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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55화 (55/175)

055 네르갈의 신전 (1)

렝고스 서북부에는 1년에 총 4차례에 걸쳐 우기가 찾아온다.

그중 대략 일주일간 이어지는 1차 우기는 8월 초순이었다.

[콰르릉-!]

[쏴아아아아-!]

광명력 992년 8월 4일.

메콩가 강 상류 수원지에서 한참 떨어진 초원 한복판.

아딘의 마차는 사실상 운행이 중지된 상태였다.

로제의 마법 덕분에 마차나 말이나 비를 맞는 일은 없었지만, 메마른 강을 물로 채울 만큼 세찬 빗방울로 인해 길이 질퍽해지면서 마차 바퀴가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던 것이었다.

‘이래저래 1개월 정도 걸리겠다 싶었는데 딱 맞게 되겠네.’

마차 지붕 위에서 두루마리로 렝고스 서북부의 우기에 관한 정보를 보던 아딘은 두루마리를 접어 품에 넣은 후 벌러덩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두두두둑-!]

굵은 빗방울은 아딘의 얼굴 위로 떨어지려다 마차 지붕 상공 5m 정도에서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히며 옆으로 튀었다.

시커먼 먹구름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아딘은 생각했다.

‘오크를 용병으로 쓸 수도 있을까?’

카르갈과의 만남 이후 아딘은 어쩌면 이것들을 용병으로 고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됐다.

인간보다도 강력한 근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오크를 용병으로 고용한다면, 적어도 백병전에 있어서만큼은 무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리 콘스탄틴에게 복수하기 위해선 쿠만족을 용병으로 고용해도 충분해. 하지만 그 이후에, 제니스 공화국이 본격적으로 벨로디나를 침공한다면? 그래서 날 축출하려 한다면…… 쿠만족만으로는 힘들어. 숫자에서 너무 밀려.’

아딘이 용병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쿠만족.

벨로디나 서부의 얼어붙은 땅 쿠마니아에 사는 이들은, 설정상 1백만 년 전 멸종된 거인족의 유전자 일부를 가지고 있는 전투 민족이었다.

남녀 불문 평균 신장 2m라는 괴수같은 신체 스펙을 자랑하는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한다면, 벨로디나에 주둔 중인 제니스 공화국 용병 5만 명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제니스 공화국이 본격적으로 벨로디나를 침공한다면 3대 상단이 지닌 용병에 게마인샤프트의 용병들까지 엄청난 숫자가 밀려들 터였다.

그들을 쿠만족 용병만으로 막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딘이 떠올린 것이 오크 용병이었다.

‘근데 오크가 황금을 쓰기는 하나?’

오크에게 줄 보수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당장에 할 일을 생각할 때였다.

“빗물 고인 웅덩이에 빠져 있는 시체여 그대는 누구의 아들이었나~”

라인하르트가 마부석에 앉아 연초를 태우며 부르는 노래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아딘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흘 뒤에 1차 우기가 끝나. 그럼 다시 출발할 수 있겠지. 그러면 대략 2주일 정도를 더 가면 네르갈의 신전이 나와.’

아딘은 점차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르갈의 시험…… 통과할 수 있겠지?’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그렇게 아딘은 선잠에 들었다.

* * *

8월 8일.

정오가 되기 전, 비는 귀신같이 그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내리쬐며 대지를 달구기 시작했고, 비를 맞아 촉촉해진 대지를 건조 시켰다.

대지가 마름에 따라 마차는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야생 짐승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크헝-!]

[크허엉-!]

[아우우우-!]

일반 사자보다 1.5배는 더 큰 흑사자, 그 흑사자보다 1.5배는 더 큰 민무늬 호랑이, 일반 하이에나보다 1.5배는 더 큰 대왕하이에나까지.

다양한 육식 동물들이 마차로 달려들었다.

이전까지 보이던 것들이 마차를 멀리서 보기만 하거나 주변을 잠시 어슬렁거리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공격성이었다.

물론 그것들이 마차를 공격해 누군가 다친다거나 하는 일은 일절 일어나지 않았다.

민무늬 호랑이같이 개별적으로 공격하는 것들은 아딘이 모두 때려잡았고, 흑사자나 대왕하이에나처럼 집단으로 공격하는 것들은 아딘과 로제가 합동으로 때려잡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육식 동물뿐만이 아니었다.

“흐리야아앗-!”

8월 14일 오후.

마차 전방 10m 지점에서 불칸의 갑옷을 입은 채 거대한 흰코뿔소와 씨름하던 아딘은 온 힘을 다해 코뿔소의 뿔과 턱을 잡은 채 놈을 들어 올렸다.

[부워어억-!]

흰코뿔소가 괴성을 내지르며 발버둥쳤다.

아딘은 놈을 머리 위로 든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힘껏 놈을 멀리 집어 던졌다.

[쿠우웅-!]

어깨높이만 2m에 달하는 거구가 땅 위로 떨어져 내리자 일순간 땅이 살짝 진동했다.

[부워어억-!]

흰코뿔소는 잠시 엎드린 채 정신을 차리질 못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아딘은 가만히 놈의 동태를 살폈다.

[끼에에엥-!]

잠시 후, 비틀거리며 네 다리로 선 흰코뿔소는 자신을 지켜보는 아딘을 보고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앓는 소리를 내며 호다닥 도망가버렸다.

“후우-”

아딘은 심호흡을 하며 불칸의 갑옷을 해제했다.

그리곤 천천히 마차로 돌아와 지붕 위로 올라갔다.

[히히히힝-!]

[이히이이잉-!]

자연스럽게 라인하르트가 고삐를 당겼고 말들은 다시 마차를 끌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인지, 조금 전 아딘이 보여주었던 차력쇼에도 불구하고 라인하르트는 감흥 없는 표정으로 연초를 태우며 마차를 몰았다.

‘네르갈의 신전에서 뿜어지는 에너지 때문인가?’

아딘은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암석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풀 한 포기 없이, 산 전체가 흰 돌로 이루어진, 그래서 얼핏 보면 만년설에 뒤덮인 걸로 착각할 만한 거대한 산.

그 산 자체가 바로 네르갈의 신전이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산이 지평선 너머에서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야생 동물들의 공격성이 강해졌다.

‘좀 있으면 이제 흑사자나 흰코뿔소가 애완동물로 보일 정도로 흉폭한 괴수들이 나타나겠지.’

아딘은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 보였다.

네르갈의 신전 주변으로 야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괴수들, 즉 오거와 거대 전갈, 대왕 사마귀 등의 분포도가 쫙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네르갈의 신전과 점차 가까워지는, 신전 서북쪽에 자리한 자신의 마차도 붉은 점으로 표시돼 있었다.

‘오거는…… 다행히 뭐 당장 마주칠 만큼 가까이 있는 놈은 없어. 뭐 가다가 우연히 경로가 겹치면 모를까…… 문제는 거대 전갈하고 대왕 사마귀란 말이지.’

거대 전갈은 땅을 파고 그 속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속도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속도의 수십 배 정도다.

대왕 사마귀는 아예 날개가 있어서 순식간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다행히 집단생활을 하는 것들은 없구만.’

과거에 자신이 만들어 둔, 맥거핀으로 남겨 놓은 설정에 안도하며 아딘은 두루마리를 도로 말아 품에 넣었다.

[덜컥-]

그때, 마차 문이 열리며 로제가 나왔다.

로제는 그대로 마차 지붕 위로 날아올라 아딘의 곁에 앉았다.

“응? 무슨 일 있어?”

아딘의 물음에 로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의 곁에 살짝 붙었다.

“언니가 잠들어서요. 심심해서 나왔어요.”

“잠들었다고?”

아딘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었다.

흰코뿔소와 싸운다고 그 난리를 부렸는데 그사이 잠이 들다니…….

‘하긴 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까.’

그러다 이내 요 며칠 동안 야밤에 계속된 대왕 하이에나의 습격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던 그녀를 떠올리며 아딘은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했다.

“오라버니. 지금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로제의 물음에 아딘은 잠시 그녀를 바라본 후 손을 들어 지평선 너머 네르갈의 신전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는 거야.”

“산이요?”

“응. 정확히 말하자면 산이 아니라 신전이야.”

“신전요?”

로제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네르갈의 신전을 바라보다 이내 아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응. 네르갈을 모셔둔 신전이야.”

잠시 로제는 말없이 아딘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아딘이 그녀를 바라봤다.

로제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천천히 아딘에게 물었다.

“신이 과연 존재할까요?”

그 물음에 아딘은 가볍게 숨을 내쉰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로제도 아딘을 따라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있어.”

아딘이 확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무도 본 적이 없잖아요. 사제들이 신성력을 사용하긴 하는데 솔직히 그 사람들 신성력이나 제 능력이나 별 차이는 없지 않나요?”

로제의 말에 아딘은 피식 웃었다.

그리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난 봤거든. 신을.”

아딘의 말에 로제가 입을 쩍 벌리며 아딘을 바라봤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꺼내 입는 황금 갑옷. 그거 신한테 받은 거야. 인내의 신 불칸에게.”

로제는 그저 눈만 껌뻑거릴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로제의 머리를 아딘은 가볍게 쓰다듬어 준 후 그녀의 어깨를 감싼 채 네르갈의 신전을 보며 이야기했다.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나는 지금 네르갈을 만나러 가는 거야. 야생의 신 네르갈을 말이야.”

신을 만나러 간다는,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아딘의 말에 로제는 결국 입을 다물고 멍하니 지평선 너머 네르갈의 신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네르갈은 혹시 알고 있을까? 내가 왜 이 세계에 빙의했는지?’

아딘도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지붕 위에서 꽉 붙은 채로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 * *

다행히 거대 전갈이나 대왕 사마귀 그리고 오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괴수들뿐 아니라 흑사자나 대왕 하이에나, 민무늬 호랑이, 흰코뿔소 같은 맹수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딘의 마차가 네르갈의 신전 반경 50km 부근에 도착했을 때, 주변에는 그 어떠한 생명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두루마리에 뜬 지도 정보를 통해서도 확인이 됐다.

네르갈의 신전 반경 50km 이내에는 식물만이 있을 뿐, 그 어떠한 동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히히히히힝-!]

[이히이이이잉-!]

신의 힘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인가?

야수나 괴수가 살지 않는 땅에 들어서자 말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워워워-! 좀 말 좀 들어라!”

라인하르트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말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붉은 말과 황색 말은 두려움 가득한 모습으로 날뛰기만 할 뿐, 도무지 통제를 따르려 하질 않았다.

‘걸어가야 한단 건가?’

아딘은 가만히 마차 지붕 위에서 라인하르트가 하는 모양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땅으로 내려왔다.

“라인하르트. 일단 마차를 몰고 1km 정도 후퇴해 있으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날 기다리십시오.”

아딘의 말에 라인하르트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 목적지는 저곳입니다.”

아딘이 손가락으로 네르갈의 신전을 가리켰다.

라인하르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혼자 걸어서 갔다 오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올 때까지 당신은 여기서 이제껏 당신이 해오던 일을 하고 있으십시오.”

아딘의 말에 라인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아딘은 마차 문을 열고 로제와 토리에게도 자신이 홀로 갔다 오리란 것을 밝혔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도 같이 갈래요.”

그러자 당장에 로제가 팔짝 뛰었다.

그런 로제를 향해 아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혹시라도 괴수나 야수가 마차를 습격하면 네가 나를 대신해서 마차와 사람을 지켜줘야 해.”

아딘의 단호한 말에 로제는 더 이상 말을 잇질 못했다.

애써 참는 것이 보였지만 자신과 분리되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는 로제를 아딘은 가만히 안아 주었다.

“괜찮아. 일주일 안에는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지켜주고 있어. 알겠지?”

그 말에 결국, 로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아딘은 마법 주머니에다 육포와 건어물, 말린 과일 등을 챙긴 후 마차를 뒤로하고 홀로 드넓은 벌판을 걸어 네르갈의 신전으로 향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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