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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67화 (67/175)

067 엘프숲의 드워프 (1)

실루레아의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떨어진 풀잎을 엮어 가슴과 하복부를 가린 이 엘프 여성은 아딘을 앞에 두고 굉장히 태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누가 데려갔단 겁니까?”

아딘의 표정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실루고르는 아딘의 기세가 변함을 느끼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데려갔습니다.”

실루레아는 여전히 평온한 어투로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표정도 차츰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누가 데려갔냐고!”

아딘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의 얼굴이 시뻘게지기 시작했고, 꽉 쥔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분노함에 따라 네르갈의 목걸이도 함께 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허엉-!]

네르갈의 목걸이가 빛을 발하였고, 사자 얼굴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온 사나운 기세가 음파로 전환돼 두 엘프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우우우우웅-!]

아딘의 분노에 네르갈의 목걸이가 공명하자 잠들어 있던 벨트도 울기 시작했다.

강한 파장이 아딘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왔고, 거기에 정면으로 노출된 실루고르와 실루레아는 찰나의 순간 죽음의 공포를 맛볼 수 있었다.

“시, 신전에 용이 있습니다.”

사태가 심상찮음을 간파한 실루고르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아딘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실루고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순례하고자 하는 신전에 용이 있습니다.”

“용?”

아딘의 인상이 순간 팍 구겨졌다.

“용은 다들 잠들었을 텐데?”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 아딘의 목소리에 실루고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빠르게 대답했다.

“단 하나의 용이 아직 잠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그 용은 신전에서 불멸자와 함께 있습니다.”

실루고르가 실루레아를 바라봤다.

‘어서 당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십시오.’

그는 분명 눈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것을 알아챈 실루레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아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동생이 지닌 힘으로 트롤을 쫓아낸 다음, 그가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곤 당신 동생과 함께 신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딘의 시선이 이번엔 그녀에게로 향했다.

굶주린 맹수와도 같은 그 사나운 기세에 실루레아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후들거리는 오금에 가까스로 힘을 주고서 실루레아는 말을 이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는 당신 동생을 향해 용의 언어로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잘 자라줬다고.”

순간 아딘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

불멸의 신전에서 불멸자 샤푸르와 함께 기거한다는, 모든 용이 잠든 이 시기에 홀로 깨어있는 용.

그런 용이 난데없이 로제 앞에 나타나 잘 자라줬다고 이야기하고는 그녀를 신전으로 데려갔다는 엘프의 증언.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다급한 마음에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아딘은 눈앞에 엘프가 있다는 것도 무시한 채 마법 주머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없어?’

하지만 두루마리에는 로제에 관한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그녀의 현 위치 그리고 그녀를 데려갔다는 용에 관한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무의미하게 불멸의 신전에 관한 정보만을 나열할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신전에 관한 세부적인 정보는 보호된다는 건가? 두루마리에게?’

아딘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루마리를 도로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아까보단 나아진, 그러나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두 엘프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내 이야기를 똑바로 듣고, 섣불리 우리를 갈라놓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건 전부 당신들 책임입니다.”

아딘의 눈이 실루고르에게로 향했다.

“당신도 봤다시피 대왕 독거미를 죽인 건 내가 죽인 뱀 인간이었습니다.”

실루고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로제가 이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모를까, 내 동생이 사라진 이상 나도 가만히는 못 있겠습니다.”

아딘의 말에 실루고르와 실루레아는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 아딘과 로제, 라인하르트를 분리했던 때와는 달리 지금 아딘과 두 엘프 사이의 거리는 굉장히 가까웠다.

이 상황에서 아딘이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두 엘프의 목이 아딘의 오른손과 왼손에 잡히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서면?’

실루고르는 잠깐 그런 상상도 해 보았다.

하지만 무얼 상상하건 아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경우는 떠오르지 않았다.

두 엘프가 상당히 긴장해 있는 것을 확인한 아딘은 속으로 씩 웃었다.

‘됐어.’

로제가 샤푸르의 곁에 있는 이상, 그리고 용의 딸인 그녀를 용이 데려간 이상, 그녀에게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샤푸르는 자신을 찾아온 인간에게 해코지할 정도로 맛이 간 인간이 아니야. 그건 용도 마찬가지겠지. 만약 용이 로제를 해치고자 했다면 구태여 불멸의 신전으로 데려갈 이유는 없었어.’

로제도, 비록 가끔 과격한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불멸자와 용을 도발할 만큼 성격에 결함이 있지는 않았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아딘은 확신했다.

‘하지만 이왕 화를 내는 거 이 엘프들에게서 최대한 뽑아먹을 건 뽑아 먹어야겠지.’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딘은 엘프에게 최대한 고압적으로 나가 이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들에게서 아딘이 어떤 물질적 이득을 취할 순 없을 터였다.

애초에 숲에 사는 자연주의자인 엘프에게 어떤 경제적 이득을 바라는 건 아주 무식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숲에서, 지금 현재 아딘에게는 그들로부터 얻어낼 이익이 분명히 있었다.

“먼저,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이여.”

정색하는 아딘을 향해 실루고르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정중히 사죄했다.

아딘은 말없이 팔짱을 낀 채 콧김을 내뿜었다.

실루고르가 말을 이었다.

“저희는 그저 최근 숲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과 당신과 당신의 여동생이 지니고 있던 강력한 힘에 놀라 숲에게 부탁하여 세 사람을 분리했던 것뿐입니다. 다른 악의는 없었습니다. 그 점을 먼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실루고르의 말에 아딘이 콧방귀를 뀌며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악의적인 행동이 됐습니다, 엘프여.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의도보단 결과를 더 중시한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딘의 말에 실루고르와 실루레아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흙빛으로 변했다.

잠시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다시 아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해야 그대의 노여움이 풀리겠습니까?”

실루고르가 물었다.

아딘은 속으로 웃으며, 겉으론 정색하며 대답했다.

“먼저 라인하르트, 또 다른 인간을 찾아주시오. 그리고 나와 라인하르트를 불멸의 신전까지 데려다주시오. 그대들의 힘이라면 순식간에 숲에서 숲으로 이동이 가능할 테니까.”

아딘의 말에 실루고르와 실루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또 다른 인간은 고드리고가 맡고 있습니다. 우선 고드리고에게로 갑시다.”

실루고르가 다시 아딘의 손을 잡았다.

즉시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아딘은 두 엘프와 함께 전혀 다른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드리고 형제.”

실루고르가 허공을 바라보며 고드리고를 불렀다.

곧 완전한 나체의 고드리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딘은 최대한 고드리고의 하복부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고드리고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며 실루고르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실루고르는 그런 고드리고에게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고드리고는 그것을 이해했고, 이내 경계를 풀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고드리고 형제가 감시하던 인간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실루고르의 물음에 고드리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동쪽을 가리켰다.

“드워프들이 데려갔습니다.”

고드리고의 말에 아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인하르트는 또 왜?’

* * *

건장한 체격의 드워프 다섯에게 라인하르트는 강제로 연행됐다.

목과 허리에서 느껴지는 글레이브 칼날의 서늘한 감촉에 라인하르트는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이끌려 드워프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복잡한 구조의 석조 건조물들을 일정한 패턴에 따라 통과한 드워프들과 라인하르트는 이내 마을 중앙에 자리한, 제법 큰 규모의, 그러나 라인하르트에게는 턱없이 작은 석조 건물 앞에 도착했다.

드워프들은 입구를 지키던 다른 드워프에게 무어라 이야기했고, 입구를 지키던 드워프는 라인하르트를 힐끔거리며 올려다보더니 이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드워프가 건물 밖으로 나오며 무어라 외쳤다.

그러자 그때까지 라인하르트를 글레이브로 위협하던 드워프들이 무기를 치웠다.

그리곤 순식간에 안색을 바꿔 반갑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라인하르트를 대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 새끼들은?’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의 태도 변화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던 라인하르트는 당혹감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드워프 하나가 라인하르트의 손을 잡은 채 문을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가라고?’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자신을 주목하는 우람한 팔뚝의 드워프들과 그들의 손에 쥐어진 글레이브 그리고 그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손도끼는 라인하르트로 하여금 어색하게 웃도록 만들었다.

“그래, 들어가지. 이 못생긴 난쟁이들아.”

라인하르트는 웃으며 게마인샤프트 동부 방언으로 드워프들에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드워프들은 마주 웃어 주었다.

허리를 숙이고서야 겨우 건물 안으로 들어선 라인하르트를 반겨준 것은, 상당히 비범하게 생긴 늙은 드워프였다.

“하켈 조르다니 크샤우프!”

늙었음에도 혈색이 살아 있고 전신 근육이 꿈틀거리는 드워프가 반가운 표정으로 라인하르트에게 이야기했다.

라인하르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늙은 드워프는 라인하르트에게 방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멋들어지게 대리석을 깎아 만든 의자였다.

‘여기 앉으라고?’

문제는 그 크기가 너무도 작다는 것이었다.

라인하르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의자에 한쪽 엉덩이만 가까스로 걸친 채 앉았다.

늙은 드워프가 웃음을 터뜨리며 바깥을 향해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세 드워프가 쟁반에 고기와 과일주를 받친 채 들어왔다.

그리곤 그것을 라인하르트가 앉은 테이블에 놓아두었다.

라인하르트는 눈을 껌뻑이며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늙은 드워프가 웃으며 먹는 시늉을 했다.

라인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흐하하하-!”

늙은 드워프가 그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더니 자신도 고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영문 모를 라인하르트와 늙은 드워프의 아침 식사는 시작됐다.

* * *

5m에 이르는 불칸 석상이 전후좌우 5m 간격으로 50개나 배치된 드넓은 공터.

그곳의 입구에서 아딘은 세 엘프와 함께 서 있었다.

‘도대체 드워프는 또 왜?’

아딘은 두루마리로 라인하르트의 위치를 파악했다.

드워프의 마을 자체는 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라인하르트의 현 상태는 확실히 두루마리가 확인시켜 주었다.

‘무슨 이유로 라인하르트를 끌고 가서 아침 식사를 먹이는 거지? 그것도 촌장이라는 양반하고 함께 겸상하면서?’

그렇게 아딘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드워프가 옵니다.”

고드리고의 말에 아딘은 시선을 두루마리에서 떼어냈다.

과연, 고드리고의 말대로 드워프 다섯이 글레이브를 든 채 자신들에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딘은 마법 주머니에 두루마리를 집어넣었다.

‘말로는 안 되겠어.’

아무리 육신이 강해졌다 한들, 완력으로는 인간보다 한 수 위인 드워프의 글레이브질을 견딜 순 없었다.

[파아앗-!]

그대로 아딘은 황금빛에 둘러싸였고, 이내 찬란한 금빛을 내뿜는 불칸의 갑옷으로 무장했다.

그 순간, 드워프들이 진격을 멈췄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떨리는 눈으로 아딘을 바라보더니 이내 모두 무기를 버리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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