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66화 (66/175)

066 다시 만난 뱀 인간

[츠츠츠……]

[빠악-!]

황금빛 주먹이 뱀 인간의 쇄골에 그대로 꽂혔다.

뱀 인간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뒤로 몸을 빼며 충격을 완화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놈이 뒤로 몸을 뺌과 동시에 아딘의 발길질이 놈의 흉부를 강타했다.

[뻐억-!]

[츠츠츠츳-!]

뱀 인간의 몸은 그대로 힘없이 훨훨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우지끈-!]

나무는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고, 뱀 인간의 육체는 쓰러진 나무에 깔렸다.

‘정보도 없다.’

아딘은 투구 너머로 뱀 인간을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놈들의 언어도 내가 인식하질 못한다.’

아딘은 나무에 깔려 꿈틀거리는 뱀 인간의 목을 발로 꾹 밟았다.

[케켁-!]

뱀 인간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꼬리와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깡-! 깡-!]

놈의 날카로운 손톱은 갑옷과 부딪히며 스파크를 일으킬 뿐, 아딘에게 그 어떠한 충격도 주지 못했다.

‘묵시록 종단도 그렇고, 두루마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가 왜 이렇게 많지?’

자신이 설정해두지 않은 존재.

묵시록 종단부터 뱀 인간에 이르기까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낯선, 그 정체를 파악할 수조차 없는 존재 앞에서 아딘은 알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아딘의 분노를 부채질했고, 그 분노는 뱀 인간의 목을 밟고 있는 그의 발에 더욱 힘이 실리게 했다.

[키엑……!]

뱀 인간은 목이 밟힌 상태에서 그 소름 끼치는 샛노란 눈으로 아딘을 올려다봤다.

자신의 눈보다 더 환한, 마치 천계의 천군 천사와도 같은 모습을 뽐내는, 불칸의 갑옷을 입은 아딘을 올려다보며 뱀 인간은 한동안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이내, 놈은 아가리를 쫙 벌렸다.

[치이이익-!]

놈의 아가리에서 녹색 액체가 가득 뿜어져 나왔다.

아딘은 그대로 몸을 뒤로 빼냈지만, 흉갑에 몇 방울이 튀는 것은 막지 못했다.

‘독?’

외피에 녹색 액체가 닿자마자 불칸의 갑옷은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었고, 그 빛과 함께 녹색 액체는 그대로 증발이 됐다.

뱀 인간의 공격은 아딘에게 그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했지만, 나무에서 탈출할 시간은 벌어다 주었다.

[츠츠츠츳-!]

그대로 나무에서 빠져나온 뱀 인간은 점차 빛이 사그라드는,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아딘을 바라보며 혀를 파르르 떨었다.

‘뭐 하는 것들이지?’

아딘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발을 굴렸다.

[쿠웅-!]

그대로 아딘은 뱀 인간에게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

[키에엑-!]

뱀 인간은 그대로 뒤로 쭉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딘도 그대로 뱀 인간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함께 날아갔다.

[쿠웅-!]

뱀 인간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아딘은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바위에 갖다 박아버렸다.

[키에엑-!]

머리를 놈의 가슴팍에 파묻어 충격을 완화했음에도 아딘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이 올 만큼 대단한 데미지였다.

심지어 충돌의 여파로 바위는 쪼개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 인간은 바닥에 누워 몇 차례 발작을 일으키기만 했을 뿐, 죽지는 않았다.

‘이 정도 충격량이면 오거나 트롤 같은 괴수들도 죽게 돼 있어. 도대체 이 녀석들은…….’

아딘은 그대로 뱀 인간의 가슴팍 위에 올라앉았다. 그리곤 놈의 목을 손으로 짓누르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누구냐?”

맨 먼저, 아딘은 아퐁어로 질문했다.

[키에엑-!]

[까앙-! 까앙-! 까앙-!]

뱀 인간은 대답 대신, 손톱으로 갑옷을 긁으며 몸부림을 칠 뿐이었다.

“너희 도대체 누구야!”

샤펠 제국 북부 방언, 제니스어, 게마인샤프트 지방의 5대 방언 및 벨로디나어까지.

아딘은 자신이 내뱉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언어로 뱀 인간에게 질문했다.

[키에엑-!]

[치이이익-!]

그러나 놈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이라도 되는 양 손톱으로, 꼬리로 그리고 입에서 내뿜는 녹색 액체로 아딘을 공격할 뿐이었다.

그 모든 공격이 무산으로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계속해서 아딘에게서 빠져나가고자 몸부림을 치기만 했다.

“도대체 누구냐고! 왜 내가 만들지도 않은 것들이 내 소설 속 세계에서 설치고 있어!”

마지막으로 아딘은 한국어로, 김현수의 언어로 고함쳤다.

그 순간, 처음으로 뱀 인간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세차게 요동치던 놈의 꼬리도, 쉼 없이 갑옷의 어깨와 팔을 긁던 손톱도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놈은 가만히 아딘을 올려다보며,

‘웃어?’

웃었다.

놈의 샛노란 눈도, 그리고 슬쩍 올라간 입꼬리도, 모두 놈이 웃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국어를 알아들었다고?’

아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며 한국어로 물었다.

“이 말을 알아들어? 한국어를 알아들어? 알아듣는 거야?”

아딘의 물음에 뱀 인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대답하란 말이야! 너희들 뭐야! 뭐 하는 새끼들이야!”

아딘의 손에 힘이 더 강하게 들어갔다.

뱀 인간의 입과 코에서 녹색 액체가 흘러나와 땅에 고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녹색 액체가 닿자 흙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내 매캐한 썩은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눈앞을 가리는 연기와 코를 찌르는 악취에도 불구하고 아딘은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말해! 너희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우드득-!]

하지만, 끝내 뱀 인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아딘의 악력에 목이 부러져 죽는 그 순간까지도, 놈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젠장……”

아딘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놈의 목을 손에서 놓았다.

그 순간,

[파아앗-!]

벌어진 놈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색채의 빛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아딘은 재빨리 놈의 가슴팍 위에서 일어나 2m가량 거리를 벌렸다.

‘저건 또 뭐야?’

이전에 단 한 차례도 보지 못한, 저것이 과연 색채이기나 한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기이한 빛깔을 뿜어내는, 음울한 빛 덩어리는 잠시 뱀 인간의 사체 위에 머물렀다.

‘날 지켜보고 있어?’

마치 빛 덩어리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듯한 느낌에 아딘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후우우웅-!]

곧 바람이 한 차례 불었고, 바람이 그침과 동시에 빛 덩어리 또한 모습을 감췄다.

아딘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사방을 경계하며 빛 덩어리를 찾았지만, 빛 덩어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렇게 아딘은 인상을 쓰며 연기와 악취 가운데 축 늘어진 뱀 인간의 사체를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이게 도대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위에서 두려움 가득한 한 엘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딘은 천천히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다.

하복부를 풀잎으로 가린 엘프 남성, 실루고르가 두 눈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무 위에서 뱀 인간의 사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으으으……”

갑작스럽게 아딘과 로제 두 사람과 떨어지게 된 후, 라인하르트는 상당히 오랫동안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적어도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동안에는, 그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기다렸다.

아딘과 로제가 자신을 찾으러 오기를.

그러나 울창한 숲 사이로 들어오던 빛이 사라지고 불과 세 뼘 거리도 인식할 수 없는 어둠이 깔렸음에도 그 누구도 자신을 구조하러 오지 않자 라인하르트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끄아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다 보니 중간중간, 곳곳에서 라인하르트는 나무에 부딪히고 돌부리에 걸리며 자빠졌다.

얼굴, 발 그리고 엉덩이와 무릎에 상처가 늘어남에 따라 고통도 함께 증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인하르트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우우우우-!]

[크허어엉-!]

어둠을 뚫고 귀를 때리는 늑대의 하울링과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은, 비록 그 소리의 진원지가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인하르트를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으아아악-!”

[철푸덕-!]

그렇게 한참 동안 어둠 속을 헤매고 다니던 라인하르트는 땅 위로 솟아나 있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크허억-!”

문제는 그가 넘어진 장소가 언덕이라는 것이었다.

“으허어억-!”

라인하르트는 어둠 속에서 한참을 구르고 또 굴렀다.

[쿵-!]

그리고 마침내 묵직한 무언가에 부딪히면서 구르는 것을 멈추게 됐다.

“제기랄…….”

온몸을 쑤시는 통증에 라인하르트는 욕설을 내뱉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채 일어나지 못하곤 그대로 정신을 잃고 잠들어버렸다.

누적된 피로가 언덕을 구르며 발생한 데미지와 겹치며 그를 강제로 수면 상태로 몰고 간 탓이었다.

그렇게 라인하르트는 정신없이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귀를 울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그는 눈을 뜰 수 있었다.

“끄으윽…… 으응?”

다시 태양이 떴기에, 숲에는 빛이 가득했다.

그 빛은 라인하르트의 시야를 돌려주었다.

덕분에 라인하르트는 볼 수 있었다.

“이, 이건 뭐야?”

자신이 굴러떨어진 언덕 아래, 자신이 부딪혔던 구조물.

그것은 돌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신상이었다.

“부, 불칸?”

오른손에는 망치를, 왼손에는 정을 든 채 하늘을 바라보는 불칸을 형상화한 석상.

“이게 도대체가 이게……”

그러한 석상이 눈으로만 보기에도 족히 50개는 돼 보였다.

“이거…….”

언덕 아래 드넓은 평지에 전후좌우 5m 간격으로 세워진 불칸 신상들.

그것들을 바라보며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말을 잇질 못했다.

석상에 정신이 빼앗긴 탓에 라인하르트는 자신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오는 한 무리의 생명체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흐억-!”

그들이 자신의 목에 칼날을 들이밀고 나서야 라인하르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은 채로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라인하르트의 뒤편에서 창대만 2m에 달하는 글레이브의 칼날로 그의 목을 겨누었던 존재들은 천천히 그의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드, 드워프?’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볼 수 있었다.

자기 허리춤 정도에나 오는, 그러나 팔뚝만큼은 자신의 것에 뒤지지 않는 한 무리의 드워프들을.

* * *

아딘은 실루고르에게 뱀 인간에 관해 그리고 자신들의 결백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어라든가, 자신의 창조물이 아니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들을 아딘이 차분히 설명하는 동안 실루고르는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듣기만 했다.

그리고 아딘의 설명이 끝났을 때, 실루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믿어지십니까?”

그런 아딘의 물음에 실루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인간이여.”

억울함에 비해선 굉장히 간단한 사과였지만, 아딘은 받아주기로 했다.

자부심이 하늘을 뚫는 이 오만하고 배타적인 자연주의자의 입에서 사과라는 게 나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딘은 불칸의 갑옷을 해제한 후 서둘러 말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흩어진 우리를 다시 모아 주십시오. 그게 제일 급합니다.”

뱀 인간과 싸우고, 실루고르에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하루가 지나 아침이 밝아왔다.

아딘으로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실루고르도 그런 아딘의 상황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이곤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아딘의 손을 잡는 순간,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딘은 실루고르와 함께 엘프 여성, 실루레아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

실루레아는 아딘이 실루고르와 함께 나타나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실루고르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을 본 아딘은 곧장 실루레아에게 물었다.

“로제는 어디 있습니까? 저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 말입니다.”

아딘의 물음에 실루레아는 실루고르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실루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루레아는 다시 아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데려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순간 아딘은 사고 체계가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예?”

아딘이 멍청한 표정으로 의문성을 토하자 실루레아는 또박또박 아딘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가 데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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