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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73화 (73/175)

073 불멸의 신전 (2)

[스르릉-!]

청아한 소리와 함께 황금빛 검신이 칼집에서 뽑아져 나왔다.

“……?”

검을 절반 정도 뽑은 상태에서 아딘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잠시 황금빛 양날검의 칼날을 내려다보던 아딘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샤푸르를 바라보았다.

샤푸르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그가 손뼉을 치자 루이 알랭도 아딘을 향해 박수를 보내 주었다.

로제도 활짝 웃으면서 손뼉을 치며 기뻐했고, 라인하르트도 분위기에 휩쓸려 힘껏 박수를 아딘에게 보냈다.

“이, 이게……”

자신을 향한 세 사람과 한 용의 박수 가운데서 아딘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불멸의 검을 완전히 다 칼집에서 뽑아냈다.

[크허어엉-!]

[우우우웅-!]

불멸의 검이 세상에 자신의 칼날을 드러내자마자 네르갈의 목걸이와 불칸의 갑옷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황금빛 광채가 서서히 아딘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윽고 불칸의 갑옷이 활성화되며 아딘의 전신을 감쌌다.

[화아악-!]

불칸의 갑옷과 네르갈의 목걸이, 불멸의 검이 동시에 공명하며 아낌없이 황금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황금빛 광채는 이내 아딘의 배후에서 후광처럼 넘실거렸다.

“아아……”

“오오……”

마치 대천사의 날개처럼, 신들의 후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을 바라보며 로제와 라인하르트는 손뼉 치던 것을 멈춘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곤 그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흐음…….”

“허허…….”

루이 알랭조차도 감탄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샤푸르는 활짝 웃으며 홀가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끼룩-! 끼룩-! 끼룩-!]

[푸드드득-!]

지붕 위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갈매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며 일정한 톤으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푸화아악-!]

신전 뒤편 바다에서 느긋하게 헤엄치던 거대한 고래가 한 차례 해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꾸이익-! 꾸이익-!]

[꼬꼬꼬꼬꼬-!]

샤푸르가 기르던 돼지들과 닭들이 모두 질서정연하게 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드디어…… 임자가 나타났구만.”

인간과 용, 짐승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자리에 모인 신물들이 뿜어대는 찬란한 영광을 지켜보거나 느끼는 가운데 샤푸르는 홀가분한 어조로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이, 이건…….’

그리고 아딘은 자신을 휘감은 황금빛 광채 너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 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칸, 네르갈 그리고 티르?’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세 신의 모습에 아딘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세 신은 미소 어린 얼굴로 아딘을 바라보더니 이내 동시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대견하다는 듯 혹은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듯.

그 모습에 아딘도 마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상대방의 끄덕임이 지닌 의미는 몰랐지만,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온 감동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이윽고 신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아딘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던 황금빛 광채도 사라졌다.

불칸의 갑옷은 다시 해제돼 벨트의 형상으로 되돌아가 아딘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네르갈의 목걸이도 더 이상 포효하지 않았다.

아딘은 천천히 불멸의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우우웅-!]

칼집에 들어가자마자 불멸의 검은 마치 환영한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아딘은 가만히 칼집을 쓰다듬어 준 후 불멸의 검을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오…….”

“흠…….”

로제와 라인하르트 그리고 루이 알랭은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저마다 탄성 내지는 침음성을 내며 마법 주머니로 들어가는 불멸의 검을 바라보았다.

[짝짝-!]

샤푸르가 가볍게 두 차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다들 배고플 텐데, 들어가서 점심 식사라도 하지.”

샤푸르의 말에 아딘은 가볍게 그에게 고개를 숙인 후 대답했다.

“초청에 감사를 표합니다, 불멸자 샤푸르.”

그 인사에 샤푸르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나야말로 고맙네. 이렇게 찾아와줘서.”

* * *

광명력 992년 10월 10일.

아딘이 불멸의 신전에서 신물을 모두 손에 쥐던 시각.

샤펠 제국 수도 아퐁에 자리한 황궁 어전에서는 샤펠 제국 제29대 황제 샤를 11세가 대신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디에고 공작 에르네스토가 가신들을 규합해 버티는 상황이지만, 엔리케 백작 아우구스토의 세력도 워낙 막강한지라 누구 하나 선뜻 손을 쓸 수가 없는 대치 상황입니다.”

재상의 말에 샤를 11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재상이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윤허하여 주신다면 제가 직접 중재를 서 보겠습니다.”

그 말에 순간 샤를 11세가 차가운 눈으로 재상을 바라보았다.

그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눈빛에 재상은 움찔하며 고개를 팍 숙였다.

“이보시오, 랑트 공작.”

“네, 네…… 폐하…….”

샤를 11세의 부름에 재상 알퐁소 루이 드 랑트 공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바마마께서 병환으로 누워계시어 어전에 행차하시지 못하시는 동안 그대가 대신하여 어전회의를 이끌었다 하여 그대가 황제가 된 것은 아니외다?”

샤를 11세의 말에 랑트 공작은 물론 재무관 알랭 드 디오 남작과 다른 대신들 심지어 묵시록 종단에 속한 대장군 라르고 드 로망스 백작까지도 심장이 얼어 붙는 것을 느끼며 눈을 내리 깔아야 했다.

“제국 전체가 아바마마를 애도하는 이 시기에 내 손에 피가 묻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소이다. 아시겠소?”

“아, 아, 알겠사옵니다, 폐하…… 시, 신이 겨, 경솔했사옵니다.”

“그대는 애도 기간이 끝나는 즉시 파사란 요새 사령관으로 가시오. 그대가 그토록 원하니 그곳에서 북부의 상황을 잘 감시하면서 내게 보고하기 바라오.”

샤를 11세의 말에 랑트 공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말이 공작이지 실상은 황제로부터 황실 직할령 중 일부에서 거두는 조세를 급여 형태로 받는 머슴에 불과한 입장이었기에 랑트 공작에게 거부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 알겠사옵니다. 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애도 기간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개월 하고도 열흘.

이제부터 랑트 공작이 할 일은 서둘러 가산을 정리해 제국 북부와 황실 직할령 그리고 제국 동부의 경계에 자리한 도시 파사란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선황 프랑수아 4세를 따르던 재상을 경질한 후 샤를 11세는 바짝 얼어붙은 대신들을 바라보며 한 차례 냉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그리고 그가 막 북부 봉건 귀족의 대립에 관한 지침을 내리려 하는 순간,

‘헉-!’

샤를 11세는 정수리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는 강력한 전율을 느끼며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것을 보질 못했다.

“일단은…… 모두 물러나 있으시오. 북부의 분쟁에 관한 지침은 이틀 후 어전회의에서 이야기하겠소.”

한동안 부르르 떨던 샤를 11세는 이윽고 안정을 되찾은 후 대신들에게 명령했다.

“네, 폐하.”

대신들은 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어전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충격받은 듯 비틀거리던 랑트 공작이 마지막으로 어전을 나가고, 샤를 11세가 혼자 남게 되자 어전 구석 그림자 속에서 한 남성이 튀어나왔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남성, 로이는 재빨리 샤를 11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드 님. 무슨 일이십니까?”

로이의 물음에 샤를 11세는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이드 님?”

재차 로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샤를 11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드랄.”

“네, 아이드 님. 말씀하시옵소서.”

“놈이…… 그놈이…… 모든 신물을 손에 넣었다.”

샤를 11세의 말에 로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윽고 로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렸다.

“엘드랄.”

그런 로이를 바라보며 샤를 11세가 이야기했다.

“올해 안에 교단 조직을 다시 재정비하고 질서도 다시 잡아야겠어.”

“제 생명을 다 바쳐 헌신하겠사옵니다, 아이드 님.”

로이는 그 자리에 엎어져 오체투지를 하며 샤를 11세에게 충성과 헌신을 다짐했다.

샤를 11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나? 그래, 보고 있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당신이 방조한 재앙의 등장을 막고, 모든 것을 손에 쥐었을 때 당당하게 당신에게 찾아갈 테니까. 기대되는군. 정말 기대가 돼.’

자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퐁피두 황가 황제의 몸을 빌리며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오게 만든 존재를 향해 그렇게 속으로 이야기하며 샤를 11세, 아이드는 한동안 웃고 또 웃었다.

* * *

“난 딸에게 마법을 좀 더 알려주러 나갔다 오겠네.”

“갔다 올게요, 오라버니.”

루이 알랭은 로제를 이끌고 마법을 가르치러 나갔다.

“저는 잠 좀 자겠습니다. 피곤해 미치겠습니다.”

라인하르트는 2층에 자리한 손님용 방으로 올라갔다.

그랬기에 훈제 닭고기 요리로 점심을 먹은 후 이루어진 티타임에는 아딘과 샤푸르 단둘만이 자리하게 됐다.

“얼떨떨한가?”

자신이 직접 재배한 찻잎을 우린 차를 아딘이 한 모금 마시자마자 샤푸르는 그렇게 물었다.

“네?”

은은하면서도 달달한 차의 향을 음미하지도 못한 채 아딘은 샤푸르에게 되물었다.

“얼떨떨한가?”

그런 아딘에게 샤푸르는 다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잠시 샤푸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아딘은 차를 한 모금 더 넘긴 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어째서?”

“생각보다 너무 쉽게 불멸의 검이 저를 선택해주어서 말입니다.”

아딘의 말에 샤푸르는 껄껄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딘은 말을 이었다.

“앞서 두 신물을 구할 때는 그 과정도 과정이었지만,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 두 신을 만났을 때도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딘은 자신이 불칸의 갑옷과 네르갈의 목걸이를 구할 때 있었던 이야기를 샤푸르에게 털어 놓았다.

두루마리라든가 빙의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를 아딘이 털어놓는 동안 샤푸르는 잠자코 듣기만 하며 차를 마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과정부터도 상당히 수월했습니다. 비록 엘프와의 오해가 생겨서 잠시 서로 갈라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엘프와의 오해를 풀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이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딘은 다소 식어 미지근해진 차를 쭉 들이켠 후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검은 제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검을 잡았을 때, 무슨 환상이 나타나서 싸움을 시킨 것도 아니었고 저에게 무언가를 물어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격심사라도 할 줄 알았나?”

샤푸르가 아딘의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칸이나 네르갈, 두 신과는 다른 형태로 있을 거라곤 생각했습니다.”

아딘의 말에 샤푸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불멸의 검이 너무 쉽게 자네를 선택해준 게 당혹스럽다 이거지?”

“네, 그렇습니다.”

“허허허허.”

샤푸르는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리며 차를 쭉 들이켰다.

그리곤 자기 잔을 새로 채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당혹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샤푸르는 고대 고르간 왕국 스타일의 사기 주전자를 내려놓고 가만히 아딘을 바라보았다.

홀가분함이 여실히 주름살 속에 베여 있는 불멸자의 여유로운 표정을 아딘도 가만히 마주 보았다.

“근데 자네가 느끼는 당혹감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자네가 불멸의 검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야.”

“네?”

아딘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샤푸르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한 차례 너털웃음을 터뜨린 샤푸르는 차를 한 모금 넘긴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멸의 검이 자네를 선택한 게 아니야.”

“네? 그럼……”

“자네가 불멸의 검을 선택한 게야.”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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