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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58화 (58/175)

058 네르갈의 신전 (4)

신나게 직선으로 달려오던 오거 다섯 마리의 몸에 청색 불덩이가 닿으며 폭발했다.

[꾸어어어어-!]

개수를 늘린 만큼 위력은 줄었지만, 여전히 25,000도에 달하는 열기는 오거를 집어삼키기에 충분했다.

일격에 머리통 근처가 녹아내린 세 마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버렸고, 상반신 근처에서 불덩이가 터진 오거들은 그나마 남아 있던 성대로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죽어버렸다.

[사사사사삭-!]

그 순간, 땅을 파고 거대 전갈 한 마리가 나오더니 오거들의 시체를 모조리 집게로 집어들고는 다시 땅 아래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마차 주위를 휘감고 있던 흉흉한 기세는 사라졌다.

하지만 로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양손에 푸른 불덩어리를 든 채 주위를 경계했다.

잠시 후, 더 이상 괴수들이 주변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 로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불꽃을 없애버렸다.

“이제 나오셔도 돼요.”

로제의 말에 곧 라인하르트가 마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로제를 보며 수고했단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들의 상태를 살폈다.

말들은 상당히 긴장하고 놀란 상태긴 했지만, 다행히 상처를 입거나 하진 않았다.

말들을 진정시킨 후 라인하르트는 로제를 바라보았다.

로제는 상당히 지친 모습으로, 저 멀리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네르갈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라인하르트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마차로 향했다.

그리곤 토리에게 잠시 나와보라 손짓한 후 그녀를 옆에 세운 채 로제에게 이야기했다.

“여기는 너무 위험해요. 그러니 1km만 좀 더 전진해서 거기서 기다리는 게 어떨까요? 말들이 난동을 부리긴 하겠지만, 여기서 괴수들한테 위협당하느니 말들이 날뛰는 게 좀 더 나을 것 같은데.”

토리가 통역한 라인하르트의 말에 로제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이야기했다.

“오라버니가 여기서 기다리라 했어요. 오라버니가 여기서 기다리라 했으니 전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로제의 말은 다시 토리를 거쳐 라인하르트에게 전달됐다.

라인하르트는 갑갑하단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말이 다시 토리를 통해 로제에게 갔고, 로제는 양손에 푸른 불덩어리를 생성시켜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민무늬 호랑이와 흰코뿔소에게 그것을 던져 놈들을 녹여버림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젠장…… 논리에서 밀리니까 무력 시위야.’

라인하르트는 힘 없는 내가 참아야지’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다시 토리에게 마차 안으로 들어가라 한 후 자신은 마부석으로 향했다.

그리곤 파이프에 연초를 담아 불을 붙여 피우며 생각했다.

‘어서 돌아오십시오. 당신의 불같은 성격의 마법사 여동생은 당신 말만 들으니. 젠장…… 그냥 뵌가르트에 남아라 할 때 남을걸…….’

뒤늦게 쓸데없는 철칙을 내세운 것을 후회하며 그렇게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태웠다.

그리고 로제는 어둠 속에 잠겨 더 이상 보이지도 않는 네르갈의 신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라버니…… 무사하세요…… 제발…….’

* * *

광명력 992년 8월 25일 아침.

아딘은 번쩍 눈을 떴다.

그는 누운 채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대로 잠든 거야?’

아딘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의 메이스는 가지런히 그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대 유인원의 사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누가 왔다 간 건가?’

아딘은 메이스를 양손으로 든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없어?’

그제야 아딘은 자기 몸 상태가 굉장히 가뿐하고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등산에서 오는 흔한 근육통은 물론, 지난밤 거대 유인원과 싸우면서 맞은 부위에서도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아딘은 혹시나 싶어 불칸의 갑옷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벨트는 잠들어 있었다.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내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치겠네.’

아딘은 두루마리를 마법 주머니에 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계속 올라가는 수밖에…….’

거대 유인원의 정체는 무엇인지, 놈의 사체는 어디로 갔는지, 자신의 메이스는 왜 머리맡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던 건지.

그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전혀 얻지 못한 채 갑갑한 마음으로 아딘은 육포와 건어물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곤 또 정처없이 나선형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다행히 태양이 떠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딘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하지만 초저녁이 되자 귀신같이 안개가 또 아딘의 주위에 쫙 깔리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아딘은 메이스를 양손으로 꽉 쥔 채 전방을 주시했다.

[꾸워어어어억-!]

어제 그 유인원과 비슷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굵기나 묵직함의 정도는 다소 떨어졌다.

잠시 후, 안개를 뚫고 털 없는 고릴라처럼 생긴 회색 오거가 나타났다.

어제 나타났던 거대 유인원보단 1m 정도 더 컸지만, 표정은 그다지 다채롭지 못한 오거의 등장에 아딘은 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꾸어어어어어-!]

어제의 거대 유인원과는 달리 오거는 아딘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그 속도나 파워는 분명 거대 유인원보다 강했다.

그러나 오거의 공격은 단순무식했다.

변칙적인 공격이라든가, 중간에 궤도를 수정한다든가 하는 일은 일체 없었다.

그저 무식하게 직선으로 휘두르고 또 휘두를 뿐이었다.

아딘이 주먹을 피해 몸을 한 바퀴 굴리면 발로 어떻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식이었다.

‘수월한데?’

아딘은 그렇게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메이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까앙-! 까앙-! 까앙-!]

메이스는 정확하게 오거의 아킬레스건과 오금, 허벅지를 때렸다.

오거는 맞을 때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거대 유인원처럼 한 방에 휘청이거나 쓰러지거나 하진 않았다.

‘맷집 한 번 더럽게 강하네!’

아딘은 어금니를 꽉 다문 채 있는 힘껏 오거를 때리고 또 때렸다.

내구도가 강한 만큼 아딘은 때린 곳만 집중적으로 연거푸 때렸다.

[꾸워어어어어-!]

오거는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아딘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 단순무식한 공격이 아딘에게 통할 리는 없었다.

오거의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회피하며 아딘은 계속해서 오거의 허벅지와 오금, 아킬레스건을 때렸고 마침내 오거는 무너지고 말았다.

오거가 한쪽 무릎을 꿇자 아딘은 곧장 놈의 무릎을 타고 어깨 위로 점프했다.

그리곤 마치 목마를 타듯 오거의 어깨 위에 앉은 채 메이스로 빠르고 강하게 리듬감을 갖춰 놈의 정수리를 연타했다.

[까가가가강-!]

[꾸윅-! 꾸위워이이익……!]

오거는 양팔을 든 채 아딘을 잡으려다 말고 마비라도 온 듯 멈춰버렸다.

그리고 놈은 아딘이 정수리를 두드릴 때마다 바르르르 몸을 떨기만 할 뿐이었다.

[뻐억-!]

그리고 마침내, 놈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두개골이 깨지고, 그 내부에 있던 아딘의 주먹만 한 뇌가 메이스에 정통으로 맞으며 뭉개졌다.

[꾸르륵…….]

[쿠웅-!]

오거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고, 아딘은 놈이 누워버리기 전에 어깨를 박차고 허공을 한 바퀴 돈 후 안전하게 착지했다.

“별거 없구만! 오거도.”

불칸의 갑옷이 가져다준 근력과 체력의 영구적 향상.

딱 그것만으로도 아딘은 오거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이 아딘의 가슴에 무한한 자신감을 채워 주었다.

아딘은 머리가 깨진 오거의 사체를 바라보며 씩 웃었고, 그 상태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지며 다시 숙면에 들었다.

* * *

8월 26일 아침.

아딘은 또 눈을 번쩍 떴다.

이틀째, 꿈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덕분에 전날에 쌓인 피로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아딘은 찝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또?’

오거의 사체가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메이스는 그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네르갈인가? 네르갈이 직접 이렇게 해주고 있는 거야?’

아딘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곤 메이스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불칸의 갑옷이나 두루마리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아딘은 고개를 들었다.

구름 모자를 쓴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보였다.

오늘 하루만 빠듯하게 걸어 올라가면 되지 싶었다.

‘그래. 좀만 더 올라가자. 설마 뭐가 또 나오기야 하겠어?’

얼마 남지 않은 건어물을 먹어 아침을 해결하며 아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그의 소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그날 초저녁, 서쪽 지평선과 동쪽 지평선의 서로 다른 색상이 묘한 조화를 이룰 때에 나타난 안개로 완벽하게 무시당했다.

“젠장!”

아딘은 욕설을 내뱉으며 메이스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이번엔 또 뭐야? 대왕 사마귀라도 나오는 거야?’

아딘은 긴장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저벅-! 저벅-! 저벅-!]

거대 유인원이나 오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벼운, 그러나 인간의 것보다는 여전히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안개를 뚫고 아딘의 귀로 흘러들었다.

아딘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전방을 주시했다.

잠시 후, 안개 속에서 신장 3m가량의 사람이 나타났다.

‘거인족?’

아직은 유인원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비교적 인간에 가까운 얼굴 생김새.

머리카락과 가슴팍에만 가득한 털.

동물 가죽 같은 걸로 가린 하복부.

인간의 것처럼 가지런한 치아.

“콰쿨라-! 쿨라크차카-! 키라히아무-!”

그리고 들고 있는 나무 몽둥이로 아딘을 가리키며 내뱉는 분명한 언어적 형태의 소리.

‘거인족이 왜 여기 있어?’

소설 설정상 1백만 년 전 멸종된, 그 종의 일부가 인간과 섞이며 현재 쿠만족의 원형이 되는 인종을 낳은 존재.

거인족.

쿠만족에 대한 설정을 짤 때 스치듯 언급된 이 원시 종족을 앞에 두고 아딘은 순간 당황했다.

‘도대체 이건……’

아딘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거인족 남자는 침을 튀겨가며 무어라 이야기했다.

“크라흐라하! 라흐하무라! 크라헤으아!”

분명 언어이긴 했는데, 아딘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야? 설마 언어 능력도 봉인된 거야?’

아딘 콘스탄틴의 몸에 빙의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갖게 된 언어 능력.

인간 각 민족의 언어는 물론 오크의 언어까지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끔 하던 그 능력은 불칸의 갑옷 및 두루마리와 함께 이 산에서 봉인됐다.

“으아우마그-! 마그-! 마그-! 마그라-!”

거인족은 그렇게 수차례 분노한 상태로 무어라 말을 내뱉더니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아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안개도 싹 사라져버렸고 더 이상 거인족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당혹감 속에 아딘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뜨니 어느새 그는 바닥에 누운 상태였고, 하늘은 태양을 품고 그 푸르름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 뭐야? 언제 잠든 거야?’

아딘은 당혹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느 날처럼 메이스는 그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칠 노릇이네.’

아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메이스를 챙겨들고, 육포로 아침을 해결한 후 다시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

아직 석양이 지기 전.

“후아-!”

드디어 아딘은 정상에 도착했다.

아딘은 환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 봤다.

구름 아래로 드넓은 렝고스 대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웅장함에 아딘은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크허엉-!]

그 순간, 사자의 포효가 아딘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딘은 화들짝 놀라며 메이스를 양손으로 쥔 채 뒤로 돌았다.

‘응?’

그리고 아딘은 볼 수 있었다.

산에 올라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던 거대한 사자 석상을.

어깨높이만 40m에 달하는 거대한 네르갈 신상을.

‘언제 나타난 거야?’

아딘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네르갈의 신상을 바라봤다.

[크허엉-!]

네르갈의 신상은 마치 진짜 사자처럼 허공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쩌저저적-!]

그리고 곧 얼굴에서부터 몸통 전체로 금이 쫙 가기 시작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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