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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69화 (69/175)

069 용 (1)

자기들을 이끌어 달라는 팔키르의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딘의 뇌리에선 전략적 계산이 이루어졌다.

‘존은 드워프를 통해 슈타인부르크를 장인의 도시에서 전문적인 산업 도시로 탈바꿈시켰지.’

아딘은 턱에서 손을 뗀 채 가만히 팔키르를 바라봤다.

팔키르는 떨리는 눈으로, 감격에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신적인 일이야 지금 내가 당장 알 수는 없어. 하지만……’

천계에서 일어난, 드워프에게 내려진, 이 세계의 창조자 김현수가 모르는 예언.

그것에 대해서 아딘이 지금 당장 어떠한 조사를 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천계의 일이 아닌 지상의 일에 대해서는 아딘이 충분히 생각해볼 수가 있었다.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나의 적은 유리 콘스탄틴에서 제니스 공화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상업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고, 그 부를 통해 샤펠 제국도 함부로 대하기 힘들 만큼 강력한 용병대를 육성한 제니스 공화국.

제니스 공화국을 지배하는 3대 상단과 그들과 함께하는 여타 상단들이 지닌 용병들.

영혼까지 끌어모았을 때, 물경 30만에 이르는 잘 훈련된 용병들과의 전쟁은 단순히 아딘이 신물을 가지고 있다 해서, 로제가 용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 어떻게 승부를 낼 수가 있는 그런 성격의 싸움이 아니다.

아무리 아딘과 로제의 콤비가 막강하다 하더라도, 수만 명을 죽이고 나면 체력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터였다.

‘결국 나에게도 잘 훈련된 군대와 그들의 전력을 100% 이상 끌어올릴 훌륭한 무기가 필요해.’

군대에 대해선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딘의 눈앞에는 그 군대가 쓸 장비를 만들어줄 존재의 대표자가 자신을 해방자라 칭하며 이끌어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저쪽에서 영끌을 하듯 나도 영끌을 해야 해. 그런 측면에서 드워프가 내 편에 서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 드워프는 거짓이 없고 기만할 줄 모른다고 나는 알고 있소.”

“정확한 평가이옵니다.”

“그런 만큼, 나 또한 그대들에게 거짓과 기만이 아닌 진실한 마음을 보이도록 하겠소.”

그러면서 아딘은 팔키르에게 자신의 정체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딘의 입에서 나온 정보들, 즉 벨로디나 내전과 아딘의 왕자 신분 그리고 복수와 혁명, 전쟁에 대해 팔키르는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그리고 아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미처 아딘이 “이런 나와 함께 하시겠소?”라고 묻기도 전에 팔키르는 우렁차게 이야기했다.

“해방자와 함께하는 압제자에 대한 해방 전쟁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예언의 성취가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우리는 그러한 영광과 함께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옵니다.”

팔키르의 대답에 아딘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팔키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황송해하는 팔키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해, 해방자시여……”

“함께합시다.”

아딘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팔키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제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함께 하겠사옵니다.”

* * *

이틀간 아딘은 라인하르트와 함께 드워프 마을에서 머물렀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로제가 있는 불멸의 신전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딘이 팔키르와 대화하는 사이 또 술을 마신 라인하르트가 취하기도 했고 팔키르가 며칠만 머무르며 마을의 사기를 높여달라 부탁하기도 했기에 아딘은 결국 이틀을 머물러야만 했다.

광명력 992년 10월 9일 아침.

아딘과 라인하르트는 팔키르와 그 자식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의 경계에 도착했다.

“볼일을 마치는 즉시 이곳으로 그대들을 찾아오겠소. 미리미리 이주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오.”

“그리하겠사옵니다.”

아딘은 일단 엘프숲 동부 외곽으로 드워프들을 이주시킬 생각이었다.

‘일단 유리 콘스탄틴에게 복수할 때에는 저들이 필요가 없어. 저들은 내가 왕국을 장악한 이후에 따로 머무를 공간을 마련해주는 게 나을 거야.’

아딘은 팔키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등을 돌려 자신을 기다리는 세 엘프에게로 다가갔다.

“가, 같이 갑시다.”

멀뚱멀뚱 불칸 신상과 드워프들을 바라보던 라인하르트가 후다닥 아딘의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팔키르와 그 아들들은 아딘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아딘은 라인하르트와 함께 엘프들의 앞에 도착했다.

“약속대로 나와 내 동료를 불멸의 영역으로 이동시켜주시오.”

아딘의 말에 실루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가 양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으십시오.”

“네? 아…… 네.”

실루고르의 오른손을 잡은 아딘의 안내에 따라 라인하르트는 왼손을 잡았다.

“여기서 불멸의 영역까지는 거리가 멉니다. 도착하면 정오쯤 돼 있을 겁니다.”

실루고르가 그 말을 던짐과 동시에 세 엘프와 두 인간은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어? 어? 어?!”

자기들은 가만히 있는데 숲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에 라인하르트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런 라인하르트의 모습에 아딘은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당황하지 말고, 자연에 그대로 몸을 맡겨 보십시오. 적응되면 나름 주변 풍경을 보며 정취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딘의 말에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태연한 척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그는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눈에 보이는 숲의 모습을 감상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슴은 곧 호랑이에게 물려 죽겠고, 저 거미는 곧 원숭이를 잡아먹겠고, 저 트롤은 곧 곰들한테 사지가 절단되겠구나.’

그렇게 한참 라인하르트가 숲의 정취를 느끼는 사이, 어느새 태양은 중천에 떠올랐다.

그리고 세 엘프와 두 인간은 실루고르가 말한 대로 엘프숲 최북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불멸의 영역입니다.”

실루고르의 말에 아딘은 그의 손을 놓고서 언덕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드넓은 평원에는 차가운 기후 속에서도 악착같이 생존한 잡초들이 곳곳에서 무리를 이룬 채 살아가고 있었다.

평원의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거대한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펼쳐진 북쪽의 평원 끝에선 어렴풋이 바다가 보였다.

그곳에, 바다가 접하고 있는 곳에, 불멸자 샤푸르가 불멸의 검과 함께 있다.

그 사실에 아딘은 갑자기 확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불멸의 검을 얻기 위해선 오로지 검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만 해. 검이 날 거부한다면, 난 신물을 모두 손에 쥐진 못하겠지.’

불칸이나 네르갈과는 달리 불멸의 검은 말이나 행동으로 어떻게 얻을 노력을 할 수 있는 신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아딘의 마음을 다시 다잡아 주었다.

“어흐으…… 추워…….”

그 곁에서 라인하르트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딘은 마법 주머니에서 미리 구매해 두었던 두꺼운 옷을 꺼내 라인하르트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이걸 왜 사시는가 했더니…….”

라인하르트가 추위를 이겨내는 사이 아딘은 세 엘프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아딘의 말에 실루고르는 두 엘프를 한 차례씩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아딘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우리는 숲에서 그대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불멸의 영역은 숲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곳으로 함부로 들어갈 순 없습니다.”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엘프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셋은 조용히 숲으로 들어갔다.

아딘은 다시 시선을 평원으로 돌렸다. 그리곤 다소 추위를 이겨낸 라인하르트의 등을 툭 치며 이야기했다.

“갑시다.”

“네?”

라인하르트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시선을 평원으로 돌렸다.

‘또 걸어야 해?’

라인하르트는 불평했다.

“아, 네. 갑시다.”

물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 * *

불멸자 샤푸르가 거하는 불멸의 신전.

그곳으로 가는 길목이라 할 수 있는 불멸의 영역.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잡초와 그 사이를 오가는 조그만 들쥐들 정도가 전부인 황량한 평원을 아딘과 라인하르트는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끊임없이 펼쳐진 땅과 좌우에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며 이동하던 두 사람은 밤이 오자 모닥불을 피우고는 그 주변에서 잠을 청했다.

“어흐으으…… 츠워 듸즤는 줄 아랐스니다.”

입이 돌아간 채 추위에 벌벌 떨며 라인하르트는 아침에 일어났다.

그런 그를 향해 아딘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불에 살짝 익힌 육포를 건네 주었다.

“가사하미다.”

라인하르트는 따뜻해진 육포를 천천히 씹으며 모닥불 주변에서 몸을 녹였다.

라인하르트에게서 받은, 수명이 다 돼가는 무한 발화 성냥으로 아딘은 불을 더 크게 지폈다.

덕분에 라인하르트는 기상 후 30분이 지났을 무렵 완전히 몸을 해동시킬 수 있었다.

‘몸은 튼튼하네. 감기에 걸릴 법도 한데.’

신물 덕분에 신체 능력이 강화된 자신과는 달리 인간적인 육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라인하르트가 의외로 강한 것을 보며 아딘은 피식 웃었다.

“자, 갑시다. 갈 길이 멉니다.”

그렇게 아딘과 라인하르트는 모닥불을 끄고는 다시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로제는 지금 신전에 있는 걸까?’

두루마리가 확인 가능한 영역은 불멸의 영역까지였다.

불멸의 신전이 있는 곳과 그 주변은 두루마리로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딘이 확인한 바 로제는 불멸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았다.

즉, 신전에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로제를 데려간 걸까? 엘프들은 용이라고 했어. 근데 용이 왜 지금까지 깨어있는 거지? 그리고 잘 자라줬다는 건 또 뭐야?’

엘프는 이야기했다.

분명 용의 언어로 용이 로제를 향해 잘 자라줬다고 말했다고.

엘프와 용이 가까운 사이인 만큼, 엘프가 용의 언어를 이해하는 건 별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아딘도 딱히 거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 내용이었다.

‘잘 자라줬다니?’

지루한 걷기 속에 아딘이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휘유우우우우웅-!]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어닥치며 아딘과 라인하르트를 덮쳤다.

“으아악-!”

라인하르트는 그대로 돌풍에 뒤로 나자빠지며 몇 차례나 데굴데굴 굴렀다.

“몸을 땅에 바짝 붙이고 버티십시오!”

아딘은 라인하르트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낮췄다.

‘갑자기 무슨?’

아딘은 돌풍에 눈조차 뜨지 못했다.

‘이런 바람이 왜 부는 거지? 내가 이런 것도 설정해 뒀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뒤져가며 아딘은 바람을 버텨냈다.

잠시 후, 바람은 잦아들었다.

‘응?’

눈을 뜬 아딘은 주변이 어두워진 것을 확인했다.

사방에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가 형성돼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아딘은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크르르릉-!]

검은 비늘, 하나하나가 족히 5m 이상은 돼 보이는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 눈앞의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날개, 사나운 이빨과 샛노란 눈동자.

‘용!’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흑룡을 바라보며 아딘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크우우우우우-!]

아딘을 내려다보던 흑룡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포효했다.

“커헉-!”

아딘은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라인하르트는 코피를 터뜨리며 귀를 틀어 막았다.

‘젠장…… 갑자기 용이 왜…… 설마 이 녀석이 로제를 데려간?’

아딘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용이 발을 들었다.

‘젠장!’

자신을 덮쳐오는 용의 발을 보며 아딘은 확신했다.

‘우리한테 적대적이야!’

아딘은 그대로 불칸의 갑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곤 빠르게 라인하르트를 안고 용과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쿠웅-!]

아딘이 그 자리를 빠져나오자마자 용의 발이 아딘이 있던 곳을 짓밟았다.

[크우우우우우-!]

용과 1km 떨어진 곳에 라인하르트를 내려놓고서 아딘은 포효하는 용을 바라봤다.

‘설마 이게…… 시험은 아니겠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흑룡을 앞에 두고 아딘은 갑옷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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