 표정으로 불카르 아시오게의 눈을 바라보았다.

“전력으로 휘둘렀고?”

“처음에는 가볍게 휘둘렀는데, 한 번 잡힌 다음에는 전력으로 휘둘렀죠.”

“두 번이나 잡았다고?”

“네.”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불카르 아시오게는 어깨를 으쓱했다.

쿤다르 아시오게는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손으로 주물렀다.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쿤다르 아시오게는 다시 불카르 아시오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인간은 지금 계속 여관에 있고?”

“제가 답을 들고 올 때까지 있겠다고 했습니다.”

“흐음…….”

쿤다르 아시오게는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

꿍꿍이가 뭘까?

전대 벨로디나 국왕 블라디미르 2세의 아들들은 모두 죽었다는데, 그 아들을 자칭하는 놈의 정체는 뭘까?

그런 고민은 그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불카르 아시오게는 아딘과의 싸움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싸움이라기보단 일방적인 공격과 일방적인 방어였지만.’

아딘은 불카르 아시오게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카판족과 쿠만족을 벨로디나 연합 왕국에 포함하는 구상을 알리며, 쿠만족장은 공식적으로 벨로디나 연합 왕국 내에서 품계를 가지는, 형식적으로 국왕이 임명하는, 실질적으로는 기존 관습대로 지위가 이어지는 총독이 될 것이라 말했다.

물론 거기에 대한 불카르 아시오게의 답은 명백한 부정이었다.

그리고 그 부정 끝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아딘에게 진정한 정체를 물었다.

그 물음에 아딘은 그저 스스로가 아딘 콘스탄틴임을 알릴 뿐이었다.

그것이 불카르 아시오게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자기 앞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불카르 아시오게는 즉시 아딘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딘은 그것을 다 피했고, 화가 잔뜩 난 불카르 아시오게는 급기야 칼까지 뽑아들어 휘둘렀다.

그리고 그가 휘두른 칼은 모두 아딘의 손에 막혔다.

‘잡히기만 했으면 덜 부끄러웠지.’

아딘은 불카르 아시오게의 칼을 잡기도 했지만, 손가락으로 막기도 했다.

급기야 마지막, 불카르 아시오게가 전력을 다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칼의 경우에는 아딘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탁 끼워진 채 뽑히지도, 그렇다고 나아가지도 않는 형국에 빠지게 됐다.

‘진짜 아딘 콘스탄틴인지, 아니면 그를 사칭하는 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미치광이와 같은 야심을 가질 자격은 있다는 거야.’

불카르 아시오게는 턱을 쓰다듬었다.

‘벨로디나는 어차피 망하게 돼 있어. 들려오는 소식 중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으니까.’

촌구석이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래도 불카르 아시오게는 나름 벨로디나 사정에 대해 알아야 할 건 다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가 들어선다면…… 흠…….’

불카르 아시오게의 뇌리에 한 사람이 지나갔다.

그것은 그의 딸 다리아 아시오게였다.

‘언제까지 쿠만 촌구석에 처박혀 있을 순 없지. 여기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그저 현재만이 있는 곳일 뿐이니까.’

그의 머릿속에서 아딘과 다리아 아시오게가 동시에 서 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별안간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웃고 있는 거야? 이 심각한 상황에.”

그것을 본 쿤다르 아시오게가 그를 나무랐다.

불카르 아시오게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했다.

“심각한 상황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상황인지는 두고보면 알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생각이 있는 거냐?”

“생각이라기보단…… 이 도박에 판돈을 얹을 가치가 아버지는 있다 보십니까?”

“무슨 도박?”

“아딘 콘스탄틴을 자칭하는 자가 벨로디나를 무너뜨리고 거기의 새 지배자로 올라설 도박 말입니다.”

“못할 건 없지? 어차피 우리야 용병만 내주는 거니까.”

“단순히 용병만 제공하는 도박 말고 말입니다.”

“그러면?”

불카르 아시오게가 씩 웃었다.

순간 그 웃음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한 쿤다르 아시오게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너 그러다 딸한테 맞는 수가 있다?”

“설마 아비를 때리기야 하겠습니까?”

“때리려들면 막을 수는 있고?”

쿤다르 아시오게의 말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설마 딸이 애비를 패겠냐?

“일단 며칠 뜸을 들이다가 같이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가서 적당히 교섭이 되고나면 아버님께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해라.”

귀찮다는 양손을 휘휘 젓는 쿤다르 아시오게에게 불카르 아시오게는 인사를 올린 후 그의 방을 빠져나갔다.

‘언제까지 이런 눈밭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탑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와중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창 너머로 땅과 산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 * *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전하?”

안톤의 물음에 아딘은 그를 바라보았다.

“불카르 아시오게와 싸운 일 말이옵니다.”

그 말에 아딘은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을 거야.”

아딘은 확신감을 가지고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안톤은 마냥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쿠만족이 우리보단 위계질서가 덜하다곤 하오나, 그래도 불카르 아시오게는 차기 쿠만족장이옵니다. 쿤다르 아시오게가 노기를 발하여 전사들을 이끌고 이곳을 습격이라도 하면…….”

“뭐, 그렇게 하면…….”

아딘은 슬쩍 로제를 바라보았다.

로제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하고 그대가 다 쓸어버리면 되지 않겠나? 여차하면 로제가 뒤에서 마법으로 지원을 해 줄거고 말이야.”

“그건 그러하오나…… 그 경우에는 용병을 확보하시겠다는 전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사옵니까?”

“거, 너무 걱정하지 말래도.”

아딘과 로제, 안톤은 계속해서 전략을 구상하며 이틀 전 있었던 아딘과 불카르 아시오게 간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쿤다르 아시오게라면 모를까, 불카르 아시오게는 내 말을 쉽게 무시하진 못할 거니까. 내 힘을 확인한 이상엔 더더욱 그럴 거고.”

아딘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결국 안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께서 저리 말씀하신다면……’

그러면서 문득 안톤은 아딘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막강한 힘도 힘이었지만…… 눈빛이 변하셨어.’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딘의 눈빛에는 교활함과 사특함이 맴돌았다.

실제 그의 성격이라든가 성향을 반영이라도 하는 것 같은, 마치 사악한 뱀과도 같은 그 눈빛.

하지만 지금 아딘의 눈빛은 차분했고 맑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딘은 이제 참을성이란 걸 갖고 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만 수틀리면 폭력을 행사하든가 하는 식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려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기다림이란 걸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아딘은 보여주고 있었다.

‘추후에 전하께서 국왕의 자리에 오르신다면, 지금 모습이 과거의 모습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겠지.’

그렇게 안톤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별안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입니다. 사냥터지기가 뵙자고 하십니다.”

이틀 전, 주점에서 일어난 아딘과 불카르 아시오게의 충돌 이후, 여관 주인의 말투는 한층 더 공손해졌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부디 무탈하시기를 기원하옵니다, 전하.”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서 아딘은 그렇게 1층 주점으로 내려갔다.

‘응?’

그리고 그는, 주점 한 가운데 원탁에 앉은 불카르 아시오게와 그의 좌측에 앉은 쿠만인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누구지? 자기 딸?’

문득 안톤이 보여줬던 초상화를 떠올린 아딘은 피식 웃으며 원탁으로 가 불카르 아시오게의 맞은편에 앉았다.

“역시, 남자답군. 사냥터지기를 때리고도 도망가지도 않고 말이야.”

불카르 아시오게의 말에 아딘은 씩 웃으며 맞받아쳤다.

“그쪽이 휘두른 칼을 막기는 했지만, 그쪽을 따로 때리거나 한 적은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오?”

“거 그냥 대충 들어주면 되지 뭔…… 하여간 이래서 벨로디나 놈들은…… 꼬치꼬치 따지는 거 좋아하고…… 에이잉…….”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불카르 아시오게는 여관 주인을 향해 술상을 차리라 손짓했다.

그사이 아딘은 불카르 아시오게의 곁에 앉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초상화보다는 조금 더 예쁘고, 성숙해 보이는 모습의 여인은 쿠만인답게 굉장히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두꺼운 가죽옷을 입은 까닭에 더 그러한 경향이 강하게 보였다.

“아, 소개하지. 내 딸 다리아 아시오게라네.”

불카르 아시오게의 말에 여인, 다리아는 가만히 아딘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딘도 가볍게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시선을 곧장 불카르 아시오게에게로 돌렸다.

“그래, 내 제안에 대해 족장께서 확답을 해주셨소?”

아딘의 물음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고 알아서 하라더군.”

“전권대사다 이거요?”

“전권대사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내가 결정해서 자기한테 보고만 하라고 하시는군.”

“그걸 벨로디나에선 전권대사라 부른다오.”

“그러시든가.”

불카르 아시오게는 물을 한 모금 넘겼다.

그리곤 아딘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대의 제안, 받아들이지.”

그 말에 아딘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쳐졌다.

불카르 아시오게가 씩 웃었다.

“다만, 나도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

“제안?”

아딘은 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거래라는게 하나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니까, 말해보시오.”

아딘의 말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술상이 차려졌다.

술상이 세팅될 때까지 불카르 아시오게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제발 저번처럼 싸우지는 마시고…….”

술집 주인이 그 말을 끝으로 주방으로 들어가자 불카르 아시오게가 세 사람의 잔을 채웠다.

그리곤 자기 잔을 먼저 비운 후 아딘에게 말했다.

“자네가 진짜 아딘 콘스탄틴인지 아닌지, 난 뭐 솔직히 그런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아딘은 가만히 불카르 아시오게를 바라봤다.

“어차피 집권을 하려면 명분이란 게 필요한 거니까 말이야.”

불카르 아시오게는 가만히 아딘을 바라봤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내 사위가 된다면, 어쨌건 자네가 구상하는 연합 왕국인지 뭔지가 좀 더 구성이 쉬워지겠지?”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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