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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26화 (26/175)

026 중구난방 (1)

“크흠.”

조르주의 헛기침에 아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힐끔 쳐다봤다.

“어흠.”

그 시선에 곁에 있던 휴고도 헛기침을 했다.

‘도대체 저것들은 뭐야?’

광명력 992년 6월 17일 아침.

‘어제 일도 그렇고…… 무슨 공무원이 저래?’

식사를 위해 1층 홀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아딘은 팔짱을 낀 채 조르주와 휴고를 바라봤다.

아딘과 로제가 앉은 테이블에서 두 테이블 건너에 자리한 두 사람은 시종일관 불편한 기색으로 아딘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직 내가 수배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던데…….’

지난밤, 아딘은 혹시 싶어 슈드 자치령 및 샤펠 제국 전역의 주요 수배자 명단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딘에 관한 수배는 여전히 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두 사람에 관한 정보도 다시 확인했지만 별 이상은 없었고, 두 사람을 파견한 슈드 자치령 총독 샤를에 관한 정보도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그냥 하급 관료들인가? 호위 무사도 없는 걸 보면…….’

김현수로 살면서, 한때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아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경 끄자. 어차피 내일 아침에 떠날 거니까.’

때맞춰 아딘이 주문한 아침 요리가 나왔다.

간단하게 호밀빵과 닭가슴살 수프로 로제와 함께 아침을 해결하며 아딘은 오늘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식량을 좀 사야겠어. 여관 주인 말로는 영지 북쪽에 조그만 시장이 있다고 했으니까. 무기도 좀 샀으면 싶은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지?’

여관 주인이야 1골드를 받고 싱글벙글하느라 의심의 시선을 거두었다지만, 여전히 이곳 발스 주민들은 아딘이 여관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곤 했다.

“어우. 비가 오려나? 하늘이 왜 이렇게 삭막하냐.”

그리고 지금, 아침부터 여관으로 들어와 맥주를 주문하는 털보.

경비대장이란 위장 신분으로 삼촌 파스텔 드 델로이 백작으로부터 경영 수업을 받는, 차기 발스 백작 릭 드 델로이.

‘저 인간도 수상해.’

여관으로 들어와 조르주와 휴고 그리고 자신에게 차례로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지은 뒤 테이블에 앉는 털보에게서 시선을 떼며 아딘은 생각했다.

‘저 인간…… 여기 술 마시러 오는 거 아니야. 나를 감시하러 오는 거지.’

아딘은 무기 구매는 단념하기로 했다.

‘정 뭐 가다가 괴수 같은 거 만나면 맨주먹으로 때려 잡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아딘은 숟가락을 열심히 놀렸다.

“다 먹었니 로제?”

“네, 오라버니.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일어나자. 가서 시장 좀 봐야지.”

“네.”

잠시 후, 식사를 끝마친 아딘과 로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딘은 조르주와 휴고를 지나치며 그들을 힐끔 쳐다봤고, 조르주와 휴고는 그 시선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아딘과 로제가 밖으로 나가자 조르주와 휴고는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 나갔다.

“……”

그리고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털보는 맥주를 마저 다 마신 후 1실버를 테이블에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을 빠져나갔다.

먹구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털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날씨 참…….’

털보는 그대로 델로이 성채로 향했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의 인사를 대충 받으며 그는 곧장 영주의 서재로 올라갔다.

“뭘 벌써 와?”

고대 태양숭배자 집단의 제기로 쓰이던 황동 촛대를 헝겊으로 닦던 파스텔이 털보에게 물었다.

“비도 올 것 같고 해서 일찍 퇴근했습니다.”

털보는 곧장 의자를 들고 와 파스텔 맞은편에 앉은 후 목소리 낮춰 말을 이었다.

“먼저 온 년놈들이랑 뒤에 온 놈들이랑 서로 아는 사이 같습니다.”

“아는 사이 같다고?”

“밥 처먹는 내도록 서로 눈치를 보더니 제가 들어오니까 얼마 안 있어서 차례로 여관을 나가더라니까요.”

“허어…… 더 따라가 보지 않고?”

“어차피 곳곳에 제 눈과 귀가 있습니다. 구태여 따라 갈 필요는 없지요.”

“겁나는 건 아니고?”

파스텔의 말에 털보는 콧방귀를 뀌었다.

파스텔도 그냥 해본 소리라는 양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촛대를 닦았다.

“아무튼 확실합니다. 그것들, 뭐 있어요. 백작님, 그냥 오늘 밤에 그 년놈들 다 잡아다 고문을 해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파스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두를 필요 없어. 그냥 진짜 지나가던 여행객일 수도 있고, 혹여 실제 누군가가 보낸 놈이라면 괜히 빌미를 줄 수도 있는 거야. 신중해야 해.”

파스텔의 신중론에 털보는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츠츠츠츳-!]

그때, 천장에 붙은 뱀 우상이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우상의 눈에 들어온 생기에 두 사람은 얼른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손을 모은 채 경배를 올렸다.

“오소서, 제사장이시여.”

“제사장께 울지콰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츠츠츠츳-!]

“네, 지금 제 조카가 감시 중에 있습니다.”

[츠츠츠츳-!]

“네? 요새라니 그게 무슨?”

[츠츠츠츳-!]

“아, 포루트 요새 말씀이십니까? 거기는 디에고 가문의 소유입니다만, 버려진 지 꽤 오래됐습니다.”

[츠츠츠츳-!]

“네? 병사들이 모여 있다니…… 그게 무슨…….”

[츠츠츠츳-!]

“7, 700명이나 말입니까?”

[츠츠츠츳-!]

“아, 아닙니다. 저, 저는 병사를 불러들인 일이 없습니다.”

[츠츠츠츳-!]

“아, 아, 알겠습니다.”

곧 뱀 우상의 눈에 생기가 사라졌다.

파스텔은 사색이 된 얼굴로 멍하니 생기 잃은 뱀 우상의 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무, 무슨 말입니까? 병사니, 700명이니?”

털보가 물었다.

파스텔은 하얘진 얼굴로 털보를 바라보며 가까스로 입술을 뗐다.

“전투 준비를 해라.”

“네?”

“오늘 밤…… 이곳은 전장이 된다.”

“그게 무슨……”

털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파스텔을 바라봤다.

파스텔은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꽉 쥘 뿐이었다.

* * *

포루트 요새.

발스로부터 서북쪽으로 10km 떨어진 야트막한 구릉에 고고하게 서 있는 회색빛 성채.

근처에 디에고 가문의 대농장이 건설되고, 그곳에 자체적으로 성채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이곳은 디에고 가문이 제국 동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초기지로 사용됐다.

약 100년 전, 더 이상 제국 동부에서 얻을 만한 게 없다고 판단한 당시 디에고 공작은 이곳을 폐쇄했고, 그렇게 포루트 요새는 오랜 세월 방치됐다.

“1소대 점검!”

“2소대 점검!”

그런 포루트 요새가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한방울 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광명력 992년 6월 17일 정오.

700명의 중무장 보병 집단이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라. 곧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것이다.”

보병대장 파우스는 우렁찬 목소리로 도열해 있는 700의 보병들을 지휘했다.

20km 완전 무장 행군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들 법도 할 터였지만, 중보병들은 모두 피곤한 기색 없이 파우스의 지휘를 따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요새 망루에서 내려다보며 알베르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병들의 태세를 완전히 점검한 후 파우스는 알베르토를 올려다봤다.

알베르토가 가볍게 손짓했고, 파우스는 보병들에게 대기 할 것을 지시한 후 망루 위로 올라갔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어.”

“정말로 저기에 황금 갑옷이 있는 겁니까?”

“그 게으름뱅이들이 헛짓거리만 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알베르토의 말에 파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동남쪽으로 돌렸다.

어둑어둑한 먹구름 아래 그리 크지 않은 도시, 발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델로이 백작에게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파우스의 물음에 알베르토는 코웃음을 쳤다.

“시골 백작 따위,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나중에 정식으로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알베르토는 얼굴 가득 조소를 머금은 채 파우스를 바라봤다.

“그 이의제기를 받아주실 분이 황제 폐하신데, 뭐가 걱정이란 말이냐?”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파우스가 고개를 숙이자 알베르토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발스로 돌렸다.

“남풍이 대지를 불태우고 석양이 강물을 메마르게 하리라…….”

알베르토의 입에서 흘러나온, 황금 갑옷에 관한 묵시록 종단의 예언 경구.

그것을 말한 알베르토도, 들은 파우스도 모두 표정이 굳어버렸다.

“예언이니까…… 언젠가는 현실이 될 거라 생각은 했다만…… 그게 지금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래도 예언을 막고자 역대 황제 폐하께서 많은 수고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남풍이 화산 열도를 의미한다 해서, 그 치들을 정기적으로 토벌한다든가, 미개한 상태로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해 버린다든가…….”

“오히려 예언 덕분에 우리는 그런 끔찍한 운명을 피하면서 황금 갑옷을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지…… 다만…….”

알베르토는 말끝을 흐렸다.

파우스는 가만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만 예언의 힘이란 걸 고작 인간의 능력이 막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대답은 전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파우스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고, 알베르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어떻게 그리도 제 마음을 잘 꿰뚫고 계십니까, 황태자 전하.”

알베르토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샤를에게 경배했다.

“늘 하던 말 아닙니까? 하하하.”

샤를은 알베르토를 일으켜 세운 후 파우스를 바라봤다.

“파우스라고, 중보병대장이자 종단 전도자입니다.”

알베르토의 소개에 파우스는 부동자세로 샤를에게 경례했다.

샤를은 미소를 지으며 그 경례를 받아준 후 알베르토와 함께 중보병 700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요새 한가운데를 바라봤다.

“황태자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700의 보병들이 모두 우렁찬 목소리로 샤를에게 인사했다.

그들에게는 갑자기 샤를이 왜 망루에서 나타났는지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모시는 알베르토의 사위이자 장차 이 나라의 황제가 될 남자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오늘 밤 있을 군사 작전을 참관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샤를이 알베르토에게 물었다.

“나머지 300은 어디 있습니까?”

알베르토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농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병력은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

샤를은 피식 웃었다.

‘거 참 끝까지 아끼려고 하는구만.’

하지만 그는 구태여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맙시다. 오늘 밤, 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죽여도 좋으니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샤를의 당부에 알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 * *

늦은 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딘은 책상에 앉아 촛불에 의지해 두루마리를 펼쳐 읽고 있었다.

두루마리에는 엘프숲 외곽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맹수와 괴수에 대한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딱히 위험한 건 없어. 기껏해야 고블린 정도면…… 고블린이면 뭐 솔직히 사람이 고함만 질러도 도망가는 쫄보들이니까. 늑대 정도가 좀 위험한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뭐…….’

곧 아딘의 상념은 전체적인 지도로 옮겨갔다.

곧 두루마리 위로 대륙 지도가 떠올랐다.

가만히 아딘은 발스에서 광활한 엘프숲을 지나 게마인샤프트 서부를 눈에 담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딘은 남쪽 바다 한가운데의 섬들을 볼 수 있었다.

‘화산 열도…….’

김현수의 소설 영웅일대기.

그중 4부에서 일어나는 화산 열도의 침공.

임진왜란을 모티브로 삼은 그 스토리를 떠올리며 문득 아딘은 한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다.

‘존은 없어. 그 가문 자체가 사라졌지. 그러면 화산 열도의…….’

아딘의 상념이 자신이 설정해 둔 화산열도의 조연을 막 떠올리려 할 때였다.

“끼야아악-!”

갑작스럽게 로제가 비명을 질렀다.

아딘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로제를 바라봤다.

“로제?”

잔뜩 겁에 질린 로제가 손가락으로 방구석을 가리켰다.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을 따라 아딘의 시선도 방구석으로 향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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