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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68화 (68/175)

068 엘프숲의 드워프 (2)

‘저것들은 또 왜 저래?’

갑작스러운 드워프들의 큰절에 아딘은 인상을 찌푸렸다.

‘드워프는 기만술이나 이런 걸 쓸 수 없도록 내가 설정해 뒀을 텐데?’

아딘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해방자시여!”

무리의 가운데에 있던, 다소 나이가 들어 보이는 드워프가 고개를 들고 양팔을 벌린 채 아딘을 향해 드워프어로 외쳤다.

‘해방자?’

아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딘은 등을 돌려 엘프들을 바라봤다.

엘프들도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드워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오시었나이까!”

이어진 드워프의 외침에 아딘은 엘프들을 등진 채 갑옷 일부분을 해제한 후 마법 주머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두루마리 위로는 드워프라는 종에 대한 설명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설명은, 드워프가 가식이 없고 거짓도 없고 오롯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낙천적인 존재라는, 김현수의 설정과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이든 드워프의 입에서 나온 해방자에 대한 설명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도 내가 설정하지 않은 거야. 도대체가…….’

일단은 드워프의 성향이 자신이 아는 대로 선한 만큼, 아딘은 갑옷을 완전히 해제하고 두루마리를 도로 집어넣은 후 천천히 드워프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은 누구냐?”

아딘은 드워프어로 그들에게 물었다.

고개를 들고 고함을 지르다 아딘이 다가오자 다시 머리를 숙였던 나이든 드워프가 살짝 고개를 들어 아딘을 바라보며 답했다.

“저, 저는 외곽경비대장 쿠다르라고 하나이다. 해, 해방자님의 질문에 답을 하게 되어 여, 영광이나이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얼굴에 금칠하는 나이든 드워프, 쿠다르의 모습에 아딘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단은 라인하르트부터.’

아딘은 팔짱을 낀 채 쿠다르를 향해 다시 물었다.

“한 인간 남자가 너희에게 끌려간 걸 알고 있다.”

“그, 그러하나이다. 아, 아침에 제가 촌장께 데려갔나이다.”

“그는 내 동료다. 그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라.”

“아, 알겠나이다.”

쿠다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를 따라 나머지 드워프들도 차례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글레이브를 날이 바닥으로 향하게 한 채 쥐고는 앞장섰다.

“따, 따라오소서.”

쿠다르의 말에 아딘은 뒤로 돌아 엘프들을 바라봤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던 엘프들은 아딘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딘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엘프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고개를 가로젓는 거요?”

그러자 실루고르가 대답했다.

“우리는 저들의 영역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딘은 콧방귀를 뀌었다.

“누가 가자고 합니까?”

아딘의 말에 실루고르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아딘은 말을 이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내 동료를 데리고 나올 거니까.”

그 말을 남기고 아딘은 드워프 경비대들을 따라 드워프 마을로 들어갔다.

엘프들은 우려 섞인 표정을 지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기네들이 섣불리 판단하여 일이 이렇게 된 만큼, 그들로서는 좋으나 싫으나 숲이 파괴된 불편한 현장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 * *

“모두 경배하라! 해방자께서 강림하셨다!”

돌과 나무 따위로 만든, 무엇을 형상화했는지 알기 힘든 토템.

그것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미로를 지나서 아딘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선두에 서 있던 쿠다르는 그렇게 외쳤다.

“모두 경배하라!”

갑작스러운 쿠다르의 행동에 아딘이 당황할 겨를도 없이, 마을 입구 근처에 있던 모든 드워프들의 시선이 아딘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엎드려 아딘을 향해 최고의 경배를 보냈다.

‘이건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드워프들의 집단행동에 아딘은 충격을 넘어서서 두려움마저 느꼈다.

‘이건…… 신앙?’

로제가 뢰벡에서 가난한 병자들을 치유하고 여관을 떠날 때 받았던 환호와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종교적 메시아를 향해서나 보일 수 있을 법한 드워프들의 집단적 경배에 아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가 설정하지 않은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거지?’

굳은 안색으로 아딘은 자신을 향해 경배하는 드워프들을 지나쳐, 선두에서 계속해서 경배하라 고함치는 쿠다르를 따라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을 중앙의, 제법 규모가 있는 석조 건축물 앞에 도착했을 때, 아딘은 눈에 익은 한 남자와 그와 함께 건축물에서 나온 늙은 드워프를 볼 수 있었다.

“어이쿠! 스미스 씨!”

살짝 취기가 오른 듯 라인하르트는 양팔을 쫙 펼친 채 비틀거리며 아딘에게 다가갔다.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술이 들어간 김에 포옹이나 하고자 그러했던 것이었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던 드워프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이 돼지 같은 놈이 감히!”

선두에 있던 쿠다르는 아딘에게 다가가려는 라인하르트의 다리를 잡아 그대로 그를 넘어뜨렸다.

“으으윽!”

영문도 모르고 자빠진 라인하르트는 눈을 껌뻑껌뻑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술을 건네며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촌장부터 글레이브를 든 드워프들까지 표정에 노기가 서린 것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만!”

그런 드워프들을 아딘이 제지하고 나섰다.

그는 드워프들을 지나 그대로 라인하르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인 채 거리를 두고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 인간은 내 동료다. 함부로 대하지 말도록.”

그 말에 쿠다르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며 답했다.

“죄, 죄, 죄, 죄송하나이다.”

아딘은 시선을 촌장에게로 돌렸다.

“그대가 촌장이오?”

아딘의 물음에 촌장, 팔키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하옵니다, 해방자시여.”

아딘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잠시 그와 다른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촌장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나와 촌장 단둘이서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소.”

“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누, 누추하지만 드, 들어오소서. 아, 아니. 지금 내부가 어, 엉망이니 마을 회관으로 안내하겠사옵니다.”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고, 팔키르는 그에게 공손히 손짓을 하며 앞장섰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십시오.”

아딘은 라인하르트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후 팔키르의 뒤를 따라갔다.

“해방자시다! 모두 예의를 차려라!”

팔키르도 쿠다르처럼 선두에서 드워프들에게 아딘의 정체를 이야기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입구에서 여기까지 오며 느꼈던 그 화끈거림을 다시 느끼며 아딘은 마침내 팔키르와 함께 마을 회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회관이라기보단 조그만 요새에 가까운 성체에 아딘이 들어서자 팔키르는 문을 닫고 그에게 의자 하나를 권했다.

작기는 했지만, 앉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아딘은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팔키르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와 양팔을 땅에 바짝 붙이며 최고의 경배를 올렸다.

“우리 종족 전체가 꿈에서나 그리던 해방자님을 제가 살아서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이 늙은 것,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는 팔키르의 모습에 아딘은 굉장한 불편함을 느꼈다.

뭔가 자기에게 맞지 않은 옷을 껴입은 듯한 느낌에 아딘은 괜히 헛기침을 몇 차례 한 후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를 해방자라 부르는 것이오?”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예언에서 말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옵니다.”

아딘은 가만히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 까끌거리는 수염의 감촉을 느끼던 아딘은 이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곧장 불칸의 갑옷을 꺼내 입었다.

불칸의 갑옷에서 나오는 찬란한 황금빛과 함께 무장한 아딘이 팔키르에게 이야기했다.

“눈을 들어 나를 보시오.”

그 말에 팔키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태양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아딘의 모습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아…… 해방자시여……”

팔키르의 주름진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바라보며 아딘은 가만히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이내 불칸의 갑옷을 해제하곤 다시 의자에 앉았다.

‘드워프들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불칸을 숭배하고 있었지.’

엘프가 자연주의자라면 드워프는 모두가 신실한 불칸의 신자다.

인간 마우세스 레비가 천계의 신들로부터 계시를 받기 전부터 드워프라는 종은 불칸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광명교의 가르침이 드워프에게까지 전달되면서 이들의 불칸 숭배는 보다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랬기에 광명교로부터는 벨로디나에서 자생하는 동방 광명교와 더불어 형제 종교로 인정받는 것이 드워프의 신앙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드워프가 불칸이 만든 갑옷을 보고는 아딘을 해방자라 칭하고 있다.

‘설마 불칸이 어떠한 예언을?’

마우세스 레비라는 인간을 통해 천계의 뜻을 전하고 미터법과 같은 도량형을 전수해준 것이 불칸이었다.

김현수가 창작의 편의를 위해 그러한 설정을 넣었을 때, 예언에 어떠한 제한이 있다는 설정은 따로 넣지 않았었다.

그런 만큼,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예언이 불칸으로부터 드워프의 조상들에게 내려졌을 가능성도 아딘으로서는 배제할 수 없었다.

“그대들이 이야기하는 예언. 들어보고 싶소.”

아딘의 말에 팔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곤 천천히 예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게는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제가 어릴 때 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할아버지께서도 당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하셨사옵니다.”

즉, 예언은 적어도 4세대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듣기로는 우리가 옛 터전을 모두 잃고 이 숲으로 숨어들 무렵, 예언이 내려왔다고 들었사옵니다.”

대륙 전역의 숲에 퍼져 있던 엘프와는 달리 드워프는 예전엔 지금의 제니스 공화국 북부 산악 지대에서 공동체를 이룬 채 살아가고 있었다.

불멸자 샤푸르가 한창 제국을 운영하고 있던 시절부터 제법 긴 세월 간 유지되던 공동체는 광명력 798년에 제니스 공화국의 군대가 산악 지대를 침공하면서 무너져내렸다.

상당수의 드워프가 공화국의 포로가 됐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작업장에서 노예처럼 무기와 각종 장신구를 생산하다 죽어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몇은 엘프숲으로 도망쳐왔고, 엘프와 대립해가면서 숲 일부를 자기들의 영역으로 개척했다.

여기까지가 김현수의 설정이었고, 아딘이 아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팔키르는 그 설정의 중간에 난데없이 나타난 예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린 그저 불칸께서 내리신 예언이라고만 믿고 있사옵니다. 누군가는 다른 신들이 내린 예언일 수도 있다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천계의 신들 중 오로지 불칸께옵서만 저희를 굽어살피고 계시고 있사옵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해방자를 예언하실 분이시옵니다.”

또다시 울먹이는 늙은 드워프를 앞에 두고 아딘은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예언…… 오로지 드워프에게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예언…… 만약 이 예언을 불칸이 직접 내린 거라면…….’

아딘은 가만히 불칸의 갑옷을 구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래…… 솔직히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불칸의 결정에는 사실 약간 논리적인 결함이 없잖아 있었어.’

밑바닥으로 떨어진 악인이 개과천선하여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것.

그러한 노력을 좋아하기에 자신의 갑옷을 주겠다던 불칸의 이야기.

벌써 5개월도 지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아딘은 가만히 침음성을 냈다.

“해방자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비로소 우리는 이 숲에서 벗어나 다시 우리의 행복을 이루어줄 자원으로 가득한 땅으로 나갈 수 있다고 예언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사옵니다.”

팔키르는 아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방자시여.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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