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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27화 (27/175)

027 중구난방 (2)

벽과 벽이 만나 각을 세우는 자리.

그곳에는 오로지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딘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니, 로제?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아딘의 물음에 로제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미친 듯이 방구석을 손가락질했다.

아딘은 다시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역시나 어둠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악몽이라도 꾼 건가?’

아딘은 가만히 로제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점차 안도했을 로제였지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로제는 계속해서 불안한 표정으로 방구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로제. 아무것도 없어. 꿈을 꾼 것뿐이야.”

아딘의 말에 로제가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아딘은 그녀에게 미소지어주었다.

하지만 그 미소조차 로제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괴, 괴물이 있어요. 괴물…… 괴물이 저, 저기에 숨어서 저랑 오라버니를…… 지켜보고…… 지금…… 지금…….”

로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로제의 모습이 단순히 악몽을 꾸다 깨어난 모습이 아니었기에, 아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아딘은 다시 방구석을 바라봤다.

여전히 어둠뿐이었다.

‘로제의 아버지는 용이야. 그리고 용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도 하지. 혹시…….’

아딘은 천천히 책상으로 가 두루마리를 집어 든 후 방구석 쪽으로 향했다.

곧 두루마리 위로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이건?!’

그것은 실시간으로 이 좁은 여관방의 상황을 보여주는, 마치 CCTV 영상과도 같은 화면이었다.

침대에선 로제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딘은 방구석 쪽에서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딘 바로 앞에, 웬 고블린 한 마리가 숨죽인 채 벽과 벽 사이에 붙어 있었다.

‘고블린?’

아딘은 눈을 부릅뜨며 방구석을 바라봤다.

여전히 그의 눈에는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루마리에 나타난 실시간 화면에는 분명 고블린 한 마리가 숨죽인 채 그곳에 있었다.

아딘은 천천히 고블린 앞으로 다가갔다.

아딘이 가까워지자 고블린은 바짝 긴장한 듯 살짝 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두루마리에 나타난 실시간 화면을 보면서 그대로 아딘은 강하게 고블린의 머리통이 있는 방구석을 발로 찼다.

[뻐억-!]

[키이이잇-!]

놀랍게도 아딘의 발바닥에 묵직한 무언가가 걸렸다.

그대로 아딘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키에에엑-!]

더 이상 두루마리에 의지할 필요가 없이, 아딘은 고블린을 볼 수 있었다.

로제보다 한참 작은 체구에 온 몸이 시커먼 고블린 한 마리가 면상을 움켜쥔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건 뭐야!”

아딘은 화들짝 놀라며 두루마리를 말아 품에 넣었다.

[키에에엑-!]

고블린이 고통스러워하며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도망가려고!”

창문으로 도망가려는 고블린의 정수리를 아딘은 발 뒷꿈치로 내려 찍었다.

[키에엑-!]

고블린이 고통을 호소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키엑-!]

쓰러진 고블린은 비명을 지른 후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딘은 그대로 고블린의 가슴팍을 발로 밟은 채 힘을 줬다.

그리곤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로제. 이게 보였니?”

로제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언제부터?”

“조금…… 조금 전에…… 잠에서 살짝 깼을 때부터…… 보였습니다…… 오라버니.”

아딘은 다시 고블린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키이이잇-! 콜록-! 콜록-! 키이잇-!]

고블린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고블린이 왜 여기에?’

고블린.

여느 게임이나 소설에서, 초반 렙업용 잡몹으로 취급받는 존재.

다른 창작물에서의 취급이 그러했던 만큼 김현수도 영웅일대기를 쓸 때 고블린을 그다지 취급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최소한 저렙들에게 데미지라도 주던 다른 창작물과는 달리, 아예 인간에게 데미지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존재로 김현수는 전락시켜 놓았다.

당장 아딘이 로제와 함께 타고 왔던 고블린산맥만 하더라도, 샤펠 제국의 영역이 동쪽으로 확장됨에 따라 고블린들이 모두 엘프숲으로 밀려났다는 설정이 있을 정도였다.

사람을 보면 도망치기 바쁜 길고양이를 떠올리며 고블린을 설정했던 만큼, 지금 이렇게 방구석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오는 상황 자체가 아딘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애초에 고블린이 어떻게 은신술을 쓸 수 있지?’

마법사들이건 화산열도의 암살자들이건, 은신술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자연과 하나가 돼 마치 은신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이는 엘프의 자연동화나 일상이 마법인 용족 정도를 제외한다면,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체가 은신술을 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주인공 및 그 가문의 소멸, 은신술을 쓰는 고블린.

김현수의 원작과는 사뭇 다른 요소의 연속에 아딘의 정신은 아득해져만 갔다.

“무, 무슨 일이요?”

그때, 문이 열리더니 조르주와 휴고가 뛰어 들어왔다.

아딘은 황당함과 짜증이 묻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봤다.

조르주와 휴고는 아딘의 시선에 움찔했다가, 그가 밟고 있는 고블린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고, 고블린?”

조르주는 말을 내뱉은 후 아딘을 바라봤다.

“뭔데 들어 오고 난리입니까?”

“그, 그게……”

“잠금장치 없다고 이렇게 막 들어와도 됩니까?”

“비, 비명 소리랑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남의 일에 신경 끄십시오.”

아딘이 조르주의 입을 다물게 만들자 휴고가 고블린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묵고 있는 여관에 고블린이 있다는 건 남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여관 주인이나 불러오시던가. 왜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겁니까?”

그렇게 아딘과 조르주, 휴고가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키엑……!]

짧은 비명과 함께 고블린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아딘과 조르주, 휴고 그리고 로제까지 모두 고블린을 바라봤다.

“죽었어?”

조르주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아딘도 가만히 고블린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츠츠츠츳-!]

그때, 뱀 소리가 들리더니 꾹 닫힌 고블린의 입술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심상찮은 느낌에 아딘은 로제를 침대에서 내려오게 한 후 그 손을 잡고 고블린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츠츠츠츳-!]

곧 고블린의 입이 열렸다.

“헉!”

“흡!”

“아악-!”

조르주와 휴고가 헛바람을 들이켰고, 로제는 얼굴을 아딘의 배에 파묻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아딘은 로제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정작 본인도 그다지 평온한 상태는 아니었다.

[츠츠츠츳-!]

검은 뱀 한 마리가 고블린의 아가리에서 기어나왔다.

족히 2m는 될 법한 거대한 뱀은 아딘을 바라보며 혀를 한 차례 날름거리더니 이내 빠르게 기어서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여관을 빠져나갔다.

아딘과 조르주, 휴고 세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뱀이 빠져나간 곳을 바라봐야만 했다.

* * *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700명의 중보병들이 조용히 마을로 들어섰다.

알베르토의 번개 골렘이 띄운 번개 덩어리가 뿜어내는 빛에 의지해 그들은 조심스럽게 길목을 장악해가며 이동했다.

샤를은 가만히 중보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염 골렘이 내리는 비를 증발시킴에 따라 비 한 방울 맞지 않으며, 샤를은 생각했다.

옆에 있는 화염 골렘이 주변의 빗줄기들을 전부 증발시켜 뽀송한 상태의 샤를은 이동하는 중보병들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았다.

‘이제 곧…… 황금 갑옷이…….’

그의 표정이 점차 기괴해지기 시작했다.

그 곁에서 알베르토 또한 비를 맞지 않으며 중보병들을 따르고 있었다.

[츠츠츠츳-!]

한편, 발스 동쪽에서는 20마리의 뱀 인간들이 1천 마리의 고블린을 이끌며 조용히 도시로 들어서고 있었다.

[츠츠츠츳-!]

머리부터 목까지, 하복부부터 꼬리까지는 뱀이고 가슴과 배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양팔은 인간의 형상인 뱀 인간들은 노란 눈을 번쩍이며 빠르게 이동하고 또 이동했다.

“결국 사달이 났어. 응? 이 사달이 말이야…… 제기랄…….”

성채 최상부 망루에서 동서로 다가오는 두 세력을 바라보며 파스텔은 한탄조로 이야기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화끈하게 끝내버립시다.”

털보는 단호한 표정으로 가슴팍에 부적을 붙이며 이야기했다.

파스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중보병은 분명 디에고 공작의 병력일 거야. 여기서 서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그 인간의 대농장이 있거든. 거기서 차출했겠지.”

“진즉에 그 외지인 놈들을 잡아 족쳤어야 했습니다.”

“아니야. 그랬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야. 그 외지인들이 온 지 하루 이틀 만에 일이 이렇게 된 거니까.”

“뭐, 어쩌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다 쓸어버리고 나서 생각해야죠.”

털보의 말에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콰야님 탄신일 축제를 뭐 미리 당겨서 한다고 생각합시다. 대충 한 700명 정도의 군인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셈이죠.”

털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씩 웃었다.

파스텔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군인 700명이면 다행이지…….’

하지만 분명 군인들의 죽음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 파스텔은 생각했다.

‘인육에 굶주린 뱀 인간들이 군인만 건들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파스텔도 부적 다발을 챙겨든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고블린의 시체는 여관 주인이 들고 갔다.

자기 딴에는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린답시고 중얼거렸지만, 그것을 보던 아딘과 로제, 조르주와 휴고 모두의 귀에는 “오랜만에 싱싱한 재료네.”라는 말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아딘은 조르주와 휴고를 쫓아낸 후 다시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렇게 로제의 곁에 앉아 자기 품에서 오돌오돌 떠는 그녀를 안심시켜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은신술을 쓰는 고블린, 그 아가리로 나온 검은 뱀…….’

그 모든 것은 김현수가 전혀 설정해 두지 않은 것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소설 속으로 빙의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그 빙의한 소설이 자신이 원래 썼던 것과 다른 내용이다?

당연히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엔 없었다.

아딘은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은 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뭔가…… 뭔가 이상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유리 콘스탄틴에 대한 복수심, 콘스탄티노바 왕궁 지하 감옥에서 받았던 끔찍한 고문과 거기서 비롯된 트라우마, 뜻하지 않은 살인의 연속과 도주의 연속, 변태 귀족…….

빙의 이후 아딘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왜 빙의했는가? 왜 하필 주인공 존 크리스토퍼 하이로드가 아니라 1부 빌런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인가?

이런 의문들이 종종 떠오르곤 했지만, 그 의문들을 모두 묻어버릴 만큼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기에 고뇌는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닷없는 은신 고블린의 출현과 그 시체의 입에서 나온 뱀을 본 직후, 가만히 여관방 침대에 앉아 불안해하는 로제를 위로하며 아딘은 그것들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갖기 시작했다.

‘뭔가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이건…… 이건 뭔가 일이 터지고 있는 거라고.’

아딘의 뇌리에는 끊임없이 ‘그 무언가’가 떠올랐다.

자신을 소설에 빙의하게 만든 ‘그 무언가’.

본래 영웅일대기의 원전과는 다른 몇 가지 설정들을 만든 ‘그 무언가’.

하지만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상으로 아딘의 상념은 확장되지 못했다.

‘신? 신이 날 이곳에 넣은 건가? 아니, 신이 진짜 있다면 정말 바쁠 건데 내 소설을 다 읽고 날 여기에 넣어?’

그 순간.

[콰앙-!]

엄청난 폭음과 거기서 비롯된 진동이 아딘의 온몸을 강타했다.

“꺄악-!”

로제는 비명을 지르며 더더욱 아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지진?”

아딘은 로제를 꽉 붙든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으윽-! 스으윽-!]

그런 아딘의 귀로 복도에서부터 무언가가 기어오는 소리가 들어왔다.

‘뱀?’

그것은 뱀이 기어다니는 소리와 똑같았다.

문제는 그 음파가 너무도 크고 두껍다는 것이었다.

아딘의 시선이 방문으로 향했다.

[스으윽-! 스으윽-!]

뱀 기어다니는 소리는, 그 후로 몇 초간 더 이어지더니 이내 멈춰섰다.

그리고 그 소리가 멈춘 곳은 아딘과 로제의 방문 앞이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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