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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47화 (47/175)

047 불멸자의 후손 (1)

오토 폰 라이덴트로프의, 만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실종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인은 사과했고, 로제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후 엿새 동안 아딘과 로제는 비교적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른 명의 고객을 태운 연안 여객용 오단노선 상어호는 광명력 992년 7월 20일 정오에 트링겐 항구에 도착했다.

* * *

현재 아딘의 목적지는 야생의 대지 렝고스의 심장부에 자리한 네르갈의 신전이다.

그곳에서 아딘은 네르갈의 시험을 통과한 후 두 번째 신물, 네르갈의 목걸이를 획득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트링겐 바로 맞은 편에 자리한, 렝고스로 들어가는 관문 도시 뵌가르트로 가야만 했다.

“바로 건너편이고, 배로 조금만 가면 되는데 왜 여기에 들러야 하는 거예요?”

트링겐에서 가장 호화로운 음식점에서 각양각색의 해산물 요리를 먹는 와중에 로제는 아딘에게 물었다.

아딘은 송송송 자른 문어 다리를 게마인샤프트 동부 특유의 향이 진하게 배어있는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으며 대답했다.

“트링겐에서 뵌가르트로 가는 배는 여기 영주 가문이 독점하고 있거든. 여기서 허가를 받고 영주 가문이 소유한 배를 타야만 저리로 건너갈 수 있어.”

아딘의 대답에 로제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이내 식사에 집중했다.

포크와 나이프로 조갯살을 잘라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 로제를 바라보며 한 차례 미소를 지은 아딘은 이내 식기를 내려놓고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곧 두루마리 위로 그가 원하는 정보가 나타났다.

<콘스탄티노프 공작가>

<벨로디나 왕국 콘스탄틴 가문의 방계>

<현재 콘스탄티노프 공작 루돌프 3세가 자식이 없기에 차기 공작위 계승권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아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두루마리를 접고 시선을 창밖, 바다로 돌렸다.

‘원래라면 존이 범하이로드 연맹을 맺는 과정에서 이곳이 분쟁지가 돼야 하는데 말이야.’

김현수의 소설 영웅일대기 5부의 내용은 주인공 존 크리스토퍼 하이로드가 화산 열도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제니스 공화국과 게마인샤프트를 접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샤펠 제국 퐁피두 황가와 갈등을 맺는 것이다.

이때 김현수는 존이 만든 범하이로드 연맹을 견제하기 위해 샤펠 제국에서 콘스탄티노프 가문이 단절된 후 무주공산이 된 트링겐과 뵌가르트에 가짜 족보로 허수아비 영주를 세운 후 괴뢰화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존도 없고, 샤펠 제국은 웬 묵시록 종단 같은 이상한 애들이 먹은 상태란 말이지. 그렇다는 것은…….’

영웅일대기 내용대로라면 현 콘스탄티노프 공작은 광명력 999년 12월 4일에 노환으로 죽는다.

‘그때쯤이면 내가 유리 콘스탄틴에게 복수도 다 끝냈을 거고…… 어쩌면 벨로디나 왕국을…….’

아딘의 시선이 다시 로제에게로 향했다.

로제는 소스가 제법 매운지 음식을 한입에 물을 한 잔씩 마시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로제에게 약속했지. 앞으로 내가 좋은 귀족이 돼 보이겠다고. 그 약속은 결국 내가 벨로디나 왕국을 접수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약속인데 말이야…….’

복수 이후의 삶에 대해 아딘은 가끔 생각했다.

권력을 쟁취한 후 자신이, 김현수가 예비해 놓은 재앙에 대비할 생각 정도는 해 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소 막연한 생각에 불과했다.

당장 아딘에게 있어 구체적인 계획은 유리 콘스탄틴에 대한 복수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곳, 콘스탄틴 가문의 방계가 다스리는 트링겐에 와서 저기 동쪽으로 보이는 뵌가르트를 바라보니 뭔가 복수 이후의 계획이란 것이 실체가 돼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아딘은 받아야 했다.

‘왕이 된다…… 내가?’

아딘은 피식 웃었다.

‘내가 왕이 된다고? 내가?’

김현수의 꿈은 소박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12년간 썼던 소설을 완성하는 것.

그게 그의 꿈이었다.

정치인이 된다거나 기업 경영자가 된다거나 하는 생각은 그의 뇌리에 단 1초도 머무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 자신이 쓴 소설 속에서 지금 그는 한 나라의 왕이 된다는 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품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가 계획하는 대로 3대 신물을 모두 얻고, 적당히 점령지를 관리할 용병만 구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진짜?’

그랬기에 아딘은 더더욱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왕이 된다는 생각이 현실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도리어 그의 마음은 그런 것들을 비현실적으로 느꼈다.

‘아니야. 지금은 일단…… 일단 뵌가르트로 넘어가는 것부터 신경 쓰자.’

그렇게 생각하며 아딘은 다시 식기를 들었다.

‘왜 날 보고 웃으시는 걸까?’

그리고 로제는 아딘이 자신을 보며 웃은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 애써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 끙끙거렸다.

‘습관처럼 내 손을 잡아 주시고…… 날 안아 주시고…… 저번엔 내 이마에 입……’

오포 강에서 있었던 아딘의 무의식적인 입맞춤을 떠올리며 로제는 얼굴을 잔뜩 붉혔다.

그녀는 곧장 조개에다 소스를 왕창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알싸한 향이 그녀의 혀와 코를 마비시킬 기세로 퍼져 나갔다.

그대로 그녀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는 상념을 떨치려 애썼다.

아직 그녀는 자기가 아딘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빌어먹을 공무원…….’

아딘은 이를 뿌드득 갈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객꾼으로 보이는 10대 중후반쯤 되는 아이들이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든 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이곳, 트링겐 광장에서 아딘은 최대한 후줄근하고 볼품없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냥 아주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 지껄이고 있지, 응?’

조금 전, 식사를 마치고 아딘은 로제와 함께 트링겐 관청으로 갔다.

뵌가르트로 넘어가기 위해선 그곳에서 허가증을 받아 콘스탄티노프 가문이 운영하는 선박에 탑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뵌가르트? 거긴 무슨 일로 가려는 거요?”

거드름 피우는 행정관의 물음에 아딘은 여행이라고 목적을 밝혔다.

“여행? 뵌가르트로?”

행정관은 잠시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더니, 그에게 용병 1인 이상을 고용해야만 승선 허가증을 발급해 주겠다고 통보했다.

아딘은 곧장 그런 규정이 어딨냐고 항의했지만 행정관은 코웃음을 치며 용병이나 구해오란 말만 남긴 채 아딘과 로제를 쫓아냈다.

‘용병을 끼고 가라고? 네르갈의 신전으로?’

네르갈의 신전이 있는 렝고스에서는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곳은 철저한 야생의 땅이었으며, 밤낮 가리지 않고 맹수와 괴수가 먹이를 찾아 떠도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딘과 로제에게는 그런 맹수나 괴수가 큰 위협이 되진 않을 터였다.

아무리 사나운 녀석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김현수가 설정한 대로라면 렝고스에 사는 녀석 중 불칸의 갑옷을 뚫고 아딘에게 데미지를 준다든가, 로제의 마법을 버틴다든가 하는 수준의 괴물은 없다.

‘짐덩이 하나가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렝고스에서 용병은, 제아무리 전장에서 오래 구른 베테랑이라 한들, 아딘과 로제에게 있어서 짐이 될 뿐이었다.

‘최대한 게으른 놈을 찾아야 해. 내가 뵌가르트에 남아 우릴 기다리라 하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그런 놈을…….’

그랬기에 아딘은 용병들이 일감을 찾아 모여드는 이곳 광장에서 최대한 조건에 부합하는 자를 찾고 있었다.

“슈바르츠브라운 용병단으로 오십시오! 단원 절반 이상이 제니스 공화국 3대 용병단에서 일했던 베테랑입니다!”

“슈타인티거 용병단으로 오십시오! 마법사가 셋이나 있습니다!”

규모가 되는 용병단의 경우 호객꾼이 깃발을 흔들며 목청 높여 홍보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용병단의 경우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으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용병단에도 속하지 못한 개인들은 광장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외곽지대에 모여 담배를 태운다든가 자기들끼리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한다든가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딘이 향한 곳은 바로 그런 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저 사람은…… 눈빛이 살아 있어. 안 되겠고…… 저 사람은 보자…… 안 돼. 딱 봐도 얼굴에서부터 경력 쌓아 좋은 용병단에 들어가겠다는 야망이 보여. 안 돼.’

아딘은 결코 렝고스로 용병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최대한 게으른 인간을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략 15분 정도 아딘은 그곳에서 용병을 물색했고, 마침내 아주 적합한 사람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저 사람이다.’

190cm 정도의 키에 어깨도 넓고, 특히 승모근이 발달한 아주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여러 갈래로 땋은 금발 머리를 흔들며 벽에 기댄 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세상 귀찮다는 표정으로 누가 자기를 주시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는 그의 권태로움에서 아딘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란 확신을 가졌다.

‘신상 정보를 미리 살펴볼까?’

아딘은 살짝 주위를 둘러본 후 슬쩍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라인하르트>

<광명력 964년 1월 6일 생>

<3년차 용병>

<렝고스 탐험가 호위 업무 다수 참여>

<불멸자 샤푸르의 부계 후손>

겉보기엔 족히 40대는 된 것 같지만 아딘과 겨우 6살 차이 나는, 20대 중반의 청년이란 사실이나, 렝고스 탐험가 호위 업무에 다수 참여했다는 그의 경력은 맨 밑에 나온 설명 한 줄로 그 놀라움이 희석됐다.

‘불멸자의 부계 후손?!’

아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두루마리와 라인하르트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루마리에 그려진 실제적인 묘사가 일품인 초상화와 라인하르트의 권태로운 얼굴은 일치했다.

심지어 그의 승모근과 여러 갈래로 땋은 금발 머리도 일치했다.

‘저 인간이?’

아딘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라인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다시 두루마리로 내려갔다.

곧 두루마리에 가계도가 그려졌다.

제일 아래에는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그 위로 그의 아버지가 있었고, 또 그 위로는 할아버지가, 그 위로는 증조할아버지가, 그 위로는 고조할아버지가 있었다.

고조할아버지 위로 계속해서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고대 구르간 왕국 카반드 왕조의 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출생년만 나와 있는, 아직 죽지 않은 위대한 군주, 불멸자 샤푸르가 있었다.

<샤푸르 바흐라마자데 카반드>

<암흑기 749년 12월 19일 생>

<구르간 왕국 카반드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군주>

<재위 기간 암흑기 769년 3월 5일 ~ 709년 3월 6일>

<암흑기 709년 3월 5일 장손 바흐람 3세에게 양위 후 불멸의 검과 함께 엘프숲 최북단 불멸의 신전으로 은둔했다.>

<광명력 992년 7월 20일 현재 불멸의 신전에서 불멸의 검과 함께 칼의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빨간 머리에 큰 코, 다소 까무잡잡한 피부.

게마인샤프트 족속과의 통혼으로 다이람 족속의 외모가 거의 완벽하게 희석된 이 시대에, 다이람 족속의 인종적 외형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자.

무려 1,740년이라는 시간을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불멸자.

그의, 중년에서 전혀 늙지 않은 모습과 파이프에서 다 태운 싸구려 담뱃잎을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라인흐르트의 모습을 번갈아보며 아딘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

아딘이 약간 맛간 사람처럼 웃는 모습을 보며 로제는 슬며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제야 아딘은 묘한 감정과 사고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 어…… 그래.”

아딘은 두루마리를 품에 넣은 후 살짝 불안해하는 로제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었다.

‘고용해?’

아딘은 라인하르트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공식적으로 샤푸르가 역사에서 모습을 감춘 지가 벌써 1,700년도 더 넘었어. 카반드 왕조가 반란으로 무너지고 그 일족이 흩어진 지도 1,500년이 넘었고.’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과 로제가 뵌가르트로 가는 선박에 승선할 허가증을 발급받는 일이었다.

불멸자 샤푸르의, 이제는 조상의 외형적 흔적이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후손이라 부르기도 뭣한 남자의 족보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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