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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51화 (51/175)

051 초원의 문명 (3)

라인하르트에게는 철칙이 있었다.

하나는 고객의 돈을 날로 먹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의뢰 내용 이외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랬기에 나름 렝고스로 자주 오간 경력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여전히 가난했고, 게마인샤프트 동부 용병 업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였다.

“대형 용병단이 뭐 실력으로만 뽑아주디? 적당히 선물도 좀 찔러 주고 해야 뽑아주지.”

그와 함께 용병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저마다 렝고스로 다녀오며 상당량의 자연산 상품 작물들을 채취해 그것을 대형 용병단 고위직들에게 뿌렸다.

덕분에 그들은 모두 대형 용병단 혹은 그들의 직속 하청인 중견 용병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상품 작물 채취를 끝까지 하지 않았고, 덕분에 지금껏 그는 개인으로 활동하는 하류 용병 신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못해요. 아니, 안 해요. 우리 계약은 렝고스 여행에 필요한 잡역을 내가 도맡아 하는 거지 오크 사냥하는 게 아니잖수.”

그랬기에 라인하르트는 아딘이 오크 부족 호가르의 영역으로 처들어가자 이야기했을 때, 완강히 거부했다.

“누가 당신더러 싸우랍니까? 그냥 그 근처까지만 마차를 이동시키십시오. 그 이후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 불칸의 갑옷으로 무장한 아딘이 갑옷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강하게 이야기하자 결국 라인하르트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딱 근처까지만 갈 테니 그리 아슈.”

그렇게 라인하르트는 옆에 잭 존슨을 태우곤 고삐를 손에 쥐었다.

마차 지붕에서 아딘은 광활한 초원지대를 둘러보며 오크 전사가 잠복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주변에 잠복 중인 것들은 없었다.

“어디로 가면 된단 거야?”

“저, 저, 저기서 여, 옆으로…….”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오, 오른쪽…….”

[빠악-!]

“똑바로 지껄여 이 개돼지만도 못한 비겁한 새끼야.”

라인하르트는 불안감을 잭 존슨에 대한 구타로 해소하며 그의 안내에 따라 마차를 몰았다.

“정지.”

대략 6km가량을 이동했을 무렵, 아딘은 마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곤 로제와 함께 마차 지붕에서 내려온 후 잭 존슨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앞장서라.”

바닥에 엎드려 앓는 소리를 내는 잭 존슨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아딘이 이야기했다.

볼기짝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잭 존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아딘과 로제가 그 뒤를 따랐고,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라인하르트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미친것들이야. 단둘이서 오크를 사냥해? 그것도 그것들 서식지로 쳐들어가서?’

라인하르트는 말고삐를 꽉 쥔 채 절대 여기서 한 발짝도 이동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만약에라도 오크들이 튀어나온다면 곧장 마차를 끌고 도망가리라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딘과 로제가 수풀 속으로 사라지자 라인하르트는 묘한 호기심을 느끼며 자기도 가보고 싶단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아니야. 미친 짓이야. 오크 서식지로 들어가면 죽어. 죽을 수밖에 없어. 산 채로 그것들은 사람 배를 갈라서 내장부터 씹어 먹는다지?’

그렇게 생각하며 라인하르트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호기심도 컸지만, 더 중요한 건 생존에 대한 본능이었으니까.

* * *

“로제.”

아딘의 부름에 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에 무리가 가면 안 돼. 알겠지? 그리고 할 수 있으면 허공에 뜬 채로 싸워. 나야 갑옷이 있으니 눈먼 칼에 맞아도 문제가 없지만, 넌 아니잖아.”

“네, 오라버니.”

곧 로제는 그 자리에서 7m가량 허공으로 떠올랐다.

[뻐억-!]

아딘은 그대로 잭 존슨의 오금을 발로 강타했다.

“끄아아악-!”

잭 존슨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고, 그의 오른쪽 다리는 힘을 잃은 채 너덜거렸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라. 고통을 감내하고 도망가 본들, 하이에나 밥이나 더 되겠냐만.”

그렇게 잭 존슨에게 경고한 후 아딘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잭 존슨이 포박당한 모습에 잠복 중이던 오크들은 기습을 포기했다.

대신 자신들의 수적 우위를 믿고는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 불칸의 갑옷에 예리한 칼날이 일품인 강철검을 들고 오는 아딘과, 그 머리 위에 떠서 양손에 시퍼런 불덩어리를 든 채 따라오는 로제를 바라보며 녹색종 오크 호가르족의 사냥꾼 스물은 피딱지가 묻은 돌도끼와 나무 몽둥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크를 좀 덜떨어진 유사 인종 혹은 렙업용 잡몹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오크 사냥꾼들을 향해 아딘은 녹색종 오크어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오크 사냥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좀 새로운 발상을 하고 싶었어. 너희를 괴수나 저지능 유사 인종이 아닌, 인간이나 엘프와 조상을 공유하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인류로 말이야.”

너무나도 유창한 아딘의 녹색종 오크어에 호가르의 오크 사냥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엔 식인과 인간 강간은 포함되지 않아, 이 덜떨어진 것들아!”

그 말을 끝으로 아딘은 놈들에게 돌진했다.

오크 사냥꾼들도 아딘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그 순간,

[퍼엉-! 퍼엉-!]

[화르르륵-!]

로제의 양손에 생성돼 있던, 섭씨 25,000도의 온도를 자랑하는 푸른 불덩어리가 일렬횡대로 선 오크 사냥꾼 무리의 좌우측으로 날아갔다.

“쿠웨에엑-!”

“크으우어어억-!”

불덩어리에 직격탄을 맞은 두 오크 사냥꾼은 그대로 녹아 없어졌다.

스치기만 한 네 오크 사냥꾼은 몸에 불이 붙는 고통 속에 바닥을 뒹굴다 죽어버렸다.

[쿠웅-!]

그리고 아딘과 정면으로 마주하던 오크 사냥꾼 둘은 아딘의 육탄 돌격에 그대로 얻어맞고는 허공으로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목이 꺾이고 내장이 터져 죽었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비록 오크가 전반적으로 인간이나 엘프에 비해 근력이 우수했고, 뛰어난 존재는 수사자와 싸워도 이길 만큼 강했지만, 그들이 손에 쥔 조악한 무기는 불칸의 갑옷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아딘은 보다 강해진 근력과 스피드 그리고 정확도로 순식간에 오크 사냥꾼의 목젖을 갈라버렸다.

충돌이 시작되고 채 40초가 지나지 않아 미끼가 몰고 올 식량을 기다리던 호가르의 오크 사냥꾼 스물은 죽어버렸다.

아딘은 허공에 뜬 로제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준 후 바닥에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던 잭 존슨의 너덜거리는 다리를 붙잡곤 그를 질질 끌고 그대로 호가르족의 촌락으로 들어섰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잭 존슨은 목청껏 녹색종 오크어로 살려달라 소리질렀다.

하지만 무의미한, 그저 자기 목청만 아픈 행위에 불과함을 잭 존슨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휘유우웅-!]

[퍼어엉-!]

그의 고함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촌락 입구로 나왔던 오크 남성 둘을 향해 로제는 그대로 청색 화염을 집어 던졌다.

놈들의 신체는 그대로 증발했고, 오로지 고기 타는 냄새만이 놈들이 한때 생존했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적이다! 적이다! 적……”

[퍼어엉-!]

그 모습을 보고 촌락 내부로 적의 출현을 알리던 다른 수컷도 로제가 날린 청색 화염에 녹아 없어졌다.

아딘은 그대로 잭 존슨을 입구에 내버려 둔 채 촌락으로 들어갔다.

“인간이다! 인간…….”

[서걱-!]

“전투 준비! 전…….”

[퍼어엉-!]

근처에 있는 오크는 아딘의 검에 목이 달아났다.

조금 멀리 있는 오크는 로제가 날린 청색 화염에 증발했다.

아무리 호가르족이 호전적이고, 인간은 물론 같은 녹색종 오크마저도 잡아먹는 괴물 같은 것들이라곤 하지만 아딘과 로제의 협공 앞에선 그저 돌도끼를 든 유인원에 불과했다.

불과 20분 사이에 아딘과 로제는 촌락에 있던 모든 오크 사냥꾼을 죽였다.

“부딪혀! 무조건 가서 몸으로 밀어붙여!”

호가르의 족장 살사카르는 자신의 움막 주변으로 모여든, 전사 계급이 아닌, 즉 사냥꾼이 아닌 오크들에게 아딘을 향해 돌진하라 명령했다.

하자 있는 수컷과 암컷 그리고 새끼들은 아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차마 살사카르의 명령을 거부하질 못했다.

그리고 그것들도 모두가 아딘의 검과 로제의 불꽃에 시체가 됐다.

‘도대체 뭐 하는 인간들이야?!’

자신의 부족원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살사카르는 당혹감을 넘어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이, 일단 몸을 피해야……’

[휘유우웅-!]

[퍼어엉-!]

도망가려는 그를 향해 로제는 마지막이 될 청색 화염을 날렸다.

푸른 불꽃 덩어리는 그대로 살사카르의 전신을 뒤덮었고, 그의 몸은 그가 밟고 있던 대지와 함께 폭발음을 일으키며 증발했다.

“난 움막을 뒤져볼게. 로제는 거기서 있으면서 혹시라도 도망가거나 들어오는 것들 있으면 보는 족족 저격해. 알았지?”

“네, 오라버니.”

대충 상황이 정리됐음을 파악한 아딘은 로제에게 허공에서의 엄호를 맡기고 움막을 일일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략 40채에 이르는 크고 작은 움막을 돌아다니며 아딘은 움막 안에 숨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오크 몇 놈을 더 죽일 수 있었다.

“히익-!”

그리고 마지막 움막에 이르러서 아딘은 벌거벗은 채 발에 돌로 된 족쇄를 찬 인간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드넓은 초원답게 아딘과 로제가 오크와 싸우는 소리는 호가르족의 촌락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라인하르트의 귀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기고 있는 거야?’

라인하르트는 떨리는 눈으로 수풀 너머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오크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을 들었다.

‘말이 돼? 단둘이서 오크 서식지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다고?’

라인하르트는 고민했다.

가 볼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안전하게 기다리고 있을까?

‘가 보자.’

결심을 굳힌 라인하르트는 마차를 몰고 아딘과 로제가 향한 곳으로 이동했다.

‘헉-!’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얼마 안 가 목젖이 베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오크들의 시체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렝고스를 몇 차례 들락거리며 먼발치에서나마 오크를 몇 차례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것도 칼에 베여 죽은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뭐 하는 것들이지?’

라인하르트는 오크의 시체를 보고 주춤거리는 말들을 재촉해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라인하르트는 어설프게 지은 움막이 늘어서 있는 호가르족의 촌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때마침 움막 수색을 끝낸 아딘이 벌거벗은 여인을 이끌고 잭 존슨이 누워 있는 입구로 나오는 중이었다.

“어. 잘 왔습니다. 거기 짐칸에서 옷 남는 거 있으면 좀 가져와 주십시오.”

아딘의 말에 라인하르트는 후다닥 마부석에서 내려 짐칸으로 가 커다란 로브 망토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는 곧장 아딘에게 달려가 그에게 공손히 두 손으로 로브 망토를 건네주었다.

“일단 이걸 입으시죠.”

아딘은 자신의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던 벌거벗은 여인에게 로브 망토를 둘러주었다.

여인은 고맙단 말도 하지 못한 채 주위에 널브러진 오크의 시체와 곳곳에 만들어진 크레이터를 바라보며 오들오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로제. 별 이상 없으면 내려와.”

아딘의 말에 그제야 로제는 땅으로 내려섰다.

‘도, 도대체 이 남매는…….’

라인하르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딘이 갑옷을 해제하고 로제와 함께 여인에게 이런저런 말을 거는 동안 라인하르트의 뇌리로 지난 일주일간 자신이 두 사람에게 보였던 다소 불순했던 모습이 쫙 지나갔다.

그리고 항상 그에게 “넌 좀 겸손해야 해, 인마.”라며 핀잔을 주던 친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 겸손해야 했구나…….’

라인하르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름이 뭐예요?”

아딘은 여인을 향해 모든 언어를 동원해 이름을 물었다.

창조주 특권이라도 되는 건지 처음 빙의했을 때부터 아딘에게 주어져 있던 다양한 언어 구사력이 빛을 발하며 마침내 여인의 입을 열리게 했다.

“토, 토리…… 토리 잭슨…….”

제니스어로 대답을 하던 여인, 토리 잭슨은 자신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딘과 로제의 시선을 피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 너덜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서 고통을 호소하는 잭 존슨을 볼 수 있었다.

“아아악-!”

그대로 토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제발 오크들한테 던져주지만 말아 주세요!”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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