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각성 (1)
폭발의 여파로 고블린들은 떼죽음을 면치 못했다.
놈들의 속에 있던 뱀들도 폭발에 휘말리며 바깥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죽어버렸다.
[츠츳……!]
뱀 인간들 정도가 폭발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면했지만, 일시적으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되는 건 피하지 못했다.
“우와아아아아-!”
밀리고 있던 중보병들은 허공에서 번개 구름을 타고 자신들을 구원한 알베르토의 위용에 단숨에 사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설명은 뒤에 해도 좋으니까.’
중보병대 사이에서 그들을 지휘하던 파우스는 알베르토가 그간 숨겨왔던 패들을 다 꺼내는 것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당장에 사는 것이 우선이었던 만큼 일단은 어떻게든 나중에 해결되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
“돌격!”
순식간에 200명의 동료를 잃은 중보병들은 전열을 재정비한 후 여전히 전투 불능 상태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뱀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이 들지 않음을 확인한 만큼 중보병들은 칼을 집어넣고 메이스를 꺼내 뱀 인간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깡-! 깡-! 깡-!]
쇠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뱀 인간들은 묵직한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혀만 날름거려야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뱀 인간들을 향한 중보병들의 공격은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츠츠츠츳-!]
점차 회복에 성공한 뱀 인간들이 다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고, 중보병들은 또 하나둘씩 찢겨지고 뜯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쿠웅-!]
[콰쾅-!]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 떠 있던 골렘들이 전장에 난입했다.
돌과 강철 골렘은 순수한 타격으로 뱀 인간들의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번개와 물, 얼음 골렘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공격을 뱀 인간들에게 퍼부었다.
중보병이 흠집조차 내지 못했던 뱀 인간의 피부에 점차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츠츠츠츳-!]
뱀 인간들은 몸에 흠집이 나긴 했지만 죽을 만큼의 타격은 받지 않았다.
그것은 골렘들도 마찬가지였다.
[콰쾅-!]
[쿠쿵-!]
결국 두 집단의 싸움은 고스란히 대로변에 있던 민가의 붕괴로 이어졌다.
“으허어억-!”
“끄아아악-!”
미처 도망치지 못했던 사람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아야만 했다.
주민들은 집을 탈출해 골목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에엣-!]
[키이잇-!]
하지만 골목길에도 고블린들은 존재했다.
그리고 뱀의 숙주가 돼 이성을 상실한 고블린들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주민들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었다.
“끄아악-!”
고블린들 자체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약하지도 않았다.
겁을 상실한 고블린들은 인간들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의 코와 귀, 손가락 등을 물어뜯었다.
나름 육식성 잡식 괴수인 만큼 놈들의 이빨은 날카로웠고, 결국 그 이빨에 물린 사람들은 코와 귀, 손가락 등이 절단되는 상처를 입어야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 모든 것을, 전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화염 골렘이 만든 불꽃 우산 아래에서 바라보던 샤를의 표정은 험악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잔뜩 일그러졌다.
“디에고 공작! 뭐 하는 겁니까!”
알베르토는 허공에 뜬 채 계속해서 폭발하는 피를 뿌리는 알베르토를 향해 고함쳤다.
순간 알베르토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샤를을 노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전장으로 돌렸다.
‘저 인간이?!’
샤를은 이를 갈았다.
그것은 알베르토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새끼! 전투에 도움도 안 되는 새끼가 감히!’
알베르토는 역정을 내며 신경질적으로 피를 뿌렸다.
점차 현기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든 소강 상태로 이끌어야 해. 전술을 짤 수 있는 소강 상태로!’
그렇게 알베르토는 열심히 피를 뿌리고 골렘을 조종하며 점차 뱀 인간 무리와 중보병 집단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츠츠츳-!]
[츠츳-! 츠츳-! 츠츳-!]
뱀 인간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파악했는지 신호를 보내며 뒤로 빠졌다.
놈들이 뒤로 빠지자 고블린들도 우르르 뒤로 빠졌다.
그렇게 중보병과 뱀 인간 무리 사이에 10m가량의 공간이 생겼고, 전투는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도대체 저것들은 뭐야?’
구름 형태의 번개 골렘 위에 올라선 채로 알베르토는 뱀 인간과 고블린 무리를 바라봤다.
자기들끼리 혀를 날름거리며 마치 속삭이듯 하는 뱀 인간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길고양이나 다름없던 고블린들의 예외적인 광기가 알베르토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디에고 공작!”
화염 골렘이 만들어주는 우산 밑에 있던 샤를은 순식간에 알베르토의 곁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따끔거리는 번개 골렘의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샤를은 알베르토의 멱살을 잡았다.
“도대체 저것들은 뭐란 말인가! 왜 저런 괴수들이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샤를은 알베르토의 멱살을 잡고 그를 앞뒤로 흔들어댔다.
“이곳은 동부의 끝자락임과 동시에 북부의 끝자락이고, 이곳에서 불과 4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대의 농장과 영지가 있거늘, 어찌 저런 것들이 내 땅에서 나돌아다니게 내버려뒀단 말인가!”
샤를의 말은 억지에 가까웠다.
엄밀히 말하자면 발스 백작 파스텔은 황제의 직속 봉신이기에 알베르토가 관리하려고 해도 관리할 수가 없었다.
뱀 인간과 겁을 상실한 고블린 또한 오늘 처음 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직 샤를은 샤펠 제국을 자기 땅이라 할 자격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 핏덩이 새끼가!’
자신의 사위이기도 한 인간에게 멱살을 잡힌 채 부하들 앞에서 체면 떨어지는 모양새가 연출되자 알베르토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참자…….’
하지만 알베르토는 참아야만 했다.
어쨌건 이런 상황에서 주군을 향한 하극상을 내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하. 우선 체통을 지키십시오. 부하들이 보고 있……”
“체통은 무슨! 지금 이 상황에서 체통 따위 지켜야 한다는 말이 가당키나 해!”
알베르토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가 부들부들 떨리며 금방이라도 샤를의 얼굴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콰아앙-!]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중보병과 뱀 인간 사이 딱 중간으로, 가옥의 벽을 뚫고 두 덩어리가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이 두 덩어리로 향했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위에 올라탄 채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리는 형태로 두 덩어리는 엉켜 있었다.
[쾅-! 쾅-! 쾅-!]
아래에 누운 채 힘없이 주먹에 얻어맞는 쪽은 엄청나게 벌크업을 한 보랏빛 피부의 털보였다.
[쾅-! 쾅-! 쾅-!]
그리고 털보 위에 올라타 그의 가슴과 얼굴에 무자비하게 주먹을 갈기는 존재는 불칸의 갑옷을 입은 아딘이었다.
‘황금 갑옷!’
알베르토와 샤를.
두 사람 모두 멍하니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딘을 바라봤다.
* * *
“크하하하-!”
벌크업을 마친 털보가 자기 가슴팍까지밖엔 닿지 않는 아딘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들이 어떻게 우리에 대해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내가 알려주겠어. 크하하하!”
털보의 광소에 아딘은 침착하게 자신과 털보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거리는 대략 5m. 저놈의 크기는 2m를 상회하는 정도…… 최대한 안으로 파고들어야.’
계산이 끝난 순간 곧장 행동이 이어졌다.
아딘은 빠르게 털보를 향해 달려가 바짝 접근했다.
순식간에 자신에게 다가온 아딘을 향해 털보는 다급한 표정으로 발길질을 했다.
생각보다 느렸기에 아딘은 여유롭게 발길질을 피했다.
털보의 발은 애꿎은 가옥의 벽만 부숴버리고 말았다.
“이, 이 새끼가!”
털보의 발이 벽에 끼어있는 사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딘은 털보의 낭심에 그대로 주먹을 꽂았다.
[까앙-!]
금속끼리 충돌하는 소음이 빗소리를 뚫고 골목길에 퍼졌다.
“끄아악-!”
털보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아딘은 그대로 털보의 위에 올라타 발로 놈의 가슴팍을 밟기 시작했다.
“크하아악-! 이…… 쥐새끼가!”
털보는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아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딘은 곧장 그 자리에서 점프하여 주먹을 피한 후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그대로 아딘은 양발로 털보의 복부를 밟았다.
“끄아아악-!”
털보는 비명을 지르며 발작했다.
발작하는 와중에도 놈은 다리를 움직여 아딘을 걷어차려 했다.
벌크업된 덩치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털보의 발은 기괴한 각도를 그리며 아딘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각도가 기괴할 뿐, 속도는 여전히 느렸기에 아딘은 여유롭게 허공으로 뛰어올라 공격을 피했다.
아딘이 허공에 떠오른 사이 털보는 뒤로 두 바퀴를 구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약간의 거리가 생겼고, 아딘은 일시적으로 공격을 멈춰야만 했다.
‘여긴 너무 좁다. 넓은 곳으로 가야 해. 대로변으로 가야 해.’
물론 대로변이 디에고 가문의 중보병과 숲의 뱀 인간 및 고블린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털보는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보단 차라리 큰길로 나가자. 가서 혼란한 틈을 타 일격을 노려야 해.’
계산을 끝마친 털보는 곧장 자신의 발길질로 구멍이 난 집의 벽을 뚫고 대로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털보의 생각을 읽은 아딘도 급하게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오, 오라버니!”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중보병 시체 너머에서 숨죽인 채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로제도 빠르게 그 뒤를 쫓아갔다.
[쾅-! 쾅-! 쾅-!]
털보는 무작정 벽을 몸으로 뚫으며 지나갔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털보의 발에 밟혀 죽거나 다리가 으스러졌지만, 지금은 민간인 피해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무식한 새끼, 어쨌건 자기 영지민이 될 사람들인데!’
뒤에서 털보를 쫓으며 그가 만든 참사를 일일이 확인한 아딘은 분노로 타오르며 속도를 더 높였다.
‘뭐, 뭐야!’
그리고 대로변 바로 옆에 자리한 집까지 온 털보는 창밖으로 보이는 소강상태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그의 발걸음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했다.
“흐아아압-!”
그틈을 타 아딘은 털보를 향해 기합을 내지르며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
“크하악-!”
그대로 아딘의 몸통박치기에 척추를 정통으로 맞은 털보는 아딘과 함께 가옥 벽을 부수고 대로변으로 나가 뒹굴어야 했다.
몇 차례 뒹군 끝에 털보는 하늘을 향해 대자로 뻗었고 아딘은 그 위에 올라타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렸다.
[쿵-! 쿵-! 쿵-! 쿵-!]
그의 주먹은 털보의 얼굴과 가슴팍을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점차 털보의 보랏빛 피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딘의 주먹질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콰아앙-!]
그리고 마침내, 아딘의 주먹이 털보의 가슴을 완전히 깨부숴 버렸다.
‘부적?’
깨진 가슴팍 아래로 털보가 본래 가지고 있던 살덩어리와 그 위에 붙은 부적이 드러났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털보의 벌크업이 가능케했단 것을 파악한 아딘은 그대로 부적을 뜯어냈다.
털보의 가슴털과 함께 부적은 뜯겨나갔고, 그대로 털보의 보랏빛 피부는 신기루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온,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는 털보를 바라보며 아딘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겨우 이딴 부적에 의지해서 벌크업만 시켰던 거야? 무식하게?’
만만찮은 상대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만큼, 너무도 쉽게 죽어버린 털보의 모습에 아딘은 황당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털보가 부수고 나온 가옥 안쪽에서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바라보는 로제를 볼 수 있었다.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로제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황~! 금~! 갑~! 오오옷~!”
그때, 광기 어린 한 남자의 목소리가 아딘의 귀를 때렸다.
그제야 아딘은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무장한 중보병 무리와 뱀 인간 및 고블린 무리의 사이에 딱 서 있다는 것을.
“황금 갑옷!”
알베르토의 멱살을 잡은 채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샤를의 모습을.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