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용 (2)
아딘이 침을 삼켰을 때, 흑룡은 아가리를 벌렸다.
‘젠장!’
용이 사용할 수 있는 힘 가운데 하나인 용의 숨결.
그것의 전조 단계임을 감지한 아딘은 최대한 빠르게 라인하르트와의 거리를 벌렸다.
‘저 용은 지금 나를 노리고 있어. 그러면 최대한 라인하르트와 떨어져야 해.’
과연, 아딘의 움직임에 따라 흑룡은 고개를 돌렸다.
[푸후와아악-!]
대략 아딘이 라인하르트로부터 700m 정도 거리를 벌렸을 무렵, 흑룡의 입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퍼어엉-!]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지상에 도달한 푸른 불꽃은 땅에 닿자마자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읍-!’
살짝 스치는 정도였지만, 뜨거운 열기를 품은 용의 숨결은 불칸의 갑옷을 뚫고 아딘의 몸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섬뜩함을 느끼기엔 충분할 정도의 데미지였다.
‘직격당하면 안 돼!’
한 차례 숨결을 토해낸 후 두 번째 숨결을 준비하는 흑룡을 바라보며 순간 아딘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사이 흑룡은 두 번째 숨결을 토해낼 준비를 끝마쳤다.
[푸후와아악-!]
아딘은 빠르게 움직여 그것을 피했고, 불꽃은 또 한 차례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에 메케한 냄새를 퍼뜨렸다.
‘가까이 접근해야 해. 미친 것 같지만 이 방법뿐이야.’
두 번째 숨결을 가까스로 피한 아딘은 결론을 내렸다.
순간 불칸의 갑옷이 황금빛 광채를 사방으로 요란하게 뿜어대기 시작했다.
‘젠장…… 저주라도 걸려는 건가?’
그것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강력한 공격에 대한 갑옷의 방어 작용임을 알고 있는 아딘은 인상을 찌푸리며 흑룡을 바라봤다.
흑룡의 샛노란 눈에서 기이한 푸른 빛이 도깨비불처럼 일렁이는 것을 확인한 아딘은 이를 갈았다.
‘저주였어.’
다행히 흑룡의 저주는 아딘에게 별 영향을 끼치질 못했다.
불칸의 갑옷 선에서 모두 차단이 됐기 때문이었다.
[크릉?]
그것이 흑룡을 순간 당황케 했다.
그리고 그 찰나와도 같은 순간을 아딘은 놓치지 않았다.
[파팟-!]
그대로 아딘은 금빛 궤적을 그리며 직선으로 흑룡을 향해 달려갔다.
[크우우워어-!]
흑룡은 한 차례 포효했다.
그리고 포효가 끝나자마자 흑룡의 몸 주변으로 무수한 푸른 불덩이가 생성됐다.
‘젠장!’
섭씨 25,000도에 달하는 푸른 불덩이.
로제조차도 한 번에 2개 정도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순식간에 수백 개나 생성해내는 것을 보고 아딘은 기겁을 했다.
[크우워어어어-!]
흑룡의 포효와 함께 수백 개의 푸른 불덩이가 아딘에게 차례로 날아들었다.
‘못 막아!’
한둘 정도는 어떻게 견딜 순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아딘은 판단했다.
‘한 번 맞기 시작하면 계속 맞겠지.’
첫 번째 푸른 불덩이가 아딘의 목전에 도달했을 때, 아딘의 감각이 극도로 활성화됐다.
순간 세상이 느려졌고, 아딘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인식하게 됐다.
[퍼어엉-!]
그것을 인식한 순간, 아딘의 움직임을 빨라졌다.
아딘이 황금빛 궤적을 남기며 이동한 순간, 첫 번째 푸른 불덩이는 그대로 아딘이 있던 곳을 때리며 폭발했다.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수십 개의 푸른 불덩이가 비슷한 타이밍에 여기저기서 폭발하며 엄청난 굉음을 연속적으로 일으켰다.
집요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불덩이의 궤적을 아딘은 온 신경을 집중해 식별한 후 피했다.
불덩이는 번번이 아딘이 있던 자리만을 공허하게 때릴 뿐이었다.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사방을 가득 메운 불덩이의 폭발 속에서 아딘은 금빛 잔상을 남기며 가까스로 공격들을 피해냈다.
“크후우……”
잠시 후, 흑룡이 소환했던 마지막 푸른 불덩이가 폭발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딘은 그 자리에 멈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크우우워어어어-!]
자신의 융단 폭격을 아딘이 모조리 피하자 흑룡은 성질이 났는지 사납게 포효했다.
‘이 틈에 거리를 좁혀야……’
흑룡의 아가리가 하늘로 향한 사이 아딘은 빠르게 흑룡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 흑룡의 두 번째 마법이 발동됐다.
[슈슈슈슈슉-!]
순식간에 흑룡의 앞에 나타난 수백 개의 얼음 작살들이 빠르게 아딘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른 불덩이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얼음 작살들을 바라보며 아딘은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일일이 피할 순 없음을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아딘의 감각은 이전보다 더 예민하게 활성화됐다.
[까앙-!]
가장 먼저 흉부를 노리고 날아든 얼음 작살을 아딘은 손날로 쳐냈다.
[퍼엉-!]
아딘의 손날에 맞은 얼음 작살은 그대로 허공에서 터져 버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까앙-! 까앙-! 까앙-!]
[퍼엉-! 퍼엉-! 퍼엉-!]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아딘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모든 얼음 작살들을 일일이 손날로 쳐냈다.
점차 아딘의 주변으로 그의 손이 만들어낸 잔상들이 화려한 금빛을 흩뿌렸다.
아딘의 손에 맞아 터지는 얼음 작살들의 잔해가 그 금빛에 물들며 찬란한 금가루를 허공에다 뿌려댔다.
얼핏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장면 속에서 아딘은 뇌를 텅 비운 채 순간순간 감각에 잡히는 대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까앙-!]
[퍼엉-!]
마침내 마지막 얼음 작살이 아딘의 손날에 맞아 터지며 금빛 가루를 허공 중에 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딘의 뇌는 다시 생각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해냈어?’
자신의 눈앞에서 흩어지는 차갑게 아름다운 금빛 가루와 수백 개에 달하는 얼음 작살을 일일이 쳐낸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아딘은 한동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크우워어어어어-!]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채 느끼기도 전에 흑룡의 포효가 아딘을 일깨워주었다.
‘거리!’
아딘은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그대로 흑룡을 향해 달려갔다.
[파팟-! 파팟-!]
직선으로 갈 때 생길 여러 위험을 고려해 아딘은 좌우로 요란하게 기동하며 흑룡에게 접근했다.
얼음 작살을 쳐내면서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던 만큼, 아딘은 불칸의 갑옷이 지닌 힘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었다.
이전에는 아딘이 감당할 수 없었던 힘이 예민해진 감각과 함께 성장한 정신력에 힘입어 이제는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크우워어어어-!]
순식간에 흑룡의 전방 대지가 금빛 잔상의 화려한 궤적으로 가득 찼다.
순간적으로 흑룡이 본체를 놓칠 만큼 아딘은 빠르게 움직였다.
[크우워어어어-!]
정신없이 눈알을 굴리던 흑룡이 길게 포효했다.
[쿠르르릉-!]
그 순간, 흑룡을 중심으로 사방 50m에 이르는 공간에 거대한 흙벽이 솟아났다.
그 흙벽에 가로막히며 순간적으로 아딘은 움직임을 멈췄다.
[크릉-!]
아딘이 멈춘 순간 그의 위치를 확인한 흑룡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비행 마법?’
날개를 이용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만큼, 흑룡은 비행 마법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놓치면 안 돼!’
상대가 허공으로 올라가는 순간 아딘은 놈에게 그 어떠한 반격도 할 수가 없게 될 터였다.
[쿠웅-!]
그대로 아딘은 그 자리를 박차며 높게 도약했다.
순식간에 아딘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흑룡의 발등과 높이를 같이 했다.
‘잡았……’
아딘이 흑룡의 발등에 올라타려는 순간,
[크릉-!]
마치 흑룡은 비웃기라도 하는 양 콧방귀를 뀌었다.
[뻐엉-!]
그리고 그대로 아딘을 발로 차버렸다.
“크허어억-!”
일격에 단단한 성벽도 허물어 버릴 정도인 흑룡의 발길질에 정통으로 맞은 아딘은 그대로 하늘 높이 쭉쭉 솟아올랐다.
[화아악-!]
불칸의 갑옷은 물론 네르갈의 목걸이까지 힘을 보탠 끝에 가까스로 아딘은 발길질의 충격을 모두 흘려낼 수 있었다.
문제는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땅으로 떨어지면…….’
각도가 위쪽이었던 만큼, 현재 아딘은 흑룡이 참새만 하게 보일 만큼 높이 떠오른 상태였다.
‘중간에 용이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순수하게 추락하는 것만으로도 난……’
발길질의 충격을 모두 흘려냈기에, 아딘의 상승은 멈췄다.
그리고 곧 올라올 때보다 빠른 속도로 아딘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드넓은 엘프숲과 북쪽에 자리한 푸른 바다와 동서로 우뚝 솟은 산들을 바라보며 그대로 아딘은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끝난다고?’
난데없이 나타난 흑룡은 앞서 불칸의 갑옷과 네르갈의 목걸이를 얻기 위해 겪었던 고난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지난 5개월간 여러 일을 겪으며 아딘이 성장하기도 했고, 또 흑룡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내는 와중에 더 강해지기도 했지만 결국 아딘은 흑룡을 넘지 못했다.
‘이 세계에는 내가 설정하지 않은 것들이 있지.’
떨어지는 와중에 아딘은 서쪽을 바라봤다.
‘묵시록 종단…… 내가 설정하지 않은, 신물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들…….’
아딘의 시선이 숲으로 향했다.
‘뱀 인간…… 마찬가지로 내가 설정하지 않은 기괴한 존재.’
마지막으로 아딘은 드워프 마을이 있을 법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드워프에게 내려졌다는, 나에 대한 예언…….’
아딘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 흑룡의 양손에서 기이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피슈우우우우웅-!]
그리고 곧이어 하늘에서 수십 개의 유성이 자신을 노리고 떨어져 내리는 것을 확인했다.
확실하게 자신을 죽이려는 흑룡의 모습에 아딘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게 불멸의 시험이라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자,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뜻인가?’
문득 아딘은 오래전, 아직은 그가 영웅일대기를 쓰던 대학생 김현수이던 시절에 보았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를 떠올렸다.
불칸의 갑옷에 모티브를 준 강철 갑옷의 히어로.
그가 자유자재로 허공을 날아다니던 장면이 문득 아딘의 뇌리에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비행만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땅에서 그러했듯 자유자재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지.
빠르게 날아서 저 검은 용에게 주먹이라도 한 방 꽂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아딘의 뇌리를 때렸다.
그리고 그것이 아딘의 뇌리를 때린 순간, 아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용암처럼 솟아올랐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야.’
강력한 생존 본능이 허공에 떠오른 순간 생을 포기했던 아딘의 의지를 자극했다.
‘하다못해 한 대는 때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딘은 주먹을 꽉 쥐었다.
[크어헝-!]
네르갈의 목걸이가 아딘의 의지에 호응하며 강력한 파장을 뿜어댔다.
[우우우웅-!]
그 파장에 불칸의 갑옷이 공명을 일으키며 화려한 황금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강렬한 아딘의 의지가 그의 정신력을 더욱 확장시켰다.
그리고 확장된 정신력은 불칸의 갑옷이 지닌 힘을 더욱더 끌어냈다.
지상으로 추락하던 아딘의 몸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땅으로 향해 있던 아딘의 머리가 다시 하늘로 향했고, 하늘로 향해 있던 아딘의 발이 다시 땅으로 향했다.
[크릉?]
아딘의 모습에 순간 흑룡이 당황했다.
‘한 방은 때리고 가야지!’
금수저에게 덤비던 김현수처럼, 아딘은 그대로 빠르게 흑룡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유성우가 땅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휘유우우우우웅-!]
[쿠와아아앙-!]
무작위로 떨어져 내리던 유성이 궤적을 바꿔 아딘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딘은 허공에서 빠르게 기동하며 그것들을 모조리 피했고, 유성은 헛되이 땅에 떨어지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기만 했다.
[크우워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
흑룡의 포효에 아딘은 기합으로 맞받아쳤다.
흑룡은 다시 수십 개의 푸른 불덩어리를 생성해 아딘에게 한꺼번에 던졌다.
아딘은 허공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그것들을 피했다.
[퍼어엉-!]
미처 피하지 못했던 두세 개의 불덩이가 아딘을 때렸지만, 그 정도는 불칸의 갑옷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흐아아아압-!”
마침내 아딘은 흑룡의 가슴팍에 도달했다.
그리곤 그대로 놈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화아아악-!]
그 순간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뿜어지며 아딘과 흑룡 그리고 모든 공간을 집어삼켰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