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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72화 (72/175)

072 불멸의 신전 (1)

갑작스러운 루이 알랭의 질문에 순간 아딘은 당황했다.

전혀 맥락을 짚기 힘든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말입니까?”

아딘의 물음에 루이 알랭은 그저 그를 직시함으로서 답을 대신했다.

“저는……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입니다. 벨로디나 왕국 18대 국왕이셨던 블라디미르 2세의 장남이자 정당한 상속권을 지닌 왕자입니다. 비록 지금은 존 스미스라는 가명을 쓰고 다니고 있지만.”

루이 알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 말고.”

“그럼……?”

아딘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딘은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왜 시선을 못 떼겠지?’

루이 알랭의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크허엉-!]

네르갈의 목걸이가 음파를 뿜어대며 으르렁거렸다.

아딘의 체내에 잠들어 있던 불칸의 갑옷이 깨어나며 파동을 뿜어댔다.

어느새 아딘의 몸은 황금빛 광채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마치 아우라처럼 그의 전신에서 황금빛 아지랑가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형상으로 피어올랐다.

“흐음…….”

루이 알랭은 이내 가볍게 침음성을 내며 아딘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곤 허공에서 새처럼 날아다니는 로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로제는 자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네.”

루이 알랭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아딘의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빛도 사그라들었다.

“그저 고마운 오라버니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했을 뿐이었지.”

루이 알랭이 다시 시선을 아딘에게로 돌렸다.

아딘은 흠칫했지만, 조금 전과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아이의 기억을 들여다 봤다네.”

그 말에 아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조금 전의 현상은 루이 알랭이 자신의 기억을 염탐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라고.

그런 아딘의 생각을 읽었는지 루이 알랭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이었다.

“인간의 기억은 객관적인 정보가 아닐세.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지. 왜냐하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과 감정이 뒤섞여 있기 때문일세. 그래서 똑같은 걸 보고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게 인간의 기억이야.”

다시 루이 알랭은 시선을 로제에게로 돌렸다.

“꺄하하하-!”

“으허어어억-!”

즐거워하는 로제와 두려워하는 라인하르트의 상반된 비행을 바라보며 루이 알랭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로제의 기억에서 자네를 향한 내 딸아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네.”

로제의 마음이란 말에 아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뵌가르트에서 토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간 애써 무시하고 있던 화두를 로제의 아버지이자 최고의 지혜와 마법을 갖춘 용이 다시 꺼내자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자네가 내 딸을 구해줬을 때, 그녀의 감정은 종교적 신앙에 가까웠네. 그리고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그 감정은 점차 인간적인 감정으로 변해갔지.”

루이 알랭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 순간, 주변 풍경이 변했다.

‘발스?’

폭우가 내리는, 비와 어둠에 잠긴 도시 발스.

그곳 상공에서 아딘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거 놔라고!”

로제가 각성하는 모습을.

각성한 그녀가 무리하게 마법을 난사하며 빈사 직전의 자신을 구하는 모습을.

‘환상?’

어두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딘에게 루이 알랭이 이야기했다.

“로제의 기억을 토대로 내가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라네.”

“아…… 네.”

“이 시점부터 그대에 대한 로제의 마음은 확실히 변했다네. 여전히 종교적 숭배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적인 감정이 주를 이루었지. 고마움, 미안함, 애착, 의존 뭐 기타 등등.”

다시 환상이 사라지고, 아딘은 현실로 돌아왔다.

루이 알랭이 아딘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렝고스에서 그 난리를 피운 뒤로 자네를 바라보는 로제의 감정은 그 아이의 어미가 날 바라보던 것과 같아졌다네.”

루이 알랭의 말에 아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하늘에 뜬 로제에게로 향했다.

상공 200m에서 두려움에 떠는 라인하르트를 이끌고 날아다니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내 딸이 어쩌면 자기 인생을 바칠 수도 있는 인간인 만큼 아비된 입장에선 충분한 조사가 필요했다네.”

루이 알랭의 말에 아딘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난 그대의 기억을 더듬어 볼 수는 없었지. 신물의 힘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내가 그대의 기억을 보려는 시도는 철저히 차단당했다네.”

루이 알랭의 말마따나 신물의 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특별한 상태, 즉 빙의에 따른 능력일 수도 있다 생각하며 아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묻는걸세. 그대는 누군가? 내가 믿고 내 딸의 인생을 맡겨도 될 사람인가?”

루이 알랭의 물음에 아딘은 즉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루이 알랭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아딘을 바라보기만 했다.

“꺄하하하-! 아저씨! 그냥 편하게 몸을 맡겨요!”

“어우어어어어. 어요오요요요요.”

어느덧 상공 400m까지 올라간 로제와 라인하르트 사이에 오가는 의사소통이 희미하게 들릴 지경이 됐을 무렵, 아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 알았습니다.”

루이 알랭은 무심한 눈으로 아딘을 바라보았다.

“용이 섞여들기 기간 중 뿌린 씨앗에 이 정도로 마음을 두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말에 순간 루이 알랭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의 표정이 점차 험악해지는 것을 보며 아딘은 살짝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당신과 로제가 보낸 시간보단 저와 로제가 함께한 시간이 더 깁니다. 로제 입장에선 제가 당신보다 더 믿음직스럽겠지요.”

아딘의 말에 루이 알랭은 한동안 눈가를 부르르 떨면서 아딘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새처럼 날아다니는 자신의 딸을 응시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내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네.”

그 말에 아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모든 동족이 잠든 이 시기에도 깨어있는 걸세. 덕분에 내 딸을 만나게 됐고 말이야.”

루이 알랭이 다시 시선을 아딘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실제 시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로제가 체감하기로는 나도 자네만큼 그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냈네. 비록 환상 속에서였지만.”

그의 씁쓸한 미소가 맴도는 표정을 바라보며 아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정오가 되어서야 로제와 라인하르트는 비행을 멈추고 내려왔다.

라인하르트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 누워버렸다.

그런 그를 아딘이 일으켜 세웠다.

아딘과 로제, 라인하르트는 곧 루이 알랭과 함께 한 번에 공간을 도약했다.

[끼룩-! 끼룩-!]

공간이동이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아딘의 귀를 때린 것은 갈매기의 울음소리였다.

“여기가…….”

담장 없는 2층 석조 저택은 소소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뿜어내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저택 지붕에 무리 지어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로제는 곧장 저택 뒤편으로 달려갔다.

반면 라인하르트는 많이 피곤한 듯 저택 마당에 심어진 굵고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신의 선택을 받았으니 믿어달라……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렇게 해보겠네.”

루이 알랭의 말에 아딘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자네보다는 아마 오래 살 걸세. 그러니 혹시라도 그사이에 내 딸을 배신한다거나 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루이 알랭이 아딘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아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버님.”

“아버님은…… 그냥 루이 알랭이라 부르게.”

짐짓 불편해하는 루이 알랭을 바라보며 아딘은 한 차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리로 오세요. 빨리요.”

그사이 저택 뒤편으로 갔던 로제는 한 노인의 손을 잡은 채 그를 끌고오고 있었다.

“아이구, 천천히 가자꾸나.”

로제의 손에 이끌려 집 뒤에서 나온 노인.

다이람 족속 특유의 갈색 피부에 검고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을 지닌, 건장한 체격의 노인.

그를 보는 순간 아딘은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봐. 라인하르트. 일어나십시오.”

아딘이 나무에 기대 쉬고 있는 라인하르트를 불렀다.

라인하르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오라버니예요, 할아버지.”

로제의 소개에 노인, 불멸자 샤푸르는 가만히 아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먼길 오느라 수고 많았네.”

샤푸르가 현대 아퐁어로 아딘에게 말했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샤푸르에게 고대 다이람어로 화답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불멸자 샤푸르.”

아딘의 입에서 나온 고대 다이람어에 순간 샤푸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껄껄 웃으며 가지런히 정리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잠시만 기다려보게. 뒷마당에 갈매기들 쉼터를 만들고 있어서 좀 엉망이야. 옷 좀 갈아 입고 오겠네.”

샤푸르도 고대 다이람어로 아딘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어흐으. 여기도 썰렁하구만…….”

아직 샤푸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라인하르트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딘에게 물었다.

“안에 안 들어가고 계속 여기 있어야 합니까?”

그 물음에 아딘이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주인이 들어오라 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

라인하르트는 그저 아딘이 예의를 지키는 거라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딘은 다시 저택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보기 힘든, 고대 구르간 왕국 카반드 왕조 시대의 양식으로 지은 석재 저택.

이 아담하면서도 소소하고 고풍스러운 멋이 뿜어져 나오는 건물이 바로 불멸의 신전이었다.

약초숲 무저갱의 호수 아래 불칸의 동굴에 자리하고 있던 불칸의 신전이나 아예 산 하나가 몽땅 신전이던 네르갈의 신전에 비해 그 규모는 굉장히 초라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아딘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렘을 느끼고 있었고, 긴장하고 있었다.

‘샤푸르…….’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 시절, 정작 소설 본편에는 등장하진 않았지만, 그가 성심성의껏 만들어낸 불멸자 샤푸르와 직접 대면한다는 것.

그것이 그를 떨리도록 했다.

“오래 기다렸지?”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샤푸르가 나타났다.

“손님이 왔으니, 나도 격식을 차려야겠지.”

고대 구르간 왕국 국왕이 입던 순백의 옷을 입고, 머리에는 지혜의 신 티르로부터 받은 불멸의 왕관을 쓴 채 나타난 샤푸르.

아딘은 어린 시절 김현수가 상상했던 불멸자의 모습이 현실화된 모습을 보며 한동안 몽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샤푸르는 한 차례 피식 웃고는 아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에게 칼 한 자루를 건넸다.

“받게.”

샤푸르가 건넨 검.

검집부터 손잡이까지, 모두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불멸의 검.

그것을 보는 순간 아딘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불멸의 검을 받았다.

‘짜릿하다.’

불멸의 검을 받는 순간 아딘은 알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며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아딘은 떨리는 눈으로,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도 없이 그저 수수하게 금빛만 내뿜는 불멸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샤푸르가 이야기했다.

“뽑아보게.”

아딘은 샤푸르를 바라보았다.

샤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딘은 침을 꿀꺽 삼킨 후 가만히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았다.

‘불멸의 검이여…… 제발…… 제발…….’

칼자루를 쥔 채 아딘은 가만히 간절한 마음으로 불멸의 검을 바라보았다.

점차 칼자루를 쥔 그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후우-!”

이윽고 아딘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곤 힘껏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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