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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61화 (61/175)

061 복귀 (1)

광명력 992년 8월 28일 아침.

[퍼어엉-!]

붉은 불덩이가 거대 전갈의 머리통을 정통으로 때리며 폭발했다.

[키이이잇-!]

거대 전갈은 앞발로 얼굴을 문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단단한 키틴질 외피는 이미 여러 차례 명중하여 폭발한 불덩이에 의해 다 녹아 내린지 오래였다.

외피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다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노출된 속살은 불덩이에 속수무책이었다.

[휘유우웅-!]

[퍼어엉-!]

두 번째 붉은 불덩이가 헐벗은 거대 전갈의 등판을 강타했다.

[키에에엑-!]

거대 전갈은 펄쩍 뛰며 고통을 호소했다.

불붙은 놈의 속살이 익기 시작하며 고소한 냄새를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거대 전갈이 죽었다.

‘이번엔 얼마나 쉬려나?’

도끼를 든 채 사방을 주시하며 라인하르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아……”

로제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졌다.

로제의 코가 땅에 박히려는 것을 토리가 가까스로 부축하여 막아주었다.

“로제. 괜찮아?”

토리의 물음에 로제는 답하지 못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목구멍으로 비릿한 혈향이 올라왔다.

심장의 통증은 너무 심해져 이제는 아프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토리는 로제를 무릎에 눕힌 채 흐르는 코피를 닦아 주었다.

로제의 팔은 축 늘어져 있었고, 눈을 반쯤 감겨 있었다.

“그러게…… 그냥 안전지대로 가자니까…….”

“하지만…… 오라버니가…… 여기를 지켜라…… 하아…… 하아……”

토리는 로제의 코피를 닦고 그녀의 불덩이같이 뜨거워진 이마에 손등을 댄 채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로제의 오빠가 진짜 그렇게 이야기했었나? 여기를 지키라고?’

그녀가 기억하기로 아딘이 특정한 장소를 지키라고 로제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

‘우리를 지키라고만 했지 여기를 지키라고는 안 했는데…….’

토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조그만 체구의 로제를 안은 채 생각했다.

‘로제…… 융통성이 없는 거니? 아니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로제가 토리의 품 안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쿠르르르르릉-!]

땅이 흔들리며 엄청난 진동이 세 사람을 뒤흔들어 놓았다.

“썅! 이번엔 또 뭐야?!”

그 진동이 굉장히 심상찮았기에 라인하르트는 일부러 욕지기를 내뱉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죽으리라는 공포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로제!”

흔들림 속에서 그 자리에 앉아 가까스로 균형을 지키고 있던 토리는 로제가 자기 품을 벗어나 두 다리로 일어서려하자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부축했다.

[쿠구구구구구구-!]

진동은 점차 심해졌다.

라인하르트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이, 이 아래에 뭐가 있는 거야!”

라인하르트가 말을 끝마친 순간.

[쿠아아앙-!]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무언가가 땅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흙먼지와 돌덩어리를 막기 위해 로제는 자기 주변으로 실드를 펼쳤다.

[후두두두둑-!]

흙과 돌은 로제의 실드 위로 쏟아지다가 실드 표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쌓였다.

잠시 후, 로제와 토리, 라인하르트를 중심으로 원형의 조그만 흙벽이 만들어졌을 무렵,

[키에에에엑-!]

고막을 찢는 듯한 괴성과 함께 땅바닥을 뚫고 나타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 세상에!”

라인하르트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만 손에서 도끼를 놓치고 말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졌고, 순식간에 의욕이란 의욕은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키에에에엑-!]

입에 죽은 거대 전갈의 사체를 문 채 괴성을 내지르는, 족히 20m는 돼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황제 지네가 허공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황제 지네의 입에서 거대 전갈의 사체는 힘없이 으깨졌고, 이내 황제 지네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키에에에엑-!]

황제 지네가 기분 좋게 한 차례 더 포효한 후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젠장…….’

라인하르트는 반쯤 울상이 된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토리는 아득함을 느끼며 육체와 정신이 서서히 분리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로제는,

“커헉-!”

무리해서 힘을 끌어올리다가 그만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키에에에엑-!]

더듬이로 전방을 탐색하던 황제 지네가 로제의 피 냄새를 포착하고는 흥분하며 포효했다.

[키에에에에-!]

황제 지네가 로제와 라인하르트, 토리를 바라보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리고 놈이 세 사람을 향해 몸속에서 뽑아낸 산성액을 뿜어내려 할 때,

[끼요오오오-!]

거대한 독수리가 울부짖으며 황제 전갈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키에엑-!]

황제 전갈은 갑작스럽게 자기 머리 꼭대기에 앉은 불청객의 방문에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끼요오오오-!]

[키에에엑-!]

황제 지네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고, 그럴 때마다 놈의 몸통에 붙은 수백 개의 다리들이 넘실넘실 춤을 췄다.

그 난동에도 불구하고, 대왕 독수리는 발톱으로 황제 지네의 외피 사이에 난 흠을 꽉 부여잡은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키에……!]

잠시 후, 황제 지네는 항복한 듯 움직임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끼요오오오-!]

한차례 울부짖은 대왕 독수리는 황제 지네의 머리 위에서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내려왔다.

그 즉시 황제 지네는 엄청난 진동과 함께 땅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로제!”

그리고 대왕 독수리가 미처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그 등 뒤에서 아딘이 뛰어내렸다.

“오…… 라…….”

로제는 자신을 향하 달려오는 아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소와 동시에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로제!”

아딘은 앞으로 쓰러지려는 로제를 그대로 안아주었다.

로제는 아딘의 품에서 축 늘어진 채 그의 귓가에 대고 가까스로 한 마디를 남겼다.

“지…… 키고…… 있었…… 어요……”

그리고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로제! 로제!”

아딘은 로제를 품에 안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 밑에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에 코와 입에서 흐르는 피까지.

딱 봐도 상태가 매우 엉망인 게 눈에 보였다.

아딘은 가만히 로제의 심장에 손을 얹어 보았다.

그녀의 심장이 그야말로 미친 속도로 뛰고 있었다.

아딘은 다급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마법 주머니에서 꺼내 펼쳐보았다.

두루마리 위로 로제의 몸상태에 관한 진단과 처방이 나타났다.

다행히 폭주가 우려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기간에 지나치게 힘을 남용했기에 한 달 정도는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했다.

아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들어 라인하르트와 토리를 바라보며 고함쳤다.

“도대체 로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있던 겁니까!”

아딘의 반응에 라인하르트가 인상을 팍 쓰며 대꾸했다.

“댁 여동생보고 우리가 그렇게 안전지대로 가자, 저기 1km 앞으로 도로 돌아가자, 가면 안전하다고 수십, 수백 번은 말했는데 개뿔도 우리 말을 무시하다가 그렇게 된 거 아니요!”

죽다 살아난 라인하르트는 일시적으로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그가 강하게 나가자 눈치를 살피던 토리도 조심스럽게, 차분한 어조로 아딘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로제가 이 자리를 지키라고 오라버니가 이야기했다고, 절대 못 움직인다고 해서 계속 여기에서 있었어요. 그러다 요 며칠 동안 계속 괴수들한테 공격당했고요. 특히 어제저녁부터 공격이 쉬지도 않고 들어오다 보니…….”

토리의 말에 아딘은 두 사람에겐 아무 잘못이 없음을, 도리어 이 사달이 난 원인이 로제에게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로제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애매하게 이야기한 자신에게, 그녀의 어깨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맡긴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로제…….”

아딘은 그대로 로제를 부둥켜안았다.

잠시 후, 아딘은 타고 온 대왕 독수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대왕 독수리는 즉시 북쪽으로 빠르게 날아갔고, 1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영양 한 마리를 발톱에 쥔 채 도로 아딘이 있는 곳으로 날아와 착지했다.

[끼요오오오-!]

대왕 독수리가 아딘의 얼굴에 부리를 문지르며 애교를 부렸다.

아딘은 힘겨운 표정으로 대왕 독수리의 부리를 쓰다듬어준 후 라인하르트에게 말했다.

“이걸로 뜨끈하게 수프 하나 끓이십시오. 다들 힘드셨을 텐데, 뭐라도 좀 먹어야지.”

누그러진 아딘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토리였다.

토리가 쓰러진 마차에서 쓸 만한 식기를 챙기는 동안, 라인하르트는 그제야 자신이 아딘에게 한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미쳤지…… 겨우 살아놓고 또 죽을 짓을 했으니……’

라인하르트는 침을 꿀꺽 삼킨 후, 기절한 로제를 슬픈 표정으로 끌어안고 있는 아딘의 눈치를 살피며 모닥불을 피웠다.

‘내가 참 너한테 죄를 많이 짓는구나…… 로제…….’

평온한 표정으로 기절해 있는 로제를 내려다보며 아딘은 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 * *

[키에에엑-!]

광명력 992년 9월 1일 아침.

아딘의 명령으로 땅속에서 잠들어 있던 황제 지네가 지상으로 40m에 달하는 몸을 완전히 드러냈다.

“지네 위에 앉는다는 게 좀 그럴 순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만 한 이동 수단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 일주일 정도만 감수한다 생각하시고 등에 올라타십시오.”

아딘의 말에 라인하르트와 토리는 모두 식겁했다.

‘저거 위에 올라가라고?’

‘독이라도 뿜어져 나오면 어쩌지?’

라인하르트와 토리는 황제 지네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아딘의 말에 별다른 반대 의견을 낼 수가 없었다.

말이 죽은 이상, 이동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에서 등까지, 황제 지네의 크기만 10m에 이르렀기에 라인하르트와 토리는 대왕 독수리의 도움을 받아 황제 지네의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좌우로 길이도 10m 정도였던 만큼, 등판에서 미끄러지거나 할 일은 없었다.

[끼요오오-!]

대왕 독수리는 아딘의 명령대로 토리와 라인하르트의 곁에서 혹시라도 두 사람이 떨어지거나 할 경우를 대비해 대기하게 됐다.

[끼에에에엑-!]

아딘이 로제를 안은 채 점프하여 황제 지네의 머리 위로 올라가자 놈은 기분 좋은 포효를 내지른 후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수백 개에 이르는 발이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면서 엄청난 진동을 사방으로 뿌려대기 시작했다.

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에 움직이는 것도 꼭 기차 같다고 생각하면서 아딘은 슬며시 웃었다.

‘그래도 무궁화호보다는 느리겠지?’

그렇게 한참 동안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가던 중 아딘은 마법 주머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보았다.

곧 두루마리 위로 렝고스의 지도가 나타났다.

‘이 정도면 한 8일 정도면 뵌가르트 외곽지대까지 도착할 수 있겠네.’

지도를 확인한 후 아딘은 도로 두루마리를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로제가 아딘의 곁에 바짝 붙어 앉고서 그를 올려다봤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로제를 바라봤다.

“로제.”

“네, 오라버니.”

“어…… 다음부턴 최대한 내가 널 혼자 두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

“아니에요. 제가…… 제가 좀 더 융통성을 가지도록 노력할게요.”

로제의 말에 아딘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둘 다 노력하자.”

“네, 오라버니.”

로제도 아딘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딘은 왼팔로 그녀를 안아주었고, 로제는 그대로 아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저 두 사람…….’

그리고 그 장면을, 불안해하며 고개를 황제 지네의 등에 처박고 있는 라인하르트와는 달리,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던 토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남매 맞아?’

남매라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돈독하고 가까운 두 사람의 모습에 토리는 자신과 자기 오라비도 저 정도였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곧, 그녀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니야. 나도 오라버니하고는 굉장히 친했고 서로를 아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어.’

“흐음……”

그렇게 토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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