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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32화 (32/175)

032 용의 딸 (1)

12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로제는 어미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도시 번화가에서, 로제의 어미는 그녀에게 사탕 하나를 사준 후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자기에게 줄 옷을 사러 간다며 사탕 가게 앞에 그녀를 홀로 두고 떠나던 어미의 뒷모습이 로제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버림받은 로제는 한동안 사탕 가게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후텁지근한 슈드 자치령의 기후 특성상 겨울에도 비가 내렸지만, 그녀는 그 비를 맞으면서 한동안 사탕 가게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구걸하는 거지가 됐다.

그녀의 조그만 체구와 항상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망울은 구걸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녀는 구걸해 얻은 것을 다 먹지는 못했다.

거지 아이들 가운데 그녀보다 덩치가 크고 성격이 드센 것들이 그녀의 수확을 항상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야위어만 갔다.

그러다 그녀는 노예상에게 끌려가 아테인 가문의 노예로 팔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일머리가 없던 그녀를 아테인 가문의 선임 노예들은 항상 구박했고, 그녀가 모시게 된 아테인 가문의 차남은 성격이 더러웠다.

점차 그녀의 등에 채찍으로 인한 상처와 흉터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마치 뱀의 머리처럼 보일 지경이 됐을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담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같은 색상의 눈을 부라리며 구원자는 로제를 압제자의 손에서 빼내주었다.

커다란 금두꺼비를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너 그냥 내 동생 해라.”

그리고 그는 로제를 동생으로 삼아 주었고, 성씨 없이 그저 이름으로만 불리던 그녀에게 콘스탄틴이라는 성씨까지 선물해주었다.

압제자로부터 자신을 구해주고, 변태와 강도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

자신을 동생으로 삼아 주고, 늘 힘이 되어 준 은인.

그런 그가 비를 맞으며 외로이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로제의 마음은 폭발했다.

왜 나는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은인이 처한 위험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을까?

왜 나는 이렇게 무기력할까?

죽어가는 아딘에 대한 미안함과 그 상황에서 무력하기만 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 이런 상황을 연출한 군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그녀의 유전자를 자극했다.

[쿠오오오오-!]

그녀의 유전자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용의 피가 울부짖으며 그녀의 뇌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죽일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

원수들을 향한 분노와 증오만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됐다.

‘다 죽일 거야!’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유전자에서 깨어난 용의 피와 하나가 되며 엄청난 힘을 방출해냈다.

“응?”

로제를 꽉 끌어안고 있던 파우스가 왠지 모를 답답함과 뜨거움을 자각한 순간, 그리고 그 원인이 자신이 붙들어 안고 있는 로제의 붉게 달아오른 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건 또 뭐야?’

정체불명의 뱀 인간들과 뱀의 숙주가 된 고블린들의 연합 공격으로 인해 안 그래도 혼란하기 그지없던 그의 뇌리로 또 다른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퍼어엉-!]

그리고 그것이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자 의문이었다.

“다 죽일 거야!”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강한 열풍을 사방으로 뿜어댔다.

그 열풍에 직격탄을 맞아 휩쓸린 파우스는 그대로 갑옷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 열풍은 주변에 있던 가옥의 흙벽을 도로 녹여버렸고, 목재기둥과 지붕을 재로 만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굵은 빗줄기도 일순간 그녀의 열풍에 밀리며 기화돼 버렸고, 그렇게 그녀 주변으로는 뿌연 수증기가 자욱하게 깔리게 됐다.

[화르륵-!]

열풍 다음에 이어진 것은 거대한 불덩어리였다.

지름 2m에 이르는 푸른 불덩어리는 그대로 아딘의 몸통을 망치로 내려치려는 강철 골렘을 향해 날아갔다.

섭씨 25,00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불덩이는 그대로 강철 골렘의 상반신을 집어삼켰고, 강철 골렘은 무릎 아래만 남겨둔 채 세상에서 그 모습을 감춰버렸다.

“오라버니!”

로제는 그대로 아딘을 향해 쭉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순식간에 아딘의 곁으로 간 그녀는 땅에 20cm가량 처박힌 아딘을 끄집어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불칸의 갑옷은 이미 해체된 뒤였다.

아딘은 가까스로 숨을 쉬고는 있었지만, 의식은 희미한 상태였다.

강철 골렘과 청동 골렘 그리고 번개 골렘으로부터 연속으로 타격을 입은 이상, 아무리 불칸의 갑옷으로 겉을 보호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내상을 입는 것 자체는 피할 수가 없었다.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아딘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로제는 오열했다.

“오라버니! 일어나세요! 이대로 죽으시면 안 돼요!”

그 순간, 로제의 몸에서 끌어 오르던 용의 힘과 아딘의 복부 속에 들어가 잠들어 있던 불칸의 갑옷이 공명을 일으켰다.

“쿨럭-!”

아딘은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입에서 튀어나온 피는 빗방울과 만나며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라버니!”

로제의 부름에 아딘은 힘겹게 눈을 떴다.

“로…… 제……?”

자신을 끌어 안은 채 오열하는 이 조그만 소녀의 모습에 아딘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왜…… 안 도망간…… 거야……”

아딘의 말에 로제는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안 도망가요! 도망가기 싫어요! 제가 싫어요!”

그 모습에 아딘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울고 있는 로제를 향해 아주 힘겹게 한마디 말을 던졌다.

“울지…… 마…… 로제…….”

그리고 그것이 소녀를 더욱 오열하게 만들었다.

* * *

‘저 여자애는 또 뭐야?’

자기 피로 만든 구름 위에 서서, 아딘을 안은 채 오열하는 로제를 바라보며 알베르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침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지만, 그것을 자각할 여유가 그에게는 없었다.

‘단순하게 열기로 파우스를…… 저 집들을…… 비들을 저렇게 증발시켰다고?’

아딘이 반사한 번개 에너지와 파우스가 죽으며 그에게 전해진 데미지로 인해 알베르토의 몸 상태는 더 이상 싸움을 지휘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인 소녀의 존재는 후퇴를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후…… 후퇴하라!”

알베르토는 가까스로 소리 높여 중보병들에게 명령했다.

샤를이 대번에 눈을 희번덕거리며 알베르토를 노려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후퇴라니!”

알베르토는 이 버릇없는 사위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로 했다.

“당장 후퇴하라!”

그의 명령과 동시에 전방에서 뱀 인간들과 대치 중이던 여섯 골렘이 빠르게 그를 향해 날아왔다.

“후퇴라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눈앞에 황금 갑옷의 주인이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다.

그를 안고 오열하는 소녀는, 비록 조금 전 어마어마한 열풍을 보여주긴 했지만 딱 그게 한계로 보일 뿐이다.

즉,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모든 가용 병력을 총동원하여 황금 갑옷의 주인과 열풍을 일으키는 소녀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러나는 것은 그 이후에나 할 일이다.

이게 샤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베르토의 후퇴 명령은 이런 샤를의 구상을 완벽하게 엎어버리는 것이었다.

“전군 진격하라! 진격하여 저 소녀와 남자를 체포하라!”

샤를이 중보병들을 향해 명령했다.

“모두 후퇴해!”

알베르토가 재차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진격하라!”

“후퇴해!”

“진격!”

“후퇴!”

장차 제국의 황제가 될 이의 진격 명령과 당장에 그들에게 봉급과 무기를 제공해주는 주군의 후퇴 명령.

그것은 중보병들의 사고를 일시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골렘이 없으면 너희가 무슨 수로 저것들과 싸울 거란 말이냐! 후퇴해!”

논리적인 알베르토의 말에 중보병들의 마음은 한 방향으로 확고하게 정해졌다.

“1소대 부상자를 부축하며 후퇴!”

“3소대 생존자 전원 후퇴!”

“5소대 후퇴!”

중보병들은 알베르토의 명령에 따라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샤를의 눈이 또 한 번 뒤집혔다.

“이…… 이 더러운 사생아 같은 반역자 새끼들이!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더냐! 나는 분명 진격하라 했느니라!”

샤를이 반역자 운운하며 진격을 재차 명령했지만, 중보병들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디에고 공작!”

샤를이 알베르토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알베르토는 그런 샤를을 외면했다.

그저 그는 자기 주변에 모인 여섯 골렘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후퇴하는 병사들의 배후를 엄호할 것을 주문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명령에 따라 골렘들이 다시 흩어지려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진동이 땅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진동은 곧 땅을 갈라놓았다.

빗물을 머금은 땅은 순식간에 좌우로 갈라지며 붕괴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이, 이게 뭐야!”

“지진이다!”

후퇴하려던 중보병들은 순식간에 지진에 휩쓸려 땅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파묻힌 중보병들은 자신들의 무거운 갑옷과 빗물을 머금은 토사의 압력 그리고 함께 무너지기 시작하는 가옥의 무게에 짓눌리며 하나씩 죽어 나갔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죽어가는 중보병들, 당혹스러워하는 샤를과 알베르토의 귀로 분노한 로제의 광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 * *

아딘은 무사했다.

비록 세 골렘으로부터 일반인이라면 단 한 방도 견디지 못했을 공격을 연거푸 맞은 탓에 불칸의 갑옷을 지탱하는 아딘의 정신력이 급격히 약해져 갑옷이 다시 벨트가 돼 그의 몸속으로 되돌아갔지만, 그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로제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딘을 이렇게 만든 것들에 대한 증오는 오히려 아딘의 처참한 모습에 더더욱 증폭됐다.

그런 그녀의 눈에 슬금슬금 도망가려는 중보병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것들을 향해 그녀는 포효했다.

그녀의 포효는 땅을 움직였다.

빗물을 머금은 흙이 진동하며 땅 아래에 공간을 만들었고, 그 속으로 토사가 내려가며 병사들과 가옥을 함께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묻혀버렸고, 그렇게 알베르토의 중보병 700은 남김없이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츠츳-!]

[츠츠츳-!]

그녀의 눈에 자신과 아딘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다 멈칫한 뱀 인간들이 들어왔다.

숙주가 된 고블린을 앞세우고 진격하던 뱀 인간들은 로제의 분노와 그녀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심상찮은 힘의 파장에 혀를 날름거리며 향후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것들을 향해서도 로제의 분노와 증오는 발산됐다.

[쿠우우우우우-!]

[후우우우웅-!]

그녀의 분노는 사방에서 바람을 몰고 왔다.

바람은 순식간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됐고, 토네이도는 대처 방안을 논의하던 뱀 인간들을 고블린 군단 및 주변 가옥과 함께 모조리 빨아들였다.

[츠츠츳-!]

[츠츳-! 츠츳-! 츠츳-!]

뱀 인간들이 모두 다급한 소리로 엘프숲 쪽을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발산한 소리는 토네이도가 만들어낸 바람의 장벽을 뚫지 못했다.

[콰드드드득-!]

토네이도는 집어삼킨 모든 것들을 속에서 갈아버렸고, 그렇게 뱀 인간과 고블린, 가옥은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로제의 타오르는 눈이 다시 알베르토와 샤를에게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위로 지름 2m짜리 푸른 불덩어리 2개가 생겨났다.

불덩어리들은 그대로 빠르게, 마치 발리스타로 쏜 것처럼 알베르토와 샤를에게 날아갔다.

“고……”

[퍼어엉-!]

알베르토가 다급하게 입을 열어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그의 말은 첫음절이 끝나기도 전에 불덩이 속에서 그의 육체와 함께 깔끔하게 증발해 버렸다.

[퍼어엉-!]

그리고 샤를은, 불덩이가 그의 몸에 맞는 순간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불덩이는 그 빛과 충돌한 직후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고 그 폭발과 함께 일어난 열풍은 그것들 주변으로 내리던 비를 순식간에 기화시켜 자욱한 수증기를 만들어 버렸다.

잠시 후, 수증기가 모두 사라진 후, 본래 샤를과 알베르토가 서 있던 자리에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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